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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세계 연출계의 거장, 거울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헤닝 브록하우스

[브릿지 초대석]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연출가 헤닝 브록하우스

입력 2016-10-2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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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트라비아타_헤닝

 

“왜 우리의 환상을, 이렇게 부끄럽게 깨버리시나요?”

 

1992년 이탈리아 마체라타 스페리스테리오 야외극장에서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초연 후 70대 노부부가 눈물을 흘리며 무대 뒤 한 남자를 찾아왔다. 연출가 헤닝 브록하우스(Henning Brockhaus)였다. 노부부는 비올레타의 비극에 슬퍼하다 무대 위 거울에 비쳐진 자신들의 우는 모습에 현실로 돌아왔다고 원망을 털어놓았다.

“그게 제가 하고 싶었던 얘기였어요. 환상에서 깨어나 비올레타의 비참한 이야기에 지금의 당신 자신을 투영해 스스로를 돌아보라고 얘기해주고 싶었죠.”  

 

 

◇텅빈 무대로 시작해 무대 위 나 자신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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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연출가 헤닝 브룩하우스가 브릿지경제와 인터뷰를 나누고 있다.(사진=최민석 기자)

 

“극장에 들어서면 관객들은 텅빈 무대를 만나게 될 겁니다.”

 

그렇게 빈 무대 바닥에 엎어진 넓이 22m, 높이 12m, 무게 1500kg 이상인 거대 거울이 들어 올려지면서 극은 시작한다. 

 

일명 ‘거울 오페라’. 1992년 초연 당시 사람들은 빈 무대와 들어 올려지는 거대 거울의 ‘라 트라비아타’에 그야 말로 ‘컬처쇼크’를 경험했다. 그리고 그 ‘컬처쇼크’는 로마, 일본 나고야, 미국 볼티모어, 팜비치, 스페인 발렌시아, 프랑스 툴롱, 중국 베이징 등을 거쳐 2016년 끝자락에서 한국관객을 만난다.

 

세계 연출계의 거장 헤닝 브록하우스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11월 8~13일)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고 있는 소프라노 글래디스 로시, 알리다 베르티, 테너 루치아노 간치, 바리톤 카를로 구엘피 등과 밀레니엄 심포니 오케스트라, 지휘자 세바스티아노 데 필리피 등이 함께 한다.  

 

라트라비아타 포스터 2차
헤닝 블록하우스의 거울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

세종문화회관과 사단법인 한국오페라단이 공동주최하는 이 거울 오페라에 대해 헤닝은 왜 거울이고 ‘라 트라비아타’냐는 질문에 베르톨드 브레히트(Berthold Brecht) 서사극을 이야기했다.

 

“극장은 꿈을 꾸는 환상의 공간이고, 그 판타지를 실현시켜주는 공간이죠. 관객들이 호기심을 가지는 이유는 처음 보는 어떤 이야기에 빨려들어 돋보기로 관찰하듯 보기 때문이죠. 이를 극장의 일루션이라고 해요. 하지만 ‘라 트라비아타’ 만큼은 극장의 일루션에 초점을 맞춰 연출하지 않았어요. 관객들은 ‘라 트라비아타’의 내용을 너무 잘 알고 있거든요. 전 그런 관객들에게 ‘라 트라비아타’의 내용을 부풀려 꿈과 환상을 심어주기 보다는 현실을 똑바로 보라고 얘기해주고 싶었어요. 브레히트의 서사극처럼요!”

 

그는 극중 인물들의 대사 하나하나, 동작 하나하나에 담긴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 바로 ‘서사극’이라고 정의했다. 브레히트의 상징주의적 서사극은 그의 연출 스타일의 바탕이며 근간이기도 하다.  

 

“저는 베를린에서 자랐어요. 극장에서 브레히트의 서사극을 너무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었죠. 저는 환상을 쫓는 연출은 하지 않아요. 극의 구성과 전체 스토리에 중점을 두기 보다는 대본의 문장과 구절들이 상징하는 의미들을 바탕으로 연출을 합니다. 극 중 인물들의 대사 속 단어들과 행동들 하나하나에 의미를 두고 풀어내죠. 극 인물들의 행동들이 모두 서사극을 대변하게 됩니다. 제게 극장은 곧 서사시의 공간을 풀어내는 장소인 셈이죠.”

 

그렇게 텅빈 무대로 시작한 ‘라 트라비아타’는 거울이 45도 각도로 들어 올려지면서 서사시의 공간으로 관객들을 이끈다.

 

 

◇거울에 비친 시대상, 베르디의 음악 그리고 지금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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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객들에게 모든 배우들, 캐릭터들의 모습을 오목렌즈가 아닌 볼록렌즈로 보는 것처럼 세세하게 보여주고 싶었다"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연출가 헤닝 브룩하우스.(사진=최민석 기자)

“이야기가 흘러감에 따라 거울에서 두 가지 시선으로 보여지길 바랐어요. 거울에는 수평과 수직으로 무대가 비쳐지죠. 관객들에게 모든 배우들, 캐릭터들의 모습을 오목렌즈가 아닌 볼록렌즈로 보는 것처럼 세세하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거울 자체는 우리가 그동안 볼 수 없었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새로운 관점 하나를 더 얹어 주는 셈이죠.”

 

‘라 트라비아타’의 시작과 끝은 비올레타의 죽음이다. 음악도 같다. 이 역시 거울이 들어 올려지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연출이다.

 

“바닥에 거울이 엎어져 있다가 서서히 열리는 건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의 토대가 된 알렉상드르 뒤마 2세의 ‘동백 아가씨’ 소설책이나 비올레타의 무덤 혹은 어떤 기억이 다시 열리는 걸 의미하죠.”

 

바닥에 깔린 작화막과 연기하는 배우들, 그들의 동선 등이 고스란히 비치는 거울은 헤닝의 말처럼 하나가 되기도, 수직과 수평의 두 가지 시선을 내포하기도 한다. 

 

거울에 비친 그림과 하나가 되는 배우들, 합창단, 발레리나들, 무용가들의 동선은 관객석에서 수직으로 보이는 곳 뿐 아니라 수평으로 보이는 거울투영면까지를 철저하게 계산해서 짜여진 것들이다. 

 

“제 연출상에 리얼리즘은 없어요. 제가 음악을 언어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갈구하는 건 상징주의죠. 오페라의 세계에서 리얼리즘을 표현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요. 어쩌면 잘못됐다고 얘기해도 과언이 아니예요. 음악 자체가 우리들의 감정을 담은 상징주의인데 어떻게 사실주의로 표현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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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닝 블록하우스의 거울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

  

상수(객석에서 봤을 때 무대 오른쪽. 배우들의 등·퇴장을 지정하기 위한 용어) 쪽 거울에 비쳐진 벌거벗은 여인의 가슴께에 무용수의 손을 얹게 하거나 같은 각도로 눕게 하는 등 무대와 배우들은 하나인 듯,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세계로 구현된다. 그렇게 그의 무대는 화려하고 창조적이며 때로는 마법과도 같다.   

 

“‘라 트라비아타’ 자체가 남성 우월주의를 내포하고 있어요. 이 같은 남성우월주의와 시대상이 이미지로 반복돼 거울에 투영되며 수직·수평적인 시선에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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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라트라비아타의 연출가 헤닝 브룩하우스.(사진=최민석 기자)

‘라 트라비아타’는 부유하고 퇴폐적이며 관능적이던 파리의 벨 에포크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비올레타의 직업인 코르티잔(Courtesan)은 벨 에포크 시대, 특정 상류사회 남성과 사교계 모임에 동반하며 그의 공인된 정부(情婦) 역할을 했던 여성이다. 

  

한국의 기생이나 일본의 게이샤처럼 시 짓기와 가무에 능했으며 지식과 교양 등을 두루 갖춘 코르티잔의 존재 자체가 시대를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거울을 통해 수직과 수평으로, 반복돼 보여지는 이미지들은 여자들이 남성에 의해 선택돼 소모품처럼, 액세서리처럼 취급되는 남성우월주의, 신분 차이로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 등 그 시대상의 투영이에요. 거울과 그에 비친 작화막, 배우들 등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는 정말 다양한 이미지와 의미를 내포하고 있죠. 더불어 마지막 거울이 90도 가까이 들어 올려지며 투영되는 지휘자와 관객까지, 한 가지 의미로는 절대 치부할 수 없이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요.”

 

헤닝의 연출스타일과 ‘라 트라비아타’가 관능적이라고 평가 받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제는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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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닝 블록하우스의 거울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

  

그렇게 관능적이고 마법과도 같던 ‘라 트라비아타’는 3막에서 전혀 다른 분위기로 전환된다. 85도 이상으로 꺾인 거울에는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그가 베르디의 음악을 표현하기 위해 열정적으로 움직이는 손이 보인다. 더불어 객석에 앉아 울고 있는 관객들의 일거수일투족도 투영된다.


“처음으로 지휘자의 손이 보이면서 베르디의 음악이 이미지로 표현돼요. 더불어 비올레타가 이미 저 세상 사람이라는 의미죠. 이제 책을 덮을 시간이라고, 추억과 환상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라는 의미기도 해요. 그렇게 관객들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서 현실로 돌아와 스스로의 내면을 투영해 볼 수 있게 될 겁니다.”  

 

이를 헤닝은 “꿈속의 언어와 같다”고 표현했다. 뒤마의 자전적 이야기를 소설로 엮은 ‘동백꽃 아가씨’, 이를 오페라로 무대에 올린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 등은 결국 백일몽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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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라트라비아타의 연출가 헤닝 브룩하우스.(사진=최민석 기자)

“꿈은 현재와 과거, 미래를 동시에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죠. 뭐가 옳고 그르다고 표현할 수도 없어요. 꿈속에서는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이 뒤섞여요. 우리 안에 내재된 것들을 표현하고 대변하는 게 꿈이고, 그 꿈 자체가 곧 상징주의적인 이미지들이죠. 꿈속 언어와 음악적 언어는 결국 함께 갑니다. 이미지와 상징을 음악으로 결합해 보여주는 것이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죠.”  

 

대형거울을 세우는 작품은 앞으로도 ‘라 트라비아타’뿐일 거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헤닝은 벌써 70년을 넘게 오페라와 함께 했다.  

 

“오페라는 광기입니다.(The opera is madness.)”

 

그는 오페라에 대해 “누구에 의해서인지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시대적 흐름 속에서 연기와 노래, 춤, 조각, 회화미술이 혼합돼 자연스럽게 탄생한 총체적 예술”이라고 부연했다. 우리의 인생처럼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과 그 속에서 꿈꾸는 우리의 꿈처럼.

 

“오페라의 긴 역사 속에서 ‘라 트라비아타’는 걸작품이라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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