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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그라운드] 깊어진 여성 서사와 연대, 여전한 볼레로…뮤지컬 ‘마리 퀴리’

입력 2020-02-15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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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마리 퀴리'(연합)

 

“작가가 애초 하고 싶었던 얘기에 집중했습니다. 위인전으로 아는 위대한 과학자, 그의 위대한 발명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뮤지컬 ‘마리 퀴리’(3월 29일까지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의 김태형 연출은 두 번째 시즌의 변화에 대해 “암 치료, 핵 발전 등 라듐 발견이 우리 삶에 미친 영향에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뮤지컬 ‘마리 퀴리’는 두 번의 노벨상을 수상한 과학자인 마리 스클로도프스카 퀴리(김소향·리사·정인지, 이하 시즌합류·가나다 순)의 삶을 다루는 작품이다. 마리 퀴리와 폴란드 출신의 라듐시계공장 언다크 직공 안느(김히어라·이봄소리), 마리의 동료 과학자이자 남편 피에르(김지휘·임별), 언다크의 사장인 루벤(김찬호·양승리) 등이 저마다의 입장에서 라듐 발견의 유익성과 유해성 경계에서 갈등하고 공감하며 고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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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마리 퀴리' 김태형 연출(연합)
“여성 과학자, 이민자 등 마리가 잔뜩 가진 어쩔 수 없는 마이너리티한 요소를 어떻게 극복하고 이겨내며 삶을 꾸려갔는지를 역사적 사실과 공연의 드라마적 창작 영역으로 풀어갔습니다. 마리의 삶을 함께 들여다보고 고통을 같이 나누는 안느와의 연대를 통해 성장하고 발전하죠. 고뇌하고 잘못을 깨닫고 반성하고 또 다시 달리기를 해나가는 전형적인 성장 스토리이지만 (마리와 안느라는) 두 여주인공이 해냈을 때 관객들에게 힘을 줄 수 있는 이야기가 될 거라고 믿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최하는 ‘신진 스토리 작가 육성 프로그램’의 일환인 2017년 ‘글로컬 뮤지컬 라이브’ 시즌2 선정작이자 201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으로 초연된 후 두 번째 시즌을 맞았다.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에서 13일 열린 뮤지컬 ‘마리 퀴리’ 프레스콜에서는 새로 만들어진 ‘오프닝’(리사․김히어라․김지휘․양승리․장민수․주다온․조훈), ‘두드려’(리사․이봄소리․김지휘․양승리․이예지․장민수․주다온․조훈), ‘또 다른 이름’(김소향․임별), 그댄 내게 별‘(정인지․김히어라․김아영․장민수․주다온․조훈)이 하이라이트 시연됐다.

더불어 초연부터 가장 인상적이었던 ‘죽은 직공들을 위한 볼레로’(김히어라․김아영․장민수․주다온․조훈)와 가사 및 장면, 등장인물 등이 대폭 수정된 ‘잘 지내요’(김소향․임별․이봄소리․양승리․이예지․장민수․주다온․조훈), ‘죽음의 라인’ ‘어둠 속에서’(김소향․이봄소리․양승리․임별․김아영․장민수․주다온․조훈), ‘라듐 파라다이스’(이봄소리․양승리․이예지․장민수․주다온․조훈), ‘예측할 수 없고 리프라이즈’(정인지․김히어라․김지휘․조훈)도 선보였다.


마리와 안느의 인상적인 첫 만남 그리고 ‘예측할 수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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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마리 퀴리' 중 새로 추가된 파리행 기차에서의 마리 리사와 안느 김히어라의 첫 만남 장면(연합)

 

“당신은 우리 폴란드의 별이 될 거예요.”


새로 추가되거나 대폭 수정된 장면들 중 눈에 띄는 것은 ‘오프닝’과 ‘예측할 수 없는 리프라이즈’다. 새로운 ‘오프닝’으로 뮤지컬 ‘마리 퀴리’는 이야기의 출발점부터 달라졌다. 마리와 안느의 연대, 라듐의 유해성과 유익성의 갈림길에서의 갈등과 자기반성, 서로에게 ‘별’이 되는 과정 등을 좀 더 깊고 처절하게 하는 장면이다.

소르본 대학 입학을 위해 그리고 농장주의 세 번째 부인이 되는 것이 유일한 성공방법인 폴란드 여자로 살고 싶지 않아 파리행 기차에 오른 마리와 안느가 처음 만나는 장면이다. 자신의 이름을 찾는 것이 꿈인 두 여자가 원소 주기율표와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을 알려주는 길잡이 흙을 주고받으며 연대의 시작을 알린다. 

이는 초연부터 마리로 분한 김소향이 재연의 달라진 점으로 꼽은 “다른 캐릭터로 저(마리)에게 다가온 안나, 가장 친한 친구로서 함께 실패를 딛고 일어나는 여자의 이야기로서 높아진 완성도”와도 맥을 같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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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마리 퀴리' 마리 역의 리사(연합)
이에 대해 김태형 연출은 “공연은 시대가 요구하는 걸 담을 수밖에 없다”며 “여성들이 중심이 된 서사, 주인공 뿐 아니라 파트너까지 여성인 설정은 당연히 시대가 원하니까 반영되는 것들”이라고 설명했다.

“그렇지 않은 이야기를 너무 많이 봐왔고 당연히 필요하다는 생각들이 많아져서 그런 점(여성이 중심이 된 서사)에 집중하게 된 것 같아요. 마리와 안느, 두 사람의 서사와 연대, 목소리가 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처음부터 배우들, (천세은) 작가, (최종윤) 작곡가와 공유하며 만들었죠.”

‘예측할 수 없고 리프라이즈’는 유해성을 입증하기 위해 스스로 실험체가 된 피에르의 죽음, 그 사체의 부검을 결정하는 마리, 그런 마리를 응원하는 안느 등의 장면으로 천세은 작가가 가장 어려웠다고 꼽은 장면이기도 하다.

“마리가 피에르의 시신을 실험대에 올리는 신이 어려웠던 것 같아요. 역사적으로는 피에르가 실제로 마차사고로 사망했지만 그 사체를 부검하는 것은 만든 장면이거든요. 마리가 세상을 피해 숨을 수 있는 실험실에서 세상으로 나아가도록, 성장할 수 있는 장면이 되게끔 만들려고 노력했죠.”

꾸준히 근황, 의견, 응원 등을 주고받는 마리와 안느, 곡괭이질을 하거나 아버지의 임종도 지키지 못하고 연구에 매진하는 마리, 실패는 해도 포기는 할 수 없다는 마리의 의지와 열정, 연구에 몰두하느라 딸 이렌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마리를 향한 세상의 비난, 죽어간 직공들을 진단한 닥터 샤갈 마르텔(조훈)의 등장 등은 장면과 장면을 보다 촘촘하게 엮는다. 


카이스트 공학도 출신 김태형 연출의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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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마리 퀴리' 마리 역의김소향(왼쪽부터), 리사, 정인지(연합)

 

“다행스럽게도 저희가 체력적으로나 많은 에너지를 쓰지 않아도 되게끔 안무감독님이 안무를 만들어주셨어요. 연출님도 장면의 순서 안배 등 많이 힘들지 않게 할 수 있는 장치를 해주셨죠. 관객석에서는 타격감이 느껴지지만 배우들은 소모되지 않는 장면들을 마련해주셔서 마리라는 인물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시즌에 마리로 새로 합류한 정인지는 김태형 연출과 신선호 안무감독 덕분에 “힘들지만 행복하게 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소향 역시 “듣도 보도 못한 수학공식을 외어야 하는 것들이 쉽지 않았는데 김태형 연출님이 너무 많은 걸 알고 있어서 다 이해시켜주셨다”고 전했다.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이해할 수 있게 돼서 관객에게 더 이상 혼란스럽지 않게, 철저한 고증을 통해 정확한 내용을 전달할 수 있어서 뿌듯해요. 드라마와 음악이 잘 녹아들면 연기하는 배우에게는 그렇게 힘들지 않을 때가 있는데 ‘마리 퀴리’가 그래요. 드라마와 음악이 너무 아름답게 연결돼 있거든요.”

리사 역시 “힘들지 않다고 할 수는 없지만 체력보다 머리가 더 힘들다”며 “공식을 써가면서 하는 신이 있는데 천재 과학자다 보니 그 느낌을 이해하고 표현하지 않으면 더 가까워질 수 없어서 셋(김소향․리사․정인지) 다 고민을 많이 했다”고 토로했다.

안느 역의 김히어라는 “마리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과학용어를 얘기하는 게 멋있었다”며 “가장 멋있었던 점은 마리와 안느가 각자의 인생을 살기 위해 버티고 견디는 것이었다”고 말을 보탰다.

“여자여서 왜 안돼를 외치거나 부당한 것에 대해 어떻게 이겨내나가 아니라 더 재밌고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부딪히는 게 마리와 안느의 공통점인 것 같아요. 꿈꾸는 사람들의 얘기여서 매력적이죠. 이제는 ‘나는 이렇게 힘들어도 이겨낼거야’가 아니라 그 후의 이야기를 해야한다고 생각하는데 ‘마리 퀴리’가 그 첫 걸음 같아요.”


실패는 해도 포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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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마리 퀴리' 중 ‘죽은 직공들을 위한 볼레로’(연합)

 

“그를 과학자로서 성장시키는 데 있어서 ‘여자’라는 사실이 큰 여파를 미치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과학을 향한 집념을 방해하지는 못했을 거예요.”


정인지는 “마리의 대사 중 ‘내가 누구인지 보지 말고 내가 해온 것들을 봐달라’는 말이 있다”며 “마리가 독보적인 이유는 그녀이기 때문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업적이 되는 일들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여자였을 뿐”이라고 밝혔다.

“사람으로서 마리라는 캐릭터가 살아있어서 그녀를 둘러싼 걸림돌들이 입체적으로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마리와 안느 뿐 아니라 피에르, 루벤, 직공들까지 각자가 드라마를 가지고 있죠. 모든 인물들의 서사가 살아 있는 작품은 ‘마리 퀴리’ 뿐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김소향은 ‘마리 퀴리’에 대해 “내가 좋아하는 일에 대한 끝없는 집착과 고뇌, 열정을 보여드리는 작품”이라며 “예술이 관객을 변화시킨다고 굳게 믿고 있다”고 전했다.

“성별을 떠나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관객들에게 희망을, 일에 대한 열정을 이야기하고 있죠. 이를 통해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용기, 에너지를 얘기한다고 생각해요.”

리사는 “마리와 안느, 직공들 등은 외모가 아닌 내면의 것이 아름다워서 빠질 수 있게 하는 캐릭터 같다”며 “연습을 하면서 붙든 말은 루이스의 ‘실패는 해도 포기 하지 않는다’였다”고 털어놓았다.

“지금 시대가 너무 힘들지만 실패는 해도 포기 하지 않으면 길이 있을 거라고 믿어요. 마리가 자신만의 방법으로 길을 찾아 나가는 모습이 지금의 관객들에게 위로가 되면 좋겠어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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