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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더컬처] 살리에리, 명성황후, ‘모범택시’ 대모 백성미 그리고 차지연 “15년을 한결 같이 죽을 둥 살 둥”

입력 2021-04-05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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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지연
차지연(사진제공=씨제스엔터테인먼트)

 

“저의 큰 병이에요. 제가 저를 믿지 못해서 작품 마다 너무 겁내하고 무서워해요. 그게 커질 때는 심각한 문제가 될 정도로 너무 힘들어하죠.”

무대배우로 15년차를 맞고도 무대에 오르기 전 나 홀로 런스루(처음부터 끝까지 실제처럼 해보는 연습)를 한다는 차지연은 스스로에 대해 “(무대배우로서) 10년 넘게 했으면 좀이라도 자신감을 가지고 편하게 해야 하는데 단 한 작품도 그런 적이 없다고 털어놓았다.


“‘잃어버린 얼굴 1895’ ‘서편제’ 다 그래요. 재연, 삼연, 사연을 해도 그래요. 몰랐던 걸 더 찾아내서 성숙하고 완성도 있는 모습을 보여드려야하는데 못 찾으면 어떡하지, 연기도 노래도 엄청 잘하는 사람이 아닌데 어떡하지…이게 저의 너무 심각한 병이에요. 저를 못 믿는 자학 때문에 작품을 만날 때마다 겸손한 자세로, 늘 성실하게 타협하지 않고 하는 것 같아요. 그렇지 않으면 무대에서 살아있을 수 없거든요.” 

 

차지연 [제공=씨제스] (2)
차지연(사진제공=씨제스엔터테인먼트)

그렇게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그의 표현을 빌자면 “자학하는 심각한 병” 탓에 ‘차지연’은 꽤 오래 전부터 공연계를 대표하는 ‘이름’이자 ‘믿음’으로 자리매김했다.

 

그 이름값과 믿음으로 차지연은 뮤지컬 ‘광화문연가’의 시간여행 안내자 월하, 연극 ‘아마데우스’의 안토니오 살리에리, 뮤지컬 ‘더데빌’의 X화이트·블랙 등으로 공연계 젠더프리(성별과 상관없는) 캐스팅 열풍을 이끌었다.

“저를 믿고 많은 작품을 맡겨주시니 젠더프리 캐스팅의 선두주자라는 모양새가 돼버렸지만 그렇지 않아요. 상황 상황에서 좋은 기회를 만나다 보니 젠더프리 캐스팅이 잦아졌을 뿐이죠. 시대 흐름도 그렇고 요즘 너무 좋은 작품에 젠더프리 캐스팅이 많아서 함께 발맞춰 나갈 수 있다면 제가 영광입니다.”

더불어 창작가무극 ‘잃어버린 얼굴 1895’로 공연의 스크린 개봉 가능성을 입증했고 화제의 드라마 ‘펜트하우스’ 시즌2 후속으로 4월 9일 첫 방송되는 ‘모범택시’에서 지하금융계를 쥐락펴락하는 마담 백성미로 변신을 준비 중이기도 하다. 장르와 영역을 넘나드는 변신은 “겁이 많고 자학하는 정신세계에 지배당하곤 한다”는 자평과 결을 달리하는 도전적인 행보가 아닐 수 없다. 그는 이를 “모순”이자 “성장통”이라고 표현했다.

“저는 모순적인 것 같아요. 저를 못 믿기도 하면서 그걸 깨뜨려 나갈 때의 쾌감이 너무 커요. 제가 생각해도 저는 희한한 사람인 것 같아요. (변신이나 도전 등에 대해) 너무 흥미로워하면서도 막상 주어졌을 때는 어떡하지 겁을 먹고 두려워하죠. 배우의 성장통이자 저라는 사람의 성장통 같아요. 소용돌이, 회오리 속에 가둬두는 것, 그게 저를 성장하게 하는 것 같거든요.”


◇생사고락을 함께 한 연극 ‘아마데우스’의 안토니오 살리에리 


[차지연] _아마데우스_ 공연사진[제공-페이지원]2
연극 ‘아마데우스’ 중 살리에리로 분한 차지연(사진제공=페이지원)

 

“저의 비주얼 때문이기도 할 거예요. 중석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고 신장이나 체구 자체가 있으니까요. 젠더프리 역할을 맡았을 때 비주얼적으로 너무 동떨어져 있지 않으니 남성적 매력을 발산해야 한다면 ‘차지연’을 떠올리는 가능성를 만들어드리는 것 같아요.”

잦은 젠더프리 캐스팅에 대해 이렇게 전한 차지연은 “더불어 성실하고 절실하게 임하는, 작품을 대하는 태도와 마인드를 예뻐해 주시고 믿어주시는 것 아닌가 싶다”고 털어놓았다.
 

차지연 [제공=씨제스] (1)
차지연(사진제공=씨제스엔터테인먼트)

“죽을 둥 살 둥 하는 애인 걸 아시니까요. 어느 작품이든 연습부터 마지막까지 단 한순간도 허투루하지 않고 재연이든 초연이든 삼, 사연이든 초연처럼 임하는 것 같거든요. 연구해서 더 찾아내려고 하는 저의 성향이 다양한 시도를 계속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끔 하는 요소가 아닐까 싶어요.”


그는 ‘광화문연가’ ‘더데빌’에 이어 연극 ‘아마데우스’에서 살리에리로 분하며 다시 한번 ‘차지연’이라는 이름이 가진 믿음을 입증했다.

 

천재 음악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에 밀려 2인자로 살았던 살리에리에 대해 차지연은 “문화예술계 모든 분들이 살리에리 마음을 십분 공감할 것”이라고 밝혔다.  

 

“누구나 그래요. 충분히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고,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상황에 이끌려 내 부족한 부분을 찾게 만들거나 거기에 빠져서 자학하게 만들잖아요. 존재만으로 빛나는데도 계속 압박을 받거나 부족한 데만 보게 되면서 강박에 시달리고 영혼까지 피폐해지는 누구나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곤 “저도 그런 사람”이라며 “누군가는 제가 부러움의 대상일 수도 있는데 장점과 좋은 부분에 대한 말에는 귀 막아버리고 ‘나는 왜 이리 부족한가’에만 매달렸다”고 털어놓았다.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고 못난이로 살았던 긴 세월을 생각해보면 그래서 살리에리를 만났나 싶어요. 연극 ‘아마데우스’는 초연이 올라간다고 했을 때부터 피터 셰퍼 감독의 영화를 봤고 초연을 직접 관람하기도 했지만 제가 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텍스트가 너무 좋아요. 주옥같은 살리에리, 모차르트의 대사에 공감이 너무 잘됐어요.”

 

이미 성별에 상관없는 역할을 했던 차지연이지만 “아무리 젠더프리 캐스팅이어도 실존했던 남성을 연기해야하는 데 대한 두려움은 컸다.” 뮤지컬 ‘광화문연가’의 월하, ‘더데빌’의 X화이트·블랙은 시간여행자, 악마와 신 등 굳이 성별과는 상관없는 역할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안토니오 살리에리는 모차르트가 맹활약하던 시절에 실존했고 분명 ‘남성’인 인물이다.

 

[차지연] _아마데우스_ 공연사진[제공-페이지원]1
연극 ‘아마데우스’ 중 살리에리로 분한 차지연(사진제공=페이지원)

“결정하기까지 몇달이 걸렸어요. 감히 도전하면 안될 것 같았거든요. 과유불급이라고 하잖아요. 모든 젠더프리 캐스팅에 신중하게 접근하지만 ‘아마데우스’는 더 그랬어요. 여성인 제가 살리에리로 무대에 섰을 때 거부감이 들지 않을까, 혼자 다른 곳에 있는 것처럼 보이진 않을까, 제가 표현하는 캐릭터를 잘 따라와 공감해주실까…그 부분이 너무 무서웠어요.”

그 같은 두려움으로 “하루하루 절실하게 연습과 공연에 임했던” 그의 살리에리는 겁 많고 자학하는 차지연이 “열심히 고민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한 만큼 많은 분들이 사랑해주시고 응원해주셔서 얼마나 행복하고 기뻤는지 모른다”고 말할 정도로 만족스러운 결과를 냈다.


◇새로운 경험 ‘잃어버린 얼굴 1895’, 스크린으로 옮기고 싶은 ‘그라운디드’

잃어버린 얼굴 1895
극장에서 선보인 창작가무극 ‘잃어버린 얼굴 1895’ 명성황후로 출연했던 차지연(사진제공=서울예술단)

“‘잃어버린 얼굴 1895’ 또한 굉장히 애착이 많은 작품 중 하나예요. 영화 개봉이라는 감사한 기회에 신기하고 감사한 경험을 했죠. 저를 잘 못믿다 보니 모니터 화면으로 저를 보는 게 익숙하지가 않아요.”

이어 차지연은 “이런 모습이겠지 상상하면서 무대에 서 있었는데 (영상 속 저의) 너무 다른 모습이나 표정을 맞닥뜨렸을 때는 놀람과 당황스러움이 있었다. 반대로 예상치도 않았는데 저 부분과 모습은 캐릭터로 살아 있구나 느낄 때도 있다”며 “그렇게 보완할 것과 강화할 것들을 모니터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모노극 그라운드드
차지연은 스크린으로 선보이고 싶은 작품으로 모노극 ‘그라운디드’를 꼽았다(사진제공=우란문화재단)

“그럼에도 감사하고 좋았던 건 객석과의 거리로 보기 힘들었던 눈동자 떨림 하나, 미세한 표정 하나를 볼 수 있었다는 거였어요. 좋은 퀄리티의 영상을 계속 볼 수 있어서 영화가 사랑받듯 공연도 그럴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봤죠. ‘아마데우스’의 살리에리나 모차르트에게서 그랬던 것처럼 ‘잃어버린 얼굴 1895’의 명성황후 넘버에서도 많은 공감과 영감을 얻었어요. 특히 코로나와 뒤엉켜 살아내야하는 현시대적 상황에서 공감가는 가사가 너무 많았어요. 가슴에 막 내리 꽂히는, 그런 가사들이요.”


그리곤 “그렇게 사람에 대해 일깨워주고 인생을 알게 하고 나를 뒤돌아보게 하고 주변을 돌아보게 하는 배우라는 직업은 큰 축복”이라고 말을 보태며 스크린으로 옮겨 극장에 개봉하고 싶은 공연으로는 모노극 ‘그라운디드’를 꼽았다.

‘그라운디드’는 건강상의 문제로 두문불출하던 차지연이 1년여만에 무대복귀작으로 결정한 모노극으로 조지 브랜트(George Brant)가 대본을 쓰고 뮤지컬 ‘라이온 킹’의 연출이자 의상 디자이너, 마스크·퍼펫 공동 디자이너인 줄리 테이머가 연출한 작품이다. 2013년 초연돼 2015년 할리우드의 유명배우 앤 해서웨이(Anne Hathaway)가 오프브로드웨이의 퍼블릭씨어터에서 공연한 데 이어 영화 출연 및 제작까지 맡아 주목받은 작품이다.


에이스 전투기 조종사가 예기치 못한 임신으로 라스베이거스 크리치 공군기지의 군용 드론 조종 임무를 맡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누구나 겪을 이면, 극과 극 경계에 서게 되는 상황을 전쟁의 참혹함과 평범한 일상, 새로운 공격과 방어의 수단인 드론의 양면성에 빗댄다.

“진짜 멋있을 것 같아요. 공연하던 당시(2020년 5월)에 정말 많은 아이디어가 있었는데 1인극이다 보니 다 할 수 없어서 가슴을 치곤했거든요. 정말 많은 것들을 과감하게 시도할 수 있는 작품이라 공연 때 하지 못한 것들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된다면 정말 멋있을 것 같아요. 드라마가 너무 좋고 요즘 시대에 주는 메시지도 굉장히 큰 작품이죠.”


◇신나는 욕심! 드라마 ‘모범택시’ 마담 그리고 예능
 

차지연
차지연(사진제공=씨제스엔터테인먼트)

 

“‘잃어버린 얼굴 1895’ 극장 개봉에 이어 TV 드라마라는 장르를 만나 또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어요. 잘 해내고 싶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도 보여드리고 싶고, 새로운 장르에서도 믿음직한 배우로서 다양한 역할을 보여드리고 싶고…신나는 욕심이 생겨요.”

이미 알려진대로 차지연은 4월 9일 첫 방송되는 SBS 금토드라마 ‘모범택시’에서 지하금융계를 휘어잡은 대모 백성미로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2011년 ‘여인의 향기’ 후 10년만의 드라마 출연으로 “그때는 카메오처럼 잠깐잠깐 등장하는 역할이라 촬영에 임하기보다는 드라마 촬영 현장을 견학하는 느낌이 컸다”고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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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모범택시’ 마담 역의 차지연(사진제공=SBS)
“진짜 낯설어서 구경만 하다온 느낌이라면 이번 ‘모범택시’는 끝까지 가져가야하는 상황이죠. 여전히 신생아 수준으로 열심히 찍고 있죠. 현장 스태프나 저희 소속사(씨제스) 스태프들이 워낙 잘 챙겨주세요. 낯선 환경, 용어들도 상사하고 친절하게 설명해주시죠.” 

 

연기해야할 백성미에 대해서는 “어둠의 세계 장악하는 대모로 미스터리하고 분위기로 주름잡는 인물”이라며 “자칫 ‘너무 편안하게 악행을 일삼는 거 아냐?’라고 할지도 모를, 하지만 대모 입장에서는 너무 당연하고 정당한 일인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분위기로 압도하는 캐릭터에 걸맞는 모습이면 좋겠어요. 웹툰과 닮은 부분도 있지만 드라마 대본에서의 대모는 웹툰 내 다른 역할들과 믹스된 부분도 있죠. 나잇대도 어려져서 웹툰에서의 대모보다 좀 더 다양한 매력을 볼 수 있을 듯해요.”

이어 예능 프로그램에 대한 욕심도 숨기지 않았다. MBC ‘복면가왕’, KBS ‘불후의 명곡’, TV조선 ‘사랑의 콜센터’ 등에서 독보적인 가창력을 발휘하기도 했던 차지연은 올 초 ‘집사부일체’ 뮤지컬 특집에 출연해 색다른 모습을 선보이기도 했다.

“위트나 순발력, 재치 있게는 못하지만 생활형 예능은 해보고 싶어요. 다들 깜짝 놀라셨을테지만 저 사실 되게 허당이고 밝은 사람이거든요. 친근감 있거나 천진난만한 모습도 보여드리고 싶어요. 나영석 PD님의 밥 해먹는 예능이나 ‘유 퀴즈 온 더 블록’ 등도 해보고 싶어요. 저 설거지, 요리, 살림 다 잘하거든요. 그리고 ‘유 퀴즈 온 더 블록’은 1회부터 한번도 빼놓지 않고 다 본 ‘찐 자기님’인데 한번도 안불러주시더라고요.”


차지연
차지연(사진제공=씨제스엔터테인먼트)

◇코로나시대 배우로서의 고민 그리고 어쿠스틱 음악


“코로나19로 공연이 중단됐을 때는 너무 힘들기도 했고 굉장한 우울감을 느끼기도 했어요. 먹고 사는 문제라 고민을 안할 수가 없었죠. 늘 관객을 만나던 사람인데 그 만남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이걸 어떻게 해야할까…아직도 고민 중이에요.”


그리곤 “저도 다른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 털어놓으며 “저 뿐 아니라 수많은 배우들이 장·단기 아르바이트로 자신의 삶 속에서 어떻게든 버텨내고 이겨내려는 모습이 멋있고 안쓰럽고 그랬다”고 말을 보탰다.

“그들에게 뭔가 힘을 줄 수 있는, 이끌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더 열심히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뮤지컬 ‘레드북’을 무대 차기작으로 발표한 차지연의 작품 선정 기준은 “무조건 대본”이다. 그는 “허점 없이 잘 짜여진 대본은 어떤 상황에서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걸 너무 많이 겪었다” 이유를 전하며 “글이 좋을 때는 무조건, 망설임 없이 직진한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작품 외에 가장 많은 관심을 가지고 시간을 할애하는 것으로 “음악”을 꼽았다.

“저는 어쿠스틱 사운드를 좋아해요. 언젠가는 그런 음악, 노래를 부르고 싶어요. 저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만들고 있죠. 악기 연주, 노래, 음악 등 소소한 것들을 하고 있어서 언젠가 좋은 곡이 나오면 여러분들께 들려드리고 싶어요. 뮤지컬 무대 넘버와는 완전 다른, 편안하게 숨 쉬고 들을 수 있는 그런 음악이요. 일상에서 함께 들을 수 있는, 쉼표가 많은 음악들로 찾아뵙고 싶다는 생각으로 저희끼리 요렇게, 저렇게 얘기하고 있죠.”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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