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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칼럼] 미국 대선과 보수주의 역사의 교훈

입력 2020-11-23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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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택 한림대 명예교수, 경제학

미국 대선 결과가 우리에게 던진 질문 하나는 트럼프가 얻은 7300만표의 의미가 무엇인지 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의 보수주의가 어떤 장래를 선택해야 할 것인가이다.

지치지도 않고 끊임없이 거짓말 트윗을 날려대는 데도 불구하고 트럼프에게 표를 던진 미 유권자들의 의중을 가늠하기 위해 선거기간 중 행한 출구설문조사 결과를 살펴보았다. 대통령 선거에서 투표결정에 제일 크게 작용한 요인을 묻는 설문에, 그에게 표를 준 유권자의 49.3%가 경제문제를, 13.3%가 범죄와 치안을, 12.5%가 강한 리더십을 꼽아 그의 선거 캠페인 - ‘역사상 가장 위대한 경제’, 바이든은 급진좌파의 앞잡이, ’흑인 목숨도 중요하다’운동을 겨냥한 법과 질서 등 - 이 효과적이었음을 보여주었다.

파리기후협약 및 환태평양 경제동반자(TPP) 협정 탈퇴, 이란과의 핵 협정 파기 등으로 세계질서를 흔들어 자국의 세계리더십을 훼손했을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미국우선주의라는 자신의 공약에도 역행하는 행동을 서슴지 않아 불안해하던 외국인들은 그의 연임실패에 일단은 안도하고 있지만, 자신의 의식주문제가 더 중요한 미국인들의 입장은 다를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라 하겠다. 상원의 판세는 아직 조지아 주의 결과를 기다려 봐야 하지만, 트럼프의 낙선에도 불구하고 하원에서 지난 중간선거에서의 실지를 일부 회복해 공화당이 완패한 선거는 아니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왜냐하면 이는 민주당의 약점을 드러내는 결과이기 때문이다.

2016년 대선패배 후 좌파 논객들이 쏟아내던 自省論들 -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 혹은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을 앞세워 언론의 자유,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반민주적 행태와 능력주의(meritocracy)를 내세운 엘리트들의 오만 등 - 은 중간선거 대승 이후 자취를 감추었고, 새로 등장한 소위 ‘진보4인방’의 튀는 언행과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보여준 극좌 후보들의 반시장/반기업적 공약에 놀란 중도층이 되돌아갔다는 해석이다.

이제 두 번째 질문에 대해 생각해보자. 공화당은 대선에서 높은 투표율 덕에 사상 두 번째의 득표수를 기록했다는 것과 하원 선거에서도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고 선거결과에 만족하고 섣부른 변화보다 현상에 안주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현직 대통령의 연임실패는 아버지 부시대통령 이래 28년만이고, 하원선거에서의 선전도 절반은 민주당의 자살골에 가깝기 때문에 안주하기 보다는 다음을 대비한 변화를 모색하는 것이 옳을 듯하다.

사실 보수주의의 본질은 수구가 아니라 점진적 개혁주의이다. 정치의 세계는 항상 변화하는데, 보수주의는 조심스럽고 신중한 변화를 선호하는 것이지 현상유지를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버크(E. Burke)는 “변화의 수단을 갖지 못한 국가는 자기 보존의 수단을 갖지 못한 것이다”라 했던 것 아닌가.

그렇다면 변화의 방향은? 일찍이 하이에크가 “나는 왜 보수주의자가 아닌가”에서 지적했듯이, 보수주의는 그 본질상 다른 이념에 반응할 뿐 자체의 적극적인 이념 프로그램이 없기 때문에 ’초심으로’ 혹은 ‘기본으로’ 돌아간다는 식의 사회변화의 방향을 제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의 경우에는 처음에 언급한 출구설문조사 결과와 선거결과에 대한 트럼프의 반응에 답이 있다. 트럼프는 개표가 진행 중이던 지난 5일 대선 불복을 공식화하더니 선거가 치러진지 3주가 가까워오는 지금까지도 패배를 인정치 않으면서 평화적 정권교체를 방해할 뿐 아니라 남은 임기 두 달 동안 미국의 민주주의를 훼손하기 위해 무슨 짓을 더 할지 알 수 없다.

만일 공화당이 미국 보수주의의 보루를 자임한다면, 이 시점에서 해야 할 선택은 트럼프와의 결별이다. 왜냐하면 지난 4년 동안 트럼프는 보수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사회질서의 ’닻’ 역할을 하는 미국의 전통과 관습을 우습게 알고 훼손했으며 지금도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공화당 국회의원들은 보수주의의 본질을 생각하기 보다는 선거에서의 절반의 성공이 ‘트럼프 덕인지’ 아니면 ’트럼프에도 불구하고’인지를 따지고 있는 모양이다.

프랑스혁명과 버크 이래로 보수주의는 자유주의의 급진성을 억제하는 역할을 해왔다. 그 과정에서 영국보수당은 자유주의적 개혁들을 자신들의 속도로 수행해 왔다. 필(Peel)의 곡물법 폐지, 노동자에게 투표권을 준 디스렐리(Disraeli)의 선거개혁,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사회보장제도를 탄생시킨「베버리지 보고서」(Beveridge Report), 최초의 유대인 및 여성총리 배출, 등이 그것이며, 이는 보수주의가 점진적 개혁주의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 같은 보수주의 전통에 따라 지금 미국공화당이 억제해야할 민주당 좌파의 과잉은 정체성 정치와 엘리트층의 능력주의를 앞세운 기회의 독점 그리고 反기업 정책과 큰 정부이다.

이상의 논의가 미국의 대선과 보수 공화당에 관한 것이라도, 한국 현실에 주는 시사점도 없지 않다. 물론 보수주의는 각국의 역사적 유산과 지정학적 상황이 다른 만큼 그 내용도 다르다. 그래서 유럽대륙의 나라들과 영국, 미국의 보수주의의 내용이 다르지만, 인간의 수구적 본능과 계몽주의 이성의 합작품이라는 본질에는 차이가 없다.

내용의 차이란 지켜야 할 가치와 억제해야 할 과잉이 다르다는 말이다. 지난 총선에서 참패한 후 방향을 잃고 헤매고 있는 한국의 보수는 먼저 지켜야 할 가치를 구체화 하고 억제해야 할 상대정치세력의 과잉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 이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수호한다는 선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급하게 되찾아야 할 자유들, 예를 들어 교육 선택권, 언론의 자유 등에 관해 어떻게 하겠다는 정책 어젠다를 제시해야 한다. 현 좌파 문정권의 억제되어야 할 과잉은 지금 진행 중인 일련의 사회화 - 개인책임의 사회화, 기업이익의 사회화, 부동산의 사회화 등 - 정책과 권력의 사유화임은 명백하다. 그러나 이를 막을 유일한 실질적 방법은 앞으로 다가오는 모든 선거에서 이기는 것뿐이다.

지난 총선 패배의 교훈은 문정권이 아무리 잘못해도 보수가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면 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직은 신뢰회복의 길을 찾았는지도 분명치 않아 보인다.

 

김우택 한림대 명예교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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