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승 기자의 수확행] 구글 알고리즘으로 피곤해진 유튜브의 세계 세대와 성별 뛰어넘는 유튜버 밀라 논나와 드로우 앤드류 만나며 힐링과 자극받아
역시 인생은 한치 앞도 알 수 없다. 코로나19로 인해 여행이 우릴 떠나고 당연했던 것들이 사라지는 현실을 2년째 겪으면서도 여전히 이 진리를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애들이나 보는 것”이라고 치부하던 유튜브에 빠지게 될지 나 스스로도 알지 못했던 것처럼. 새로운 요리가 궁금하면 이제는 TV나 책, 네이버 검색 대신 자연스럽게 유튜브를 켠다. 전원생활을 즐기는 일흔이 넘은 시어머니조차 유튜브에서 상추 벌레 없애는 법을 검색해볼 정도니 말 다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한때 알고리즘의 노예였다. 아니, 아직도 노예임을 자각하지 못하는 헛똑똑인지 모르겠다. 뱃살 빠지는 법에 관한 몇 가지 영상을 찾아본 후 자연스럽게 몸짱 유튜버 제이제이살롱 드 핏이 검색될 때만 해도 순전히 해시태그의 힘인 줄로만 알았다. 단순히 그가 올린 영상의 제목에 ‘#뱃살’만 눈에 들어왔으니까. 하지만 인공지능(AI)의 세계는 심오하고 정교하다. 곧 다이어트, 운동 강박증 그리고 성공확언까지 추천영상에 뜨기 시작했다.
지난 3일 모바일 빅데이터 플랫폼 기업 아이지에이웍스가 데이터 분석 솔루션 ‘모바일인덱스’를 통해 ‘2021 상반기 모바일 앱 랜드스케이프’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대세 유튜브’의 현실이 피부에 와 닿는다. 사용자수 1위는 카카오톡(4566만), 유튜브(4314만)가 그 뒤를 바짝 뒤쫓고 있다. 이어 3위 네이버(4108만), 4위 크롬(3341만)이 차지했다. 전문가들은 알고리즘의 편리성에 의존하지 않고 늘 필요한 정보를 직접 검색해서 찾아보라고 조언한다.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을 구독하는 것도 가짜뉴스에 빠지지 않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유튜브를 맹신하지 않기로 한 순간 나의 구독 목록엔 단 두 명만이 살아남았다. 그들이 제공하는 영상들은 일단 취향을 저격한다. 과도한 리액션이 거의 없고 좋은 자극을 받게 만드는 공통점이 있다. 나는 이들을 랜선스승, 즉 유튜브 구루(GURU)라고 부른다.
◇ 할머니 아닌 멋진 여성, 밀라 논나
알고 보니 나만 모르는 유명인이었다. 뒤늦게 자개장에 꽂혀 검색하다 들어간 밀라논나에는 하얀 백발의 할머니가 있었다. 훈계나 진부한 과거 회상따윈 전무하다. 오랜 시간 아껴온 장신구 소개와 저녁 루틴, 인기리에 종영된 드라마 ‘빈센조’의 송중기가 하는 이탈리아 욕을 실감나게 하는 법 등을 공유하는 반전 매력이 돋보인다.
유튜브 채널이름인 ‘밀라논나’는 밀라노와 이탈리아어로 할머니를 뜻하는 논나를 합쳐서 만든 말로 이탈리아에 유학한 첫 번째 학생이었던 자신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떠난 유학길과 이후 아시안게임과 삼풍백화점 패션 고문으로 붕괴사고를 겪기 전까지 승승장구했던 과거가 언뜻언뜻 담겨있어 공감과 위로를 자아낸다. MZ세대들이 좋아하는 언박싱을 보고 자신의 장바구니를 털며 ‘언장바구니’라고 올린 동영상은 24만명이 봤다.
구독자들은 “할머니가…”라고 말하는 밀라논나의 조근조근한 말투, 세련된 라이프 스타일에 열광한다. 또한 자신의 할머니를 연상시키는 절약정신을 보며 힐링받는다. 프로필 그림은 미술을 전공하는 아들이 직접 그려준 작품이라는 소개와 더불어 훈남 아들이 등장하자 “할머니가 아닌 시어머니였다”는 댓글에 ‘좋아요’가 수백개 달리기도 했다. 단순히 ‘할머니’가 아닌 같은 ‘여성’으로서 느끼는 연대가 유독 든든하다.
◇ 이런 후배 어디 없나, 드로우 앤드류
귀공자풍 외모에 월세 200만원의 50평대 원룸에 살며 다년간의 미국 생활로 막힘없이 구사하는 영어만 보면 금수저가 맞다. 하지만 그는 1년 전만 하더라도 미국에서 디자인회사를 때려치우고 한국에 돌아온 퇴직자였다.
유학갈 돈이 없어 워킹홀리데이 이후 아예 해외취업을 해버린 케이스였다.전공을 살려 남다른 사진실력과 아기자기한 일상을 공유하며 인스타그램을 통해 인플루언서로 활동하고 있었지만 고정수입은 50만원 정도. 앞날이 캄캄했다.다들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만 철저히 흙수저로 자신이 좋아하는 일과 세상에 필요한 일의 공통점을 찾아 유튜브에 찍어 올렸다. 초반에는 팔로우 1000명도 되지 않았지만 그들 안에서 공통적으로 원하는 니즈를 듣고 자신의 노하우를 공유했다.
이곳에서 소개되는 소품들은 ‘마이 세이프 스페이스’라는 부캐로 쿠팡과 각종 온라인 판매처를 통해 날개돋힌 듯 팔린다. 광고임을 대놓고 알리면서도 자신만의 스토리텔링을 녹여내는 점이 되려 구독자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 내는 것. 한때 시대를 주름 잡았던 X세대들에게 기꺼이 자신을 후배라고 칭한 것도 신의 한수다.
꼰대스러운 선배들에게 지쳐 되려 후배들에게 라떼만큼은 되고 싶지 않은 그들이 비밀노트처럼 볼 수 있게끔 ‘앞서가는 후배의 밀레니얼 노트’라고 이름지었다. 나 역시 이 채널을 통해 퍼스널 브랜딩에 돈을 아끼지 않는 MZ세대들을 한 층 더 이해하게 됐다. 한때 MZ세대들을 무모하고 제멋대로인, 눈치라고는 보지 않는 이기적인 ‘애들’이라고 치부했던 내 자신을 반성하며 오늘도 드로우 앤드류의 자기애에 한 수 배우고 있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