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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초록마녀와 권번기생, 편견에 맞선 여자들…뮤지컬 ‘위키드’, 창작가무극 ‘향화’

[Culture Board] 편견에 맞선 그녀들의 외침

입력 2021-02-17 18:30 | 신문게재 2021-02-18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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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초연 이후 7년만에 재회하는 엘파바 역의 옥주현(왼쪽)과 글린다 정선아(사진제공=에스앤코)

 

라이먼 프랭크 바움의 판타지 명작 ‘오즈의 마법사’에서 날개 달린 황금원숭이를 부리는가 하면 양철 나무꾼, 겁쟁이 사자, 허수아비를 만드는 등 악행을 일삼던 서쪽마녀는 ‘약점’이었던 물을 뒤집어쓰고 죽음을 맞았다.

나라를 잃은 일제강점기, 정기적으로 치욕적인 위생검사를 받으며 웃음을 팔고 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던 권번기생들은 여전히 가장 밑바닥의 평가를 받고 있다.

악행을 일삼던 초록마녀와 일제강점기의 기생들. 사회적 ‘편견’에 맞섰던 여자들의 이야기 뮤지컬 ‘위키드’(5월 1일까지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와 창작가무극 ‘향화’(2월 19~21일 경기아트센터 대극장)가 무대에 오른다.

‘위키드’는 원작 소설을 비튼 그레고리 맥과이어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한다. ‘오즈의 마법사’ 속 사악하기만 한 서쪽마녀와 남쪽의 착한마녀를 중심으로 허풍쟁이 마법사, 동쪽마녀의 죽음과 마법구두, 심장이 필요한 양철나무꾼·겁쟁이사자·똑똑해지고 싶은 허수아비 등의 탄생, 도로시를 에메랄드 시티로 날린 토네이도의 정체, 오즈의 마법사와 엘파바의 반전 비밀 등이 마법처럼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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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위키드’에 새로 합류한 엘파바 역의 손승연(왼쪽)과 글린다 나하나(사진제공=에스앤코)

원작에서는 이름도 없던 서쪽마녀 엘파바(옥주현·손승연, 이하 시즌합류·가나다 순)와 착한 남쪽마녀 글린다(정선아·나하나) 그리고 두 사람과의 로맨스를 책임지는 피에로(서경수·진태화) 등이 엮어가는 우정과 사랑 그리고 ‘나다움’에 대한 이야기다.

엘파바는 탄생부터 먼치킨랜드 영주인 아버지에게 외면 받았고 마법사로서의 능력이 출중함에도 초록색 피부로 차별과 오해를 독차지하고 있는 인물이다. 탄생부터 혐오의 대상이었고 차별과 오해로 점철된 상황에서도 ‘나다움’과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 그리고 ‘다름’을 인정하고 동물과 사랑하는 이들을 위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진 인물이다.

어쩌다보니 그와 룸메이트가 되고 ‘엘피’라는 애칭으로 부르는 친구가 돼버린, 원래는 ‘겔린다’였지만 염소인 딜라몬드 교수(이우승) 사건 후 이름을 바꾼 글린다는 허영과 귀여운(?) 욕망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엘파바와의 우정으로 진정한 에메랄드 시티의 리더로 성장한다.

 

2013년 한국 초연에서 호흡을 맞췄던 엘파바 옥주현과 글린다 정선아가 다시 돌아오며 ‘보이스코리아’ 출신의 손승연과 ‘리지’ ‘시라노’ ‘비아 에어 메일’ ‘시데레우스’ 등의 나하나가 각각 엘파바와 글린다로 새로 합류했다. 두 사람 사이에서 로맨스를 책임지는 피에로에는 ‘썸씽로튼’ ‘브로드웨이 42번가’ ‘차미’ ‘여신님이 보고 계셔’ ‘이블데드’ 등의 서경수와 ‘호프’ ‘드라큘라’ ‘록키호러쇼’ ‘왕복서간’ 등의 진태화가 더블캐스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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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1월 선보일 창작가무극 ‘향화’. 김향화 역의 김나니(왼쪽)와 송문선(사진제공=서울예술단)


‘향화’는 서대문형무소 8번방, 유관순 열사와 함께 옥고를 치른 수원권번 소속 일패기생 김향화의 일생을 다룬 서울예술단의 새로운 창작가무극이다. ‘윤동주, 달을 쏘다’의 서울예술단 예술감독 권호성 작·연출이 오래 전부터 무대화를 고민하던 소재로 김향화를 비롯한 수원권번 소속 기생들의 알려지지 않았던 행보들이 무대에 펼쳐진다.

일제강점기 어려운 집안을 위해 일찌감치 수원으로 시집을 간 순이(김나니·송문선)의 삶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하다. 시댁의 냉대로 꽃다운 나이 18세에 이혼녀가 된 데다 야반도주해 수원으로 온 친정식구들까지 부양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순이는 다소 늦은 나이에 수원권번의 일패기생 ‘향화’가 된다.

삼일학교 설립자이자 3.1운동을 이끈 독립운동가 48명 중 한 사람인 김세환 선생을 만나면서 독립을 꿈꾸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향화는 고종 승하 소식에 권번 기생들을 이끌고 소복차림에 나무 비녀를 꽂고 망곡례를 하는가 하면 치욕적인 위생검사일인 3월 29일 수원 경찰서와 화성 봉두상과에서 조선 독립을 외쳤다.

여전히 가장 천한 계급으로 폄훼되고 있는 기생들의 삶은 나이든 향화를 화자로 무대 위에 펼쳐진다. 예인으로 그리고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던 열사로 성장하는 과정에 주목한 ‘향화’는 꼼꼼한 고증, 전통무용에 특화된 서울예술단의 색을 한껏 살린 무대적 화려함, 우리 전통 가락에 클래식 선율을 얹은 30곡 남짓의 음악 등으로 무장했다.

서울예술단 관계자는 “신분, 여성 등에 대한 차별이 극심했던 당시 천대 받던 기생들도 ‘대한 독립 만세’를 불렀다는 사실을 환기시키고자 했다”며 “극의 마지막에 무대 위에서 33명의 기생, 잘 알려지지 않은 그들의 독립 의지를 담아 이름을 부른다. 극 시작과 동시에 거기까지 가기 위해 달려간다”고 전했다. 천대받던 기생들을 이끌고 거리로 나와 만세를 불렀던 향화는 서울예술단원 송문선과 소리꾼 김나니가 번갈아 연기한다.

 

마녀와 기생, 특수 신분 혹은 시대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뮤지컬 ‘위키드’와 창작가무극 ‘향화’는 2021년에도 여전히 달라지지 않고 현재진행형인 누군가에 대한 편견을 반영하고 있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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