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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칼럼] 자유와 민주, 상실의 시대

입력 2020-12-21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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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영
김인영 한림대 교수(정치행정학)

코로나 19의 창궐과 함께 정부는 국민 안전이라는 이유로 개인의 자유를 제약하고 있다. 세계적인 현상이기는 하지만 우리 정부도 거리낌 없이 개인의 자유 침해를 일상화하고 국민은 기초적인 의심이나 저항도 없이 자유의 제약을 받아들이고 있다. 소위 ‘코로나 파시즘’이 자유와 민주를 동시에 후퇴시키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많은 정책들이 개인의 자유 침해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부동산 거래를 제한하는 조치들의 경우 재산권 침해와 거주·이전의 자유, 거래의 자유와 같은 헌법의 기본권 침해 사항이지만 언론이나 학계의 지적은 미미하다. 경제적 자유가 침해당하면서 자유주의는 퇴보하고 민주주의 그리고 법치가 훼손되는 상황으로 발전하고 있다. 자유주의, 민주주의 동시 퇴보다.

상실의 시대다. 자유와 민주를 상실했다. 상실의 시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살펴보고 함께 실천을 고민하고자 한다.


시대가 잃어버린 자유


수요와 공급이라는 경제의 기본원칙을 무시한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실패할 것임은 너무나 자명해서 재론할 필요조차 없다. 주목하는 점은 대한민국 헌법에 보장된 부동산 거래의 자유와 거주·이전의 자유를 침해당했음에도 문제점을 지적하는 헌법학자의 주장이나 언론의 논설을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 헌법 제14조는 “모든 국민은 거주·이전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민 스스로가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살 수 있고 또 살고 싶은 다른 지역으로 이전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의미다. 또 헌법 제23조는 “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부 등 누구에 의해서든 개인 재산권의 제한이나 박탈은 있을 수 없는 반헌법적 행위임을 명시하고 있다. 나아가 헌법은 재산권의 행사, 즉 재산의 자유로운 거래를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이러한 재산권 침해와 거주·이전의 자유를 ’부동산 가격의 안정화’라는 목적으로 거침없이 제약하고 있다. ‘부동산 가격 안정화’를 거주·이전의 자유보다 앞에 두고 정책을 발표하고 집행하고 있는 모습이다.

정부가 종부세 등으로 강남에 살지 말라는 메시지를 준다면 그것은 평양 거주권과 북경, 상해 거주권을 통해 거주·이전의 자유를 제한하는 공산주의 체제의 규제와 다르지 않다. 더 나아가 1가구 1주택만 허용하고 다주택 공직자는 집을 팔아야 한다면 이는 ’다주택자’는 투기세력이며 적폐(積幣)이고 대중의 적(敵)으로 규정하는 것과 같다. 정부와 여당 다주택자를 마치 과거 해방직후 ‘지주세력’에 해당하는 것처럼 죄인 취급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럼에도 학계의 비판은 찾기 힘들다. 다주택자와 종부세 대상 아파트 소유자들을 범죄인 취급하여 징벌적 세금을 과해도 일부 언론의 구시렁거림만 있고 제대로 된 반론이나 비판은 찾기 어렵다. 이유가 무엇일까? 과거 노무현 정부보다 더 반론과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 때문일 수 있겠지만 대다수 국민과 정치인들의 모순적 행태도 함께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종부세 등 징벌적 세금을 추진하는 정치인들이 총선 공약으로는 지역구 아파트의 재건축과 재개발을 공약으로 내세우며 출마하는 지역의 부동산 가격을 대폭 상승하게 해주겠다고 약속하고 인기를 얻는다. 주민들은 선거 때면 그런 정치인에게 표를 준다. 국민과 정치인이 함께 저지르는 모순의 모습이다. 국민이 먼저 변해야 한다.


시대가 잃어버린 민주

공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는 설치 그 자체가 권력의 분산과 권력 간의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 원칙에 어긋난다. 이유는 공수처 설치로 ’정치’검찰을 견제한다고 주장하지만 공수처는 무엇으로 견제할지에 대한 대책이 없기 때문이다. 공수처가 고위공직자 관련 검찰과 경찰의 수사를 이첩할 것을 요구할 경우 ‘즉각 응해야’하기에 법리상 최상위 기관이다. 그 공수처를 지휘하는 처장의 임기는 3년으로 국회 탄핵이 불가능하다.

대신 대통령이 임명하므로 대통령이 임면권을 가지고 있다. ’청와대 직속 검찰’로 대통령이 수족처럼 부릴 수 있는 권력기관이다. 따라서 대통령 권한을 더욱 강화할 기관으로 될 것이 거의 분명하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청와대로의 권력집중도 과도한데 청와대가 검찰, 경찰에 더하여 공수처까지 가지게 되는 것은 삼권을 초월한 제왕적 유신 권력의 시작과 다르지 않다. 예를 들어 공수처가 청와대와의 암묵적 교감에 따라 야당 성향의 법관, 검사, 정치인, 군 장성, 고위직 경찰들을 수사할 경우 막을 방법이 없다. 때문에 고위공직자들이 청와대에 납작 엎드리는 상황이 될 것을 쉽게 예상한다. 민주화 세력이 민주를 버리는 시대다.


무엇을 해야 하나

서구의 역사에서 ‘산업화’(industrialization), ’민주화’(democratization), ‘자유화’(liberalization)는 비슷한 시기에 일어났다. 특히 산업화, 민주화, 자유화의 모델 국가라고 할 수 있는 영국의 근대화 과정이 그랬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서구가 거의 동시에 이룩한 ’자유화’, ‘산업화’, ’민주화’ 가운데 ‘산업화’를 제일 먼저 이루고, 그 뒤 산업화로 만들어진 중산층을 기반으로 민주화를 이뤘다. 하지만 선행되어야 할 ’자유화’는 아직도 요원한 상태다. 원래 영국 등 산업화를 이룬 나라들에서 그 산업화를 이루어낸 ‘산업 부르주아지’(industrial bourgeoisie)가 경제적 자유를 기치로 ’자유화’를 이루어내고 그 ‘자유화’를 기반으로 부르주아지의 정치적 자유 확보를 위해 ’민주화’를 이루었던 역사와 비교된다.

‘자유화’ 혁명의 부재는 우리가 영국의 청교도혁명, 또는 미국의 독립혁명, 프랑스의 1789년 혁명과 같은 자유를 향한 제대로 된 시민혁명을 경험하지 못한 때문이다. 건국 후 6·25전쟁이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전쟁이었지만 시민이 ’자유’를 자각하고 체득하기에는 경제적으로 빈곤했고 시간이 너무 짧았다. 때문에 경제적 자유 등과 같은 구체적인 자유에 대한 의식이 형성되지 못했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하나? 늦었어도 ‘자유화’ 혁명으로 ’산업화-자유화-민주화’의 한 축을 완성해야 한다. ‘산업화-자유화-’민주화’의 완성으로 근대국가를 먼저 만들고 그 뒤 법치국가든 정의로운 나라든 어디로든 나아갈 수 있게 지금이라도 ‘자유화’의 기본을 닦는 것이다.

이러한 ’자유화’ 혁명을 위해서는 먼저 대중에게 두 가지를 알려야 한다. 첫째는 ‘자유’가 ’민주’에 선행하는 가치였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근대 민주주의 발전 과정에서 주목할 것은 자유주의 사상이 먼저 대두하고, 그 테두리 안에서 민주주의가 발전했다. 예를 들어 영국의 명예혁명(1688)이나 프랑스 대혁명(1789)은 군주로부터 신흥 자본가와 시민의 ‘자유’를 획득하기 위한 자유주의 혁명이자, 정치권력을 시민에게 이전한다는 의미에서 ’민주주의 혁명’이었다. 둘째로 ‘민주’는 ’자유의 확보’를 위한 수단적 의미를 가진다는 것이다. 자유라는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의 보장을 위해 권력분립의 원칙 및 대의 정부(representative government)의 원칙이 필요해서 대의민주주의를 채택했고, 그것이 지금은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로 완성된 것이라는 점이다.

헌법에 명시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상실하고 있는 시대다. ‘자유’를 잃으니 ’민주’도 함께 잃고 있다. 그러나 ‘자유화’ 혁명으로 다시 ’자유’를 확보하게 되면 ‘민주’는 바로 회복할 수 있다. ’자유화’ 의식 혁명이 절체절명(絶體絶命)으로 필요한 시점이다.

김인영 한림대 교수(정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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