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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승의 무비가즘] 故김주혁, 세월이 가면 잊을 수 있을까?

사후 터진 의미있는 상복과 여담
배우이자 멋진 인간으로 추억되는 김주혁

입력 2018-10-31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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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광식이 동생 광태’에서 노래를 부르는 故김주혁.(사진제공=명필름)

 

누구보다 갑작스런 죽음이었다. 30일은 지난해 사고로 세상을 떠난 고(故) 김주혁의 1주기였다. 그는 서울 삼성동의 아파트 정문에서 차량이 전복되는 사고를 당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했다.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에 따르면 김주혁은 머리뼈 골절 등 두부 손상이 결정적인 사인이었다.

하지만 사고 원인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소속사 나무엑터스는 지난 30일 고인의 지인과 동료들이 참석한 가운데 비공개로 추모식을 진행했다. 평소 허례허식과 과한 이벤트를 싫어했던 고인의 성격을 잊지않은 결정이었다.

김주혁의 사후는 유독 미담의 온기로 충만했다. 자신을 영화 ‘청연’의 스태프라고 밝힌 한 네티즌은 “2003년 겨울, ‘청연’ 제부도 촬영현장에서 발을 다친 나를 제작실장이 주연배우 쉬라고 잡아놓은 방으로 보냈다”면서 “잠깐 누워있다가 가야지 했다가 잠이 들었고 잠결에 소리가 나서 깨보니 주연배우(김주혁)가 살며시 나가려다가 내가 깨자 ‘미안해 좀 더 자’라며 매우 미안해하며 나갔다”고 죽음을 애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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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故김주혁(사진제공=나무엑터스)
한 소속사에서 20년 가까이 의리를 지킨 것도 그의 성격을 대변한다. 김주혁은 2004년 설립된 연예기획사 나무엑터스의 창립 멤버다. 개인 매니저였던 김종도 대표가 세운 회사로 옮긴 뒤 연예계 생활의 대부분을 함께 했다.

영화 ‘공조’ 개봉 때는 수능을 앞둔 관객이 자신을 찾아오자 “지금 이 영화가 중요하냐?”고 장난스럽게 버럭한 뒤 “사실 나도 학창시절 그렇게 성적이 좋지 않았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찾고, 그 일을 재미있게 해보자”고 위로하기도 했다.

단순히 영화의 홍보가 아닌 팬의 고민을 진지하게 듣는 모습은 평소 그의 인성이 그대로 드러난 순간이었다.

김주혁은 배우 고(故) 김무생의 차남으로 아버지와 같은 연기자의 길을 걸었다. 1998년 SBS 8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그는 드라마 ‘카이스트’, 영화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 ‘싱글즈’, ‘광식이 동생 광태’, ‘아내가 결혼했다’, ‘방자전’ 등 다양한 장르를 소화하는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스스로 “상 복이 없었다”고 했던 그는 최근 열린 제 55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영화 ‘독전’으로 남우조연상과 특별상을 받았다. 세상을 떠나기 3일 전 ‘제1회 더 서울 어워즈’에서 ‘공조’로 생애 첫 영화 부문에서 수상한 데 이은 두 번째 수상이었다. 김주혁은 ‘더 서울 어워즈’ 수상 당시 “연기 생활 20년 만에 영화에서 상을 처음 받아 본다”는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지난 24일 개최한 ‘2018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에서 받은 국무총리표창은 영화와 관련된 수상이 아니었음에도 단연코 빛난다. 대중문화예술상 수상자는 공적 기간과 그간의 활동 실적, 관련 산업 기여도, 사회 공헌도, 국민 평판 및 인지도 등 다양한 항목을 종합적으로 심사해 결정된다. 국무총리표창장을 대리 수상한 김석준 나무엑터스 상무는 “지난해가 데뷔한 지 20년이 된 해였다”며 “이 상은 20년 동안 그가 잘 살았다는 증거인 것 같다. 어디선가 기뻐하고 있을 것 같다. 상 잘 전하겠다. 감사하다”는 소감을 전했다.

특별했던 김주혁의 남다름은 도리어 ‘보통 남자’ 때 빛을 발했다. 국민예능 ‘1박 2일’ 출연은 그가 어떤 용기를 냈는지가 여실히 들어난다. 모범생 이미지와 다르게 초등학교 시절 맹구 분장을 하고 체육반장을 도맡아 했다던 김주혁은 배우가 되면서 ‘끼의 발산’이 정제됨을 느꼈다. 장르와 역할에 맡게 표현되는 직업적 한계를 예능에 도전함으로써 무장해제시키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영화에서 ‘날고 기던’ 김주혁이 출연 초반 겪었던 에피소드가 정확히 기억 난다. 동네 주민들을 통해 멤버들의 인지도를 검사하는 에피소드에서 ‘0표’를 받았던 것. 이후 영화배우 김주혁의 모습을 벗고 평소의 모습을 보여주자 ‘구탱이 형’이란 캐릭터가 탄생됐다. 사자성어 ‘토사구팽’을 ‘토사구탱’이라 말하며 깬 보통사람의 허당미는 매 주말 빵빵 터지며 친근함을 더했다.

그렇다면 가장 김주혁 다운 영화는 무엇일까. 스크린을 씹어 먹을 듯한 여러 악역과 욕망의 캐릭터 사이에서 ‘광식이 동생 광태’는 단연코 빛난다. 새내기 신입 여학생에게 마음을 빼앗긴 사진과 복학생이 그의 역할이다.

동아리 모임 후 운 좋게 분당의 집까지 데려다 줄 기회를 잡았지만 버스타기 전 마셨던 그놈의 맥주가 말썽이다. 결국 200미터를 앞두고 먼저 그녀를 보내고 급하게 볼일(?)을 보고 나서야 조용히 뒤따라가며 안전한 귀가를 돕는 성격. 혼자 사는데 보일러가 고장 났다는 소리를 듣고는 티나지 않게 고쳐주고 돌아가는 배려심.

극중 연애계의 평화유지군이자 좋은 형, 멋진 오빠로 나오는 광식은 그렇게 7년간 짝사랑했던 여자 윤경(이요원)의 결혼식에서 ‘세월이 가면’을 부른다. 세월이 가도 잊을 수 없는 배우가 있다. 김주혁이 바로 그렇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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