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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21세기 술탄’의 어게인 오스만제국…“동지중해 가즈아!”

입력 2020-09-14 07:00 | 신문게재 2020-09-14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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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rkey Iran <YONHAP NO-0054> (AP)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지난 8일 수도 앙카라에서 이란의 하산 로하니 대통령과 화상으로 회담을 하고 있다. (AP=연합)

 

미국과 중국이 무력시위 등으로 대립하는 남중국해 갈등에 많은 이목이 쏠리고 있지만 동지중해로 시선을 옮기면 또 다른 갈등이 현재진형형이다. 주인공은 터키와 그리스. 동지중해 천연가스 자원 개발을 놓고 양국은 서로 대립하며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같은 안보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이지만 역사적으로 뿌리 깊은 대립의 역사가 있다. 분쟁 중인 해역도 그리스와 터키뿐만 아니라 키프로스, 북키프로스, 이집트, 리바아까지 얽혀 있어 각자 지분을 요구하는 모양새. 여기에다 ‘21세기 술탄’(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오스만제국 야망은 동지중해를 더욱 긴장시키고 있다. 

 

14_오스만제국
오스만 제국의 제7대 술탄 마흐메트 2세의 콘스탄티노플 진격 장면을 그린 초상화에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얼굴을 합성한 모습. (그래픽=김병철 기자)

 


◇ 동지중해 천연가스 자원 문제로 격돌하는 터키 vs 그리스+α

터키와 그리스간 갈등은 키프로스 섬 인근 동지중해 자원 개발을 놓고 고조되고 있다. 키프로스는 키프로스 공화국(그리스계. 전체 면적의 74%)과 북키프로스 공화국(터키계. 전체 면적의 26%)으로 나뉘어져 있다. CNN 등 외신에 따르면 그리스와 가까운 키프로스가 프랑스 토털(TOTAL), 이탈리아 이엔아이(ENI) 등 다국적 에너지기업과 연안 자원 개발에 착수하자, 터키도 북키프로스 후견국 지위를 내세워 키프로스 섬 인근에 시추선을 투입해 천연자원 탐사에 나섰다. 이곳은 터키와 그리스간 오랜 영유권 분쟁 지역으로, 이 일대에 17억 배럴의 석유와 천연가스 3조4546㎥가 매장된 것으로 추산된다.

터키 시추선의 작업해역은 키프로스 섬과 그리스 영토인 로도스·카파토스·카스텔로리조 섬 인근으로 키프로스·그리스가 주장하는 배타적경제수역(EEZ)과 겹친다. 이에 그리스·키프로스·프랑스·이탈리아는 동지중해에서 해·공군 연합훈련을 실시하며 터키에 경고했고, 터키도 맞불 훈련으로 긴장이 고조됐다. 유럽연합(EU)은 터키의 패권 확대를 경계하며 회원국인 그리스와 키프로스 편을 들고 있다. EU는 동지중해 긴장 완화에 진전이 없으면 터키에 새로운 제재를 내리겠다고 경고했다. 동지중해 에너지 자원 탐사에 여러 나라가 지분을 갖고 있는데다 지역패권을 놓고 주변국들은 터키의 부상을 경계하는 움직임이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 10일 기자회견에서 “그리스와 분쟁을 빚는 터키를 더는 동지중해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겠다”며, EU에 제재를 포함한 단호한 대책을 촉구했다. 이에 터키 외무부는 “오만하다”며 강력히 비난했다.

 

 

14_터키그리스

 

 

◇ 터키는 왜 그리스에 ‘비잔틴제국 역사’를 언급했나



그리스와 천연가스 개발을 놓고 대립하는 가운데 터키는 ‘비잔틴제국의 역사’를 언급했다. 터키 관영 아나돌루통신 등에 따르면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지난 8월 26일 터키 동부에서 열린 만지케르트 전투 949주년 기념행사에서 그리스를 겨냥해 “비잔틴제국의 유산을 가질 자격도 없는 자들이 유럽인 뒤에 숨어서 부정과 해적행위에 혈안이 되고 있다. 역사에서 배우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터키는 다른 나라의 영토와 주권, 이익을 탐내지 않지만 지중해와 에게해, 흑해에서 우리가 얻을 권리가 있는 것은 무엇이든 취할 것이고 어떠한 양보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터키 기념영상
터키 정부가 제작한 만지케르트 전투 승리 949주년 기념 영상 (사진=터키 공영 뉴스채널 TRT하베르 영상 캡처)

 

그는 왜 만지케르트 전투 기념행사에서 이같이 언급했을까.

만지케르트 전투란 지금으로부터 약 천년전인 1071년 8월 26일 터키의 전신인 셀주크투르크와 그리스 전신 비잔틴제국이 터키 동부 만지케르트평원에서 격돌한 싸움이다. 당시 셀주크왕조 제2대 알프 아르슬란이 인솔한 투르크군은 비잔틴제국의 황제 로마누스 4세가 인솔한 6만 군대와 싸웠다. 전투 결과는 셀주크의 승리로 끝났고, 로마누스 4세는 포로가 됐다. 이 싸움을 기점으로 비잔틴제국은 급격히 쇠퇴했고, 터키인은 이 지역에 정착함으로써 오스만제국과 지금의 터키공화국으로 이어지는 기반을 닦게 된다. 에르도안은 그 역사적인 전투를 기념하는 날 그리스 조상들이 터키인에게 패한 역사의 교훈을 깨달으라며 경고한 것이다.


◇ 그리스와 터키 사이의 ‘에개해’, 불화의 씨앗이 되다

그리스는 그리스 정교 종주국으로 그리스반도를 지배하던 동로마 제국이 1453년 오스만제국에 멸망된 후 400년간 터키인의 지배하에 있었다. 오스만제국의 지배를 받던 그리스는 1830년 3월 독립하게 된다. 이후 발칸전쟁에 참전해 터키로부터 크레타섬을, 1차 세계대전 때는 연합국 일원으로 참전해 에게해 제도를 회복하게 된다. 그리스가 현재의 국경을 확보하는 과정에 터키 본토와 매우 근접한 에게해 도서지역이 그리스에 복귀된 것은 당시엔 큰 문제가 아니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불화의 씨앗이 된다. 특히 그리스령 레스보스, 히오스, 사모스, 도데카네스 군도 등은 터키 서해안에 근접해 있고, 사모스의 경우 터키와의 거리가 불과 500m 밖에 되지 않는다. 터키가 본토 해안으로부터 어떤 수역을 선포하는 것을 방해하는 실정이다. EEZ 문제는 갈등을 키웠다. EEZ란 연안국이 자국 해안으로부터 200해리(약 370km) 안에 있는 해양자원의 탐사, 개발 및 보존 등 모든 주권적 권리를 인정하는 유엔 국제해양법상의 해역이다. 통항과 상공비행의 자유를 방해할 수 없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사실상의 영해로 볼 수 있어 각국은 EEZ를 주권적 차원에서 관리하고 있다.

TURKEY-POLITICS-GOVERNMENT <YONHAP NO-1001> (AFP)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AFP=연합)

 

◇ 정권 리더십 따라 터키-그리스간 갈등도 고조…오스만제국 부활을 노리는 에르도안

터키와 그리스간의 갈등은 오래됐지만 긴 시간 속에서 관계개선의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역사를 살펴보면 터키와 그리스는 정권 성향에 따라 관계개선을 향하기도, 갈등이 더욱 격화되기도 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최근 국수주의 성향의 에르도안 정권에서 터키와 그리스의 갈등이 고조되는 모습이다. 철권리더십과 신권위주의를 앞세우는 에르도안 대통령은 ‘21세기 술탄’으로 불린다. 중국에 시황제(시진핑 국가주석), 러시아에 ‘21세기 차르(황제) 푸틴’(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있다면 터키엔 ‘술탄(이슬람 최고통치자) 에르도안’이 있다고 할 정도로 대표적인 스트롱맨으로 꼽힌다. 에르도안은 지난 2016년 케말 아타투르크(터키인의 국부로 불림) 추도식에서 “터키는 터키보다 크다는 걸 알아야 한다. 우리는 78만㎢(터키 면적)에 갇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아타투르크는 1차대전후 오스만제국이 식민지를 모두 잃고 쇠락해져있을 때 그리스가 소아시아 내륙까지 치고 들어오는 것을 앙카라 근교 사키리아 전투에서 물리친 인물이다. 이 전투로 그리스는 철수하고 터키인은 지금의 터키공화국을 수립할 수 있었다.

에르도안은 2016년에 쿠데타 주도자들을 진압한 후 헌법개정을 통해 대통령 권한을 강화하고 반(反)그리스, 반(反)키프러스 등 국수주의 정서를 고조시켜왔다. 또 미국 F35 전투기, 러시아제 미사일 시스템 등 최첨단 장비를 도입해 군사력을 증강시키며 경제위기로 군축이 불가피한 그리스를 긴장하게 만들기도 했다.

에르도안 체제에서 터키는 과거 오스만제국의 부활을 노리며 패권을 확대하고 있다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오스만제국은 1354년 유럽에 진출해 정복활동을 시작했고 1453년 메흐메트 황제가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하면서 팽창이 절정에 달했다. 16세기 에게해와 흑해는 오스만제국의 내해였으며, 이디오피아와 예멘, 크리미아를 국경으로 삼고 비엔나까지 영토를 확장했다. 17세기부터 쇠퇴하기 시작해 발칸전쟁으로 세력이 축소됐고, 패전국인 독일 측에 가담했던 1차대전을 거치면서 모든 식민지를 잃게 된다.

 

9대 술탄 세림
9대 술탄 세림 I세(1470~1520) 이미지 (위키피디아 갈무리)
앨런 미하일 예일대 역사학 교수는 미 시사주간지 타임 기고문에서 에르도안이 오스만제국을 부활시키려 하는 시도나 스스로를 ‘술탄’으로 칭하는 것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이 사실이지만, 에르도안의 정치 어젠다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오스만제국의 어떤 술탄이 되려고 하는지를 구체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하일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에르도안이 추구하는 술탄은 9대 술탄인 셀림1세(1470~1520)다. 셀림은 오스만제국의 가장 성공적이면서도 존경받는 술탄의 하나로, 키가 크고 강했으며 용맹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셀림의 오스만제국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유럽에 걸친 거대한 영토 확장을 이루었다. 특히 1517년 이집트의 부르지 맘루크왕조를 멸망시키고, 맘루크왕조가 비호하던 아비스 가문의 칼리프로부터 칭호를 이양받음으로써 세속권력의 행사자인 술탄이 정신계의 최고 수장까지 겸하게 된다.

‘21세기 술탄’ 에르도안은 오스만제국의 옛 광활한 영토에 대한 향수를 간직한 터키인들의 마음에 불을 지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시진핑 주석이 중국을 미국과 동등한 초강대국으로 일으키겠다는 ‘중국몽’을 내세운 것처럼 자국민들을 결집시키기 위한 통치전략의 일환으로도 해석된다.

김수환 기자 ksh@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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