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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어쩌다 경단맘… 글 쓰다보니 '작가'의 세계 열렸죠"

[맘 with 베이비] 공황장애 극복담 펴낸 정윤진 작가
"내면의 힘 찾아 좋아하는 일에 과감하게 도전해 보세요"

입력 2022-11-29 07:00 | 신문게재 2022-11-29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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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진 작가.

 

공황장애를 겪는 사람들이 주변에 의외로 많다. 우울증과 불안장애, 트라우마, 대인기피증은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은 현대인들의 신경정신과적 질환이다. 16년 동안 교직을 천직으로 알고 아이들을 가르쳤던 정윤진 작가도 그런 혹독한 경험을 했다. 하지만 그는 극복했다. <공황장애가 시작되었습니다>는 정 작가의 공황장애 극복담이다. 그가 어떻게 치유의 힘을 찾아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었는지 들어보았다.


 

- 교사로 꽤 오랜 기간 근무하셨는데,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16년 동안 중학교에서 도덕교사로 근무했습니다. 몇 해 전 한 학생에게 위협을 당하며 교권침해를 경험하게 되었어요. 그 일이 트라우마가 된 지도 모른 채 ‘직장생활은 다 힘든거야’ 라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심리적 정신적 스트레스를 돌보지 못했습니다. 무리한 삶의 결과는 ‘공황장애’라는 질병으로 되돌아 왔어요. 누구보다 성실하게 열심히 살며 안정적인 직장과 결혼, 출산 등 인생의 통과의례를 클리어하며 나름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경주마처럼 달리던 인생에 처음 브레이크가 걸린 사건이었습니다. 스스로 쓸모 없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실패한 삶이라는 자기 비난과 인지 왜곡에서 벗어나지 못했어요, 그 깊은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해준 것이 바로 ‘글쓰기’였습니다. 어떤 결과를 바라지 않고 무언가에 온전히 몰입했던 첫 경험이었어요. 그저 즐기며 쓰기만 했는데 ‘작가’가 되었어요.”


- 공황장애 치료 방법으로 ‘글쓰기’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는지요.

“저는 생각과 감정을 잘 표현 못하고 억압하며 사는 사람이었어요.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 끝까지 가득 찬 상태로 살았어요. 가장 큰 시련이었던 ‘공황장애’를 치료하며 비로소 스스로를 돌보고 자기표현을 해야겠다는 의지가 생겼습니다. ‘어떻게든 나아야 한다’고 다짐했을 때 마음을 안정시켜 줄 뭔가가 필요했어요. 미술, 아로마, 동작치료와 싱잉볼 치료 등 다양한 예술치료를 접했지만 가장 경제적이면서 제게 잘 맞는 것이 글쓰기여서 몰입했습니다. 잘 써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그저 힘든 시간을 통과할 수 있는 무언가를 붙잡고 내면의 상처를 백지 위에 토해낸 것 뿐이예요. 그러다 필력이 늘고, 스스로를 억압하던 절 객관화해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전에는 ‘그때 그래야 했어’라며 과거를 자책하기도 했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기 일쑤였어요. 글을 쓰면서 ‘지금-여기’에 있는 ‘나’라는 존재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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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쓰기가 가진 힘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힘들 때 모든 걸 믿고 털어놓을 수 있는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글쓰기’는 자신이 바로 그 누군가가 되는 것이지요. 보이지 않는 생각과 느낌, 태도, 가치, 상상을 시각화 할 수 있습니다. 막연하게 감당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삶의 고통이 종이에 적히면서, 문제와 자신을 분리시키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줍니다. 덕분에 ‘절망적인 한 사건 때문에 완전히 실패해버리는 인생은 없다’는 걸 알아차렸어요. 거대하게만 보였던 고통을 상황과 왜곡된 생각, 감정으로 해체해 거리두기 했더니 문제 해결의 용기도 생겼어요.”


- 책을 출간한 특별한 계기, 그리고 특별히 어려웠던 점은 어떤 것이었나요.

“공황장애로 힘들었던 시간을 ‘치유일기’ 형태로 블로그에 기록했어요. 그것들이 쌓이고, 치료과정을 응원해주던 분들이 하나 둘 늘어났어요. 결정적으로는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가족을 이해하고 싶다’는 비밀 댓글 덕분입니다. 2019년에는 공황장애 환자가 쓴 책이 거의 없었어요. 의사나 상담자 치료자 같은 전문가 관점이 아닌, 환자의 관점으로 바라본 이야기도 필요하겠다 생각하게 되었어요. 다만, 특정 사건 때문에 공황장애를 앓았기에 제 글이 가해자-피해자 이분법적 구도의 자극적인 이야기가 될까 우려했어요. 같은 질병을 앓는 분들께 용기를 드리고자 했던 의도와 달리, 책 때문에 상처받는 사람이 있을까 걱정도 되었어요. 상황이나 등장인물, 지역까지 모두 재구성했지만요. 또 ‘이 사람은 극복했는데 나는 왜 나아지질 않지’ 하며 더 힘들어지는 사람이 생기진 않을까도 걱정되었어요. 공황장애 환자가 겪는 심리적 변화와 인지왜곡 과정을 기록했기에, 못난 모습을 인정하고 출간을 결정하기까지 굉장히 두려웠고 용기를 내야 했습니다.”


- 안정적인 교직에서 물러난 후 작가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나요.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게 된 것이 첫 번째 큰 변화입니다. 시키는 일을 하는 수동적 존재에서, 일상을 세심하게 살피는 시각을 갖고 능동적으로 표현하는 삶을 살고 있어요. 글쓰기를 통해 삶의 항로와 패턴이 완전히 변했습니다. 다음은, 심리적으로 굉장히 안정된 사람이 되었어요. 아픈 상처와 대면하고 토해내면서 트라우마가 치유됐고 감정과 생각, 욕구를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어요. 스스로를 마주하고 자신과의 관계를 다시 구축하는 일의 중요성도 알게 되었어요. 삶이 다시 흔들리더라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단단한 힘이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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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진 작가.

 

- 이루고 싶은 꿈과 향후 계획이 궁금합니다.

“제 글로 위로를 전하고 싶고, 글쓰기가 가진 치유의 힘을 많은 분들이 경험했으면 합니다. 두 번째 책을 쓰면서 ‘그저, 작가’라는 치유의 글쓰기 강의를 하고 도서관에서 강의도 합니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심리치유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세요. 덕분에 더 많은 분들을 만나 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은 욕심도 생겼습니다. 제 질병을 이해하고 싶어 임상심리 공부도 하고 있는데, 더 깊이 공부하고 싶어졌어요. 치료자나 상담자 일을 즐겁게 할 수 있는지 알고 싶기도 하구요. 전문적인 지식이 쌓이면 더 많은 분들께 도움을 드릴 수 있겠다 생각합니다.”


- 결혼과 임신 출산 육아로 인해 경력단절 중인 여성들이나 엄마들께 꼭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부탁 드립니다.

“어쩌다 보니 ‘자발적’ 경력단절 엄마가 되었어요. 더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한 것이지요. 일은 안정적 소득 외에도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데 중요한 요소예요. 경력단절여성들이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일에서 얻을 수 있는 성취감과 즐거움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어린 자녀를 둔 엄마가 재취업하기란 현실적으로 굉장히 어려워요. ‘반드시 직장에 다니겠다’는 생각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기 위해 도전해 보길 권합니다. 물론, 좋아하는 일을 해도 어려움은 늘 있습니다. 저도 글이 안 써지면 위축되고 머리를 쥐어뜯기도 해요. ‘이건 이래서 안되고 저건 저래서 안돼…’같은 태도는 어떤 성장과 변화도 가져오지 못해요. 머릿속 생각과 실제 경험 사이엔 차이가 있어요. 아무 일이나 도전했는데 재미를 느낄 수도 있고, 우연히 해 본 일이 평생 하고 싶은 일이 될 수도 있어요. 고민하기 보다 일단 도전해 보세요. 그리고 시작했으면 정성을 다해 몰입해 보세요. 그 노력들이 쌓여 새로운 길이 펼쳐질 겁니다. 제가 블로그에 좋아하는 글을 쓴 것이 기록으로 쌓여 작가라는 새로운 세계가 열린 것 처럼요.”

이금재 맘스커리어 대표 겸 브릿지경제 객원기자 ceo@momscare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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