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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 칼럼] 누군가를 위해 만드는 노래

입력 2024-05-12 13:23
신문게재 2024-05-1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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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란 롯데문화재단 마케팅팀 수석

최근 방영된 3부작 다큐멘터리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를 혼자 숨죽이며 봤다. 당시 대학로에서는 흔치 않게 계약서를 작성해 배우들의 최소 수입을 보장하고 기여도에 따라 수익을 배분했다는 기적 같은 이야기는 공연계에 제법 알려져 있었다. 

 

게다가 유명 캐릭터 어린이 공연이 장악한 아동극 시장에서 건강하고 따뜻한 정서를 지닌 양질의 아동극을 지속적으로 제작함으로써 어린이극의 명맥을 잇고자 한 숭고한 뜻도 익히 알고 있었다. 

 

다큐멘터리를 통해 야학을 만들어 학교에 가지 못한 아이들을 지도하고 달동네 아이들을 위해 유아원을 건립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을 때 그가 얼마나 어둡고 가려진 곳에 있는 사람들을 마음으로 보듬고자 했는지를 새삼 느끼게 됐다.

특히 놀라웠던 건 우리에게 너무나도 잘 알려진 ‘상록수’가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가 피혁공장에서 일하던 시절 노동자 부부들의 합동 결혼식 축가로 직접 만들었다는 뒷얘기였다. 흑백화면 속 경건한 합동결혼식 장면 위에 김민기의 목소리로 ‘상록수’가 겹쳐질 때 그래서 이 노래가 단조로운 선율임에도 벅차도록 뭉클한 서정을 담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수많은 클래식 명곡 가운데도 이처럼 누군가를 위한 결혼식 축가로 작곡됐다가 명작으로 오래도록 사랑받게 된 곡이 있다. 바로 세자르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 A장조’다. 프랑크는 당시 음악계에서 큰 명성을 얻고 있던 ‘바이올린의 제왕’ 외젠 이자이의 친구였다. 1886년 결혼식을 올린 이자이를 축하하기 위해 프랑크는 이곡을 작곡해 선물했다.

프랑크는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하게 돼 다른 친구인 작곡가 보르데가 이 곡을 이자이에게 전달했다. 결혼식 날 아침 악보를 본 이자이는 “지금까지 이렇게 놀라운 결혼 선물을 받아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며 크게 기뻐하고 보르데의 친척 피아니스트와 짧게 리허설을 한 후 결혼식에서 감사의 마음을 표하며 이 작품을 연주했다.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 박은빈(채송아 역)이 대역없이 직접 연주해 화제가 되며 잘 알려진 곡으로 지난 2018년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와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함께 연주해 46살의 나이 차를 뛰어넘는 환상적인 호흡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조성진은 한 기자간담회에서 “정경화 선생님에게 프랑크 소나타를 연주하자고 6년이나 졸랐다”는 일화를 들려주며 이 곡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수많은 바이올리니스트들이 ‘프랑크 바이올린 소나타’ 앨범을 냈고 지난달 내한했던 바이올리니스트 막심 벤게로프 역시 특유의 풍부한 음색으로 프랑크 소나타의 명연(名演)을 들려주며 다시금 거장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준 것처럼 이 곡은 많은 연주자들과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상록수’와 ‘프랑크 바이올린 소나타’에는 힘든 현실 속에서도 초연한 자세로 의연하게 삶을 마주하길 당부하는 뭉근한 애정, 친구의 결혼을 축하하며 1악장의 은은한 설렘부터 4악장의 폭발할 듯한 깊은 열정까지 사랑의 양상을 섬세하게 담아낸 정성이 담겨있다. 두곡이 지금까지 오래도록 사랑받는 명곡이 된 데에는 누군가를 위한 특별한 마음이 깃들었기 때문이다.

 

이미란 롯데문화재단 마케팅팀 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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