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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승의 무비가즘] 양조위, 마성의 남자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재개봉 영화 통해 또다시 매력 발산
세기의 로맨티스트이자,변화 두려워하지 않은 배우

입력 2021-02-14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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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승_무비가즘_2021_2_14

 

재개봉 열풍이 불어닥친 극장가는 그야말로 ‘양조위 천하’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의 장기화로 극장가에 신작 개봉이 줄어들면서 관객들이 인생영화라 꼽는 추억의 명화들이 스크린을 장악하고 있는 것. 아카데미 7관왕 수상에 빛나는 ‘늑대와 춤을’은 평일에도 극장 점유율이 50%넘었고 겨울만 되면 생각나는 이와이슌지 감독의 ‘러브레터’는 1999년 개봉한 이래 무려 5번째로 극장에 걸린다.


하지만 이중 단연코 눈에 띄는 배우는 양조위다. 장르와 국적을 떠나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홍콩영화는 극장계의 큰손인 3050관객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그야말로 ‘효자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사대천왕’이라 불리는 유덕화·장학우·여명·곽부성과 그들에 앞선 ‘원조 꽃미남’으로 불린 주윤발·장국영, 그 사이의 양조위는 그야말로 ‘스며드는 스타’였다. 남녀성비가 극명하게 갈린 주윤발과 장국영의 팬덤 사이에서 양조위는 간헐적 매력을 발휘해왔다.



◇배우의 실제 여친을 극 중 부부로 캐스팅한 양가위 감독 ‘동사서독’

동사서독
장국영의 나레이션으로 연기하는 영화 ‘동사서독 리덕스’에서 양조위는 냉혈한 무사로 나온다.(사진제공=미디어캐슬)

 

오리지널 영화 ‘동사서독’을 극장에서 본 관객들은 거의 없지 않을까 싶다. 해마다 복사꽃 필 무렵 서독 구양봉(장국영)을 찾아오는 동사 황약사(양가휘), 그의 절친 맹무살수(양조위)와 아내 도화(유가령)의 엇갈린 사랑이야기다. 허무적이고 우울한 분위기에 인물들의 관계도 복잡하게 얽혀있어 쟁쟁한 왕가위 사단의 출연에도 비운의 영화로 막을 내렸다.

기본적인 스토리말고는 세세한 대사와 상황을 현장에서 고치기로 유명한 감독의 성향을 맞춰준 건 배우들이었다. 살인적인 스케줄에도 왕가위 감독의 예술성을 믿고 견딘 이들은 수시로 바뀌는 설정과 중국 올 로케이션으로 진행되는 시대극을 버텼지만 결국 제작비가 문제였다. 

 

서둘러 마무리된 ‘동사서독’의 아쉬움은 왕가위 감독이 직접 3년 간 공을 들여 ‘동사서독 리덕스’를 만들면서 명작으로 등극됐다. 2008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특별상영된 이 작품은 자막과 내레이션, 구성에 공을 들였다. 특히 세계적인 첼리스트 요요마의 삽입곡이 추가돼 극 전체의 톤앤매너를 새롭게 완성시켰다.

지금은 고인이 된 장국영의 대표작으로 꼽히기도 하는 ‘동사서독’은 양조위의 오랜 연인인 유가령의 매력을 발견하는 영화기도 하다. 더불어 극 중 진정으로 사랑하지만 표현하지 못하는 부부로 출연하는 두 사람의 캐스팅에도 대단한 관심이 모아지기도 했였다. 양조위는 뛰어난 무술 실력을 가진 냉혈한으로 비중은 크지 않지만 극중 아내에 대한 감정만큼은 스크린을 뚫고 나온다. 지금은 부부가 됐지만 과거 유가령이 조직폭력배 집단에 납치돼 겪어야 했던 끔찍한 사건에도 묵묵히 곁을 지키며 세기의 로맨스를 완성했다.


◇사실 팬 들은 장만옥과의 결혼을 밀었다 ‘화양연화’

화양연화
과연 차우는 벽에다 어떤 비밀을 털어놓을까.첸부인과의 사랑만을 남겨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영화 ‘화양연화’에서 긴 엔딩을 장식하는 장면이 관객들의 심금을 울린다.(사진제공=(주)엔케이컨텐츠)

제목의 의미처럼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을 가장 진하고 슬프게 그린 ‘화양연화’는 제53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양조위에게 남우주연상을 선사했다.

2000년대 작품을 재개봉한 영화임에도 박스오피스 상위권 누적관객 약 10만명, 2016년 BBC가 선정한 ‘21세기 가장 위대한 영화’ 2위에 올랐던 작품으로 영화 마니아에게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다.

개봉 20주년을 맞아 영상과 음향을 보강한 4k 리마스터링 재개봉해 선명한 화질로 관객을 다시 찾은 만큼 국내 박스오피스에 장기간 머무르고 있다.

같은 날 같은 아파트에 나란히 이사온 첸 부인(장만옥)과 차우(양조위). 유독 바쁜 배우자와는 다르게 자주 마주치던 두 사람은 각자의 아내와 남편이 사다준 넥타이와 가방에 그들의 관계를 눈치챈다.

 

배신감과 분노도 잠시, 어떻게 시작됐는지를 추적하는 첸과 차우는 감정이 깊어지고 서로에게 빠져들게 되며 인생의 찬란한 시간을 보낸다.

양조위가 연기한 차우는 신문사를 다니지만 사실은 무협 소설가를 꿈꾸는 ‘분노없는 남자’다. 매일 음담패설을 달고 사는 친구가 찾아와도 돈을 꿔주고 야근을 많이 하는 아내를 다독이며 외식을 하기도 한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배신당한 채 넋을 놓고 비를 맞는 첸 부인에게 우산을 건네기도 한다.

양조위가 연기하는 차우는 첸 부인이 벗어놓고 간 슬리퍼를 아무도 모르게 간직하는 짧은 장면을 통해 ‘사랑’을 표현한다. 결국 앙코르와트의 흙벽 속에 비밀을 묻으며 감정을 정리하는 듯 하지만 상대방인 장만옥의 세련된 의상에 버금갈 정도로 양조위가 보여준 눈빛연기는 극 중 색감, 음악과 더불어 하나의 명화라 불려도 손색없을 만큼 완벽하다.


◇미치도록 담배가 피고 싶다 ‘해피 투게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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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늙지않는 장국영에 비해 ‘젊은 양조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해피 투게더’의 한 장면.(사진제공=(주)디스케이션)

 

우리가 사랑했던 홍콩배우들은 다양한 변화를 겪었다. 최근 인터넷 방송 한번으로 80억원을 버는 뱀파이어 배우 유덕화, 이제는 두 딸의 아빠로 ‘쉰파파’ 대열에 들어선 곽부성까지. 양조위가 왕가위 감독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코믹 배우에서 감독이자 유명 제작자로 거듭난 주성치급의 변화를 맞이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롯이 배우로서 특유의 아우라를 가지고 있는 건 ‘해피 투게더’가 계기였다. 지금 봐도 아휘(양조위)와 보영(장국영)이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탱고에 맞춰 춤을 추는 장면은 애틋하다. 두 남자의 반복된 사랑과 이별을 그린 왕가위 감독의 첫 퀴어영화 ‘해피 투게더’는 홍콩과 중국의 ‘춘광사설’(春光乍洩), 일본의 ‘부에노스아이레스’ 등 제목만 세개다.  

 

해피투게더
영화 ‘해피투게더’의 한 장면.(사진제공=CGV)

지난 2월 4일 ‘해피 투게더 리마스터링’이란 이름으로 개봉한 이 영화는 홍콩에서 지구 반대편에 있는 아르헨티나까지 간 두 남자의 로드무비이자 지독한 러브 스토리다.

같이 있으면 의심하고 떨어져 있으면 그리워 하는 아휘와 보영. 불평하고 화도 내지만 보영의 제멋대로인 성격을 다 맞춰주는 남자 아휘는 양조위 말고는 떠오르는 대체 배우가 없을 정도다.

그는 이가 가득해도 편히 누울 수 있는 침대를 연인에게 양보하고 감기 몸살로 앓아 누워도 아침밥을 차리며 자신만의 사랑을 전한다.

만인의 연인이고 싶은 보영이 혹시라도 떠날까 밖에 담배를 사러가는 것조차 두려운 소심한 남자.

 

결국 가진 돈을 모두 털어 매일 두 갑씩 펴도 일년은 너끈하게 필 수 있는 담배를 쌓아놓는다. 아휘가 가진 불안함과 연인을 바라보는 행복한 모습은 당시 ‘청년 양조위’가 가진 보석같은 반짝임을 최고로 응축했다.

그가 ‘무간도’ 시리즈와 ‘색, 계’에서 보여준 중년의 섹시함과 여유는 아시아의 보물이라 칭할 만하다. 양조위, 마성의 남자. 그의 매력은 ‘중경상림’ ‘일대종사’를 포함한 ‘All About Wong Karwai: 왕가위 특별전 시즌2’로 CGV 전국 40개 상영관에서 만날 수 있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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