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처음 전통 매듭을 시작해 꼭 50년이다. 저마다의 염색을 책임지는 홍염장(紅染匠), 청염장(靑染匠), 끈을 푸는 해사장(解絲匠), 실꼬는 일을 담당하는 합사장(合絲匠), 각종 끈을 짜는 다회장(多繪匠) 등 구중궁궐에서 각종 장인들이 분업한 것들로 매듭을 짜던 때와는 달리 오롯이 혼자의 몫이었다.
“우리 매듭은 술이 달려야 완벽한 작품이 돼요. 봉술, 딸기술, 방망이술, 방울술, 잔술, 끈술, 낙지발술…종류도 정말 많아요. 술을 만드는 과정도 매듭이 나오기까지의 과정과 똑같이 힘들어요. 실을 날라 합사를 하고 비벼서 술틀에서 꽈요. 그걸 찜통에 쪄서 다시 정리를 하죠.”
한달에 한 작품도 채 완성시킬 수 없는 구상부터 염색, 실 다루기, 끈 풀기, 끈 짜기 등 매듭에 필요한 모든 과정을 오롯이 혼자 책임지며 한길을 걸어온 50년, 그 세월에 대해 무형문화재 매듭장 김혜순 보유자는 “대견하다”고 했다.
“한달 꼬박해야 완성될까 말까인, 제 혼이 다 든 작품들이에요. 그런데도 사는 사람들이 치르고자 하는 값은 너무 적으니 그걸 어떻게 팔겠어요. 그런 작품들을 값으로 매긴다는 자체가 어려운 일이에요. 차마 팔 수 없어 차곡차곡 모아두고 있죠. 그래도 꾀 안부리고 끊임없이, 끈기있게 잘해왔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 스스로를 격려하고 칭찬해주고 싶어요.”
그런 그가 ‘생각하는 손-흙과 실의 춤’(11월 19~20일 국립무형유산원 얼쑤마루 대공연장) 무대에 오른다. 국립무형유산원 개원 이래 처음으로 제작하는 브랜드공연으로 현대무용과 시각적 풍경을 아우르는 사실주의 작업무용극이다 .
김정희 예술감독이 대본과 연출을 맡았고 김용걸 안무가, 박동우 미술감독, 정순도 음악감독, 신창섭 음향감독, 민천홍 의상디자이너, 구유진 분장 디자이너 등이 함께 하는 이 무대에 김혜순 매듭장 보유자와 더불어 9대를 이어온 사기장 김정옥 보유자가 직접 올라 작업과정을 보여준다. 무형문화재 기능장의 작업과정을 무대에서 보여주는 콘셉트의 첫 시도에 나설 그는 “걱정 반, 기대 반”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겉으로 보기에 매듭이 아름답죠. 하지만 그 내면에는 기원하는 마음, 끈기와 노력 등이 다 담겨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모든 과정을 다 보여줄 순 없으니 염색한 실, 그 실을 날라서 합사하는 과정, 끈을 짜고 매듭 맺는 작업 등을 보여주죠. 안무가 정말 아름답고 멋져요. 정말 끈 짜는 모습처럼 느껴졌죠.”
◇삶을 닮은 매듭 “매순간 최선을 다할 수밖에”
“매듭은 모든 과정이 중요해요. 원하는 작품에 따라 구상하는 색도, 실의 굵기도 다 다른데다 그것들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하나하나 거쳐야 하거든요. 함부로 해서는 제대로 작품이 나오질 않아요. 과정 하나하나가 다 정확해야하는, 과정 중 어느 하나도 빠짐없는 완성의 연속이어야 하죠. ‘나중에 또 하지’ ‘나중에 수정하지’는 안돼요. 매 과정을 마무리 지어야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죠.”
김혜순 매듭장의 말처럼 그래서 매듭은 삶을, 역사를 그리고 우리를 닮았다. 지금의 선택이나 행동이 이후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과거들로 인해 고난을 겪기도 한다. 다시 돌이킬 수 없다는 것도, 돌이킬 수 있다 해도 몇배 애를 쓴 후에야 가능해진다는 것도 닮았다.
“살아가는 데서도 과정 하나하나 마무리가 잘 돼가면서 지나가야겠죠. 그래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루하루, 매순간. 자신이 임한 환경, 생활에서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는 수밖에 없어요.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자신의 자리에서 열심히 노력하는 것, 그 방법 밖에는 살아가는 방법이 없는 것 같아요. 어떤 어려움이 닥치든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는 게 다인 것 같아요.”
◇전혀 다른 모양을 한 38개 기본형, 그 완성과 조화로 작품이 되는 매듭
“처음 매듭을 접했을 때는 경이로웠어요. 하지만 제가 다가가기는 좀 어렵겠구나 싶었죠.”
지난달 별세한 그의 스승이자 시누이인 김희진 매듭장 명예보유자를 만나면서야 처음 전통 매듭을 접했을 때를 그는 “경이로웠다”고 회고했다.
“섬유예술, 그 중에서도 현대자수를 전공하다 보니 전통매듭과 공통점이 많았어요. 명주실, 염색 등. 처음엔 그 전통매듭을 제 전공에 접목시켜 새로운 걸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컸어요. 그 욕심에 열심히 하다 보니 전통매듭의 매력에 빠져버렸죠.”
그렇게 그는 주변의 만류에도 매듭의 전통을 잇기로 결심했다. 그는 “그 아름다움에 매료돼 버렸고 저도 얼마든지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겼다”고 전통매듭에 빠져들던 당시를 털어놓았다.
“지금은 전통매듭이 너무 사랑스러워요. 저의 일부 같기도 하죠. 전통매듭과 현대작품을 오가다 보니 지루함이나 회의가 들 틈도 없이 50년을 온 것 같아요. 현대 작품도 기본기가 제대로 갖춰져 있어야 제대로 할 수 있어요.”
그는 “한국 전통매듭에는 기본형이 38가지가 있는데 그 형태가 다 다르다”며 “그 여러 가지 형태를 갖춘 매듭의 기본형과 기본형의 조화, 색감의 조화가 합해져 하나의 작품이 되는 것이 우리 매듭의 특징이자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의 매듭은 기본형 38가지를 수직으로 연결하면서 작품이 탄생돼요. 그 매듭의 기본형이 너무 현대적이죠. (첫소리, 중간소리, 끝소리로 이뤄진) 한글이 기본 (자음과 모음 24개) 소리로 다양한 의미와 표현을 만들어내 듯 우리 매듭도 하나하나 완성된 것을 수직으로 수직으로 엮어 가면서 무궁무진한 작품들을 만들 수 있거든요. 중국이 한국 매듭을 두고 자신들의 것을 훔쳐 갔다고 하는데 말도 안되는 얘기예요.”
그리곤 “중국은 한군데로 몰아 뭉쳐지는 형태라면 우리의 매듭은 하나를 끝맺고 다시 시작해 끝맺고 또 다시 시작하는 완성의 연속이고 수직 연결”이라고 부연했다. 사색과 고민, 기원과 혼을 담아 엮어 조화를 통해 완성되는 매듭은 또 그렇게 우리의 삶을 닮았다.
◇우리 매듭의 현대화와 세계화 “아니 쓰인 데가 없다”
“남녀 장신구를 비롯해 갓끈, 주머니, 선비방의 붓걸이, 한지를 끼워두는 고비유서, 저고리를 걸어두는 횃대, 부채고리에 다는 선추, 궁중악기, 상여, 가마, 채여(궁중 행사 시 도구를 담아가는 가마), 수저집, 필낭, 약낭, 안경집…어디 아니 쓰인 데가 없어요. 모든 걸 다 할 수 있는 게 우리 매듭이죠.”
이렇게 전한 김혜순 매듭장 보유자는 “세계화도, 현대화도 해야한다”며 “현대화라는 건 현대생활에 맞게 조화를 이루는 것”이라고 말을 보탰다.
“옛 선조들이 그 시대, 의상 등에 맞게 매듭을 활용했던 것처럼 현대인들이 가까이서 즐기고 활용할 수 있게끔 맞게 고치고 개발해서 현대화를 해아죠. 당연히 해야하는, 옛날 것을 그대로 재현하고 복원하는 일과 더불어 대중들이 즐길 수 있는 것들을 개발하고 선보이는 것도 해야할 일이죠.”
유재석의 부캐를 콘셉트로 한 예능 프로그램 ‘놀면뭐하니?’에서 결성·데뷔해 봄부터 상반기를 뜨겁게 달군 MSG워너비(지석진, 김정민, 강창모, 이동휘, 원슈타인, 박재정, 이상이, 정기석) 방송 중 꾸준히 선보인 머리장식과 팔찌, 무대장치 등도 김혜순 매듭장 보유자의 작품이다.
“유재석씨의 머리 장식, 가수들의 팔찌 등도 너무 좋았지만 우리 매듭으로 무대장치도 가능하다는 걸 새삼 다시 깨닫고 알릴 수 있어서 기뻤어요. ‘놀면뭐하니?’ 제작진들이 (유야호가 머리에 단 매듭장식) 사진 하나를 보내면서 제대로 된 우리 매듭 작품을 만들어 달라고 연락을 해왔을 때는 거절했어요. 하루만에 뚝딱 만들 수도 없었고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아서 난감했거든요. 그렇게 전화를 끊고 나니 ‘또 이상한 매듭이 계속 노출될텐데’ 싶더라고요. 그건 더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내가 해야겠다’ 생각했어요. 다양한 매듭의 기본형을 활용해 예쁘고 대중적인 작품들을 만들어 보냈죠.”
하루가 멀다하고 밤마다 그의 집에 퀵서비스 오토바이가 드나들었다. 그 시간을 김혜순 매듭장은 “많이 알아봐 주셔서 기뻤고 가수들이 꾸준히 팔찌를 끼고 나와 주고 유재석씨가 매듭에 대해 계속 얘기해줘서 고맙고 행복한 봄”이었다고 표현했다.
“제가 힘든 건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사라져 버렸어요. 가수들이 매주 끼고 나오는 팔찌에, 유재석씨의 매듭 언급에 보고만 있어도 너무 흐뭇하고 기뻤죠. 앞으로도 대중들에게, 세계에 매듭이 정말 품격있는 우리 예술임을 알리고 싶어요. 38개의 기본형이면 뭐든 만들 수 있거든요.”
적재적소에 매듭 기본형을 넣어 각 과정을 완성해 연결하고 색을 맞추고 조화를 이뤄 탄생하는 매듭 작품은 매는 이의 노력과 인내 그리고 누군가를 향한 사랑과 간절한 기원이 담긴다. 한 사람의 인생처럼, 그 사람들이 엮인 세상처럼.
“매듭은 저에게 고마운 존재예요. 문화계 분들과 인연을 맺게 해줬고 다방면으로 뭐든 잘 알고 많이 노력하는 제자들을 만날 수 있게 해줬거든요. 앞으로 50년 후 우리 매듭은 더 아름답게 발전해 있을 거예요. 우리 제자들을 보면 그래요. 50년 전보다 지금이 많이 발전한 것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