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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 칼럼] 학폭 vs 팩폭, 폭로만능주의를 경계한다

입력 2021-03-01 14:38 | 신문게재 2021-03-02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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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경 건대교수/ 변호사
페어플레이로 명승부를 펼쳐야 할 스포츠판이 학교 폭력(이하 학폭)의 파울 플레이에 헤메고 있다. 지난 2월 중순 여자배구 스타 이다영·이재영 쌍둥이 자매의 중학교 시절 학폭 사실이 피해자의 폭로로 드러나면서 다른 배구선수, 다른 종목으로 옮겨가면서 후폭풍에 휩싸였다. 심지어 연예계까지 번져 배우, 아이돌 스타, ‘미스트롯’ 참가자 등이 학폭으로 하차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학폭이 자주 불거지다 보니 해묵은 논쟁처럼 느껴지지만 지금이야 말로 학폭 문제를 제대로 짚고 넘어가야 할 타이밍이다.

지난 2019년 국가인권위원회는 쇼트트랙 조재범 코치의 성폭력 사건을 계기로 스포츠계 각종 폭력 근절을 위해 전국 스포츠선수들을 대상으로 인권실태 전수조사에 나섰다. 당시 인권위는 언어폭력, 신체폭력, 성폭력으로 구분해 조사했는데 언어폭력의 경우 응답자 중 15.7%, 신체폭력은 14.7%, 성폭력은 3.8%라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상급학교로 진학할수록 신체폭력의 비중이 더 높아졌던 것을 보면 고질적인 병폐임에는 분명하다. 

당시 인권위 조사에서 가해자의 대부분은 코치들(언어폭력 37.6%, 신체폭력 44.7%)였지만 이번 사건에서 드러났듯 선배나 또래 선수들로부터 각종 고통을 당했던 사례들도 그냥 넘길 수 없다. 무엇보다 폭력을 부지불식 간에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문화가 제일 큰 문제다. 빨래, 심부름, 청소 등은 당연히 후배가 해야 하고 동료 사이에서도 왕따 등이 비일비재했다. 때린 학생도 밉지만 피해자들 스스로 자기 잘못으로 여긴다는 점이 더욱 가슴 아프다. 학폭의 악순환은 결국 가해학생, 피해학생 공히 폭력의 심각성 및 잔인성에 대해 둔감했다는 패착에서 비롯된다. 

스포츠나 연예계의 경우 교실에서 집단생활을 하는 일반 학생들과는 다르다. 지도자, 학교 측 또는 부모들의 적절한 통제가 없으면 폭력의 고착화는 더 심각하게 진행된다. 선배 때부터 정신못차리고 내려오는 폐습은 암세포처럼 퍼져갈 뿐이다. 누군가 이 학폭의 굿판을 멈추어줘야 한다. 
학폭은 학생들만의 잘못인가? 아니다. 누가 뭐래도 어른들의 잘못이 더 크다. 그럼에도 학폭 피해자도 학생, 폭로로 인한 피해도 학생 시절을 거친 선수만 겪고 있다. 감독과 어른이 더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학교 체육이나 연예인 양성 과정에서 학폭 등에 대한 자각 및 지속적 교육이 결여됐다면 그 어른들의 책임을 더 철저하게 물어야 한다. 2월 말 발표된 문체부의 학폭 근절방안도 학생 또는 선수의 책임에만 치중하는 인상이 너무 아쉽다.

학폭 팩폭 속에서 우리는 더 냉정해져야 한다. 과연 폭로만이 학폭을 근절하는 길인가? 학폭 당시 감히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피해자가 뒤늦게나마 용기를 낸다는 점은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불순한 목적도 감출 수 없다. 일련의 폭로들 중 몇몇이 자극적이고 무의미한 폭로로 보이기 시작했다. 모든 폭로가 여과없이 언론에 노출되는 부작용, 허위 폭로를 걸러내는 시스템도 동시에 필요하다. 미투의 부작용처럼 허위 폭로 피해는 회복할 수 없다. 학폭은 근절돼야 한다. 그러나 언제까지 폭로에만 의존해야 하는가. 어린 시절 한때의 잘못은 평생 짊어져야 하는가.ㅤ우리는 ‘과거’와의 전쟁에 이미 지칠대로 지쳤다. 팩폭 없는 여론몰이 마녀사냥은 이제 멈춰야할 때다. 학폭은 이다영·이재영 자매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인지 혹은 폭로만능주의와 결합한 미디어의 먹잇감인지 보다 신중하고 냉정하게 가늠해야할 때다. 이 순간, 그 누군가는 팩폭의 사냥감일 뿐이다.

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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