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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동 大기자의 창업이야기] 창업자의 땀과 눈물이 배여있는 프랜차이즈 성공 브랜드 뒤안

입력 2018-03-21 07:00 | 신문게재 2018-03-21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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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동유통전문대기자
강창동 유통전문 大기자·경제학박사

김철윤 ‘해리코리아’ 대표(53)는 칠전팔기의 프랜차이즈 기업인이다. 그의 사업 인생에는 땀과 눈물이 흥건히 배어 있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노점상을 시작했다. 취급 상품은 대중가요 테이프와 액세서리. 손님에게 신뢰감을 주는 방법이 여느 노점상과 달랐다. “비록 복제 테이프였지만 포장만큼은 깔끔하게 했습니다. 포장지 안에 반품하기 쉽도록 연락처도 넣어 두었죠. 이렇게 신뢰감을 주다 보니 단골이 늘어 2년만에 내 가게를 낼 밑천을 마련했지요.”

두번째 손댄 게 당구장이었다. 당구대 5개를 둔 경남 마산의 당구장을 900만원에 인수했다. 인수 전 하루평균 매출은 1만8000원. 정확히 두 달 뒤 하루 매출을 13만원대까지 끌어올렸다. “손님들을 자세히 관찰해보니 게임시간이 평균 45분이었어요. 그래서 40분이 지나면 어김없이 음료수를 제공하면서 말을 건넸죠. 음료수 한 잔은 효과 만점이어서 십중팔구는 음료수 마신 뒤 한 게임을 더 하더라구요.”

세 번째 도전은 경기도 안양역 인근 커피숍. 105㎡ 면적에 테이블 15개를 갖춘 커피숍은 입지가 뛰어난데도 88년 당시 하루 매출이 2만~3만원에 그쳤다. 그는 전면 리뉴얼을 하기로 결심했다. “손재주를 믿고 직접 인테리어 공사에 나섰습니다. 강행군을 한 달간 했더니 아늑한 148㎡짜리 가게로 변하더군요.”

가게가 새로워지자 손님도 변했다. 30∼40대 고객 대신 20대 고객들이 몰려왔다. 하루 매출도 90만원으로 껑충 뛰었다.

이렇게 비디오대여점, 노래방 등 17개 업종, 32개 점포를 리뉴얼해 양도하는 방식으로 20억원을 손에 쥘 수 있었다. 그는 이후 프랜차이즈 기업인으로 변신해, 부침을 겪은 뒤 최근 ‘펀비어킹’ 등 주점 프랜차이즈와 차세대 편의점 사업에 힘을 쏟고 있다.

김철호 본죽 설립자(55)도 30대 청년시절에 호떡 노점상을 한 적이 있다. IMF환란 직후 서울 갈월동 숙대입구의 명물이었던 ‘꿀떡깨비’가 바로 김 회장의 외식업 첫 작품이었다. 김 회장은 호떡 장사에서 외식업의 모든 것을 터득했다며 밑바닥 시절을 회상했다. “대형 음식점이나 노점이나 외식업의 기본은 똑같다고 봅니다. 일단 청결하고 맛이 좋아야 합니다. 좋은 재료를 써야 하고, 푸짐하게 주는 겁니다. 고객들이 쉽게 기억할 수 있는 브랜드도 꼭 필요하죠.” 그는 리어카를 개조해 캐릭터를 그려넣고 브랜드 간판도 달았다. 일식집 주방장처럼 위생복을 입고 가운도 썼다. 반죽을 누르는 압착기를 여느 호떡집의 1.5배 크기로 만들어 손님들에게 푸짐한 먹거리를 건넸다. 호떡 노점상의 경험이 죽 프랜차이즈 사업을 성공시키는 밑거름이 됐음은 물론이다. 이처럼 프랜차이즈 기업인들의 성공은 여느 업종과 마찬가지로 땀과 눈물로 일군 것이다. 일부의 일탈을 빌미로 전체를 ‘갑질’로 매도하는 정책당국의 ‘정치적 행위’는 가맹점주에게조차 도움이 안된다.

강창동 유통전문 大기자·경제학박사  cdkang1988@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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