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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경제 신간(新刊) 베껴읽기] <권력은 사람의 뇌를 바꾼다> 강준만

'선의'와 '도덕적 우월감'이 파괴하는 민주주의...내로남불의 근원은?

입력 2020-10-3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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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권력을 누리면 사람이 달라질까? 부패는 권력의 숙명인가? 이 책의 화두다. 저자는 문재인 정부가 훗날 권력 연구에 큰 기여를 한 정권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말한다. 조국 사태 이후 일련의 크고 작은 정치적 전쟁이 수많은 명명가를 권력투쟁의 졸(卒) 또는 사적 이해관계나 정실에 얽매인 부족주의 전사로 전락시켰기 때문이란다. 문재인 정권은 스스로 ‘선한 권력’임을 내세우며 자신들은 DNA 자체가 다르다고 주장한다. 지지자들도 그 선한 DNA를 앞세워 권력을 옹호하고 비판자들에게 모멸감을 준다. 저자의 표현대로라면 ‘도덕적 폭력’이다. 저자는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도 그런 일이 있었지만, 그 범위와 정도에서 문 정권은 압도적이라고 혀를 내두른다. 권력을 위임받은 사람들이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해야 하는 지 살펴보자.


* 권력자는 왜 대중의 사랑보다 두려움을 원하나 - 프랑스 정치가 샤를 모리스 드탈레랑 페리고르는 “인간은 칼로 많은 것을 할 수 있지만, 칼 위에 앉을 수는 없다”고 했다. 합리적인 권력 행사 보다는 반대파를 거칠게 누르면서 기존 체제를 장기간 유지하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마키아벨리는 “지도자는 대중의 사랑을 받는 것보다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게 낫다”고 했다. 저자는 마키아벨리가 “군주는 미움을 받는 일은 타인에게 떠넘기고 인기를 얻는 일은 자신이 친히 해야 한다”고 한 원칙을 문재인 정부가 잘 활용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착하고 선한 이미지로 지지자들의 사랑을 받는 역할은 문 대통령이 하고, 정권의 실세 혹은 실세가 되길 원하는 이들은 선과 정의를 앞세워 반대파를 거칠게 공격한다고 비판한다. 그는 이 정권이 정녕 칼 위에 앉아 보겠다는 게 아니라면, 권력 행사를 절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민주화 투쟁의 ‘상징 자본’을 통해 권력까지 누리고 있는 실세들도, 정의를 독점한 듯이 반대파나 비판자를 공격해선 안된다고 비판한다.

* 숨겨지지 않는 권력욕 - 니체는 “권력은 오직 ‘더 많은 권력’일 때만 만족을 준다. 그래서 권력을 지닌 자나 그렇지 못한 자 모두 권력에 집착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저자는 사람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자신의 권력욕을 신념으로 포장하거나 착각하면서 권력욕이 없는 것처럼 아예 그것을 지워버리는 일이라고 비판한다. 니체가 “신념을 가진 사람은 진실을 알 생각이 없어 가장 무섭다”고 한 말을 인용하면서, 실제로 신념은 진실을 차단하는 방어벽 기능을 하면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박해하는 도구로 기능 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권력욕 또는 권력 의지는 우리 인간의 본성이라는 걸 깨닫는 성찰 능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 한국에서 유독 심한 ‘지도자 추종주의’ - 저자는 한국이 ‘정당 민주주의 국가’라기 보다는 ‘지도자 민주주의 국가’라고 말한다. 정당이 ‘포장마차’와 다를 바 없다는 기존 학습효과가 있는데다 한국인 특유의 인물 중심주의 문화가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고난과 시련의 역사에서 배운 ‘영웅 대망론’과 정(情)의 문화, 빨리 빨리 문화, 기득권 구조에 대한 불신과 저항의식 등이 합쳐진 결과라고 말한다. 이른바 ‘빠’로 불리는 정치적 극렬 지지자들의 몹쓸 사이버 테러 역시 그런 관점에서 연민의 감정이 느껴진다고 말한다.

* 풍요 속에 확대재생산되는 ‘싸가지 없는 진보’ - 문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패한 2012년 대성 결과를 성찰한 회고록 <2019 끝이 시작이다(2013)>에서 “우리가 이른바 ‘싸가지 없는 진보’를 자초한 것이 아닌지 겸허한 반성이 필요한 때”라고 적었다. 하지만 역경 때만 그런 성찰을 하고, 풍요가 오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다시 싸가지 없는 행태를 집단적으로 해댄다고 저자는 비판한다. 2020년 4월 총선 때 이낙연 공동 상임선대위원장도 “때론 오만했습니다. 제가 그 버릇을 잡아놓겠습니다. 때로 국민의 아픔, 세상물정 잘 모르는 것 같은 언동을 하는데, 이 또한 잡아놓겠습니다”라고 유권자들에게 읍소했다. 저자는 하지만 “대승을 거두고 이전보다 더한 풍요를 누리게 된 후에는 예의 그 싸가지 없는 언동의 대량생산체제가 가동되지 않았느냐”며 혹독하게 비판한다.

* ‘진위’ 보다 ‘승패’와 ‘선악’의 이분법 - 역사학자 임지현은 “자기희생을 전제로 한 좌파 지식인의 ‘현실참여’와 ‘권력에의 꿈’ 사이 간격은 생각만큼 그리 넓지 않다”고 말한다. 대거 정관계에 진출해 권력을 누린 우리 시대 386 또는 586 세대 리더급 인사들은 한결같이 “남들이 일신의 영달을 꾀할 때 우리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고 하는 자부심과 도덕적 우월감을 갖고 있다. 진중권은 이에 대해 “586 세력은 자유민주주의 학습을 거의 못했다. 합의가 아니라 ‘척결’ 개념의 군사주의적 마인드를 가졌으며, 진위를 따지는 게 아니라 승패의 개념으로 접근한다”고 지적했다. 저자는 그런 선악·승패의 이분법은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체제하에선 정치의 정상적 작동을 어렵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지금 그들의 DNA에는 겸손이 없으며 편가르기, 그것도 이분법적 편가르기가 그들의 DNA라고 비판한다. 지지자들의 대체적인 사고방식도 다르지 않다고 지적한다. 검찰총장 윤석열을 대하는 자세가 딱 그렇다고 지적한다.

* 문재인 정권의 장기집권 셈법 ‘적대적 공생’ - 저자는 현재 문재인 정권의 기본적인 국정 운영과 정치 프레임은 ‘적대적 공생(antagonistic symbiosis)’이라고 단언한다. 강경한 독선과 오만을 저지름으로써 반대편의 강경한 극우보수 세력을 키워주고, 이런 구도 하에서 다수 대중이 문재인 정권의 독선과 오만 행태를 곰팡이가 필 정도로 낡아빠진 극우보수 행태에 비해 사소한 것으로 보이게끔 만들어 다수 지지를 얻어내는 동시에 장기집권을 꾀할 수 있다는 셈법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과정에서 나라는 망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저자는 일침 한다. 그는 “보수의 수준이 진보의 수준을 결정하고, 진보의 수준이 보수의 수준을 결정한다”고 말한다.

* 권력은 언제나 부패하나 - ‘권력부패론’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가 최초다. 그는 “권력은 그것을 소유한 모든 사람을 타락시킨다”고 했다. 처음에는 그것을 사용하고 싶고, 그다음에는 그것을 남용하고 싶은 유혹이 너무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영국 저널리스트 마거릿 헤퍼넌은 “권력은 타락한다. 그러나 그 타락은 권력자 스스로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은밀하다”고 말한다. 저자도 “우리는 자주 권력을 선하게 쓸 것으로 믿고 지지했던 권력자들마저 ‘권력의 주인’이라기 보다는 ‘권력의 노예’가 되는 모습에 절망하기도 한다”고 말한다. 그는 “권력을 잡고 나면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스스로 부패와 타락의 길로 내달리는 것인지 모른다”며 “부패는 권력의 숙명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 ‘운명’에 사로잡힌 문재인 대통령 - 독일 출신 이탈리아 사회학자 로베르트 미헬스는 “권력의 본성은 팽창주의적”이라고 말했다. 한국 국회의원 중 대통령 꿈 한번 안 꿔본 사람 없다는 말이 있듯이, 일단 지도자로 올라선 사람은 어쩔 수 없다. 내키진 않았지만 ‘운명’에 의해 정치 지도자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는 문 대통령도 다르지 않다. 저자는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문 대통령이 ‘역사와의 대화’에 더욱 강한 욕망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역사의 기록에서 ‘원조’가 되고 싶은 욕망이다. 역대 대통령을 보면 이런 원조 경쟁 탓에 국정운영의 의제설정이 크게 왜곡되고 민생은 비교적 외면당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 오늘의 혁명세력은 내일의 반동세력? - 미국 역사가 바버라 터크먼은 “모든 성공한 혁명은 조만간 자신이 몰아냈던 폭군의 옷을 입는다”고 했다. 사회학자 로베르트 미헬스는 “오늘의 혁명 세력은 내일의 반동세력이 된다”고 했다. 권력 집단은 겉으로 내건 목적이 아무리 급진적이라도 종국엔 보수적 속성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사회학자 마틴 마거도 “엘리트는 권력을 잡으면 그들이 이끄는 조직의 표면상 목적 보다는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하는데 전력하게 된다”고 했다. 조직이 목적 그 자체가 되고, 조직의 영속화가 지상목표가 된다는 것이다. 이 같은 ‘목표전치(goal displacement)’로 인해 결국 서민들에게는 별 의미가 없는 ‘그들만의 혈투’가 벌어지는데, 이것이 결국 한국 정치권력의 현실이라고 비판한다.

* 나쁜 허영심과 도덕적 우월감 -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정치인의 주요 덕목으로 ‘공평무사’를 꼽았다. 그는 정치가가 가져야 할 결정적인 3대 자질로 정열과 책임감, 목측 능력을 들었다. 목측 능력이란 내적인 집중력을 가지고 현실을 바라보는 능력으로, 일종의 ‘거리두기’다. 베버는 이 거리두기가 무너지면 ‘허영심의 수렁’에 빠지게 된다고 경고했다. 저자는 “진보가 보여주는 꼴불견 중에 하나가 도덕적 우월의식”이라는 정치평론가 이철희의 말을 빌어 “한국에서 정치인의 나쁜 허영심은 자주 도덕적 우월감으로 나타난다”고 말한다. 오늘의 더불어민주당이 허영심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 대표적 사례라고 일갈한다.

* 순수할 수 없는 ‘정치팬덤’ - 저자는 ‘권력욕’과 함께 ‘권력 감정’을 얘기한다. 권력 감정은 정치인뿐만 아니라 스스로 순수하다고 주장하는 일반 시민의 정치 참여 행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것이 바로 정치 과잉과 정치 왜곡의 근원이라고 지적한다. 권력감정에 도취한 사람이 자기희생을 면죄부 삼아 끊임없이 비생산적인 갈등과 분란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정치가의 팬클럽이 곧잘 보여주는 헌신적인 열정도 상당부분 권력감의 대리민족일 수 있다고 말한다. 자유주의 진영의 극렬 팬덤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기본적인 인권조차 결여되어, 권력의 부작용이나 남용 문제에 대한 비판의식은 전혀 없이 우리 편 권력자가 무조건 늘 옳다는 맹신만 있을 뿐이라고 지적한다. “나를 위해 이러는 게 아니야”라며 자신의 언행을 정당화하고, 독주와 독선으로 일관하며 포용과 타협을 적대시한다. 좌절될 경우 남들 또는 세상 탓으로 돌린다. 권력감정을 권력욕 못지 않게 자기 통제의 대상으로 삼아야 할 이유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 문 대통령의 비정한 ‘선별적 침묵’ - 조직 침묵(organizational silence)이라는 말이 있다. 구성원들이 조직 내부의 문제를 못본 척 외면하는 현상을 말한다. 가파른 계층 구조를 가진 조직에서 많이 나타난다. 이런 조직 침묵 때문에 ‘조직은 괴물’이라는 말도 나온다. 안희정 사건과 박원순 사건 때 우리는 이런 현상을 목도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선별적 침묵’도 자주 논란거리다. 2020년 7월16일 CNN조차 “문재인이 안희정 전 충남지사, 오거돈 전 부산시장,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문) 피소에 침묵해 국민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고 전했다. 국내 언론들도 문 대통령의 침묵은 적과 동지, 네 편과 내 편에 따라 결정되는 ‘선택적 침묵’이라며, 그의 ‘비정한 침묵’은 ‘2차 가해’와 다름없다고 비판한다.

* 권력상실에 대한 공포감 - 공포관리이론(terror management theory)은 사람들이 자신의 한계를 떠올릴수록 공유하는 세계관에 매달림으로써 죽음의 위협을 피하려 든다는 이론이다. 그 결과는 ‘보수화’다. 국회의원들 역시 조직의 노예가 됨으로써 자신의 권력 상실 가능성에 대한 공포를 관리하려 든다. 저자는 정권 탄생을 지지한 유권자들, 특히 그 중에 열성 지지자들을 대상으로 한 국정운영을 하는 정권들이 있는데, 문재인 정권 역시 그렇다고 단언한다. 행여 친문 유권자들의 ‘심기’를 거스를까 두려워 입조심, 몸조심 수준을 넘어 앞다퉈 ‘친문 맞춤형 발언’을 쏟아냈던 2020년 8월의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및 최고위원 선거장을 저자는 대표적인 사례로 비판한다.

* 보이지 않는 권력이 더 무섭다 - 대중은 주어진 이슈들에만 반응할 뿐 스스로 이슈를 찾아내 반응할 길은 원초적으로 막혀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적폐청산이나 검찰개혁으로 몰아가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의제들이 아무리 좋아도 이 의제들이 문재인 정권의 정권 안보와 장기집권에 도움이 되는 것들이기 때문에 오버할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지적한다. 그로 인해 민생의제에 소홀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으며, 이는 사회적 약자들을 대상으로 한 부동산 약탈로 이어졌다고 비판한다. 저자는 사회전체 차원에서 보면, 보이지 않는 권력이 보이는 권력보다 무서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지적한다.

* 영웅화되는 대통령, 대주술사가 되어가는 대통령 - 미국작가 존 스타인벡은 “우리는 대통령에게 도저히 한 사람이 해낼 수 없는 일과, 도저히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책임과, 도저히 한 사람이 견뎌낼 수 없는 압박을 주고 있다”고 언급했다. 우리가 그를 만들었다는 이유 하나로, 우리는 그를 파괴하고 마모시키고 탈진시켜 잡아먹고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제, 대통령의 영웅화가 이뤄지는 만큼이나 편치 않는 현실이다. 저자는 대통령이 차라리 탁 깨놓고 얘기하면 좋으련만, 대통령들은 그런 압박에 자발적으로 호응하는 대주술사(大呪術師) 연기를 하는 일에만 전력투구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고 비판한다.

* 닉슨과 노무현 왕따 - 미국 닉슨 전 대통령은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아이비리그 학벌로 대표되는 동부 기득권층을 죽는 날 까지 혐오했다. 닉슨은 하버드에 입학 허가를 받고서도 가정 형편상 서부 캘리포니아 변방을 떠돌 수 밖에 없었던 과거를 갖고 있다. 부통령 시절 때도 기득권층 회원제 고급 술집에서 문전박대를 당하는 등 그들에게서 늘 차별을 받았던 탓에 그는 원한에 사무쳤다. 우리에게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비슷한 케이스라고 저자는 말한다. 문재인 지지자들은 문 전 대통령 서거의 책임을 이명박 정권과 검찰, 그리고 당시 진보 언론들에게 묻는다. ‘노무현 왕따’가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래서 더 절박하게 문재인 대통령을 지켜내야 한다”며 결의를 다진다는 것이다.

* 타협은 진보에게 더러운 것인가? - 진보주의자들은 타협을 더럽게 생각하는 고질병을 앓고 있다고 저자는 비판한다. 실제로 한국 정치에서 가장 찾기 힘든 것이 바로 ‘타협’이라고 말한다. 문제의 핵심은 ‘원칙’인데, 어느 정도 양보하거나 타협할 수 있는 원칙도 있건만 우리 정치판은 경쟁 또는 적대 세력에게는 원칙의 최대주의, 자기 또는 동맹 세력에겐 원칙의 최소주의를 실천해 오고 있다고 비판한다. 우리 정치권에겐 이른바 ‘선택적 타협’만 있었다는 것이다.

* 스스로 고독을 키워가는 문재인 - 콜롬비아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절대 권력을 갖게 되어 현실과 접촉할 수 없게 되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나쁜 고독”이라고 했다. 그런 점에서 청와대는 고독을 넘어 권위주의를 부추기는 공간 구조라는 비판이 끊이질 않았다. 건축가 승효상은 “청와대란 공간 탓에 대통령의 사고도 행동도 권위적이 된다. 대통령이 말년에 비참한 것은 그런 건물에서 5년을 살아서”라고 했다. 문 대통령도 이를 인식한 듯 “광화문 시대를 열겠다”고 했지만 허튼 공약이 되어 버렸다. 저자는 “쓴 소리를 해줄 사람을 자주 청와대로 불러 이야기를 많이 들으면 좋겠지만, 이마저 하질 않는다. 스스로 고독을 키워가고 있는 셈”이라며 안타까와 한다.

* 시민운동 무용론까지 나올까 - 아나키즘은 좌파 사상이면서 강대한 조직을 거부한다. 사실상 과두체제의 철칙을 수긍한다. 권력이 인간의 본능을 인정하고 탈집중화를 통한 권력의 분산에 집중하다 보니 조직에선 아예 리더십 자체를 부정하는 부작용이 생겨나기도 한다. 문 정부 초기인 2017년 11월에 청와대 비서관급 이상 51명 중 시민단체 출신은 8명(실장 1, 수석 3, 비서관 4)이었는데, 2020년 6월에는 9명(실장 1, 수석 3, 비서관 5)으로 늘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 177명 중 시민단체 출신은 20명에 달했다. “문 정권에선 시민단체가 권력에 기생화됐다”는 말까지 나왔다. 저자는 “시민운동마저 정치권력을 갖는 수단으로 이용되는 관행이 계속된다면, 아예 시민운동 무용론이 나오지 않을까 두렵다”고 말한다.

* 1% 극렬 강경파가 지배하는 정치권 - 마케팅 전문가 벤 매코엘과 재키 휴바는 2006년에 발표한 책 <1퍼센트 법칙>에서 ‘90-9-1 법칙’을 주창했다. 새로운 콘텐츠 창출자는 전체의 1%에 불과하며, 인터넷 접촉의 99%는 1%도 안되는 사이트에서 이뤄지며, 책 판매의 99%는 1%도 안되는 저자의 저서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전체 인터넷 사용자 인구 대비 0.008%에 해당하는 사람이 전체 댓글 여론에 영향을 미친다. 이게 바로 댓글 조작 사건이 벌어지는 배경이며, 결국 ‘참여의 딜레마’를 불러온다. 정치적 신념을 종교화한 사람들이 정치에 적극 참여하고, 이런 소수의 강경파가 지배력을 행사하게 된다. 2005년 열린우리당 내분 사태 때도 당원 게시판에 시도 때도 없이 글을 올리는 열성 당원 ‘당게파(혹은 당게낭인)은 140명에 불과했는데, 이들이 당 분위기를 주도했다. 2019년 2월 자유한국당이 2%의 태극기 부대에 휘둘린 것도 비슷한 사례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 권력자의 공감능력 결핍과 ‘후안무치(厚顔無恥)’ - 2008년 11월 18일 미국 자동차 빅3의 CEO들이 정부에 긴급 구제요청을 하기 위해 워싱턴에 모였다. 그런데 이들이 모두 화려한 전용기를 타고 왔다는 사실이 보도되면서 여론이 들끓었다. 심리학자들은 ‘공감능력 결핍’ 현상으로 파악했다. 엄청난 권력자들의 뇌 상태는 특정한 상태로 형성되어 있어, 자기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치는 지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저자는 권력자가 비판에 의연할 필요가 있지만, 과유불급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권력자가 어떤 비판이 쏟아지건 마이동풍(馬耳東風) 식으로 넘어가는 것은 의연한 것도 아니고 강한 멘탈도 아니다”라면서 “이는 ‘파렴치한 후안무치’”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 5년짜리 ‘유랑도적단’과 ‘호모 쉐임리스’ - 서울대 사회학과 장덕진 교수는 2015년 6월 ‘유능한 관료와 무능한 국가’라는 칼럼에서 “한국의 5년 단임 대통령제가 유랑 도적단에 가까워지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러면서 금방 떠날 유랑 도적단은 마을의 미래에 관심이 없다면서, 5년 단임제하의 대통령들이 국가 미래보다는 자기 정권의 성과에만 관심을 갖는다고 비판했다. 일관된 정책을 추진하기 어렵고, 관료 커리어의 정점인 정무직의 상당수를 정치인이나 깜짝 발탁 인사들이 채우니 명예를 찾기도 힘들다고 적었다. 여성학자 정희진은 호모 쉐임리스(뻔뻔한 인간)론을 얘기한다. 진보 혹은 페미니스트라고 자처하는 이들이 사익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는 뻔뻔함을 지적한 말이다.

* 권력은 약물? - 아일랜드 신경심리학자 이언 로버트슨은 <승자의 뇌>라는 저서에서 개코원숭이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권력감’은 코카인같은 중독성이 있음을 밝혀냈다. 권력감이 도파민이라는 신경호르몬의 분비를 촉진해 뇌의 중독 중추를 활성화한다는 것이다. 그는 집단의 하위에 있는 개코원숭이가 지위가 올라갈수록 도파민 분비량이 늘었으며, 그럴수록 공격적이고 자신감이 넘치는 쪽으로 변모했다고 밝혔다. 이에 “권력은 매우 파워풀한 약물”이라며 “권력을 쥐면 사람의 뇌가 바뀐다“고 주장했다. 저자는 이런 ‘권력 중독’ 현상이 권력자에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지자들에게도 나타난다는 게 문제라고 일갈한다.

* 권력자를 망치는 ‘의전중독’ - 안희정 오거돈 박원순 등 잇따른 지자체장 성폭력 사건들은 과도한 의전에서 비롯된 문제라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과도한 의전을 통해 갑질에 취약해진 사람들이 그런 오버를 했다는 것이다. 말이 좋아 의전이지 사실상 ‘권력 갑질’이라고 성토한다. 자신은 물론 배우자 의전, 가족 의전까지 눈살을 찌푸리는 의전이 많다며 권력 중독은 곧 ‘의전 중독’이라고 말한다. 오죽했으면 2016년 행정자치부는 지방자치단체장 배우자의 사적 행위에 대한 지자체 준수 사항을 마련해 통보하기도 했다. 인사 개입, 사적 해외출장 경비지원 금지 등이 주요 내용이었다.

* ‘민주’ 이름에 먹칠하는 진보 - 가해자가 피해자의 밥벌이 권한을 전적으로 쥔 상황에서 권력자의 위력은 더욱 강력해 진다. 여성학자 권김현영은 한 기고문에서 “세상이 이만큼이나 좋아졌다고 믿는 민주화 세대는 더 이상 진보가 아니다. 아들은 이미 세상은 진보했으며 그 진보를 만들어 낸 것이 자신이라는 생각에 취해 사회의 진보를 가로막는 신보수주의자들과 완전히 똑같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제발, 민주라는 이름에 그만 먹칠해줬으면 한다”고 적었다. 저자는 개혁을 외치던 이들이 개혁의 대상이 되어가는 것은, 개혁을 편가르기로 이해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반독재 투쟁의 습속을 고수한 채, 게다가 자기 권력 밥그룻에 대한 욕심을 인정하지 않은 채 개혁에 임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왜 한국 대통령은 비극으로 끝나나 - 저자는 ‘제왕적 대통령’이란 말이 보수 진보 모두에게 정파적 용도로 흔히 사용된다고 지적한다. ‘내로남불’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누가 집권하면 야당은 아예 상대 않고 주요 정책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도 취임사에서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최대한 나누겠습니다”라고 했지만 공약(空約)이 되었다. 한신대 철학과 윤평중 교수는 “문재인 정부의 최대 과오는 제왕적 대통령제와 적대 정치를 온존시킨데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강원택 교수도 “모든 적폐의 근원은 권력이 집중된 제왕적 대통령제였다. 그걸 그대로 두고선 누가 권력을 잡든 새로운 정치는 기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저자는 제도화의 수준이 낮음에 따라 정책의 실패는 대통령 개인에게 책임이 돌아가고 결과적으로 대통령은 집권 초 높은 대중적 인기를 향유하다가 집권 말에 이르러선 저주에 가까운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그는 “모든 잠룡들이 ‘나는 다를 것’이라고 하겠지만 역대 대통령의 전철을 밟을 확률은 90%”라고 말한다.

* 경계해야 할 ‘진보의 선의 만능주의’ - 진보파의 ‘선의 만능주의’를 경계하는 목소리가 진보 진영 내부에서도 나온다. 그에 가장 근접한 인물은 두말 할 것 없이 문 대통령이다. 진중권은 이에 더해 “‘파멸적 진영 논리’가 한국 정치와 한국 사회를 망치고 있다”고 일갈한다. 자신들이 정의롭다는 착각에 빠진 사람들의 ‘개혁’ 시리즈가 균형과 견제, 대화와 타협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민주주의 시스템을 파괴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저자는 “우리가 현실적으로 바라는 것은 ‘선한 권력’이지만 권력 주체가 스스로 선한 권력임을 내세우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이른바 내로남불과 남탓의 상례화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자신들이 선한 권력이니 더 큰 일을 하기 위해 ‘자기 보호’가 필요하며, 따라서 권력을 어느 정도 오·남용하는 것도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생겨난 부패는 권력자 스스로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은밀하게 이뤄진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그는 “찬사를 받아야 마땅한 ‘선의’가 이토록 경계 대상이 되어야 할 만큼 선의를 오·남용하는 사람이 많아 안타깝다”고 말한다. 저자는 ‘민주주의는 겸손 위에서 번영한다’는 호주 정치학자 존 킨의 주장을 상기시키면서 “사회적으로 중요한 일을 맡은 사람들은 아무리 옳은 일을 한다 해도 자신의 ‘인정 욕구’나 ‘도덕적 우월감’을 자제한 ‘겸손’을 보일 때에 비로소 자신의 소신을 실천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조언한다.


조진래 기자 jjr8954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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