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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그라운드] 슈만의 재발견, 피아니스트 백건우 “어려움 속에서도 살아있고 존재해야할 음악!”

입력 2020-10-06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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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백건우
6일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리사이틀 ‘백건우와 슈만’ 온라인 기자간담회를 진행했다(사진제공=빈체로)

 

“듣는 이들의 심리적 흐름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 곡을 들을 수 있게 청중들의 마음을 인도하는 것이 제일 큰 숙제죠.”

벌써 50년 넘게 피아니스트로 살아온 백건우는 연주 프로그램 구성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청중들의 심리적 흐름”을 꼽았다. 6일 온라인으로 진행된 리사이틀 ‘백건우와 슈만’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9월 출시한) 앨범에 녹음된 곡들을 다 치지 못하는 게 유감”이라는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원래 프로그램은 현재의 것보다 긴 러닝타임에 2번의 인터미션이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 이하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축소된 프로그램에 대해 아쉬움을 전한 백건우는 “요즘은 유럽의 음악회도 한 시간 이내로 줄이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메시아, 리스트, 슈베르트, 스크라빈과 라흐마니노프, 베토벤 그리고 지난해 쇼팽까지를 연주해 앨범으로, 연주회로 선보였던 백건우의 2020년 프로젝는 로베르트 슈만(Robert Alexander Schumann)이다.

그는 지난달 앨범 앨범 발매에 이어 9일 롯데콘서트홀을 시작으로 ‘백건우와 슈만’ 리사이틀에 나선다. ‘백건우와 슈만’은 ‘아베크 변주곡, Op. 1’(Abegg Variations, Op. 1)으로 시작해 ‘세 개의 환상작품집, Op. 111’(Drei Fantasiestucke, Op. 111), ‘아라베스크, Op. 18’(Arabeske, Op.18), ‘새벽의 노래, Op. 133’(Gesange der Fruhe, Op. 133), ‘다채로운 작품집 중 다섯 개의 소품, Op. 99’(Funf Albumblatter from Bunte Blatter, Op.99), ‘어린이의 정경, Op. 15’(Kinderszenen, Op. 15) 그리고 ‘유령 변주곡, WoO 24’(Thema mit Variationen, WoO 24 Ghost Variations)으로 마무리된다.  

 

백건우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9일부터 ‘백건우와 슈만’ 리사이틀을 진행한다(사진제공=빈체로)

연도 순도, 작품번호 순도 아닌 이 프로그램에 대해 백건우는 “작곡 연도는 중요한 게 아니다”라고 밝혔다.

“아베크 변주곡은 OP 원이에요. 자신이 작곡가임을 세상에 알린 곡이고 (연인) 클라라가 초연했죠. ‘유령 변주곡’은 마지막에 완성한 곡이에요. (두 곡 외에는) 프로그램이 초기에서 후기를 오가죠. 제가 피아노를 치기 시작할 때 듣는 사람이 마음의 준비가 되게끔 곡을 배열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냥 훌륭한 곡이니 연주하면 사람들이 즐길 것이다’가 아니라 이 곡을 체험하러 온 사람들을 최대한 곡으로 이끌어야 하죠.”


◇아이 같은 순수함과 모든 아픔을 대변하는 슈만의 재발견

“슈만의 피아노곡은 피아니스트한테는 절대적인 레퍼토리예요. 슈만은 피아노를 가장 아름답게 표현한 작곡가죠. 그가 활동하던 때는 피아노가 가장 아름답게 소리를 내던 시대이기도 해요. 하지만 뭔가 슈만이라는 작곡가가 불편한 것도 사실입니다.”

왜 지금 슈만인가라는 질문에 백건우는 “젊어서는 그의 많은 곡을 연주했다. 어느 순간 불편해졌지만 그 이유를 잘 몰랐는데 이번에 보니 그만큼 슈만의 세계가 복잡한 게 사실 같다”고 토로했다.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 한 고비를 넘겨야 하지 않았나 싶어요. 때가 되면 꼭 그 음악을 다뤄야지 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참 이상하게도 슈만의 심정을 대신하고 있다는 걸 느꼈어요. 자연스럽게 그의 곡들을 보기 시작했고 특별히 표현하고 싶은 세계가 그 안에 있었죠.”

이어 “이제 대변인이 된 거나 마찬가지”라고 덧붙인 백건우는 처음 연주하던 때와 지금 슈만의 다른 점에 대해 털어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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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백건우(사진제공=빈체로)

“피아노 연주자에게는 슈만 뿐 아니라 베토벤도, 쇼팽도, 브람스도 머스트 레퍼토리죠. 젊은 음악인에게는 꼭 하고 싶은 곡들이기도 해요. 슈만하면 ‘카니발’(Carnaval Op.9)부터 ‘판타지’(Fantasie, op.17), ‘크라이슬레리아나’(Kreisleriana) 등 유명곡들을 다루게 되죠. (젊어서 다룬) 그곡들도 물론 로맨틱하고 아름다워요. 하지만 지금은 슈만이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어떤 심정으로 스스로 짐을 싸서 정신병원으로 걸어 들어 갔는지, 자살을 기도했는지를 생각해요. 그런 슈만의 모습이 이제는 이해가 돼요. 그때는 사실 상상하기도 힘들었거든요.”

그리곤 “사랑하는 클라라나 아이들한테 위협이 되지 않게 혼자 걸어 나오는 슈만을 생각하게 된다”며 “사람들은 슈만하면 정신병자를 떠올리지만 그의 로만티즘을 알면 충분히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극에서 극을 오갔으니 그만큼 힘들었을 거예요. 게다가 마지막 작품은 그 사람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면 쓸 수 없는 곡이죠.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다면 그렇게) 음을 콘트롤할 수가 없거든요. 한음 한음이 살아 있고 의미를 담고 있어요. 정말 저도 이번 기회로 슈만을 재발견한 셈이죠.”


◇플로레스탄과 오이제비우스, 극과 극의 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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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백건우(사진제공=빈체로)

 

“이번엔 초기와 마지막 해에 초점을 맞췄어요. 슈만은 죽을 때까지 어린이 같은 순수함을 가지고 있었어요. 동시에 인생의 쓰라림을 표현하기도 했죠. 극과 극의 양면을 그리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슈만에 대해 “어린이 같은 신선함과 순수함 그리고 반대로 모든 이들의 아픔을 대변하는 음악가”라고 표현한 백건우는 9월 슈만의 곡을 연주해 발매한 두장짜리 앨범에 각각 ‘오이제비우스’ ‘플로레스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는 슈만 스스로가 자신에게 붙인 이름이기도 하다.

“슈만의 음악을 듣고 다른 사람이 지은 게 아니라 자신 안에 있는 두면에 본인이 지어준 이름이에요. 실제로 악보에도 적어 넣었죠. 나중에는 천국과 지옥을 오가면서 명확하지 않았고 어떤 때는 그 변모하는 데서 힘들어 했던 것도 같아요.” 

 

백건우
피아니스트 백건우(사진제공=빈체로)
이어 “누구나 양면을 가지고 있는데 특히 슈만에게는 그것(양면성)이 창작 작업을 하는 데 자극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라며 슈만 삶에 대해 “참 복잡한 인생”이라고 표현했다.

“아버지는 음악하는 걸 이해하셨지만 어린 나이에 잃었어요. 어머니는 음악하는 걸 반대했죠. 그래서 (어머니에게 보내는) 말이나 편지로는 법을 공부한다고 하면서 피아노 앞에서 시간을 더 많이 보냈죠. 10대라는 어린 나이에 알게 된 클라라와의 사랑도 얼마나 힘들게 이뤄졌어요. 특이한 사랑이고 사회에서는 받아줄 수 없는 사랑이었죠. 클라라 아버지와의 관계도 단순치 않았어요. 처음엔 슈만을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만들겠다고 했지만 딸과의 관계를 알고는 적이 되죠. 피아니스트가 되려고 노력했지만 사고로 할 수 없게 돼버리기도 했어요. 그런데 그 일이 작곡가가 된 계기이기도 해요. 한때는 문학가가 되려고 했지만 음악가가 됐고…처음부터 끝까지 순조롭게 이뤄진 게 하나도 없죠.”

그리곤 “둘도 없는 음악성을 가지고 태어나 표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가장 힘들었을 것”이라며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한없이 곡이 쏟아져 나왔다. 그 고통 속에서 어떻게 그 훌륭한 곡들을 썼는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백건우는 메시아, 리스트, 슈베르트, 스크라빈과 라흐마니노프, 베토벤 그리고 지난해 쇼팽까지 연주하는 곡의 작곡가에 대해 깊이 연구하곤 한다. 이번 슈만 역시 그랬다. 백건우는 “항상 답은 악보에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 시대와 인물들을 공부하면서 어떻게 곡들이 태어났으며 어떤 심정으로 썼을까를 연구해요. 연주하는 입장에서는 악보에 있는 음이 설명돼야하는데 그런 연구나 접근이 도움이 많이 되죠. 항상 답은 악보에 있어요. 딴 데서는 찾을 수가 없죠.”


◇코로나19로 고통 받는 시기에도 살아있고 존재해야할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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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백건우(사진제공=빈체로)

 

“파리에서도 자가격리는 아니지만 거의 비슷했어요. 밖에 나가질 못했죠. 파리지앵들은 전과 다름없이 생활하고 있지만요. 바스티유, 오페라 극장 근처나 생제르맹 등의 젊은이들은 전혀 신경을 안쓰는 것 같아요. 하지만 코로나19는 우리 혼자만의 문제가 아닌 모두의 문제죠. 상대방을 생각하고 배려하는 게 옳은 태도라고 봐요.”

입국 전 파리 생활에 대해 이렇게 전한 백건우는 앨범 작업을 위해 그리고 9일부터 시작될 ‘백건우와 슈만’ 리사이틀을 위해 지난 5월과 9월 22일 입국해 두 차례나 자가격리를 경험했다.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연습한다는 게 행복했다. 오히려 조용히 집중적으로 연습할 수 있어서 좋았다”며 “또 할 수 있다”고 웃는 백건우는 코로나19로 깨달은 음악에 대한 절실함을 털어놓기도 했다.

“오히려 더 절실해졌어요. 음악이 꼭 필요한 것임을 강하게 느끼게 됐죠. (코로나19) 이전에는 직업적으로 인식했다면 이제는 실연주가 정말 필요함을 느껴요. 살면서 살아 있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이 항상 있는 건 아니잖아요. 어떤 진실된 순간을 만날 때만 확인할 수 있는데 음악이 그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이어 “코로나19 시대라고 해서 별로 다를 게 없다”며 “음악은 단순히 아름다운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깊이 잠재돼 있는 힘, 아름다움, 조화 등을 끄집어낸다”고 덧붙였다.

“그로 인해 우리의 인생을 좀 더 명확하게, 옳게, 아름답게 채울 수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해요. 그렇게 음악은 꼭 살아 있어야 하고 존재해야 하죠.”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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