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승 기자의 수확행] 기존의 메뉴판 못 따라가는 키오스크를 만날때 '생기는 일'
인건비 줄인다는 명목하게 도래된 단절의 시대
비대면의 편리함,다양한 영역의 확장등 장점도 다양
“좀 도와드릴까요?”
향긋한 차 향이 가득찬 카페 안.흰 머리에 중절모를 쓴 노인 한 분이 키오스크 앞에 서 계신다. 뒤에 줄 서 있는 MZ세대로 보이는 몇 명은 모두 약속이나 한 듯 아이팟을 끼고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있다. 바로 뒤에 서 있는 회사원의 표정엔 짜증보다 ‘안 엮이고 싶다’는 뉘앙스가 역력하다. 요즘 같은 세상엔 괜히 범죄로 오해되거나 괜한 오지랖처럼 보일 수 있으니까.
매장 직원이 도와줄 법도 한데 밀려든 음료를 만드느라 여념이 없다. 사실 나 역시 이번에 새로 들어온 이 기계를 보고 30초 정도 버벅거렸다. 그냥 누르면 되는 방식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결제 전 바코드로 멤버십 카드를 찍거나 누르게 돼 있었다.
그 다음엔 옆의 진동벨까지 직접 눌러 자리로 가져가야 한다. 뒤에 사람이 없어서 망정이지 젊은(?) 나도 헷갈리는데 이 분은 오죽할까 싶다.
다행히 회사원 뒤에 서 있던 대학생 한명이 줄어들지 않는 줄에 고개를 들었고 할아버지의 주문을 거들었다. 그 분 역시 나처럼 진동벨을 입력하는 방식에서 헤매고 계셨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국내 키오스크 시장 규모는 지난 2017년 65억원에서 2020년에는 3000억원대로 급속도로 성장했다. 키오스크란 일반인이 이용할 수 있는 공공장소에 설치한 무인단말기를 지칭한다.
배경에는 최저임금 인상과 코로나19 팬데믹에 의한 자영업자 경영난, 비대면 문화 확산이 있다. 이에 키오스크를 사용하는 무인점포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단순히 대형 스크린을 통해 교통정보 조회나 과거 공항이나 주민센터에서 무인으로 발권되는 단순한 시스템에서 벗어나 사물인터넷과 연계돼 성인 인증을 거쳐 안면인식으로 좀더 편한 주문을 할 수 있는 시스템까지 확대되고 있다.
이런 무인 매장 운영에 대해 가장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는 곳은 편의점 업계다. CU, GS25 등 주요업체들은 인공지능, 비전분석, RFID 등 첨단 기술을 집약한 무인편의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주류와 담배 매출이 60%에 달하는 편의점의 입장에서는 다소 예민할 수 있지만 현재 상시무인형 편의점은 전국에 100여곳, 야간에 무인으로 운영되는 하이브리드형은 1000여곳에 달한다.
KT는 아예 ‘헬스케어 키오스크 서비스’ 사업을 시작했다. 지난 7일 생체데이터를 AI로 분석하는 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 제나와 손잡은 KT는 헬스케어 키오스크를 통해 혈압, 혈당, 체지방, 체온, 심박 등 8종류 이상의 건강 데이터를 측정한다. 사용자의 현재 건강 상황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설문 서비스도 이용할 수 있다. 측정한 건강 데이터는 사용자의 스마트폰에서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최근에는 매장이나 음식점, 커피숍 등에서 종업원을 대신하는 경우가 급격히 늘었다. 특히 내년 최저임금이 9160원으로 확정되면서 사상 첫 9000원대를 돌파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1년 7월 고용 현황’에 따르면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는 128만명으로 지난해 동월 대비 8만3000명이 감소했지만 고용원이 없는 1인 자영업자는 430만명으로 지난해 동월보다 11만2000명 증가했다. 경제 상황과 더불어 키오스크로 자영업자는 종업원 없이 혼자 운영이 가능한 것이다.
지난 주 부산으로 간 출장은 그야말로 키오스크 이용의 대란이었다. 한글날 대체휴일이 낀 지난 10일 부산 해운대의 인파는 흡사 코로나 이전의 일상과 다를 바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몰렸다. 점심시간이 채 되기도 전에 감독 인터뷰를 위해 예약한 브런치 카페는 높은 별점에도 다 먹은 그릇이 채 치워지지 않은 상태였다. 주방을 책임지는 직원 두 명을 빼고 홀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서빙은 하지만 주문을 알아서 해야 하는 시스템이었다.
문제는 음식을 고르고 음료를 주문하려는데 아무리 봐도 커피가 없었다. 혹시나 싶어 메뉴판을 봤더니 분명 ‘아이스 커피’라는 글씨가 선명하다. 뒤에 있는 사람에게 양해를 구한 뒤 주방의 직원에게 물어보니 “키오스크에서 ‘콜드블루’를 눌러라”라는 말이 돌아온다.
‘커피’라는 두 글자 대신 차갑다는 뜻의 ‘콜드’(Cold)와 끓이다 우려내다는 뜻의 ‘브루’(Brew)의 합성어이자 차가운 물을 이용해 커피를 추출하는 모든 방법을 포괄하는 용어를 굳이 기계에 넣은 이유가 궁금해 졌다. 재미있는 건 유달리 무더웠던 그날의 날씨 탓인지 내 뒤로 키오스크에서 커피를 못찾아 우왕좌왕하는 사람이 꽤 여럿이었다는 사실이다.
나중에 추가한 아보카도가 후숙되지 않아 주문을 취소해야 한다는 아르바이트생에게 이런 경우가 많냐고 슬쩍 물었다.
다소 앳되어 보이는 그는 “사장님이 점장님과 알바생 한명을 정리하고 들인 키오스크 때문에 일이 더 많아졌다”면서 “기계에 익숙한 젊은 사람들도 중간에 메뉴를 변경하기도 하거니와 키오스크에 익숙하지 않은 손님이 겹치는 바람에 일하다 말고 홀에 종종 나오게 된다. 테이블 회전이 예전보다 두 배는 더 느려졌다”고 푸념했다.
업계에 따르면 키오스크 1대당 평균가격은 200만원선. 기능에 따라 400만원까지 치솟는다. 하지만 최저시급 인상과 주휴수당, 퇴직금 등을 고려했을 때 자영업자 입장에서는 안 쓸 이유가 없다. 키오스크 렌탈서비스도 여전히 확장세에 있다. 약정기간에 따라 적게는 몇 만원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만난 한 영업담당자는 “인건비 부담이 커지는 한 전 업종에 걸쳐 무인화 서비스 수요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 얼마 전에는 자동차 영업점과 굴지의 스마트폰 회사까지 기계를 설치했다. 사람의 소개와 설명이 필요한 곳까지 키오스크가 대신하고 있는 세상”이라고 말했다.
물건을 사러 매장에 들어서자마자, 생각할 시간도 주지 않고 종업원이 다가와 호객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솔직히 그런 행위는 지금도 내 취향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음식주문만큼은 사람의 눈을 보고 하고 싶다. “신메뉴는 뭐예요? 이건 맛이 어때요?” 정도는 물어보고 주문을 하는 즐거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