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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 칼럼] 방조나 무마도 폭력입니다

입력 2021-06-16 14:16 | 신문게재 2021-06-1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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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미경 예담심리상담센터 대표·교육학 박사

여중사를 성추행한 상사와 이를 방조하고 회유해 온 내부 상관들이 일부 입건됐다. 물리적인 폭력이나 성폭력은 겉으로 드러난 행동이기에 공격적이라고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반면 바람직하지 않은 일을 방조하거나 무마하는 행동은 어떨까. 방조나 무마 행위 역시 잘못이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었는데도 이를 공격적이라고 단정하기엔 뭔가 지나친 느낌이 들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방조나 무마 역시 공격성이 깃든 행동이다. 누군가에게 직접적으로 타격을 가하는 식의 물리적인 침해 행동이 아니라 간접적인 방식으로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유형의 공격성을 심리학에서는 ‘수동공격성’이라고 한다. 아이를 때리지 않았어도 제때 밥을 주지 않거나 학교를 보내지 않고 고통을 호소해도 들어주지 않는 행위들은 수동공격적인 양육태도다. 불의를 보고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것 역시 비겁하고 무책임한 모습인 동시에 그 심리적 내면에는 의도성 여부를 떠나 심리적 공격성이 포함돼 있다.

수동공격성은 물리적인 공격이 아니기 때문에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자각하기도 어렵다. 상대방을 투명인간 취급하면 물리적인 공격이 아니라서 겉으로는 문제될 게 없어 보이지만 상대는 무리에서 소외감을 느끼고 정서적 유대를 느낄 수 없어 고립된다. 상대가 마음의 상처를 입는 피해가 분명한 공격이지만 일상에서 무수히 간과되며 가까운 관계 안에서도 종종 서로를 향해 발동되곤 한다.

최근 학업 스트레스를 못 견뎌 유서를 쓰고 자살시도를 한 중학생을 만났다. 부모에게 울면서 여러 번 힘겨움을 호소했지만 계속해서 달램과 다그침을 받으며 견디지 못할 지경에 이른 경우다. 우울증이 극에 달한 상태였지만 힘든 일이 있을 때 가족이 자신을 도와줄 거란 기대도 없었다. 부모는 아이를 잘 돌보려고 노력해온 평범한 부부였으나 아이는 정서적으로 학대당하고 있었다. 아이의 호소를 들어주지 않고 제대로 반응해주지 않는 것, 그것만큼 공격적인 것도 없음을 이들은 몰랐다.

여중사를 동료로 보지 않고 성적 대상으로 여기는 시선이나 피해 입은 동료를 돕기보다 사건을 무마하려는 접근은 일방적 관계에서 나오는 관점이기에 이미 상대에 대한 존중이 없다. 싫다거나 도와달라는 말을 듣지 않는 것, 바로 그것이 어마어마한 공격성을 내포하고 있기에 이를 제대로 의식하고 다루지 않으면 결국 그러한 공격성은 폭력으로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마이크로어그레션(Microaggression)이라는 합성어가 있다. 유색인종이나 장애인, 성소수자 등에 대한 미묘한 차별을 가리키는 말이다. 옆자리에 앉지 않거나 경계하는 몸짓을 보이는 등 물리적 폭력에 못지않은 상처가 된다. BTS도 ‘아시안이 왜 영어를 하느냐’는 말을 들었다며 차별의 경험을 공유했지만 ‘영어를 잘 하시네요’라는 말 역시 영어를 잘 못하는 다른 인종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사이즈가 크든 작든 수동적이든 공격성은 분명히 경계하고 주시해야 할 내 안의 심리적 요인이다.

 

안미경 예담심리상담센터 대표·교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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