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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더컬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위한 분투…피아니스트 랑랑 “온전히 바로크 시대의 바흐를 꿈꾸며”

입력 2020-09-18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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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랑
새 앨범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발매한 피아니스트 랑랑(사진제공=유니버설뮤직)

 

“그런 말을 해주고 싶었어요. ‘브라보! 잘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구나. 정말 멀어’라고요.”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앨범 발매를 기념해 진행한 화상 인터뷰에서 랑랑은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 크리스토프 에센파흐(Christoph Eschenbach) 앞에서 이 곡을 연주했던 열일곱의 자신에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고 했다.

당시 “아주 작은 디테일까지 빠뜨리지 않고 흡수했다”는 평을 들었음에도 랑랑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위한 분투는 그 후로도 오래도록 계속됐다. 그의 나이 열살, 유명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Glenn Herbert Gould) 연주로 처음 들으면서 시작된 요한 제바시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 ‘골드베르크 변주곡’ 녹음이라는 그의 숙원은 2020년 가능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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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랑의 새 앨범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커버(사진제공=유니버설뮤직)
“30개의 변주마다 성격을 부여하고 이를 잘 표현하기 위해 강약을 조절하고 감정을 불어넣는 데 집중했어요.”

그의 전언처럼 “원래 6월로 계획돼 있었지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3월로 앞당긴” 앨범 녹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감정적인 부분”이라고 밝힌 랑랑은 “사람들은 바흐나 바로크 음악이라고 하면 감정 없이 연주하는 경향이 있다. 필요 이상의 감정은 쇼팽이나 리스트, 슈만 같은 작곡가들의 음악에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방법론으로 따지면 일부는 맞아요. 하지만 인간의 감정 측면을 생각하면 완전히 틀렸죠.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연주할 때도 낭만주의 작곡가들을 대하듯 완전히 마음을 내줘야 하거든요.”

그렇게 완전히 마음을 내준 연주를 앨범에 담기 위해 랑랑은 “하프시코드 연주자였던 란도프스카와 글렌 굴드 버전을 비롯해 파레하, 바렌보임, 안드라스 쉬프 그리고 안드레스 슈타이어 등의 연주를 듣고 연주하고 듣고 연주하고를 반복했다.”

그렇게 온 마음을 실은 연주가 담긴 새 앨범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에는 스튜디오 녹음 버전과 바흐가 몸담았고 그의 무덤이 있는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교회에서의 라이브 연주가 모두 실렸다.


◇바로크 오케스트라의 진수, 음악적 에베레스트!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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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앨범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발매한 피아니스트 랑랑(사진제공=유니버설뮤직)

 

“이 아리아는 편안히 잠들게 하기 위한 곡이에요. 바흐가 자신에게 도움을 많이 준 독일 드레스덴 주재 러시아 대사(헤르만 카를 폰 카이저링크 백작)를 위해 작곡했죠. 그러던 중 9개의 카논(Canon, 모방대위법에 의한 작곡기법과 그 기법에 의한 악곡 이름)이 떠올랐고 같은 선율 연주를 시작으로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그리고 아홉 번째까지 변주가 한음씩 더해졌어요. 우리가 알고 있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뼈대이자 피인 9개의 변주죠.”

‘아리아-30개의 변주-아리아’로 구성된 ‘골드베르크 변주곡’에 대해 랑랑은 “그러다 곡을 반으로 잘라 변주1부터 15, 변주16부터 30까지로 나눴다. 마치 가운데에 필수적인 컷이 있는 피라미드 같다”며 “이것이 상당히 흥미롭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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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앨범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발매한 피아니스트 랑랑(사진제공=유니버설뮤직)

“변주16이 바로크 오르간의 소리라면 변주15는 하프시코드의 복사판 같거든요. 전혀 다른 전반부와 후반부 변주 사이에는 쿠랑트(16세기에 발생해 한때 유럽 여러 곳에서 널리 유행했던 춤곡), 지그(17∼18세기의 기악, 특히 모음곡으로 쓰인 무곡), 미뉴에트(17∼18세기경 유럽을 무대로 보급되었던 3/4박자의 무용과 그 무곡), 사라방드(느리고 우아한 스페인 춤) 등 여러 가지 형태의 작품들이 있죠. 파르티타(바로크 시대에 쓰던 악곡 형식)부터 클라비어(건반이 달린 현악기의 총칭)까지, 우리가 배운 모든 것이 있어요. 심지어 푸가도 있죠. 바흐는 이 작은 작품들을 거대한 피라미드 형태의 카논 사이에 넣었어요. 그 마저도 충분하지 않았는지 각 변주들을 반복하죠.”


그렇게 변주의 반복으로 다이내믹을 살린 ‘골드베르크 변주곡’에 대해 랑랑은 “엄청나게도 그 변주들은 매번 다른 유닛으로 그룹지어진다”며 “흡사 트랜스포머 혹은 레고를 가지고 노는 것과 같다”고 표현했다.

“감정적인 낭만주의 음악을 연주하는 것과는 굉장히 다른, 마치 영화나 색 등을 묘사하는 것과 같아요. 좀 더 수학적이지만 당연히 감정도 필요하죠. 전형적인 바흐의 다양한 면을 보여주는 곡으로 바로크 오케스트라의 진수죠.”

 

이어 랑랑은 “전형적인 바흐의 다양한 면을 반영해 반복하고 있다. 마치 몇몇 장면을 기억하는 것처럼”이라며 “처음과 끝 아리아에서는 상당히 동양적인 부분도 엿볼 수 있다”고 부연했다.

“매년 마지막 날이면 영혼을 씻어내면서 시작과 끝을 돌아보고 그 과정을 반복하는 동양적인 철학을 담고 있죠. 하지만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분명 바로크 음악이에요.”


◇랑랑만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첫 번째 원칙 ‘바로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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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랑랑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녹음의 첫 번째 원칙은 ‘내 안의 바흐는 정말 바로크 시대의 것’이라는 것이었어요. 바흐의 음악이 바로크 시대와는 상관없는 다른 세대의 누군가가 연주하는 것처럼 들리지 않길 바랐거든요. 동시에 제가 가진, 오르간의 소리를 흉내 내는 것 같은 완벽한 스타카토와 아름다운 레가토 등 순수한 테크닉을 조금씩 보여주고 싶었죠. 느린 동작에서 나오는 평온한 순간과 외로움, 한 발짝 한 발짝 언덕을 오르는 힘듦 등 다양한 감정들을 공유하고 싶었거든요.”

이에 랑랑은 “바로크 연주자를 반드시 공부해야 했다. 하프시코드(피아노가 상용화되기 이전의 건반악기)와 바로크 오르간 등의 악기에서 어떻게 연주되었는지, 특히 꾸밈음을 어떻게 연주했는지를 배워야 했다”고 밝혔다.

“낭만시대 꾸밈음을 오려다 바로크에 붙이는 것이 아니라 정확한 바로크 꾸밈음을 만들기란 매우 어렵거든요. 충분한 시간을 들여 정확한 스타일을 터득해야 하죠. 제가 20여년 넘게 끊임없이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배우는 이유기도 해요. 저는 늘 준비가 됐다고 느꼈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했던 상태가 3년 전까지 반복됐어요.”

3년 전에야 오를 자신감이 생긴 ‘음악적 에베레스트’인 ‘골드베르크 변주곡’에 대해 “테크닉적으로나 음악적으로 확실히 가장 어려운 작품 중 하나”라며 “개인적으로 25번째 변주가 가장 어려운 느린 동작”이라고 꼽았다.

“굉장히 어둡고 수동적이며 고군분투하고 우울하며 고통스럽죠. 그 해석을 하는 데 굉장히 오래 걸렸어요. 한번 연주하고 다시 반복하면 어려움과 고통이 두 배가 되는 느낌이 들 정도죠. 그 고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어요. 그런 측면에서는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10대의 피아니스트가 25번째 변주를 연주하는 건 고문 그 자체거든요.”


◇틀림없이 느껴지는 바흐, 그의 세 번째 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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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랑이 “두 개의 뇌를 가진 사람같다”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앨범을 녹음하면서 바흐에게 질문하고 싶은 것이 정말 많았어요. 하지만 불가능하니 차선책으로 바흐를 잘 이해하고 있는 위대한 작곡가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나 다른 멋진 음악가들에게 대신 질문했죠.”

랑랑은 바흐에 대해 “굉장히 신앙심이 깊은 사람”이며 “전형적인 시골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곤 “칸타타 등 종교적인 음악, 교회를 위한 음악을 많이 썼고 고향을 단 한번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그는 끝까지 양배추 수프를 먹고 친구와 노래하며 노는 순수한 시골 소년으로 남아있었어요. 그는 두 가지 면을 가지고 있어요. 매사에 종교적으로, 인간적으로 명분을 만들어낸 바흐는 두 개의 뇌를 가진 사람 같았죠. 다른 작곡가에 비해 화성이 많은 걸 보면 아마 그에겐 세 번째 뇌가 있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는 바흐 앞에서 연주할 수 있다면 그가 어떤 반응을 보이길 바라느냐는 질문에 “정말 알 수 없다. 그가 나를 느꼈는지는 모르겠다”며 “하지만 나는 틀림없이 그를 느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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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앨범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발매한 피아니스트 랑랑(사진제공=유니버설뮤직)
“성 토마스 교회에서의 라이브 녹음이 끝난 후 바흐의 무덤으로 가 ‘오늘 제가 당신을 자랑스럽게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던 기억이 나요. 제 연주를 그가 자랑스럽게 여겼을지 답을 들을 방법은 없죠. 그는 이미 떠났으니까요. 그래도 그의 음악은 지금까지도 남아 있잖아요.”


◇코로나19로 지친 이들에게 위안을!

“정말 힘든 시기예요. 사람들을 대면해야하는 공연계는 특히 힘들어요. 2020년은 저는 물론 모든 뮤지션에게 악몽 같은 해죠.”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 이하 코로나19) 팬데믹이 장기화로 접어든 현재를 “악몽같다”고 표현한 그는 “코로나19로 특별한 때를 보내면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딱 한 가지, 무대에서 연주할 때”라고 털어놓았다.

“그럼에도 우리는 내면적으로 강해져야 하고 계속해서 연습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새로운 곡들을 익히고 작품을 배우면서 예술가로서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것이 예술가들의 역할이니까요. 예술 그리고 예술가는 사람들이 서로의 문화와 생각을 존중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연결하는 ‘다리’죠. 특히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금은 더욱 절실하게 사람들의 마음과 영혼을 결속시키고 위로하는 음악이 절실한 때예요.”

이어 “음악을 통해 사람들이 위로받을 수 있도록 계속해서 짧은 연주를 담은 영상을 업로드할 것”이라고 전한 랑랑은 마음을 다스리는 음악을 추천하기도 했다.

“모차르트와 바흐 그리고 전혀 다른 느낌의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추천해요.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은 사람들을 좀더 감성적이게 하거든요. 모차르트의 음악은 희망을 불어넣어주고 바흐는 신성함과 땅의 단단함을 통해 천국의 음악을 듣는 듯한 느낌을 주죠. 그들의 음악이 (코로나19로) 아프고 지친 이들의 마음을 그리고 감성과 영혼을 다독일 거예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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