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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격려하는 삶” 살았던 미술계 어른…최만린 ‘O’로 돌아가다!

[별별 Tallk]

입력 2020-11-19 18:30 | 신문게재 2020-11-20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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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조각가 최만린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사진제공=최만린미술관)

 

“항상 격려하는 삶이셨어요. 저는 직계 제자도 아니고 연구자인데도 늘 좋은 말씀으로 격려해주셨죠.”

 

미술사학자 조은정 고려대학교 교수는 17일 세상을 떠난 추상조각가 최만린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을 “늘 격려하는 삶”이라고 회상했다. 조은정 교수는 “저 뿐 아니라 미술평론가 최태만 (국민대학교) 교수도 ‘늘 격려해 주셨다’고 선생님을 기억했다”며 “모든 젊은이들에게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다. 그 격려가 사람을 성장하게 하고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고 가고자 하는 길로 갈 수 있게 해주곤 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17일 추상조각가 최만린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이 83세로 별세했다. 광복 후 일본 유학이 아닌 한국 대학에서 교육을 받은 1세대 조각가로 ‘이브’를 시작으로 ‘천지현’ ‘일월’ ‘태’ ‘O’ 시리즈로 평생 예술가의 길을 걸었다. 

 

풍요롭지만은 않았지만 사랑받았던 유년시절, 가족을 앗아간 6.25 전쟁을 관통한 청소년기, 그의 길을 묵묵히 지지했던 외할아버지. 쉽지는 않았지만 마냥 힘들지만도 않았다는 그는 정치인, 외교관을 꿈꾸던 경기중학교 3학년 시절 미술반 선생님에 의해 조각의 기초를 다졌다. 한국전쟁을 한해 앞두고 출범한 제1회 국전(國展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얼굴’이라는 작품을 출품해 입선되기도 했다.

 

일본  동경미술학교 조소과에서 유학한 김종영, 서울대 미술대학교 1기생 출신의 김세중 교수로부터 사사한 고인은 1957 ‘모자상’, 다음해 ‘이브 58-1’을 국선에 출품해 연달아 특선을 거머쥐며 조각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1958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록팰러재단 후원으로 미국 프랫인스튜트(Pratt Institute)에서 수학했다. 1967년부터 2001년까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학장 역임 후에는 명예교수로 임명되기도 했다. 1994년, 1997년 대한민국 환경문화상, 2014년 대한민국 은관 문화훈장을 수상한 그는 1997년~1999년 국립현대미술관장을 지내면서 덕수궁 분관을 개관했고 서울관 건립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30여년을 살았던 자택을 성북구에 저가매각해 최만린미술관으로 조성하고 작품 126점을 기증했다.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고인은 자신의 공간을 미술관으로 만들어 가는데 하나하나 간섭이 아닌 협조를 했고 꼼꼼하게 정리한 영감 노트 및 스케치, 조형물 완성 과정, 신문기사 등, 그 자체로 “예술사적 여정”인 자료들을 작품과 함께 기증하기도 했다. 

 

고인은 잘 알려진대로 1958년 대학 졸업 후 3년여 동안 서울 중앙방송극(현 KBS) 아나운서로 일했다. 이때 아내인 성우 김소원씨를 만나 결혼해 이후 배우 최불암과 동서지간이 되기도 했다. 생전 그는 아나운서로 일하던 당시를 “가난해서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표현하곤 했다.

 

조은정 교수는 “그만한 목소리, 인물, 학식, 뛰어난 판단력까지 갖추신 분이셨으니 아나운서를 계속 하셨다면 최고의 명예와 부를 얻으셨을 것”이라며 “하지만 선생님은 ‘예술가’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계신 분이셨다”고 전했다. 이어 “어디에 계시든 다시 예술가로 돌아오시곤 하셨다”며 “교수로서 공직하시면서, 국립현대미술관장 업무 수행 후 늘 다시 조각가로 돌아오셨다”고 덧붙였다.

 

정작 스스로는 “미술가, 조각가가 아니라 조각이라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표현했던 고인은 평생을 ‘정체성’을 고민하던 예술가이자 창작자였다. 전후 상처받고 고통 받는 인간의 모습을 담은 ‘이브’가 그랬고 서체를 미학적으로 풀어내 자신의 내면을 형상화하는 동시에 서구적 조형법에서 탈피한 ‘천지현’ 시리즈로는 ‘나’와 한국 조형문화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했다. 

 

내면의 생명력을 표출한 ‘태’ 시리즈, 비움과 채움, 무위·공(空)으로 돌아가는 삶, 크고 작은 원(圓)으로 돌고 도는 땅과 우주 그리고 세계에 대한 상념들을 담은 ‘O’ 시리즈 역시 그렇다. 자신과 한국, 그 한국의 추상조각, 예술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던 ‘예술가 최만린’은 그렇게 ‘O’로 돌아갔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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