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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사이드] 연극 ‘나, 혜석’ 이기쁨 연출·한송희 작가 “전혀 다른, 그럼에도 나 보다 더 믿는!”

입력 2020-10-26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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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송희 이기쁨
연극 ‘나, 혜석’의 한송희 작가(왼쪽)와 이기쁨 연출(사진=이철준 기자)

 

“성향도, 취향도 많이 다른 편이긴 한데 제가 글을 쓸 때 제약을 두거나 제가 하려는 걸 막거나 하지는 않아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존중해 주고 저 역시 (이)기쁨 연출님 제시하는 방향을 수용하곤 해요. 너무 다른 종류의 사람이라 서로 못보는 걸 각자가 보고 있음을 이제는 너무 잘 알고 있거든요.”

26일 온라인 공연을 앞두고 있는 연극 ‘나, 혜석’의 한송희 작가는 ‘헤라, 아프로디테, 아르테미스’ ‘줄리엣과 줄리엣’ ‘헤카베’ 등에서 호흡을 맞춘 이기쁨 연출에 대한 믿음을 드러냈다.

한 작가는 배우이자 작가로서 연출자로 호흡을 맞추고 창작집단 LAS 대표이자 소속단원으로 함께 해온 이기쁨 연출에 대해 “작업 초반에는 너무 달라서 네가 맞네, 내가 맞네 다툼이 있기도 했지만 이제는 서로의 의견을 최대한 수용하면서 보완하는 방법을 찾는 사이”라고 표현했다.
 

한송희
연극 ‘나, 혜석’의 한송희 작가(사진=이철준 기자)

연극 ‘나, 혜석’은 한송희 작가·이기쁨 연출 콤비작으로 화가이자 작가, 시인이며 독립운동가이자 여성 인권의 선두에 섰던 나혜석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이다.

 

오롯이 나로 서기 위해 분투했지만 문제적 인물로 ‘낙인’ 찍히기도 했던 나혜석의 다양한 면을 세 명의 혜석(박무영·최나라·정새별)에 투영해 교차시키고 현재에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다르지만 나보다 더 믿는, 그런 사이
 

“작가로 만나 글을 볼 때 한번에 다 이해되지 않을 때도 있어요. 하지만 제가 조금 더 시간을 들여 이해한 지점들이 이 친구가 쓴 의도랑 아주 다른 지점은 아니었어요. 늘.”


한송희 작가에 대한 한결같은 믿음을 이렇게 전한 이기쁨 연출은 “동시에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배우이기도 하다”고 말을 보탰다.

“영리한 배우라서 웬만하면 이 친구가 하는 동선 등은 거의 터치를 안하는 편이에요. 이해 안가는 부분에 대해서는 질문을 하지만 그 비율이 8대2, 9대1 수준 같아요. 그 얘기하는 과정이 별로 어렵지 않고…그게 저희 둘이 만났을 때의 가장 큰 장점 같아요. 사실 어떤 극이든 ‘이 이야기를 잘 할 수 있느냐’라는 고민이 너무 깊거든요.”

이기쁨 연출의 말에 한송희 작가는 “제가 이기쁨 연출이 아닌 사람과 극작해서 작품하는 일은 거의 없다”며 “왜냐면 어떤 불안전한 점, 고쳐야하는 점을 정확하게 캐치해서 가야할 노선까지 말해줄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라고 털어놓았다.

“제가 저를 못믿더라도 (이)기쁨이가 괜찮다고 했으니까 알아서 연출하겠지 생각해요. 이게 신뢰인지, 의존인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정말 별로라면 말 해줄 거고 메워줄 거라는 걸 알거든요. 어떻게든 같이 수정해나갈 거라는 믿음이 있죠. 이 과정을 모르는 다른 연출과 했다고 생각하면…상상하기도 싫어요. 인간적으로도 제가 제일 믿는 사람이에요.”

그리곤 “어떤 일이든 인간은 완벽하지 않고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믿으며 방법을 계속 찾는 사람이고 극단 대표이고 연출자”라고 덧붙였다.


◇‘난설’ ‘나, 혜석’ 그리고 이기쁨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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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나, 혜석’의 이기쁨 연출(사진=이철준 기자)

 

“저는 꿈을 꾸고 생각을 많이 하지만 되게 포기가 빨라요. ‘그만 하자’ 혹은 ‘안하는 게 좋을 것 같아’라는 말을 제가 제일 많이 하거든요. 기쁨이 스스로는 안전주의라고 하지만 가장 좋은 지점을 어떻게든 끊임없이 찾아내고 취합해서 가려는 사람이죠. ‘나, 혜석’ 때도 저는 ‘삶의 궤적을 교차해서 인생의 무늬를 보여줄거야’ 하다가 ‘안될 것 같아, 뺄게’ 했는데 기쁨 연출이 끝까지 찾아내려 애썼어요.”

한송희 작가의 말에 이기쁨 연출은 “(한)송희 작가는 여성 서사, 문제 등을 다른 작가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지점들이 있다”며 “여성 서사를 떠나 작가라는 존재가 본인의 아이덴티티를 여실히 드러낼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고 부연했다. 
 

나,혜석  포스트 이미지
연극 '나, 혜석' 포스터(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

이어 “각자의 성향이 묻어나는 지점이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고 각자의 방식에 맞춰 접근하는 작업과정은 필수”라고 덧붙였다.

 

“나혜석이라는 실존인물 뿐 아니라 등장인물군들도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작성된 ‘나, 혜석’은 굉장히 고증을 따르는 작품이에요. 그 불안과 부담감이 굉장히 컸어요.” 


이렇게 토로한 이기쁨 연출은 “바로 직전 작품인 ‘난설’과 비교되는 지점들이 있다”며 “허난설헌이라는 실존인물을 바탕으로 했지만 너무 달랐던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장르도 달랐고 실존인물들을 기반으로 하지만 픽션이 굉장히 많이 가미된, 현실과 연결 짓기 시작하면 오류가 많은 글이고 그렇게 접근하면 안되는 작품”이라고 부연했다.

“뮤지컬 ‘난설’이 창작자들이 생각하는 이미지를 자유롭게 입히는 게 가능했다면 ‘나, 혜석’은 잘못하면 너무 위험하고 아주 큰 실례를 범할 수 있는 지점들이 존재했어요. 무례하거나 혹시나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게 될까봐 걱정이 컸고 아주 조심스러웠죠.” 

 

그리곤 “실존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을 할 때면 ‘살아 돌아오셔서 보게 된다면’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며 “‘난설’ 때는 ‘와서 봐주시면 좋겠다’였다면 ‘나, 혜석’은 ‘봐주세요. 괜찮아요?’라는 기분”이라고 덧붙였다.



◇믿는 작가, 사랑하는 배우 한송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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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나, 혜석’의 한송희 작가(사진=이철준 기자)

 

“송희는 글 자체가 한번에 읽혀요. 수사가 많지도 않고 지지부진하거나 쓸 데 없는 것들이 많지 않고 오히려 정확하죠. 무대 위에서 본인이 움직이는 배우이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아요. 무대 언어를 무대에서 몸으로 느껴온 지점이 글로 옮겨 쓸 때 긍정적으로 반영된다고 생각해요. 의심의 여지가 없죠. 굉장히 살아있는 대사들이고 아주 잘 들려요. 배우들이 행하기 용이하고 한번에 읽히는 대사 자체가 굉장한 장점이죠.”

이기쁨 연출의 말에 한송희 작가는 “배우이기도 하다 보니 인물을 좀 더 많이 보는 것 같다”며 “구성이나 구조 보다는 ‘어떤 사람이냐’와 ‘등장인물 간의 관계’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다 보니 대사에 대해 예민한 편”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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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나, 혜석’의 이기쁨 연출(사진=이철준 기자)

 

“말 같은 말, 누가 봐도 대사인 것 같은 말, 이 등장인물이 안할 것 같은 말을 쓰려고 노력해요. 시대극인 ‘줄리엣과 줄리엣’은 일부러 문어체를 썼죠. 그 문어체가 어떻게 말처럼 가는지, 작가이자 배우로서 실험을 하고 싶었어요. 가장 살아 있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 구어의 최상급이라고 믿거든요. 지금 우리가 쓰는 말에 대한 탐구와 실험에 관심이 많아요.”

이어 “작가로서 대단한 포부 같은 건 별로 없는데 내년, 내후년에 작품화될 얘기를 구상하고는 있다”며 “희망을 얘기하고 싶지만 근거 없는 낙관이 아닌, 인간이 가진 아주 작은 선의들이 모여 만들어지는 희망”이라고 귀띔했다.

“코로나19로 인간을 쉽게 대면할 수 없고 싫어지기까지 하는 시대잖아요.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나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 마스크를 쓰고 손을 씻는 선의를 가지고 하죠. 그런 것들은 모으는 희망이요. ‘이게 인간의 민낯이야’ ‘인간은 이만큼 나빠’ ‘인간은 여기까지 파멸할 수 있어’ 라고 말하는 작품은 작가로서도, 배우로서도 안하고 싶어요. 인간의 민낯은 하나의 레이어가 아니거든요. 제가 여자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여자 이야기를 쓰겠죠. 하지만 그 세계에서 남성을 가해자로 납작하게 표현하기 보다는 시민으로서의 남성이 더 많이 함께 하는 얘기를 쓰고 싶어요.”



◇우리 함께 오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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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나, 혜석’의 한송희 작가(사진=이철준 기자)

 

“본인의 의지가 있는 한 글도 계속 쓰면 좋겠어요. 예전엔 글 쓰는 걸 불편해 하기도 했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지만 이제는 작가로서 아이덴티티가 잘 서 있다고 생각해요. 친구로서, 독자로서, 관객으로서 송희 작가의 글을 보는 게 즐겁거든요. 만들 때도 즐겁고…. 그리고 배우로서 더 자주 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배우로서도 너무 사랑하는 사람, 사실은 작가보다도 배우로서 더 원하는 사람이거든요.”

이렇게 말하는 이기쁨 연출에 대해 “정말 정말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라고 표현한 한송희 작가는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취합해 조율하는 사람이 연출이라면 제가 아는 최선의 조율을 하는 사람”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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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나, 혜석’의 이기쁨 연출(사진=이철준 기자)

“배우와 스태프, 작품, 모든 것들과 소통하는 사람이고 창작진의 의견을 존중하면서도 하나로 끌고 가는 데 최선을 다하는 연출이에요. 극단 운영에서도 행정적인 것들, 비품정리부터 통장까지 어느 하나도 안놓쳐요. 단원들 개인 대소사까지 다 챙기는 걸 보면서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할 정도로 성실하고 감히 저는 못할 것 같은 일을 해내는 동료죠.” 

 

그리곤 “무대를, 극단을 계속하기 위해서 얼마나 애쓰는지 알고 있다”며 “꼭 그렇게 될 거라고, 너무 애쓰고 힘들 때는 멈춰도 본인이 원하는 대로 될 거라고 얘기해 주고 싶다”고 응원을 보냈다.

코로나19는 많은 공연들을 무산시켰고 무대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사람들, 더 나아가 예술인들을 절망으로 내몰았다.

 

이는 “어떻게든 안전하게 관객들을 만나고 오래 연극을 계속 하는” 한송희 작가, 이기쁨 연출이 가진 공통의 꿈을 더욱 절실하고 소중하게 만들기도 했다.  

 

“4차 산업혁명, 헉신적인 기술의 발전, 온라인 생중계 등이 부각되고 있지만 연극이 영상으로 대체되기는 아직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요. 온라인으로 만날 수 있는, 관객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넓힐 수는 있지만 본질은 극장에서 만나야 하는 장르라고 믿고 있거든요.”


이렇게 전한 이기쁨 연출은 “멈춰도 죽을 판이고 안멈춰도 죽을 판이니 이 상황을 발 빠르게 바꿔야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머리가 돌아가지도 않고 이 판을 재정비한다는 의욕이 잘안생기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코로나19의 상황이 금방 끝나지 않고 장기화될 것이라는 사실도 알아요. 그럼에도 안전하게 관객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최선이 아닌가 싶어요. 그걸 고민 중입니다.”

 

한송희 작가 이기쁨 연출
연극 ‘나, 혜석’의 한송희 작가(왼쪽)와 이기쁨 연출(사진=이철준 기자)

 

이기쁨 연출의 토로에 한송희 작가는 나혜석이 쓴 글 중 “내 가정의 행복을 빼앗아 간 것은 내 예술이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이 예술이 아니고서는 나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라는 구절을 인용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지금이 그런 것 같아요. 살기 위해서 난 연극을 중단해야하지만 이게 없으면 산다는 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요. 직접 부딪히는 연습과정, 관객과 만남 등이 가장 사랑하는 부분인데 이를 경계해야하는 현실이잖아요. 현실이지만 현실감이 없고 어려운 부분이죠. 어쨌든 살아서 답을 찾아야 하지만 쉽지가 않아요. 전 정말 오래 연극을 하고 싶어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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