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 중 기훈(이정재)은 상우(박해수)에게 60억원을 어디에 썼냐고 묻는다. 동네에서 알아주는 수재이자 자랑이었던 그는 “주식은 그렇게 크지 않고 선물을 했어”라고 대답한다. 그때 기훈은 “선물? 누구 선물을 얼마나 비싼 걸 산거야. 여자 생겼냐?”라고 되묻는다.
지난해 전세계를 휩쓴 ‘오징어게임’의 한 장면이다. 486억을 두고 서로 죽고 죽이는 잔인한 게임 속에서 유일하게 웃었던 신이기도 하다. 속으로 ‘선물을 모르는 일반인들이 이렇게 많구나’라고 놀랐던 것 같다. 그리고 1년도 안돼 그 선물로 인해 아파트 8층 난간에 서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정확히는 암호화폐 선물거래라고 해야겠지만.
이 기사는 경제지 소속 문화부 기자의 코인입문기이자 리딩방 경험 그리고 청산(원금이 사라짐)에 대한 생생한 경험글이다. 전형적인 코린이(코인+어린이)의 경험을 통해 단 한명이라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쓴다.
모든 블로거와 유튜버들이 미리 밝히듯이 ‘투자 선택은 본인의 몫’이고 내 소중한 돈은 아무도 책임져 주지 않는다. 부끄럽게 고백하자면 얼굴도 모르고 추적도 되지 않는 텔레그램의 ‘그 분’(정확히는 내가 돈을 주고 정보를 얻기로 한 리딩방 주인)에게 “원금 회수만 어떻게 안될까요?”라고 비굴하게 읍소했다가 “그런 건 없다”는 칼 같은 답변만 들었다.
코인에 빠진 이유는 호기심과 질투심때문이었다. 친하게 지내는 학부모 한명이 차를 바꿨는데 남편이 코인으로 번 돈으로 사준 폭스바겐이었다. 도지코인을 2원에 샀는데 그게 대박이 났다는 것이었다. 당장 업비트에 가입하고는 호기롭게 100만원을 넣었다.
뭐를 사야할지 몰랐기에 이왕이면 가장 이름이 예쁜걸 고르기로 했다. 때는 2021년 11월 초 이름도 향기로운 보라코인이 500원대였을 때다. 지금 생각해 보면 ‘초심자의 행운’은 어느 분야에나 있는 것 같다. 정확히 보름 뒤 1215원이 된 보라코인을 매도하기 전까지 자고 일어나면 빨간색으로 표시되는 숫자를 보고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는 감정을 태어나 처음으로 느꼈다.
아이의 웃는 모습을 봐도, 신상백을 사도 느껴지지 않았던 풍요로운 나날들이었다. 그렇게 번 돈은 약간의 공부를 거쳐 솔라나에 들어갔다. ‘이더리움 킬러’라고 불리는 이 녀석은 장기보유로 가져갈 생각으로 묻어 두웠지만 이 기사를 작성하는 현재 -43%를 기록 중이다.
암튼 그 시절은 메이저 코인과 알트코인이 있다는 것과 국내 말고 해외거래소를 통해 다양한 레버리지 상품과 디파이(DeFi), 스테이킹 등 이름도 어려운 보험, 대출, 이자 상품이 있다는 것을 알게된 시기였다.
그 즈음 각종 (지금 보니) 세력 알바들이 웹3.0과 게임 관련 코인들이 대거 오를 거라며 자신의 유튜브를 통해 대대적으로 ‘썰’을 풀었고 당연하게도 내가 들어가기만 하면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이미 수익률 100%를 맛 본 후다 보니 하루아침에 +10~15%를 보고도 시큰둥한 것도 문제였다. 시드가 작으니 하루에 8~9만원이 올라도 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렇게 커진 간은 때마침 문재인 정부의 다주택자 압박으로 손해보고 판 빌라의 매도금까지 손대면서 비극이 시작됐다.
애초 계획대로라면 입사 초기에 회사 1층 은행에서 빌린 마이너스 통장을 채워넣어야 했지만 대출규제가 심해진 요즘 ‘은행이자보다 더 벌면 돼’라는 유혹이 나를 삼켰음을 이 자리를 빌어 고백한다. 결론적으로 나는 작두를 탄다고 할 정도로 유명한 유료 리딩방을 결제했다. 모든 실패자가 그렇든 마음이 급해지면 한방에 만회하고 싶은 마음 뿐이다. 역시나 돈을 주니 정보가 쏠쏠했다. 장기와 단기로 들어갈 코인과 분할매도로 들어갈 비중과 금액, 손절 금액까지 잡아줬다.
백화점식 쇼핑은 하지말고 주는 정보를 보고 원하는 코인에 들어가라는 친절한 답변과 막 하락장에 돌입한 비트코인의 저점에 대한 분석까지 매일아침 텔레그램으로 전달됐다. 내가 등록한 곳은 바이낸스로 코인 트론을 사서 돈을 입금하라고 했다. 아마도 국내의 추적을 차단하는 듯 싶었다. 일단 바이낸스 가입이 너무 어려워 은행으로 입금하겠다고 하자 “정중히 거절하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자신이 하는 트레이딩을 직접 따라하는 비트겟 트레이딩 시스템을 처음 접한 곳도 여기였다. 수수료는 약 8%. 비트겟에는 트레이더라는 시스템이 있는데 투자고수들이 하는 투자 방식을 회원들이 그대로 따라 수익을 취하는 방식으로 회원을 차곡차곡 모으고 있었다.
수많은 차트와 코인 분석을 하지 않고도 전문가들이 하는 방식대로 자신의 투자금이 고스란히 복사돼 거래된다니 흥미로웠다. 90만원을 넣은 계좌는 일주일도 안돼 120만원이 돼있었다. 아무리 봐도 모르겠는 코인들의 상승(롱)에 20%레버리지를 걸고 하락(숏)에 10%레버리지를 어떻게 거느냐에 따라서 들쭉날쭉했지만 착실하게 돈이 쌓이는 게 보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원금상실이 될 거란 생각은 1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딸의 생일날 새벽에 해외에서 문자가 와 있어서 확인하니 ‘잔액이 부족해 트레이더의 거래에 따라가지 못했다’는 요지의 경고가 와 있었다. 청산이 될 수도 있다는 문구에 놀라 내가 등록한 유료방에 문의하니 비트겟 시스템은 잘 모른다는 퉁명한(?) 대답이 돌아왔다.
돈이 모자라 거래가 안되는가 싶어 30만원을 추가로 넣었는데 아이 유치원을 데려다 주고 오니 두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어제까지 120만원이 찍혀있던 계좌가 0원이 돼있었다. 결론은 선물거래는 언제나 위험하고 원금손실이 있을 수 있다는 것과 트레이더의 비중과 1대1로 셋팅해 놨기에 그만큼 하락장을 버티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이미 시즌종료라는 말이 나올 만큼 계속 하락 중인 가상화폐 시장이었지만 이날은 기념비적인 날이었다. 비트코인 가격은 작년 11월 초만 해도 7만 달러(약 8348만원)에 육박했으나 약 두달 반 만에 반 토막이 난 상황이다.
가상화폐 시가총액 2위인 이더리움의 가격도 올해 들어 약 35% 하락하는 등 빠르게 떨어지고 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 분석에 따르면 전체 가상화폐 시장의 가치도 비슷한 기간에 1조4000억 달러(약 1670조원) 정도가 증발했다. 24일 코인데스크는 ’마진콜’로 인해 지난 주 15억 달러(1조7902억원) 규모의 비트코인 거래 포지션이 청산됐다고 추정했다.
마진콜은 현물 가격이 급락할 경우 추가 증거금을 내라는 요청으로 이에 응하지 못할 경우 투자 포지션을 강제 청산당하는 것을 말한다. 업비트 원화마켓 총 거래대금은 3조원으로 전일보다 41.36% 감소했으며 알트코인들의 총 거래대금은 3조원으로 전일보다 40.41% 줄어들었다.
이런 하락장에 하필이면 고배율 레버리지에 들어간 탓에 적은 시드가 바로 청산당했다는 결론이었다. 전체적인 폭락장이라고 해도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위험하다고만 고지했지 원금청산에 대한 언질도 없었다. 풀 곳 없는 분노는 무지한 내 자신에게 이어졌고 ‘그냥 죽어버릴까’란 생각마저 들었다.
월급쟁이들의 희망인 신사임당은 일찍이 자신의 저서 ‘킵 고잉’에서 “단군이래 가장 돈 벌기 쉬운 시대”라고 말했다. 나만 도태된 그 느낌이 싫어 코인의 세계에 들어왔는데 사라진 원금과 회원가입비, 물린 코인의 원금, 온통 파란 업비트의 화면까지. 아마도 딸의 생일만 아니었다면 무슨 일을 저질렀을지 모를 ‘코인 엑소더스의 날’이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날 살린 건 타인의 불행이었다. ‘비트겟 청산’ ‘선물 거래 원금 손실’ 등을 검색해 보니 코인 붐이 불던 2020년에 수많은 자영업자, 학생, 가정주부를 비롯한 젊은이들의 피눈물이 지금도 흥건했다. 나만 몰랐던 총성없는 전쟁터에서 어제의 승자가 오늘의 패자가 되고 새로운 영웅이 탄생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들과 나의 공통점은 공부 안한 투자를 한 것. 비록 철저한 준비를 했어도 날고기는 사기꾼들의 달콤한 혀와 현란한 기술을 피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러니한 건 호되게 당하고 보니 지루했던 회사생활도, 피곤하기만 했던 워킹맘의 일상도 너무나 소중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가상화폐의 세계를 떠날 것인가. 아니면 이 하락의 시기를 줍줍의 기회로 여기고 물타기를 할 것인가. 진정한 부자의 길은 역시나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