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나 문영숙의 백세 생일.오늘까지 온전한 정신으로 내 생일을 축하할 수 있어서 너무 기뻐요.
나의 총기에 감사하며, 나의 육신에 감사하며, 나와 더불어 산 사람들에게 감사하며, 나의 문학에 감사하며, 나의 독자들에게도 감사해요.
지금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뛰어준 나의 심장에 감사하며,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생각을 이어 준 나의 뇌에 감사해요.
내 삶은 전반과 후반이 명확하게 나뉘었지요.
내 삶의 전반은 나보다 내 주변 사람들의 삶에 더 충실했어요.
하지만 늘 갈증이 있었지요.
딸로, 며느리로, 아내로, 엄마로 사는 동안 내 주변은 행복했지만,
정작 나는 내 안의 욕구를 채우지 못해 늘 목이 말랐어요.
내 인생의 후반은 비로소 나를 발견하고,나의 끼를 발산하며, 내적 자아에 충실하기 위해 늘 깨어 있으려고 노력했지요.
나는 누구이며,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며,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를 찾으려고 노력했어요.
그 노력이 50세가 넘어서 문학을 시작하게 했고, 늦깎이 대학생이 되게 해 주었어요.
나는 늦게 일어난 새처럼 인생의 후반을 부지런히 창작에 몰두하여, 나만이 가장 잘 쓸 수 있는 것들을 찾아 열심히 써 왔어요.
그리 넉넉지 않은 내 살림을 아끼고 쪼개어, 나보다 못한 사람들을 도우려 노력했지만 나의 나눔은 항상 부족하다고 느껴서 아쉬움도 있어요.
나는 이제 여한이 없어요.
내 생이 끝나는 날 나는 조용히 행복하게 눈을 감고 싶어요.
100년 동안 나를 지켜준 내 몸과 내 마음에게 진정으로 감사하며 이 편지를 보냅니다.
사랑해요. 문영숙, 당신의 몸과 마음을 영원히 사랑해요.
"인종차별 잣대 사라진 세상…
함께 달려온 동료들과 깔깔"
내게도 100살 생일이 오다니.
언제나 날 지지해주는 나의 남편, 아이들의 얼굴과 시끌벅적하게 모여든 동료들을 보니 이제야 실감이 난다.
이주민방송MNTV에서 함께 일해왔던 우리는 서로 늙었다고, 징글맞다고 아옹다옹하며 낄낄거린다.
MNTV가 커 가면서 우리는 늙었지만 같은 이상을 위해 달려온 주름이 꽤나 근사하다.
14개국 언어를 담당하는 아나운서들도 막 도착했다.
역대 아나운서와 현역들이 모이니 꽤 많다.
스리랑카에서 온 랄, 베트남에서 온 하늘…. 모두 한국 아줌마 아저씨가 다 되었다.
MNTV는 까마득한 2005년부터 이주민들의 14개 모국어로 방송을 해왔다.
방송을 넘어 미디어교육, 법정통역인 교육, 문화 행사, 실태조사 연구를 진행하며 정말 발에 땀나게 뛰어다녔다. 치료가 필요하면 병원에, 사기를 당하면 법원에도 다니면서 말이다.
세상은 혼자 사는 게 아니라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것!
이 신념에 많은 이들이 동감해주어 지금의 MNTV가 있을 수 있었다.
인종차별이 이슈가 되던 시절을 겪었지만
모두의 노력으로 이젠 다름이 아름다움으로 인정받는 세상이 되었다.
서양인과 동양인을 대하는 이중 잣대가 사라진 지 오래,
각 분야에서 성공한 이주 노동자와 결혼이민자,
그리고 그 자녀들까지 한국의 당당한 일원으로 살아간다.
더불어 살아간다.
"내 뜻대로 살아온 설레는 시간, 이젠 마냥 웃는 아이처럼 살고 싶어"
무려 100년이라는 시간.
긴 시간 동안 넌 무엇을 이뤘고, 무엇에 좌절하였으며, 무엇을 후회하였는가?
목소리가 닿아 미리 알려주면 좋겠건만, 그건 욕심이겠지.
젊은 시절의 나는
공대생 주제에 미대 수업을 부전공으로 듣고, 인디밴드 생활을 하며 큰 공연을 기획하고 음악을 배우며 공모전 준비까지 했었지.
하고 싶은 것을 따라 살던 그 시간들은
내게 설렘 그 자체였다.
즐겁게 살고 싶어 음악과 함께 해왔지.
음악으로 돈을 벌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는 생각으로 음악을 하던 내가 이 나이 먹고도 노래를 할 수 있다니.
충분히 베풀며 살아왔는지 되돌아본다.
서로 헐뜯고 비난하기 바빠 살기 팍팍하다고 느끼던 젊은 날의 서울 살이.
언젠가 내가 베푸는 친절로 세상이 조금이라도 부드러워졌으면 하는 꿈을 꿔왔으니까 말이다.
가족, 친구들은 자신들이 더 신나서 함박웃음을 터뜨리고 있다.
얼굴은 쭈글쭈글하고 머리는 하얗게 된 나는 입가에는 엷은 미소를 짓고 있다. 한편으로는 예전 하지 않았을 걱정을 쌓아두고 있으면서 말이다.
살 걱정, 죽을 걱정, 심지어 죽고 나서도….
오늘 만큼은 세상 모든 걱정을 다 내려놓아도 좋다.
아니, 이제부터 걱정은 끝내고 정말 매일 축제같이 살고 아무 걱정 없는 아이처럼 살 것이다.
자, 지난 100년의 여정 무거운 짐은 내려놓고,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한없이 감탄하고, 한없이 즐기고 웃고 또 웃으리라.
"모형비행기는 평생 함께한 놀이…
늘 곁을 지켜준 아내에 감사"
오늘은 내가 세상에 나온 지 벌써 1세기,
100세를 기념하는 날이다.
어머니의 뱃속에서 10개월을 보내고, 이후 세상에 태어나 이재우로 살아온 시간을 돌이켜 본다.
인생의 동반자로서 곁을 지켜준 아내와 건강하게 자란 두 자녀가 늘 고맙고 감사하다.
모형비행기는 나의 삶을 벌써 50년째 함께 하는 놀이다. 초등학교 때 처음 접하고 세상에 쫓겨 잊고 있다가 나이 쉰에 다시 만났다.
밤을 꼴딱 새워 조립했지만 이륙에 실패해 부서뜨렸던 일,
내 손에서 벗어나 저 먼 하늘로 떠나보낸 녀석을 결국 못 찾고 쓸쓸히 집으로 돌아오던 일,
많은 학생과 항공수업을 하며
동심(童心)과 같이 하늘을 보던 일,
나만의 비행기를 만들어 보겠다고 수백번의 시행착오 끝에 지금의 '평화누리호'를 하늘에 신고했던 일.
즐거운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 간다.
아마 곁에 있는 아내는 '왜 소처럼 웃느냐'고 핀잔을 주겠지.
"나이 먹을수록 살아있음 느껴…
앞으로 더 열심히 나답게 살거야"
예전엔 100세는커녕, 짧고 강렬하게 65세까지만 살고 싶었는데….
이렇게 멋지게 늙고 나니 빨리 죽고 싶지가 않아.
내가 쓰고 있는 시나리오를 끝내서 영화화하고 싶어.
지금까지는 내가 젊은 시절 겪었던 경험들에 대해 주로 써왔는데, 이번엔 나 같은 할머니가 주인공이야.
나와 함께 사는 사람들과의 이야기.
영화로 만들어져서 지금 내가 함께 사는 사람들과 함께 보는 것이 내 마지막 바람이야.
스물 한 살부터 지금까지 지키고자 했던 원칙이 있다면 스스로의 욕망에 충실한 삶을 살자는 것이었어.
내가 내리는 선택이 실수, 심지어는 실패가 될지언정
타인의 시선들에게 휘둘리며 살고 싶지 않았거든.
설령 가족같이 아무리 가까운 사람들일지라도 말이야. 어떤 선택이든 후회와 아쉬움은 남기 마련인데,
그게 내가 내린 선택이라면 차라리 좀 덜 아쉽지 않겠어?
그런 선택 중 하나가 '비혼주의'였어.
독신을 선언했을 때 무엇보다도 부모님께서 많이 걱정하셨지. 늙어서 혼자면 외롭다, 대체 누가 너를 돌봐줄 수 있겠느냐 등등.
그렇지만 내 선택을 밀어붙인 덕에 지금은 비혼공동체 속에서 멋진 친구들과 함께 노년을 신나게 보내고 있잖아? 스스로의 욕망에 충실한 삶은 어쩌면 조금은 외로운 삶일지 몰라도 그런 순간들만 있는 건 아니야.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난 살아있음을 느껴.
80년 동안 그러했듯 난 앞으로도 열심히 나답게 살 거야. 시간이 흐름에 감사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