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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칼럼] 막걸리와 고무신 선거와 자유주의자의 역할

입력 2021-03-15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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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철 2
권혁철 CFM 대표



퍼주기, 퍼주기, 그리고 퍼주기가 한도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야말로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이제는 아예 ‘현금 뿌리기’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작년 4월 재보선을 앞둔 시점에 발표되고 뿌려졌던 1차 재난지원금은 14조 원 규모였고, 그 후 뿌려진 2차 재난지원금은 7.8조 원, 그리고 3차 재난지원금도 9조 원이 넘는다. 금번 서울과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코앞에 두고 정부 여당은 다시 4차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겠다고 나섰다. 역대 최대 규모인 20조 원이다.

과거 1950년대와 1960년대(지역에 따라서는 70년대와 80년대에도 있었다 함)에 있었던 ‘막걸리와 고무신 선거’가 현재에 이르러 ‘복지’(코로나 관련해서는 ‘지원금’)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포장만 바꾼 채 여전히 횡행하고 있다. 과거와 다른 점이 있다면, 과거에는 그나마 선물로 유권자의 표를 매수하는 것이 불법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면, 지금은 그런 인식조차도 없다. 오히려 복지라는 이름으로 유권자 표 매수행위가 정당화되어 버렸다. 과거보다 사태가 더 심각해졌다는 의미다.

퍼주기 정치, 포퓰리즘 정치의 종점은 결국 파국이다. 그것은 이제까지의 역사가 생생하게 증명하고 있다. 그럼에도 퍼주기 정치인, 포퓰리스트들은 끊임없이 등장하고, 또 그들은 퍼주기 정치로 정권을 잡고 정권을 유지한다. 말하자면, 포퓰리즘이 지속적으로 ‘장사’가 잘 되는 ‘스테디셀러’라는 말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뭉크가 쓴 <위험한 민주주의>에서 포퓰리즘이 ‘장사’가 잘 되는 이유 가운데 몇 가지를 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여기서는 주요한 이유 두 가지를 추려보았는데, 그 두 가지는 서로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첫째, 포퓰리즘이 ‘장사’가 잘 되는 이유는 포퓰리스트들은 현실 세계가 복잡하다는 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기에, 정책이 실패한 것에 대한 책임을 물어 비난할 사람을 필요로 하고, 바로 그렇게 비난을 일삼기 때문이다. 부동산 가격의 폭등이 투기꾼과 다주택 소유자의 탐욕 때문이라고 비난하는 일이 그런 것이다. 이러한 단순한 희생양 찾기, 적(敵) 찾기는 언제나 잘 통하는 포퓰리스트들의 수법이다.

둘째는 바로 대중들의 단순화 경향이다. 국내 제조업이 위기에 처해 있다는 불만이 있다면, 관세를 인상해서 수입을 금지시킨다. 대형 마트로 인해 전통시장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불만에는 대형 마트의 입점을 금지하거나 영업을 제한시킨다. 부동산 가격의 폭등에 대한 불만에는 투기꾼과 다주택 소유자에게 세금폭탄을 때려 이들이 집을 내놓게 하면 된다 등등. 이와 대조적으로 국제무역은 비교우위 어쩌고 저쩌고, 무역분쟁의 결과는 어쩌고 저쩌고… 투기꾼과 다주택 소유자에게 대한 세금폭탄은 ‘세금의 전가’가 어쩌고 저쩌고… 하는 식의 설명은 대중들에게는 설 자리가 없다.

대중들은 전자를 ‘정치인의 진실성과 결단력을 알 수 있는 징표’로, 그리고 후자를 ‘불성실함과 무관심의 표시’로 본다고 한다. 유권자들은 세상이 복잡하다고 생각하고 싶어하지 않으며, 또 그들의 문제에 확실하고 즉각적인 해결책이 없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듣기에만 좋고 안이한 정책이 왜 대중에게 매력적인가에 대한 해답이다. 포퓰리스트들이 한 사태나 사안을 규정짓는 ‘작명’을 잘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이런 포퓰리스트들의 질주는 계속될 수 있을까? 계속될 수는 없다. 끝내 파국으로 끝을 맺는 경우도 있고, 다른 한편 파국 직전에 자유주의적 개혁을 통해 번영의 길로 돌아서는 국가도 있다. 아르헨티나와 베네수엘라의 경우에서 전자의 예를 볼 수 있다면, 대처 수상의 영국은 후자의 사례다. <위험한 민주주의>에서 뭉크는 포퓰리스트의 폐해를 경험한 국가에서 다시 포퓰리스트를 선택할 확률도 절반이나 된다고 한다. “한 포퓰리스트가 실패하면 유권자들은 다른 포퓰리스트를 뽑거나(그리하여 완전한 독재체제를 초래하거나), 기성정치인에게 의지하거나 할 가능성이 반반이다”라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포퓰리즘의 폐해를 당하면서도 계속해서 포퓰리즘으로 치닫는 사회가 있고, 아니면 반대로 번영의 길로 가는 사회도 있다. 이것이 판가름 나는 중요한 순간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무엇이며, 여기서 자유주의자의 역할은 무엇일까? 대답은 미제스의 말에서 찾을 수 있다. 미제스는 가장 중요한 순간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사상의 힘이며, 여기에 자유주의의 역할이 있고, 또 자유주의자의 역할도 거기에서 나온다고 보았다. 즉, 사상 투쟁이 중요하며, 사상의 투쟁에 있어서 그 궁극적인 결말은 ‘무기’가 아니라 ‘사상’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무기가 아니라 사상만이 궁극적으로 저울이 기우는 방향을 결정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에 따른 자유주의자의 역할은 여론을 계몽하여 진정한 자유주의와 잡다한 간섭주의 단체 사이의 기본적 차이점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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