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국내 자동차 시장 '하이브리드카' 판매 급증
국내 자동차 시장의 소비 트렌드가 변화하고 있다. 신차 시장에서 하이브리드 자동차(HEV)의 판매량이 급증하고 있다. 탄소중립 기조에 전동화를 서두르던 완성차업계의 계획에도 차질이 생겼다.
HEV는 내연기관인 엔진과 전기모터가 결합된 자동차다. 내연기관차 보다 우수한 연료 효율성과 전기차의 정숙성을 동시에 갖췄다는 평가다. 여기에 전기차의 불편함을 꼽히는 충전의 불편함이 없다. 전기차의 비싼 판매가격으로 인한 부담도 HEV의 인기에 한몫했다.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국내에 신차등록된 승용차 중 HEV는 28만 3365대로 전체 20.3% 비율을 보이고 있다. HEV 점유율은 이미 경유차 비율을 넘어서 휘발유차 다음으로 높은 비율을 기록했다. 지난 12월까지 집계되면 HEV 신차등록대수는 30만대를 쉽게 넘길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연간 HEV 30만대 등록은 역대 최대치다. 지난 2013년 2만9060대에 그쳤던 HEV는 10년 만에 10배 이상 증가했다.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도 46.1% 증가한 수치다. 아직 지난해 12월 데이터가 집계되지 않았지만 HEV 판매량은 사상 처음으로 경유차를 앞섰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 같은 소비 트렌드에 완성차업체들도 HEV 모델 출시를 확대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기아의 인기차종에는 대부분 HEV 모델이 존재한다.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가장 많이 판매된 HEV는 현대자동차 그랜저다. 그랜저는 같은 기간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가장 많이 신차등록 된 인기차종이다. 그랜저 10만7589대 중 5만6555대(52.6%)가 HEV 모델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국내에 판매된 그랜저 2대중 1대가 HEV인 셈이다.
국내 판매량 2위 기아 쏘렌토도 HEV의 인기가 돋보인다. 같은 기간 국내에 신차등록 된 쏘렌토는 7만7795대로 이 중 5만1556대(66.3%)가 HEV 모델이다. HEV 모델이 쏘렌토의 인기몰이의 주역인 셈이다. 준중형 SUV 현대차 투싼, 기아 스포티지 등 다양한 차급의 HEV은 소비자들의 주된 선택을 받고 있다.
올해도 HEV의 인기는 지속될 전망이다. 우선 국내 미니밴의 강자 카니발의 HEV 모델 출고가 본격화 된다. 카니발 1.6 터보 HEV 모델은 54kW급 고성능 모터를 탑재해 지금까지 현대차그룹이 선보인 HEV 중 가장 높은 시스템 합산 최고 출력을 지녔다. 카니발 HEV 모델은 시스템 최고출력 245마력(엔진 최고출력 180마력), 시스템 최대토크 37.4kg.m(엔진 최대토크 27.0kg.m)를 발휘한다. 여기에 복합연비 13.5km/ℓ의 뛰어난 연료 효율성을 갖췄다.
현대차·기아는 지난 2011년 세계 최초로 ‘병렬형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탑재된 쏘나타/K5 하이브리드를 선보이면서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당시만 해도 도요타와 GM 등이 ‘직병렬형(복합형)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내놓고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고 있었다. 과거 도요타 역시 병렬형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구현해 보려고 시도했지만 결국 포기했었다.
기계공학 노하우를 바탕으로 현대차·기아는 경쟁사가 가지고 있던 특허를 피하면서도 구동 효율을 향상시킬 수 있는 최초의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개발했다. 첫 하이브리드 시스템 양산 이후에도 현대차·기아는 꾸준히 성능개선과 효율 증대를 도모해 왔다.
또한, 다양한 차급으로 확대 적용을 위해 크고 작은 배기량의 엔진과 결합시켰으며,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DCT 변속기를 장착하기도 했다. 특히 2020년에는 180마력을 자랑하는 1.6 터보 엔진을 기반으로 한 하이브리드 모델을 출시했다. 여기에 또한 연비를 향상시키기 위해 첨단 소재 기술을 활용,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중량을 저감하는 한편, 회생제동 개입 수준을 조절하는 패들 시프트를 적용하기도 했다.
더욱이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핵심 부품인 배터리도 직접 개발했다. 지난 8월 출시한 싼타페 하이브리드에는 현대차그룹이 직접 개발한 하이브리드 전용 배터리가 처음으로 탑재됐다.
현대차·기아는 10년 이상 꾸준히 발전시켜 온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기반으로 당분간 이어질 글로벌 친환경차 경쟁에서 돌파구를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현대차·기아는 당분간 지속될 HEV 성장세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효율과 성능을 대폭 향상시킨 차세대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준비 중이다. 오는 2025년 출시를 목표로 개발 중인 차세대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고성능 엔진과 결합될 예정이며, 연비 측면에서도 획기적인 개선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신차·중고차 시장, 올해도 HEV인기 지속될 전망
글로벌 자동차 시장이 전동화 전환의 과도기 과정을 겪으면서 HEV의 인기는 지속될 전망이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글로벌 포춘 비즈니스 인사이트’에 따르면 전 세계 HEV 시장은 올해 19.2% 성장한 2718억달러(약 360조5400억원) 규모로 점쳐진다. 이 업체는 오는 2030년까지 하이브리드카 시장의 연평균성장률(CAGR)은 7.3%로 4439억1000만달러(약 589조원) 규모가 될 것으로 예측했다.
결국 수년 이내에 불어올 전동화 전환의 흐름을 막을 수 없겠지만, 그전까지 HEV 시장의 성장세는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글로벌 완성차업체들은 갈수록 까다로워지는 글로벌 환경규제에 대응을 위해서도 HEV 시장이 어느 정도 완충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중고차 업계도 올해 중고 HEV의 판매비율이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국내 최대 자동차 거래 플랫폼 엔카닷컴은 지난해 전체 판매 비중은 가솔린, 디젤차가 상당 부분 차지하지만, 올해 HEV 판매대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매물 대수 또한 늘어남에 따라 내년에도 HEV 중고차 수요는 계속 지속될 것으로 예측했다. 실제 지난해 1월부터 10월까지 엔카를 통해 거래된 HEV 대수는 전년 동기 대비 24.29% 판매대수가 증가했다.
HEV시장이 지속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업체 간 HEV 신차 경쟁도 뜨겁다. 최근 도요타는 5세대 프리우스를 선보였으며, BMW와 렉서스 등도 하이브리드 신규 모델을 추가로 국내에 들여올 계획이다.
르노코리아는 올해를 HEV 대중화의 해로 선언했다. 그 일환으로 XM3 E-테크 HEV의 판매시작가격을 400만원 인하한다. 이를 통해 소비자들의 가격 접근성을 높이겠다는 의도다. 또한, 올해 중형 HEV SUV 신차 출시를 앞두고 있다. 신차는 볼보에 사용되는 중국 길리그룹의 CMA 플랫폼과 차세대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소비자들의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현대차·기아 관계자는 “내연기관 차량에서 전동화로의 전환을 가속화하는 가운데, 급증하고 있는 HEV 수요에도 적극 대응해 나갈 것”이라며 “고객들에게 더 나은 운전 경험과 친환경 차량에 대한 다양한 선택의 폭을 제공하기 위해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기술 개발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김태준 기자 tjkim@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