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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그라운드] 혜경궁 홍씨, 나혜석 그리고 술 취해 구토하는 지금 여자까지…수원시립미술관 ‘내 나니 여자라,’

입력 2020-11-18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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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니 여자라,
수원시립미술관 개관 5주년 기념전 ‘내 나니 여자라,’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나는 여자이기보다 사람이외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 코로나19) 장기화로 여닫기를 반복하던 수원시립미술관의 개관 5주년 기념전 ‘내 나니 여자라,’(2021년 1월 10일까지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의 외침은 “여자 보다 사람”이다.

사도세자의 정비이자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을 매개로 오롯이 나로 서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이자 작가, 사회운동가 나혜석 그리고 윤석남, 강애란, 이은새, 임민욱, 이미래, 슬기와 민 등 지금을 살고 있는 12인(팀)의 작가들이 48점의 회화, 설치, 미디어 등으로 “여자 보다 사람”임을 외친다.  

 

내 나니 여자라
수원시립미술관 개관 5주년 기념전 ‘내 나니 여자라,’ 중 윤석남 작가의 ‘우리는 모계가족’(사진=허미선 기자)

전시 제목 ‘내 나니 여자라,’는 흑룡을 태몽으로 잉태되면서 당연히 아들일 거라는 집안 어른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딸로 태어난 회한을 적은 ‘한중록’의 한 대목에서 따왔다.

 

주체가 아닌 주변으로 인식된 여성을 내포한 제목 끝의 문장부호(,)는 사회에 의해 고정된 여성의 정체성을 돌아보고 가치 체계의 전복을 꾀하고자 하는 전시의 취지를 담은 장치다.




◇고정관념의 전복, 여전한 현실…‘내 나니 여자라,’

전시는 ‘내 나니 여자라,’ ‘피를 울어 이리 기록하나,’ ‘나 아니면 또 누가,’ 3개 섹션으로 구성됐다. 

 

‘내 나니 여자라,’에서는 역사, 권력사회 속 그림자 혹은 약자로 인식되어 온 여성들의 존재를 재조명한다. 윤석남의 1998년 목조각 ‘빛의 파종-999’ ‘우리는 모계가족’(2018), 장혜홍의 ‘黑-Black Project’, 오화진 ‘음의 군대’ ‘대(代)에 답하다’, 이은새의 ‘밤의 괴물들’이 전시된다.

윤석남의 ‘빛의 파종-999’ ‘우리는 모계가족’은 어머니를 위시한 여성들의 가시적 이미지, 고정 관념의 전복을 담은 작품이다. ‘빛의 파종-999’에서 ‘999’는 불교의 만수(滿數)인 1000에서 하나가 빠진 숫자로 하나 하나가 모여야 완전한 존재가 된다는 의미와 더불어 마지막 하나를 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담고 있다.

윤석남 작가는 17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곧 1000에 다다를 것 같은데 여전히 채워지기 어려운 수가 999”라며 “얼마나 걸릴지 가늠이 안되는 여성이 처한 현실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네 나니 여자라
수원시립미술관 개관 5주년 기념전 ‘내 나니 여자라,’ 중 윤석남 작가의 ‘빛의 파종-999’(앞)와 장혜홍 작가의 ‘黑-Black Project’(사진=허미선 기자)

 

“여성들이 입고 서 있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옷은 앞으로의 희망 표현인 동시에 한국인의 색이기도 하죠. ‘우리는 모계가족’은 제 할머니, 어머니, 저, 딸 그리고 딸이 키우는 암캐까지를 담았어요. 개인의 기억과 경험으로 예부터 이어오고 있는 모계 기능을 표현한 동시에 한국의 현실이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걸 나타내죠.”

 

장혜홍 작가의 ‘黑-Black Project’는 명주에 검은 색으로 수천번의 붓질을 한 285개의 패널로 구성된다. 1998년부터 10년 이상 일기처럼 진행한 작업으로 일상의 우연과 상황을 반영한다. 이는 마치 혜경궁 홍씨의 태몽이었다는 흑룡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오화진 작가는 ‘음의 군대’와 ‘대(代)에 답하다’라는 5개의 회화와 하나의 설치작품을 선보인다. ‘음의 군대’는 ‘말하지 말고 들어라’라고 여성에게 강요되는 가치인 수용성이 되레 여성의 힘으로 전환되는 작품이다. ‘음’은 음양의 음, 소리의 음, 감탄사의 음 등을 내포한 것으로 여성 존재 자체를 상징한다.  

 

내 나니 여자라
수원시립미술관 개관 5주년 기념전 ‘내 나니 여자라,’ 중 이은새 작가의 연작 ‘밤의 괴물들’(사진=허미선 기자)

 

이은새 작가는 2018년부터 술 취해 토악질을 하거나 철봉에 매달려 있거나 소리를 지르며 밤길을 활보하기도 하는 지금의 젊은 여성들을 담은 연작과 나혜석의 삽화를 변주한 ‘부글부글 가정생활’까지 8점의 ‘밤의 괴물들’을 선보인다. ‘밤의 괴물들’ 연작은 술 취한 여성들을 성폭력의 대상, 약자로 인식하는 시선에 대한 반격으로 신나 있거나 화난 여성들을 빠른 필체로 그려냈다.

이은새 작가는 나혜석의 삽화를 변주한 ‘밤의 괴물들-부글부글 가정생활’에 대해 “100년 전 삽화지만 현재까지 유효한 이미지”라며 “저도 이와 비슷한 구도의 사건을 목격하기도 했다. 과거의 회화를 현재의 제가 어떻게 그려낼 수 있을까 고민한 결과물”이라고 설명했다.


◇기록에서 배제된, 그럼으로 더 치열해진! ‘피를 울어 이리 기록하나,’

내 나니 여자라
수원시립미술관 개관 5주년 기념전 ‘내 나니 여자라,’ 중 나혜석의 삽화들(사진=허미선 기자)

 

남성들이 주류를 이룬 역사적 기록에서 배제된, 그럼으로 보다 치열해진 여성적 표출에 대한 ‘피를 울어 이리 기록하나,’에서는 앞선 ‘내 나니 여자라서,’에서 이은새 작가가 변주한 나혜석의 작품 원본을 비롯한 삽화들과 디자인 듀오 슬기와 민의 ‘1961-2020’, 강애란의 ‘현경 왕후의 빛나는 날’, 이슬기의 ‘이불 프로젝트’, 조혜진의 ‘한겹’을 만날 수 있다.

디자인 듀오 슬기와 민의 ‘1961-2020’은 ‘한중록’ 원문에서 추출한 6개 문장을 민중서관, 서문당, 범우사 등에서 출판된 ‘한중록’ 13개 판본에서 추려 6페이지로 이어 붙인 작품이다. 동일한 문장을 13개 판본이 얼마나 다른 언어로 전달하는지를 살피면서 전혀 다른 해석이 쌓여 공공의 기억이 되는 과정을 이미지화했다. 

 

내 나니 여자라
수원시립미술관 개관 5주년 기념전 ‘내 나니 여자라,’ 중 강애란 작가의 ‘현경 왕후의 빛나는 날’(앞)과 디자인 듀오 슬기와 민의 ‘1961-2020’(사진=허미선 기자)

 

스스로 다양한 색으로 빛나는 책을 오브제로 한 강애란 작가의 ‘현경 왕후의 빛나는 날’은 책을 읽고 생각하는 경험을 공감각적으로 확장한 설치작과 혜경궁 홍씨의 생애를 책, 서울부터 수원까지 행차하는 행렬 등을 활용해 움직이고 음악을 가미한 인터랙티브 작품이다.

프랑스에 거주하면서 작품 활동 중인 이슬기 작가는 통영의 누비 장인과 협업한 ‘이불 프로젝트 U’, 조혜진 작가는 버려진 자개장과 부모님 휴대폰에서 찾은 격언, 화려한 꽃문양 등을 대비시킨 ‘한겹’을 출품했다.

사람이 거주하는 장소와 그곳에서 나오는 것들로 주로 작업해온 조혜진 작가는 버려진 자개장의 상징성을 시대 변해로 가치를 잃어버리면서 버려진 것들에 빗댄다. 작가는 예전엔 부의 상징이었지만 버려진 자개장, 그 뒷면에 새로 그리고 수놓은 그림과 글자를 대비시키며 버려진 가치들을 재조명한다.


◇공감과 연대의 가능성을 가늠하다! ‘나 아니면 또 누가,’

내 나니 여자라
수원시립미술관 개관 5주년 기념전 ‘내 나니 여자라,’ 중 임민욱 작가의 ‘봉긋한 시간’과 ‘솔기’(사진=허미선 기자)

 

3부 ‘나 아니면 또 누가,’에서는 여성의 사회, 정치 참여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가능성 그리고 남녀로 나뉘는 이분법적 잣대를 넘어 공감하고 연대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늠한다. 

 

이 섹션에서는 임민욱 작가의 ‘봉긋한 시간’ ‘솔기’, 얇은 비단 위에 침을 촘촘하게 꽂은 이순종의 신작, 이미래의 ‘히스테리, 엘레강스, 카타르시스: 섬들’ 그리고 제인 진 카이젠과 거스톤 손 딘 퀑의 ‘여자, 고아, 호랑이’(2010)를 만날 수 있다.

임민욱 작가의 영상작 ‘봉긋한 시간’과 설치작 ‘솔기’는 전통과 현대, 할머니와 손녀, 삶과 죽음 등에 신중하게 접근하는 작품이다. ‘봉긋한 시간’은 보기에 따라 그들을 보호하듯 혹은 가로막는 듯한 알록달록한 부표들 안에서 바다 헤엄을 치는 여성들을 영상화한 작업이다.  

 

내 나니 여자라
수원시립미술관 개관 5주년 기념전 ‘내 나니 여자라,’ 중 이순종 작가 신작(사진=허미선 기자)

 

임민욱 작가는 ‘봉긋한 시간’에 대해 “시간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했다”며 “기록이 없는 존재에 대한 이미지, 부유하는 삶에 대한 생각을 무빙 이미지로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솔기’는 공사장에서 높은 곳에 오를 때 쓰는 구조물을 거꾸로 세워 지금은 쓰이지 않는 유리 부표, 공업용 잔해들, 동물들, 지팡이, 인조머리 등으로 채운 설치작품이다. 임 작가는 “이 조합들은 우리 삶의 사라짐 그리고 그 관계들 속에 있던 정거장의 의미”라고 전했다.


이순종 작가는 인조 실크에 그려진 피에타, 차도르를 입고 검은 눈물을 흘리는 여성, 결정을 앞둔 국제회의장 등에 한방에서 쓰이는 침을 꽂은 작품을 선보인다. 여성들의 그림에 막힌 혈을 뚫는 침을 꽂음으로서 여성에게 막힌 사회 곳곳에 침투해 뚫고 싶다는 바람을 담았다. 

 

내 나니 여자라
수원시립미술관 개관 5주년 기념전 ‘내 나니 여자라,’ 중 이미래 작가의 ‘히스테리, 엘레강스, 카타르시스: 섬들’(사진=허미선 기자)

 

불편한 소리를 내면서 움직이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미래 작가의 ‘히스테리, 엘레강스, 카타르시스: 섬들’은 예리한 감각으로 사회에 침투하는 여성들 그리고 그 밑에 숨겨진 이야기들의 상징이다.

접신을 위해 피부 표피를 벗겨내야 한다는 아프리카 부족 무당의 믿음에서 출발한 작품으로 뜯어낸 살점을 연상시키는 오브제 덩어리는 기괴한 소리를 내며 보는 사람마저 예민하게 만든다. 

 

내 나니 여자라
수원시립미술관 개관 5주년 기념전 ‘내 나니 여자라,’ 중 제인 진 카이젠과 거스톤 손딘 퀑의 ‘여자, 고아 그리고 호랑아’(사진=허미선 기자)

 

덴마크에 입양된 한국인 작가인 덴마크의 제인 진 카이젠과 미국의 거스톤 손딘 퀑이 협업한 ‘여자, 고아 그리고 호랑이’는 침묵하도록 강요받은 여성들의 소리를 담고 있다.

작가처럼 해외로 입양된 한국여성, 1,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위안부 할머니, 1950년부터 지금까지의 기지촌 매춘부들 등 3개 층위 여성들의 구술을 영상화한 다큐멘터리는 역사 속 개인의 트라우마 그리고 둘 간의 간극을 아우른다.

수원=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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