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위치 : > 비바100 > Leisure(여가) > 더불어 문화

[B그라운드] ‘언택트’로 연대한 8개국 아티스트들의 ‘넥스트 휴먼’…‘또 다른 가족을 찾아서’

입력 2020-05-23 14:00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인스타그램
  • 밴드
  • 프린트
PostHuman001
국립현대미술관의 2020 아시아 기획전 ‘또 다른 가족을 찾아서’ 중 이강승 작가의 ‘미래의 심상들’(사진=허미선 기자)

 

“다양한 해석을 고민하던 중 사회적 연대, 그 의미를 함축하기 위해 사용한 단어가 ‘가족’입니다. 끊임없이 주체가 바뀌는 상황에서 소수자는 언제든 내가 될 수 있고 각각의 연대를 만드는 것이 또 다른 가족이 아닌가 생각했죠.”

국립현대미술관의 2020 아시아 기획전 ‘또 다른 가족을 찾아서’(8월 23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5, 6 전시실)가 탐구한 ‘가족’에 대해 박주원 학예연구사는 “사회적 연대”라고 규정했다. 

 

“작년부터 준비한 작업으로 참여작가들에게 가족의 의미를 묻던 중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 이하 코로나19) 사태가 벌어졌어요. 빈 전시장에 화상을 통해 현지리포트처럼 경험을 공유했죠. 자동차가 없는 이들은 음식을 구할 수 없는 마닐라의 현실, 사람들이 쫓아오면서 인종차별적 발언에 노출된 LA 이강승 작가의 경험 등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면서 연대란 무엇이며, 또 다른 가족은 무엇인가를 탐구하고 토론하게 됐습니다.”  

 

PostHuman003
국립현대미술관의 2020 아시아 기획전 ‘또 다른 가족을 찾아서’ 전시장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그렇게 한국을 비롯한 인도네시아, 대만, 일본, 필리핀, 홍콩, 말레이시아, 중국 등 아시아 8개국 15개팀이 ‘언택트’ 원격화상 회의로 자신의 정체성에서 시작한 고민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전시를 준비했다.



◇사회적 연대를 기반으로 한 ‘넥스트 휴먼’ 시대의 ‘가족’

전시는 혈연으로 엮인 전통적인 의미의 ‘가족’이 아닌, 초연결(Hyperconnectivity)·무경계(無經界)·무관계(Irrelevance) 시대를 살아갈 ‘넥스트 휴먼’에 대한 탐구와 토론의 결과다.

각기 다른 정체성을 가진 개인이 보이지 않는 사회적 억압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다른 정체성을 가진 개인이 어떻게 연대해 ‘가족’이 되는지를 아우른다.

‘또 다른 가족을 찾아서’는 2018년 국립현대미술관이 론칭한 ‘아시아 기획전’의 두 번째 전시로 박주원 학예연구사의 전언처럼 “전시 준비 동안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면서 생각하게 된 보이지 않는 힘과 그 다음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했다.

이어 박 학예연구사는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사회 구조와 제도 안에서 개인을 제한하고 집단적 사고를 하게 되는 상황을 더 노골적으로 맞닥뜨리게 됐다”며 “공공의 정의를 위해서 개인의 가치를 얼만큼 제한할 수 있는지가 더 현실로 다가왔다”고 설명했다.

“문제가 생기면 비판을 잘 할 수 있지만 해결책을 마련하기는 어려워요. 이는 현재 뿐 아니라 과거 역사부터 반복해온 일이죠. 해결점을 찾기란 불가능에 가깝지만 지속적인 문제의식을 제기하고 논의할 수 이는 장을 마련하고자 기획된 전시입니다.”

PostHuman002
국립현대미술관의 2020 아시아 기획전 ‘또 다른 가족을 찾아서’ 중 정유경 작가의 ‘이등병의 편지’(사진=허미선 기자)

 

그리곤 “혈연으로 엮인 가족이라는 존재는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이중성을 지니고 있다. ‘가족만한 사람이 없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무한 지원과 사랑, 연대를 주는가 하면 가족이기 때문에 벗어날 수 없는 굴레들도 있다”고 부연했다.

“가족과 나는 개인과 사회로 이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가족의 모양은 어떠한가, 사회 안에서 개인의 모양이 다름에도 인정되지 않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개인의 목소리를 내서 문제제기를 하고 합니다.”

전시는 개인의 내적 문제에서 사회, 국가, 세계 등 외부문제로 확장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전시장과 외부 공간은 경계가 사라졌고 유동적으로 구분되고 다시 연결되며 존중과 연대의 장으로 변모한다. 유동적으로 구분이 되기도, 연결 통로가 되기도 하는 벽은 블라인드로 유동성을 확보했으며 가구 역시 조립식으로 변형·이용이 용이하다.


◇구분되고 다시 연결되는 존중과 연대
 

PostHuman
국립현대미술관의 2020 아시아 기획전 ‘또 다른 가족을 찾아서’ 중 이강승 작가의 ‘미래의 심상들’(사진=허미선 기자)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이강승 작가의 ‘미래의 심상들’은 ‘퀴어’라는 안어가 가진 의미를 고민하게 하는 라운지 형태의 서점이다. 

 

‘미래의 심상들’은 국내 소수자 커뮤니티의 과거, 현재 미래를 설치, 상영회, 드로잉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이민자, 유색인종, 사회의 소외그룹 등 ‘성 소수자’의 ‘성’이 아닌 ‘소수자’에 방점을 찍어 그 의미를 확산시킨 ‘퀴어’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담고 있다.

탄디아 페르마디(Tandia Premadi)는 사회에서 강요당한 성역할과 자아의 충돌을 담은 자전적 사진 시리즈를, 듀킴(Dew Kim)은 샤머니즘 시각으로 풀어낸 퀴어, 젠더, 트랜스 휴먼, 포스트 휴먼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담은 K팝 방식의 뮤직비디오를 선사한다. 정유경은 재일교포로서 느끼는 감성을 회화, 설치, 영상으로 풀어낸 신작 ‘이등병의 편지’를 통해 고찰한다.  

 

PostHuman006
국립현대미술관의 2020 아시아 기획전 ‘또 다른 가족을 찾아서’ 중 대만 니하오의 ‘구조연구I’(사진=허미선 기자)

 

대만의 니하오는 나무뿌리처럼 뒤엉킨 리코더 조각을 통해 정규 교육과정 속 잔재처럼 자리매김하는 서구 제국주의 맥락을, 필리핀 문화예술가 그룹 레스박스와 홍콩 사우스 호 시우남은 국가로부터 묵인된 폭력에 의한 비극을 기록한다.

와타나베 아츠시는 사회로부터 지워졌던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로 3년 동안 살면서 겪은 경험가 기억을 콘크리트를 허무는 퍼포먼스로 기록한 영상을 선보인다.

필리핀의 안무가이자 작가 에이사 족슨(Eisa Jocson)은 해외에서 노동자로 살아가는 필리핀 이주 여성들의 이야기를 ‘노래방’ 형식으로 선보이는 설치작품 ‘슈퍼우먼 KTV’를 선보인다. 최근 노래방이 코로나19의 산발적 추가감염 거점으로 부각되면서 마이크를 없애고 마스크를 착용한 채 부르도록 했다. 

 

PostHuman004
국립현대미술관의 2020 아시아 기획전 ‘또 다른 가족을 찾아서’ 중 홍콩 아이작 층 와이의 ‘미래를 향한 하나의 소리’(사진=허미선 기자)

 

홍콩의 아이작 층 와이가 2016년 발표한 ‘미래를 향한 하나의 소리’는 코로나19 사태와 ‘사회적 거리두기’를 예언한 듯한 작품이다. 중국의 우한, 한국의 광주, 홍콩에 모인 240여명의 사람들은 일정 간격을 유지한 채 각자의 미래를 생각하는 영상 설치물이다.

이동 공간인 복도와 외부 전시마당은 필리핀 작가그룹 98B 콜라보레이터리, 허브 메이크 랩, 칸티나가 협업한 ‘투로투로’(Turo-Turo) 프로젝트가 마련됐다. 

 

‘투로투로’에 대해 박주원 학예연구사는 “가리키다의 ‘포인트 포인트’, 가르치다‘의 ’티치 티치‘의 이중적 의미를 가진다”며 “포장마차를 열어 음식을 직접 만들어 서빙하는 게 목표였으나 코로나19로 인해 각국 작가들이 보내온 스낵류로 대체했다”고 귀띔했다. 

 

page
국립현대미술관의 2020 아시아 기획전 ‘또 다른 가족을 찾아서’ 중 ‘투로투로’ 프로젝트(왼쪽)와 ‘투자로 가는 길’(사진=허미선 기자)

 

‘투로투로’ 프로젝트 공간에서는 작가들이 던지는 질문에 대한 답을 ‘포스트잇’에 써 붙이며 원하는 스낵을 맛볼 수 있다. 이 복도 공간에는 땅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인도네시아의 자티왕이 아트팩토리와 한국작가 그룹 버드나무 가게가 협업한 ‘투자로 가는 길’도 만날 수 있다. 분양사무소, 속칭 ‘떳다방’을 통해 자본주의 시점에서 바라본 땅에 대해 문제제기 한다.

이곳에서는 투자방식으로 쌈채소 모종을 살 수 있고 이는 외부 전시마당에 심겨진다. 모종 투자자들은 7, 8월 외부 전시마당에서 열릴 바비큐 파티에 초대된다 . 

 

PostHuman014
국립현대미술관의 2020 아시아 기획전 ‘또 다른 가족을 찾아서’ 중 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소셜 클럽(FDSC)의 ‘FDSC뉴스’(사진=허미선 기자)

 

말레이시아 사바 지역의 작은 마을공동체 주민들과 협업한 이 이란은 정통공예를 기반으로 한 대형 직조 작업으로 역사적 기억과 모순을 반영했다. 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소셜 클럽(FDSC)은 ‘FDSC뉴스’를 통해 한국을 기반으로 활동 중인 여성 디자이너들과 그들의 활동을 소개한다.

복도를 지나 6전시실에 들어서면 중국의 왕 투오의 영상작업 ‘강박’이 펼쳐진다. ‘강박’은 전시의 결론과는 작업으로 최면에 걸린 건축가의 시점으로 베이징 중심에 자리한 1950년대 건물의 역사를 더듬는다. 고요하고 아름다운 영상은 단일화된 의식체계가 영원하다는 믿음이 얼마나 허무한가를 깨우친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 인스타그램
  • 프린트

기획시리즈

  • 많이본뉴스
  • 최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