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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잠시 안녕" 멀티플렉스의 비명

입력 2021-01-06 13:56 | 신문게재 2021-01-0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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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승 문화부 차장
영화 ‘시네마 천국’의 토토는 어린시절 영화관이 전부였다.그곳에서 알프레도 아저씨를 만났고 아버지의 정을 느꼈으며 첫사랑에 빠졌다. 결국 유명 감독이 된 그는 백발이 되어 그곳을 찾지만 마을의 사랑터였던 영화관은 폐허가 된 지 오래. 결국 고향을 떠나 자신의 작업실에서 수없이 잘린 여러 영화의 키스신을 보고 다시금 예술혼을 불태운다.

그렇게 영화 속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 한국에서 일어났다. 휴관이라고는 하지만 언제 다시 문을 열지는 미지수다. 멀티플렉스 극장 CGV가 지난해 전국 8개 지점 운영을 중단한 데 이어 새해 들어 4개 지점이 추가로 임시 휴업에 들어갔다. 

4일 CGV에 따르면 안동, 청주성안길, 대구칠곡, 해운대 등 위탁점 4곳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어려움으로 영업일 조정에 들어갔다. 안동점은 이날부터 무기한으로, 청주성안길은 지난 1일부터 2월 28일까지, 대구칠곡점과 해운대점은 1일부터 31일까지 영업을 중단한다고 공지했다.

영화관에 ‘복합문화공간’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CJ의 결정이라 극심한 영화계 보릿고개가 피부로 다가온다. 수년간 정치적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한국을 문화강국으로 도약하는 데 마중물 역할을 했던 회사였기에 이 같은 결정이 더욱 씁쓸하다.

지난해 ‘기생충’이 쓴 황금빛 영광을 이끈 지 1년만의 일이라 더욱 당황스럽다. 일각에서는 무리한 해외 진출이 타격이란 소리도 들린다.

지난 2016년 터키 법인에 투자한 뒤 직격탄을 맞은 리라화 가치 폭락이 가장 큰 이유라는 분석이다. 여기에 전세계적으로 팽배해진 바이러스 공포가 극장으로 향한 발길까지 막아섰다. 영화 티켓 한장 안팎의 값을 지불하면 안방에서 리모콘으로 편안하게 한달 간 무제한으로 영상물들을 볼 수 있는 세상이다. 한개의 아이디면 PC와 휴대폰으로 연동도 된다.

하지만 어린 토토가 그러했듯 영화관을 대체할 곳은 어디에도 없다. 데이트의 추억, 부모님의 손을 잡고 팝콘을 산 기억, 명절에 만난 가족들과 본 1000만 영화 등 우리네 삶에 깊숙이 스며든 ‘극장의 향수’는 얼마나 짙은가.

CGV와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멀티플렉스 극장들은 지난달 “대기업군에 속한다는 이유로 임대료 인하를 비롯한 각종 지원에서 배제돼 있다”며 영화관이 입점한 건물주들이 착한 임대인 운동에 동참하고 정부가 세금 혜택을 주는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버텨야 사는 게 아니다. 살아갈 수 있게 숨통을 틔워줘야 버틸 수 있는 것이다.

이희승 문화부 차장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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