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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칼럼] 사회주의 계산 논쟁의 새 국면

입력 2021-01-11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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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거일
복거일(소설가, 사회평론가)

코로나바이러스 역질로 집안에서 지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사람들이 ‘넷플릭스’와 같은 유출(streaming) 기업들의 오락 프로그램들을 이용하는 시간은 부쩍 늘었다. 한번 보기 시작하면, 좋아할 만한 프로그램들이 잇달아 추천되어서, 빠져 나오기가 쉽지 않다. 요즈음 추천 알고리즘의 능력은 대단하다.

이런 예측 분석(predictive analytics)은 어지간한 기업들에선 고객관계관리(CRM)에 일상적으로 쓰인다. 그것의 목표는 특정인에 대한 전인적(holistic) 모형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그에 관한 모든 정보들이 집적되어 그의 모형이 점점 정교해진다. 마침내 그의 판단에 대한 예측에서 모형이 본인보다 정확하게 된다. 이런 디지털 분신(digital doppelganger)들은 거래하는 기업들마다, 초보적이든 정교하든, 만들 터이다.

이런 모형들은 일단 시장을 보다 효율적으로 만든다. 소비자들의 잠재적 수요를 보다 또렷이 만들어서 정보 비용을 줄인다. 그리고 소비자들의 판단들을 잘 예측함으로써, 시장을 보다 효율적으로 만든다. 아울러, 불량 소비자들의 사기들을 효과적으로 줄여서, 거래 비용을 줄인다.

반면에, 이 새로운 기법은 문제들도 제기한다. 개인적 수준에선 사생활(privacy)에 대한 위협이 커진다. 자신의 특질들을 충실하게 띤 디지털 분신(digital doppelganger)들이 존재하고 그것들 가운데 어느 것은 자신의 판단을 자신보다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는 사실은 누구에게나 섬뜩하게 다가올 터이다.

사회적 수준에서도 이 일은 심각한 함의들을 품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공산주의자들이 장악한 러시아의 경제 체제가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1919년, 오토 노이라트(Otto Neurath)는 ’전쟁경제를 통해서 현물경제로 (Durch die Kriegswirtschaft zur Naturalwirtschaft)’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당시 유럽에선 전시에 나온 배급 위주의 전쟁 경제가 완전한 계획 경제(planned economy)로 이행하는 중간 단계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퍼지고 있었다.

루트비히 폰 미제스(Ludwig von Mises)는 1920년에 발표된 논문 ‘사회주의 연방에서의 경제 계산(Economic Calculation in the Socialist Commonwealth)’에서 사회주의 체제가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시장에선 수많은 개인들과 기업들이 끊임없이 방대한 정보를 처리해서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이룬다. 정부는 그런 정보 처리 능력이 없다. 그래서 사회주의 체제는 정부가 수집한 아주 적은 정보들로 거칠게 계산해서 만든 계획에 의지하게 된다. “자유 시장이 없는 곳에선, 가격 기구가 없다; 가격 기구가 없으면, 경제적 계산이 없다”고 그는 명쾌하게 선언했다.

20세기 사회과학의 가장 중요한 논쟁들 가운데 하나인 ’사회주의 계산 논쟁(Socialist Calculation Debate)’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주로 독일어권에서 이루어지던 논쟁은 나치가 득세한 뒤 주로 영어권에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자유주의 진영은 영국에 정착한 하이에크가 대표하게 되었다.

하이에크는 사회주의가 정보에 관한 그른 가정에 바탕을 두었음을 지적했다. 사회 운영에 필요한 정보는 거의 다 개인들이 지녔고 정부가 이내 이용할 수 있는 상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정부가 그런 정보를 모으는 데는 근본적 한계가 있는 데다가 큰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므로, 정부는 늘 빈약하고 묵은 정보만으로 경제를 운영하게 된다. 자연히, 정부가 주도하는 사회주의 명령 경제는 개인들이 주도하는 자유주의 시장 경제보다 훨씬 못하다.

논쟁이 진행되자, 사회주의자들도 정보 처리의 중요성과 시장의 효율적 정보처리 능력을 깨닫게 되었다. 마침내 그들은 정부가 시장과 비슷한 기구를 만들어 정보를 처리하는 ‘시장 사회주의(market socialism)’를 제시했다. 하이에크의 반응은 간명했다 - 시장 사회주의라는 것은 “의사 경쟁(pseudocompetition)”이어서, 시장이 이미 존재하는데 ’짝퉁 시장’을 일부러 만드는 것이다. 그것으로 ‘사회주의 계산 논쟁’은 실질적으로 끝났다.

미제스의 경이로운 통찰은 70년 뒤에 공산주의 체제의 붕괴로 증명되었다. 이어 중국이 압제적인 공산주의 체제를 그대로 두고 경제만 시장 경제로 전환함으로써, 사회과학 분야에선 나오기 힘든 완벽한 대조실험(controlled experiment)을 했다. 중국이 이룬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경제 발전은 시장의 뛰어난 정보처리 능력을 다시 확인했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거대 자료(Big Data)를 이용해서 만든 개인들의 전인적 모형들이 더욱 발전하면, 얘기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미 대기업들이 개인들의 디지털 분신들을 만들어 끊임없이 예측 분석들을 하므로, 정보 수집에 관한 하이에크의 주장은 크게 약화될 것이다. 그렇게 기업들에 모인 정보들은 모두 디지털 정보들이므로, 정부가 그것들을 한데 모으기는 어렵지 않다. 양자 컴퓨터의 발전으로 정보처리 능력이 도약하면, 이론적으로는 예측 능력에서 정부가 시장을 뛰어넘을 수도 있다. 정보 처리에 관한 미제스의 주장도 약화되는 것이다.

물론 이내 반론이 나올 것이다. 개인들의 디지털 분신들을 한데 모으더라도, 시장에서 나오는 창발적 현상들을 재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모형만으로 시장에서 일어날 상황을 예측하는 데엔 한계가 있다. 그래도 근년에 빠르게 발전한 주체기반 모형(agent-based model)은 이런 약점을 상당히 메워줄 수 있다. 자율적 주체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살피는 이 기법은 생물과학과 사회과학에 적용되어 많은 통찰들을 낳았다.

지금 풍요로운 사회들에서 시장경제는 이념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위기를 맞았다. 사회주의 조류는 빠르게 거세어지고 시장에 대한 정부의 통제와 침투는 점점 커진다. 그런 상황에서 시장경제 덕분에 발전한 인공지능이 이제는 오히려 시장경제를 위협하는 기술이 되었다.

미제스와 하이에크는 전체주의와 명령경제의 부족함을 들어 자유주의와 시장 경제를 옹호했다. 20세기엔 그런 전략으로도 충분했다. 이제는 사정이 다르다.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키려는 사람들은 자유주의와 시장경제의 내재적 장점을 바탕으로 삼아 자신들의 신념을 수호해야 한다.

 

복거일(소설가, 사회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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