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광주’(사진제공=라이브, 극공작소 마방진) |
민주화를 향한 열망, 계엄군의 무자비한 폭력과 그에 대한 분노로 들끓는 광주시민들, 저마다의 위치에서 위태롭게 흔들리고 갈등하는 이들, 떠나간 이들과 남은 자들….
2011년 유네스크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5.18민주화운동으로 들끓었던 1980년 5월의 광주는 숭고한 민주화 의지로 넘쳤고 엄중했으며 무자비했다.
“5.18민주화운동 40년이 되면서 ‘노래하고 춤추고 사랑하리’로 광주의 당시 상황을 본질로 보여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시대를 다룬 뮤지컬 ‘광주’(10월 9~11월 8일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 12월 11~13일 광주 빛고을 시민문화관)에 대해 고선웅 작·연출은 “노래하고 춤추고 사랑하는 것”으로 차별화했다.
이 차별점은 서울 종로구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에서 9월 29일 열린 뮤지컬 ‘광주’ 시츠프로브에서 시연한 오프닝 넘버 ‘눈을 더, 그날이 올 때까지’를 시작으로 ‘눈엔 눈’ ‘아니 아니야’ ‘마음만은 알아주세요’ ‘맹세’ ‘왜 나를 흔드는 거냐’ ‘도무지 알 수 없는 일’ 그리고 피날레 ‘님을 위한 행진곡’을 통해서도 드러났다.
뮤지컬 ‘광주’(사진제공=라이브, 극공작소 마방진) |
고선웅 작·연출과 오페라 ‘1945‘로 호흡을 맞춘 바 있는 최우정 작곡가는 “저 개인적으로는 근현대사에 관심이 많아서 장르와 상관없이 어떤 공연이든 그 문제를 음악에서 다루고 싶었다”며 “근현대사를 음악으로 정리하고 싶은 개인적 소망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슬픈 걸 꼭 슬프게만 표현하지 않도록 했어요. 트로트만 봐도 내용은 엄청 슬픈데 흥겹잖아요. 더불어 공연에서는 몸을 움직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차원에서 너무 정서를 직접적으로 담지 않도록 노력했습니다. 근현대사의 음악만 들어봐도 그때의 상처들, 온갖 사건들이 야기한 스토리들이 다 녹아 있거든요. 그런 걸 뮤지컬 ‘광주’ 음악에도 가지고 왔어요.”
뮤지컬 ‘광주’는 홍콩의 ‘검은 대행진’ 집회에서도 울려 퍼지며 한국을 넘어 아시아 민주화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한 ‘님을 위한 행진곡’을 모티프로 작품이다.
최우정 작곡가는 “곡 자체가 이미 많은 의미를 담고 있고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어떻게 쪼개 변주하는지를 고민했다”며 “드러내거나 무의식적으로 사람들 마음 속에 쌓아가는 부분들이 있다. 그에 방해되지 않는 노래들로 ‘님을 위한 행진곡’을 돋보이게 했다”고 털어놓았다.
시츠프로브 현장에는 ‘님을 위한 행진곡’의 김종률 작곡가도 함께 했다. 그는 뮤지컬 ‘광주’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님을 위한 행진곡’에 대해 “40여년 전에도, 지금도 여전히 안타깝다”고 소감을 전했다.
“우리의 첫 번째 한류로서 ‘님을 위한 행진곡’이 아시아 전역에서 불리고 있습니다. 이 뮤지컬이 ‘님을 위한 행진곡’이 세계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믿어요. ‘님을 위한 행진곡’이 뮤지컬 ‘광주’를 통해 한국의 민주화 열망을 넘어 아시아, 전세계에서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모든 분들을 위한 노래로 자리매김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뮤지컬 ‘광주’는 미국 중앙정보부 CIA 문건이 공개되면서 30년만에 존재 사실이 드러난 ‘편의대’를 다룬 작품으로 시민으로 위장한 편의대원과 저마다의 방식으로 독재에 맞서는 광주 시민들의 이야기를 교차시키며 민주화의 가치를 일깨운다.
고선웅 작·연출, 최우정 작곡가를 비롯해 ‘팬레터’ ‘귀환’ ‘그날들’ 등의 신선호 안무가, ‘프랑켄슈타인’ ‘벤허’ 등의 이성준 음악감독이 함께 한다. 혼란을 일으키려 시민들 틈에 잠입한 5050부대 편의대원으로 이념의 변화를 겪는 박한수는 민우혁·서은광·테이(이하 가나다 순), 시민군을 조직하고 이끄는 야학교사 윤이건은 김찬호·민영기, 시민군들이 모여들었던 황사음악사 주인 정화인은 장은아·정인지, 투철한 신념의 소유자 문수경은 이봄소리·정유지·최지혜가 번갈아 연기한다.
더불어 천주교 오활사제 역에는 서현철·이동준, 5050부대 대장 허인구는 박시원·이정열, 열혈시민군 이기백은 김대곤·주민진, 떠돌이 거리천사는 김국희·김아영 등이 캐스팅됐다.
고선웅 작·연출은 “사실을 근거로 허구화한 작품이다. 윤상원 열사는 모티프이긴 하지만 완벽한 구현은 아니다. 순이 캐릭터도 좀 다르다”고 설명했다.
고선웅 작·연출(사진=브릿지경제 DB) |
“진실을 향해갔던 무대 위의 허구적인 표현들을 통해 광주라는 상황 속에서 사실과 허구를 넘나들고 있습니다. 사실 검증이 아닌 이야기를 통해 유추하고 당시의 상황을 표현하고 있죠.”
이렇게 전한 고선웅 작·연출은 5.18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데 대해 “부담도 많이 되고 심장도 벌렁거리는, 겁나는 일”이라며 “저의 마음이, 같이 하는 이들의 태도가 건강하기 때문에 노래하고 춤추고 사랑해도 관객들이 사랑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털어놓았다.
“아픔을 겪고 계시거나 겪었던 분들도 왜 이런 시도와 생각들로 표현하려고 했는지 충분히 알아주실 거라고 생각한다”고 전한 고선웅 작·연출은 지난 5월 ‘브릿지경제’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푸르른 날에’ ‘들소의 달’ 등에서 제가 다뤘던 얘기들과는 다르다. 가해자 쪽에 있었던 군인이 목도한 광주 이야기”라고 귀띔한 바 있다.
“그때는 사랑 속에서 맺어지지 못한 데 마음이 많이 갔다면 이번 작업은 무조건 딛고 일어서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자꾸 넘어져 있고 쓰러져 아파하기보다 딛고 서자는 걸 노래하고 춤추고 사랑하는 모습으로 보여드리면 좋겠다 싶었죠. 40주년을 맞아 그걸 저희가 해보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전한 고선웅 작·연출은 “창작진, 배우, 제작진까지 누구 하나 예술적 성취 보다는 다 같이 모여 ‘광주’를 만드는 작업이었다”며 “그렇게 하면 ‘푸르른 날에’ 보다 새로운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싶어 꾸준히 했던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정말 가까이 있는 이야기면 좋겠습니다. 살짝 두려워하거나 부담이 되는 분들이라도 과감하게 오셔서 보시면 광주에 디디고 섰던 이들의 이야기를 뮤지컬적 미학 속에서 감상하실 수 있을 거예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