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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꽃 보다 예쁘다, 오래 보면 더 멋지다… 배우 이정은

[人더컬처] 영화 '내가 죽던 날'통해 목소리 잃은 연기 탁월하게 표현
"어른의 자격,그리고 존재 고민하게 만든 영화"
"대중의 일상에 스며들 수 있는 배우로 남고파"

입력 2020-11-16 18:00 | 신문게재 2020-11-17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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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를 삼키는 역할로 스크린을 장악한 배우 이정은.(사진제공=워너브라더스코리아)

 

지난 12일 개봉한 영화 ‘내가 죽던 날’의 반응이 뜨겁다. 여자감독에 주인공 모두 세 명의 여배우로 이뤄진 드림팀, 굳이 성별을 구분 짓는 게 시대착오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김혜수를 필두로 한창 드라마 ‘동백 꽃 필 무렵’을 촬영 중이었던 ‘기생충’의 이정은, ‘잘 자란 아역 배우의 표본’ 노정의까지. 

 

‘공감과 위로’에 대한 화두를 이렇게 먹먹하게 풀어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내가 죽던 날’의 만듦새는 기대 이상이다. 자살이 분명한 소녀의 죽음을 조사하러 온 형사 현수 그리고 그 섬에서 목소리를 잃은 순천댁이 그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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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가 죽던 날’은 동갑내기 배우 김혜수를 친구이자 동료로 만난 첫 작품이기도 하다.(사진제공=워너브라더스코리아)

 

하나 뿐인 남동생은 사고로 죽고 조카마저 식물인간이 된 고단한 삶의 여자는 서울에서 온 소녀와 형사의 아픔을 가슴으로 품는다. 아무도 선뜻 내밀지 않았던 따듯한 손을 데뷔 27년차의 이정은이 투박하지만 진실되게 연기한다. 

 

“같이 연기한 (김)혜수씨와는 동갑인데 생일이 제가 몇달 빨라요.(웃음) 배우로서 동경하는 표정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어떻게 저런 표정이 되는 거지?’라는 순간이 많았습니다. 평소에 격의없는 포옹이나 응원의 악수 같은 손잡기 등 제스처가 참 많은 배우죠. 평생 받을 사랑을 이 작품에서 받은 것 같은 느낌이에요. 그 순간을 함께해서 정말 영광이었고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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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정은.(사진제공=워너브라더스코리아)
첫 마디부터 상대배우의 극찬이다. 이정은은 배우들이 인정한 ‘연기되는 연극배우’로 꼽힌다. 데뷔 후 이렇다 할 대표작은 없었지만 좋은 작품이 있으면 사비를 털어 무대에 올리곤 했다.  

 

김혜수는 아무런 친분이 없었던 2000년대 초 자신의 연극을 본 뒤 출연하는 배우에게 맞는 의상과 액세서리를 한 트렁크씩 안긴(?) 손 큰 조력자였다고. 그때의 인연이 20년이 지나서야 한 작품에서 만난 셈이다. 

 

“비슷한 상황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뮤지컬 ‘빨래’를 통해 장애를 가진 아이를 둔 보호자의 역할을 꽤 오랜 시간 했어요. 하지만 순천댁은 좀 다르죠. 멀쩡한 삶을 살다가 사고난 조카를 키우게 되는 역할이죠. 자의반 타의반으로 독한 약품을 마셔 목소리를 잃고요. 아직 그 영화(‘소리도 없이’)를 보진 않았지만 유아인씨가 대사 한마디 없이 한 역할이 그렇게 좋았다면서요. 얼마나 고생했을지 알겠기에 그 연기에 못지 않는 평가를 받고 싶어요.” 

 

최근 개봉한 ‘소리도 없이’의 소문을 익히 들었다는 그는 “적어도 꿀리면 안될 것 같다”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평소의 자신을 ‘표정이 없고 말 없이 뚱한 편’이라고 표현하는 이정은은 “그럴 때 한번 웃으면 사람이 되게 좋아 보인다. 대중들이 그런 나의 모습을 좋아하는 게 아닐까”라며 근래 가장 바쁜 여배우로서의 자신을 평가했다.

 

‘내가 죽던 날’의 제목만 보고는 ‘매일 죽는 사람의 반복되는 일상을 담은 코미디가 아닐까?’란 가벼운 생각으로 시나리오 들었다는 그는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는 “무조건 해야겠다”는 먹먹함을 느꼈다고 했다. 선의로 한 행동이라도 그것이 범죄가 될 때 가장 솔직한 고백을 한 순간, 그것을 덮거나 용서할 수 있는 인간의 미덕이 이 영화에 녹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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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정은.(사진제공=워너브라더스코리아)

 

“여성 감독님과의 호흡이요? 사실 남자 감독들도 여성 취향인 분들이 많거든요. 굳이 차별점을 꼽으라면 빠른 템포가 아닌 점이 좋았어요. 배우들 모두가 작품의 진정성을 어떻게하면 더 잘 전달할 수 있을까를 진중하게 고민하는 현장이었죠. 감독님과 가장 많이 나눈 대화가 ‘과하지 말자’였어요. 말을 할 수 없고 들어야 하는 역할인데 표정이 너무 연기적으로 나올 때가 있거든요. 개인적으로 그런 부분을 좀 누르려고 했고 제가 필체가 예쁜 편인데 그걸 뭉개는 연습을 꽤 했어요.”

 

극 중 순천댁은 왼손잡이로 철자법을 무시한 아이 같은 글씨체를 구사한다. 이 필담은 사건의 결정적 단서가 되는데 오른손잡이인 이정은이 직접 아이디어를 내 영화의 미장센을 한층 떠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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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가면 다 한다”면서도 단 한번도 “시집가라”는 말을 하지 않는 엄마에게 늘 철없는 딸로 살고 싶다는 천상 배우 이정은.(사진제공=워너브라더스코리아)

그는 “이 분들이 말이 아닌 글씨로 표현할 때 어떤 걸 놓칠까를 고민하니 답이 나오더라”며 자신의 연기관을 피력했다. 

 

“연출자로서 저는 배우들의 시너지만 보는 편이었죠. 어떻게 그 부분을 활활 타오르게 무대에서 펼칠 것인가에 주력했지 미장센에 탁월한 부류는 아니랄까. 배우로서는 의견을 많이 내는 편이에요.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통해 어른의 존재 그리고 그 조건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몇년 전 후배를 가르치는 교직에 있을 때 느꼈던 건데 고민도 타이밍이 맞아야 성장하더라고요. 무작정 내 경험을 말해주는 건 조언도 아니고 어른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기 위해서 순천댁처럼 기다려 주는 게 좋은 어른 아닐까요?”

 

이정은은 인터뷰 내내 “스며든다”는 표현을 많이 썼다. 최근까지 단역이라고 하기엔 존재감이 큰 역할들로 ‘치고 빠지는’ 극들이 많았던지라 더욱 ‘호흡이 길고 눈에 띄지 않는 연기’를 목말라 하는 모습이었다. 최근까지도 밥 먹은 그릇을 설거지하려는 이정은을 “결혼하라”고 닦달하기 보다는 “나중에 시집가면 고생할 걸 왜 굳이?”라며 말리는 엄마에게 여전히 철없는 딸로 남고 싶다는 이정은.

 

“지금의 삶이 좋아요. 설사 가늘고 길게 못 가더라도 지금처럼 다작하는 순간이 정말 행복해요. 저를 연극배우로 불러주는 대중이 있고 개봉 할 작품이 있다는 건 언제나 설레죠. 무슨 복이 있어서인지 내년까지는 아주 바쁠 것 같고요. 들뜨지 않고 여러분의 삶에 스며드는 배우로 남고 싶습니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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