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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할머니방 유물' 자개장의 매력… 버리지 마세요, 저에게 파세요!

[이희승 기자의 수확행] '뉴트로' 열풍으로 입문한 자개장
시대별로 다른 문양 보는 재미 쏠쏠
해외에서 '코리아 빈티지'로 각광
한국의 장인들 모두 사라진 현실 안타까워

입력 2022-03-01 18:30 | 신문게재 2022-03-02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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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갑을 겹쳐놓으면 3층장이 된기도 하는 문갑. 거실 한 쪽 벽면을 자개장 으로 꾸민 우리집 전경.화장대는 거울만 떼어서 현관문 옆에 걸어두었다. 요즘 유행에 맞게 화이트 목각 이니셜로 꾸민 상부.(사진=이희승기자)

 

고루하고 촌스러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의 상징’이었건만 당시엔 왜 그랬을까 싶다. 친척집에 가면 항상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 방에는 무조건 ‘이것’이 있었다. 지금은 없어서 못 사는 등나무 탁자와 꽃무늬 쿠션이 달린 쇼파는 흡사 ‘대한민국 공식 인테리어’의 아이콘이었고 안방 문을 열면 벽 한쪽엔 1㎝의 틈도 없이 존재했던 가구. 가운데 문을 열면 언제나 두툼한 목화솜 이불이 켜켜이 채워져 있었다. 지금으로 치자면 슬라이딩 도어지만 오래된 가구 만큼이나 끼여서 안 움직이기 일쑤였다.

이불장 밑의 서랍에는 중요한 등기서류나  도장이 끼어진 주택은행 통장이 비닐커버에 싸여있었다. 물론 그것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할머니의 고쟁이 바지나 고운 수가 놓여진 명주천에 둘둘 쌓여있었지만 대충 그 곳이 귀중품 보관소인 건 눈치챌 수 있었던 것 같다. 방안의 벽 한쪽에 짜맞춘 듯 존재한 이것의 정체는 자개장이다. 

자개
잘 닫히지는 않지만 지금봐도 자개탈락이 없어서 놀라운 문고리. 세세하게 보면 볼 수록 만든 사람의 내공이 느껴진다.(사진=이희승기자)

맞은 편에는 좌식으로 된 화장대, 그 옆에는 문갑이나 화초장이 놓여 있었다. 그 위에는 전화기도 올려져 있고 도자기도 놓여있는 일종의 멀티장이었다. 

 

문양이 매우 화려하고 다양했는데 12자 이상인지 아닌지, 어느 동네의 장인이 만들었는지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인 것은 전혀 몰랐다.

 

나는 그저 1970년 후반에 태어나 마당이 있고 겨울만 되면 마루 바닥의 추운 집이 싫었던 어린아이였으니까. 그 말은 감나무도 있고 봉숭아 꽃물도 들이고 사람이 먹은 잔반을 먹어도 탈이 나지 않는 바둑이가 있었던 전형적인 1980년대의 유년시절을 겪었다는 것이다.

 

그 당시가 도저히 상상되지 않는 사람이라면 ‘응답하라 1988’의 치타여사(라미란)의 집을 상상하면 빠르다. 분량에 비해 그리 많이 등장하진 않았지만 제작진들이 준비한 디테일을 보고 꽤 놀랐던 기억이 있다. 당시 셋방을 전전하다 복권에 당첨돼 벼락부자가 된 그들의 집에 ‘떡하니 놓여있던 자개장’은 자개붐이 막 시작하던 1980년대 후반의 디자인이기 때문이다.


그때만 해도 혼수로 자개장을 구입하는 일이 흔했고 무리를 해서라도 열자 짜리 자개장을 구입하는 일이 허다했다. 지금은 ‘코리안 빈티지’로 불리며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자개장은 사실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불려도 무방하다.  

 

자개장
지금도 놓친게 꿈에 나올 정도로 아쉬운 그릇장. 당시 쇄도하는 문의에 원래 내놨던 가격을 취소하고 가격을 올렸던 판매자가 무척 얄미웠지만 낡아보일 수 있는 자개를 세련되게 만드는 인테리어 팁을 대신 얻었음에 이 자릴 빌어 감사인사를 전한다. (사진=온라인 캡처)

스페인에는 아우디가 있고 한국에는 자개장을 만든 이름모를 예술가들이 수없이 존재했노라 말하고 싶을 정도다.

 

금조개 껍데기를 썰어 낸 조각인 자개를 박아서 꾸미고 옻칠을 한 자개장은 옛날에는 지금의 3대 혼수도 부럽지 않은 인기를 누렸던, TV·냉장고·세탁기 같은 존재였다. 

 

개인적으로 매혹된 1900~1920년대 자개장은 그야말로 초고위층에서나 가질 수 있는 귀하신 몸이었다고 한다. 나무를 자개무늬만큼 파는 기법인 상감으로 판을 짜고 전복이 많은 통영의 장인이 한땀 한땀 붙여서 완성된 자개장은 6.25시절 피난길에도 지고 갔을 정도로 ‘가치’를 인정받았다.

 

어쨌거나 나의 자개중독은 집안 애물단지였던 자개장을 리폼해서 인테리어로 활용하던 2018년부터 시작됐다. 

 

새로운 복고를 뜻하는 레트로 광풍이 일었던 그 즈음 상수동이나 익선동에는 자개장을 이용한 카페와 음식점, 미용실이 등장했고 이제는 자개를 이용한 가구만을 비치한 부티크 호텔까지 등장했다. 

 

온라인으로 자개장과 옛 고가구의 아름다움을 재조명해서 알리고 판매하는 골동점빵의 김용주 대표는 “얼마전 젊은 부부가 자개를 이용한 가구들로 신혼집을 채우려고 한다며 인테리어를 의뢰해 왔다”면서 “한때의 유행이라고 치부했지만 자개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는 걸 실감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붙박이장이 기본 옵션으로 달려있는 아파트가 늘어나면서 무겁고 화려한 자개 가구들은 처치곤란 1순위였다. 김 대표는 “전문 철거 업체와 이삿집 센터 등 거래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조자개 등 지금은 구하기 힘든 것과 거의 사라진 것도 ‘그냥 치워만 달라’며 버려지기 일쑤였다고 하더라”며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이 올린 유튜브를 보면 ‘한국에는 보물이 길에 버려져 있다’며 주워온 자개장으로 꾸민 집이 있다”고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자개
묘하게 길이와 넓이가 다르지만 캣다워 대용을 톡톡히하는 자개그릇장. 장롱은 너무 높아서인지 절대 올라가지 않는다.(사진=이희승기자)

 

지난 몇해는 ‘새로운 복고’인 ‘뉴트로’가 외식업계와 패션, 인테리어 등 소비환경 전반에 나타났던 해이기도 하다. 그만큼 버려지기 바빴던 자개장의 가격은 고공행진으로 이어졌다. 2019년에 단돈 2만원, 배송비만 16만원이 들었던 그릇장은 이제 구하지도 못하는 보물이 됐다. 단점은 높이나 넓이가 요즘 방식이 아니라 묘하게 안 맞는다는 것. 그래서 찻잔 두개를 겹쳐 놓는다거나 올리브 오일 병을 넣을 순 없다. 낮거나 넓은 제품을 무작정 넣지도 못한다. 

그럼에도 용서하게 만드는 건 단 하나도 똑같지 않은 문양들이다. 위는 웃옷을 걸어 두고 아래는 미닫이 모양으로 되어 있어 옷을 개어 넣는 의걸이장은 부르는 게 값이지만 운만 좋다면 상태가 별로여도 꽤 쓸만한 것을 만날 수 있다. 장수와 부를 뜻하는 모란꽃이 그려져 있는 건 좀 평범하지만 많은 자손을 낳으라는 뜻인 포도와 넝쿨, 쥐가 그려진 문양을 보면 옛 선조들의 유머러스함에 무릎이 쳐질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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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개 판매자가 직접 보내준 의걸이장. 1920년대 제작된 걸로 지방에서 배송받느라 물건값에 버금가게 들었지만 후회는 없다.(사진=본인 제공)

 

서교동에서 구한 자개문갑은 할아버지 집에서 나온 물건을 판 20대 손자였다. 흔하게 나오지 않는 디자인이어서 가격이 좀 고가여도 구매하러 갔더니 붉은색 장미목에 게와 새우, 여러 물고기가 촘촘히 박혀있었다. 계산을 하고 막 차에 실으려는 찰나 산책에서 돌아온 주인할아버지는 호통을 치시며 물건을 판 손자의 등짝을 내 앞에서 후려치셨다. 

 

사연인즉 오래된 집에 혼자 사시던 할아버지가 다음 주에 아파트로 옮기기로 하셨는데 다른 건 다 팔아도 죽은 아내가 아꼈던 자개문갑만큼은 가져가고 싶어했다고 한다. 어쩔 줄 몰라하는 판매자와 흡사 나를 도둑 취급하는 할아버지 사이에서 차분히 내 이야길 해드렸다. 그저 사라지는 자개가 아까워 뒤늦게 자개장에 빠졌고 그렇게 소중한 물건이면 사지 않겠다고 안심시켰다. 대신 생각이 변하신다면 절대 팔지않고 아끼면서 사용할 거라고. 

 

돈을 돌려 받고 며칠이 지나자 할아버지가 손자를 시켜 연락을 주셨다. “그때 관상을 보아하니 물건을 함부로 하진 않아보이니 잘 사용해 달라”는 당부를 남기셨다는 말과 함께. 지금 우리집에는 앞에 소개한 문갑 2개를 포함해 1920년대에 제작된 거울 달린 의걸이장과 1970년대 그릇장, 30년도 더 된 삼경 거울, 2000년도에 제작된 문갑 2개가 곳곳에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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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마켓에서 만난 나의 감사한 인연. 자신의 집에 있는 물건을 의뢰하는 사람도 많지만 이런 응원도 종종 받는다. (사진=이희승기자)

 

슬프게도 1990년대 이후에 나온 자개가구들은 금방 자개가 떨어지고 나무도 고급지지 않다. 60년이 넘었지만 금만 몇개 간 옛날 자개장들을 보면 지금도 놀라울 정도다. 문양에도 시대별로 유행이 있는데 봉황과 사슴, 거북이등이 새겨진 것과 한자가 그림 사이에 박혀 있거나 한복을 입은 사람과 마을, 성이 그려진 순으로 최신식이다.

 

그래서 오늘도 직업적 특성(?)을 살려 당근 마켓의 동네 인증을 새로 하며 ‘자개장 구합니다’라는 글을 올린다. 얼마전 개인 채팅으로 온 메시지는 일면식도 없지만 천군만마를 얻은 듯 든든하다. 자개장에 대한 찬사를 쓰려 했으나 본의 아니게 자기자랑이 된 것 같지만. 

 

“저도 예전부터 우리나라 자개 기술이 힘없이 사라져 가는 게 안타깝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1인이라 그냥 쪽지 보내고 싶었습니다. 좋은 가구 많이 구하시고 오래도록 온전하게 보전해 주시길 응원합니다.” 


글·사진=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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