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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김헌동이 SH에서 쏘아올린 '반값 아파트', 기폭제 될까

[열정으로 사는 사람들] 김헌동 서울주택도시공사 사장

입력 2022-08-29 07:15 | 신문게재 2022-08-29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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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동SH사장
김헌동 서울주택도시공사(SH) 사장이 16일 서울 강남구 SH본사에서 브릿지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인터뷰에서 김 사장은 분양원가 공개와 반값 아파트의 필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사진=이철준 기자)

  

“왜 우리나라는 30년만 되면 다 부순다고 하나, 왜 양만 많이 공급하고 저렴하게 공급하겠다는 곳은 없나, 왜 사람들은 집 짓는데 얼마가 드는지 모르나, 왜 집값을 잡지 못했나?”

  

김헌동(66) 서울주택도시공사(SH) 사장을 지난 16일 서울 강남구 개포동 본사에서 인터뷰 하는 내내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가 “왜”라는 반문이었다. 20여년간 시민단체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서 “집값을 잡겠다”며 부동산 관련 정부 정책의 문제점을 짚어왔던 탓일까. 공기업 사장으로 취임한지 9개월째인 김 사장은 여전히 집값 안정을 위한 거침없는 견해를 쏟아냈다.

 

“시민운동 당시 뜻을 같이 했던 사람들이 그 자리에 가면 왜 달라지나, 나는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변창흠 전 국토교통부 장관에 대해 노무현 정부 때 분양원가 공개하라는 경실련 정책이 맞다고 박수치던 사람인데 지난 5년간 SH, LH 사장에서 장관 자리에 오르기까지 집값 안정에 필요한 정보 공개를 시행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때문일까. 그는 그간 공기업 사장들과 다른 눈에 띄는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국내 공기업 최초로 SH공사의 보유 자산(주택·건물·토지)과 아파트 분양원가를 전면 공개하고 100인의 시민주주단 출범 등 파격적인 행보를 이어갔다. 취임 100일째 되는 날엔 “건물만 분양하는 아파트를 통해 1000만 서울시민께 내 집 마련의 꿈을 실현시켜주겠다”며 ‘반값 아파트’ 공급을 약속했다.

“SH공사는 ‘1000만 서울 시민을 위한 자리’다. 20년 동안 주장해온 것들을 직접 해보자 해서 망설임 없이 이 자리에 왔다.”

1981년부터 쌍용건설에서 20년간 근무한 김 사장은 1999년부터 지난해 SH 사장이 되기까지 경실련에서 국책사업 감시단장, 아파트값 거품빼기운동본부장, 부동산건설개혁본부장 등을 맡으며 집값 안정을 위한 부동산 정부 정책을 검증해왔다. 특히 문재인 정부에 대해 시장 현실과 왜곡된 부동산 정책을 끊임없이 비판해왔다.

그는 문 정부가 집값을 잡지 못한 이유는 엉터리 통계로 인한 잘못된 진단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통계나 정보를 잘못 전달 받는 것 같았다. 청와대에 보고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OECD 평균에 비하면 많이 안오른 것으로 돼있다. 하지만 시장에서 일반 시민이 느끼는 온도차는 컸다. 대통령이 부동산 전문가도 아니고, 수치를 만든 사람들이 얘기한 대로 발표할 것 아닌가. 대통령이 제대로 부동산 정보를 보고 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김 사장은 새 정권이 부동산 정책실패를 되풀이 하지 않으려면 투명경영, 열린경영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윤 대통령이 정권이 바뀌고 공기업이 변하고 혁신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려면 기업의 부채, 자산, 투자액 등의 현재 상태를 알아야 어떤 것을 변화시킬 수 있을지가 나오지 않을까. 투명경영이 필요하다.”

그런 그가 20년간 자신의 ‘부동산 안정’을 필생의 과업으로 삼아온 일들을 하나씩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그 중 대표적인 게 ‘반값 아파트’다. 토지는 서울시 및 SH가 소유하고 ‘토지 임대부’ 방식의 건물 소유권만 팔아 분양가를 기존의 절반으로 낮춘다는 구상이다. 현재 아파트는 분양비에 토지값이 포함돼 있는데, 그 토지는 꽃 한송이 심을 수 없는 무용지물 존재라고 설명한다. 그 토지를 뺀 건물만 분양하면 서울 강남에서 5억원, 비강남에선 3억원으로 집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과연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일까. 아무리 저렴한 재질에 날림으로 집을 짓는다 해도 집값이 수 십 억원씩 하는 강남에 5억원 짜리 집이라고 하니, 사람들 시선엔 의구심이 가득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더 기막힌 얘기를 한다. 강남의 타워팰리스 같은 고품질 아파트로 ‘백년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의구심은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그 의구심을 풀어준 것 중 하나가 분양원가 공개였다.

그가 공개한 분양원가는 지역별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25평 아파트 기준으로 평당 700~800만원 정도다. 25평짜리 아파트를 짓는 데 2억원이 채 안든다. SH가 보유한 토지를 사용해 가격 거품을 없애면 충분히 가능한 정책이라는 것을 분양원가 공개로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20년 가까이 분양원가 공개를 주장해왔다. SH대표로 취임하자 마자 1단계 목표가 ‘서울에서 집을 지으면 건축비가 얼마인가’였다. 9개월간 이를 알려왔다.”

김 사장은 지난달 SH가 공급한 항동·오금·내곡·세곡2지구에 이어 마곡지구 13개 단지의 분양원가 공개를 마지막으로 주요사업지구의 분양원가를 공개하겠다는 약속을 마무리 지었다. 현재 본사 1층 로비에도 분양원가 차트를 공개하고 있다.

그렇다면, 100년짜리 고품질 아파트는 어떻게 짓겠다는 것일까. 그가 서울시와 현재 추진하고 있는 ‘서울형 건축비’를 통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현재 국토교통부가 제시하고 있는 ‘기본형 건축비’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왜 우리는 30년만 되면 다 부순다고 하나. 심지어 아파트를 짓다가 부서지는 일도 생긴다. 미국 뉴욕 맨해튼의 허드슨 야드 같은 해외 건물 중 30년 지났다고 무너진 곳이 있나. 다른 나라는 100년씩 잘 쓰는데, 우리나라는 왜 그럴까. 건축비를 30년치 밖에 안 줘서 그렇다. 100년 주택을 지을 수 있는 건축비를 줘야 한다. 그래서 원가공개가 필요한 것이다. 건축비를 더 주기 위해서다. 내년 즈음 그 안이 나올 것 같다.”

건축비를 더 준만큼 집값도 오르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에 김 사장은 문제 없다고 자신했다. “25평 기준으로 건축비를 50%를 더 줘도 2억5000만원이고, 두 배를 더 줘도 4억원 정도가 된다.”

그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서울을 세계 5대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도 수명 100년 이상의 건축물을 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공이 100년 이상의 집을 지으면 민간도 경쟁하듯 100년짜리 집을 만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 사장은 그가 구상하는 100년짜리 반값 아파트를 공급할 준비를 모두 마친 상태라고 했다. 부지선정부터 인력, 자금 조달 계획까지 마련해둔 상태다. 반값 아파트 1호로 서울 강동구 고덕강일을 예상하고 있다. “공급 준비를 다 마치고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국토부 승인만 떨어지면 곧바로 시작할 것이다.”

궁금했다. 왜, 김 사장은 집값 안정을 그의 필생의 과업으로 삼아왔던 것일까.

그는 정치에도 관심 없다고 했다. 배우자와 1남 1녀를 두고 있다는 김 사장은 “나와 내 가족만 생각했다면 이 길을 오지 않았다”고 했다.

“터무니 없이 오른 집값은 내 집 마련 꿈을 이루지 못하게 만들었고, 고령화 시대 결혼도 출산도 멀어지게 만들었다. 심지어 가정불화까지 만들며 사회에 엄청난 불평등을 초래하고 있다. 그런 사회가 되면 결국 행복지수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내 자녀와 그 사회구성원이 고통을 누리는데 나 또한 행복하지 않다. 내 아들딸이 싸고 좋은 집에서 행복하게 살게 해주고 싶어서 이 운동을 해왔다.” 

 

김헌동SH사장
김헌동 서울주택도시공사(SH) 사장이 16일 서울 강남구 SH본사에서 브릿지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날 인터뷰에서 김 사장은 분양원가 공개와 반값 아파트의 필요성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사진=이철준 기자)

 

김 사장은 평소 페이스북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올리고, 토론을 즐긴다고 한다. 특히 그가 토론을 즐기는 이유는 자신의 생각을 검증하고 다듬기 위해서라고 했다. 경실련에 있을 때 기자회견을 일주일에 한 번씩 했고, SH사장이 돼서는 한 달에 한 번씩 기자 설명회를 하고 있다고 한다.

“내가 게을러지지 않기 위해서다. 말만 하고 실천을 안하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는 인터뷰 마지막까지도 잘못된 정책을 지적했다. “공공아파트 거주자에 재산세를 부과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공공은 투기 목적이 아니다. 당장 고쳐야 한다.”

추천해 줄 책이 있냐고 물었더니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여러 번 읽었다고 했다. 1970년대 도시 빈민층의 삶을 다룬 것으로 ‘난장이’를 통해 산업시대에 접어든 우리 사회의 허구를 적나라하게 폭로하면서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야 할 꿈과 자유에 대한 열망을 담고 있다.

“공기업 사장 임기를 마치면 다시 시민단체로 돌아가 기업을 감시하겠다”며 반 농담 섞인 말투로 얘기하며 미소를 띄우는 김 사장. SH에서 그가 쏘아 올린 ‘반값 아파트’가 부동산 시장의 혁신을 이끄는 기폭제가 될지 기대가 모아진다.


채현주 기자 1835@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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