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100]소설, 영화, 오페라, 연극, 음악…경계를 넘나드는 작가 숀 “넘어설 수 있으면 경계가 아니죠!”

허미선 기자
입력일 2024-09-11 18:00 수정일 2024-09-11 18:00 발행일 2024-09-12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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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더컬처]
숀
소설가이자 시인이며 영화 시나리오 작가, 연극과 오페라 극작가, 음악의 작사가 등으로 다양한 장르와 매체를 넘나드는 작가 숀(사진=허미선 기자)

“최근 굉장히 흥미로운 변화 하나를 포착을 했습니다. 바로 오디오 북입니다. 아이슬란드에서는 80% 이상이 독서를 오디오북으로 해요. 사실 책은 비교적 최신 매체입니다. 구술로 전해지던 이야기가 문자와 책으로 넘어갔다가 다시 구술로 돌아온 셈이죠. 우리가 항상 미디어의 변화에 열려 있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소설과 영화, 오페라, 연극, 음악, 전시 등 문화와 산업 전반을 넘나드는 숀(Sjon, 본명 Sigurjon Birgir Sigurðsson)은 급변하는 환경에서는 무엇보다 “열린 태도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작가로서 이야기를 만들고 그 이야기를 통해 언어의 한계를 테스트하고 우리가 무엇에 대해 이야기해야하는지를 계속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큰 변화 속에서도 여태껏 문학이 그래왔듯 사람들을 실제 이야기로 연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가치이자 변치 않는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숀
소설가이자 시인이며 영화 시나리오 작가, 연극과 오페라 극작가, 음악의 작사가 등으로 다양한 장르와 매체를 넘나드는 작가 숀(사진=허미선 기자)

◇어떤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문학의 가치“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는 무엇을 말할 것인가 즉 ‘내용’과 어떻게 말할 것인가 ‘형식’입니다. 이 두 가지는 다른 방식으로 쓰이긴 하지만 영화에서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죠.”

아이슬란드 레이카비크에서 태어나 16세부터 시를 쓰기 시작해 시집 ‘시선’(Synir, Visions)을 출간한 그는 최근까지도 20여개 언어로 번역된 시를 발표하는 시인이다.

더불어 40여개국에 번역·출간된 ‘푸른 여우’(The Blue Fox), ‘속삭이는 뮤즈’(The Whispering Muse), ‘고래의 입에서’(From the Mouth of the Whale), ‘문스톤’(Moonstone-The Boy Who Never Was) 등으로 북유럽 이사회 문학상, 아이슬란드 문학상, 스웨덴 아카데미 노르딕상 등을 수상했고 2021년 프랑스 정부 문화예술공로훈장을 수여받은 영향력 있는 소설가이기도 하다.

“다만 시는 좀 달라요. 우리를 현실 바깥에 존재하게 하는 게 바로 시인데요. 현실에서 한 발짝 나와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있도록 하거든요. 시를 통해 우리가 내부에서 보지 못한 아주 작은 꽃이라든지 소소한 것들도 볼 수 있게 되죠.”

그는 창작오페라 ‘신북극’(Neoarctic), ‘레드 워터스’(Red Waters), ‘더 모션 데몬’(The Motion Deomn), ‘섀도우 플레이’(Shadow Play), ‘세븐 스톤스’(Seven Stones) 등과 연극 ‘테일 프롬 어 시 저니’(Tales From a Sea Journey), ‘가고일스’(UFSAGRYLUR. Gargoyles) 등의 극작가이며 바이킹 이야기를 다룬 영화 ‘노스맨’(The Northman)를 비롯해 ‘램’(Ram) 등을 집필한 시나리오 작가이자 비요크(Bjork)와 협업한 영화 ‘댄서 인 더 다크’(Dancer in the Dark) OST 등의 작사가이기도 하다.

지난 6일 개막한 서울국제작가축제(9월 11일까지 JCC아트센터) 초청으로 내한한 숀은 축제의 대주제인 ‘입자와 파동’, 그로 인한 새로운 물길을 내는 문학에 대해 “존재만으로도 그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고 의견을 밝혔다.

숀
소설가이자 시인이며 영화 시나리오 작가, 연극과 오페라 극작가, 음악의 작사가 등으로 다양한 장르와 매체를 넘나드는 작가 숀(사진=허미선 기자)

“이야기를 읽기 위해서는 일상을 멈춰야 해요. 그렇게 따로 시간을 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죠. 작가인 제가 이야기를 쓰기 위해 삶을 멈추고 글자를 정돈을 해야 하는 것처럼요. 독자들이 제가 쓴 이야기를 읽기 위해 일상을 멈추고 시간을 투자하는 건 매우 감사한 일이고 큰 축복이죠. 이같은 작가와 독자의 작은 멈춤들이 입자가 돼 파동을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현재의 많은 정치인들이 단 한 가지의 가치만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문학이 굉장히 다양한 것들의 공존을 증명하고 있다”며 “그것만으로도 문학이나 예술이 현 세대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파동을 낼 수 있다”고 부연했다.

“40개 이상 언어로 번역된 제 소설이나 시, 영화 등을 통해 각 언어로 어떻게 다르게 번역되는지, 이야기들이 얼마나 대중적으로 읽히는지, 변치 않는 코어가 어떻게 모두에게 똑같이 받아들여지를 보는 건 축복입니다. 작가인 동시에 많은 책과 영화를 읽고 보는 독자이자 시네필로서 같은 감정을 느끼기 때문에 더 특별하죠.”

◇낯섦과 익숙함의 공존, 한국 콘텐츠의 견고함

숀
소설가이자 시인이며 영화 시나리오 작가, 연극과 오페라 극작가, 음악의 작사가 등으로 다양한 장르와 매체를 넘나드는 작가 숀(사진=허미선 기자)

“다른 나라의 소설이나 영화를 볼 때 어떤 부분은 굉장히 친숙하다고 느껴지지만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다 낯설기도 해요. 작가이자 독자의 심정으로 낯섦과 익숙함을 동시에 보는 게 참 특별합니다.”

그 낯섦과 익숙함은 한국 영화 마니아로서도 느끼는 감정이기도 하다. “한국 역시 친숙함과 낯섦이 공존하는 상태”라 표현한 그는 “한국이 처음이다 보니 매우 낯설지만 ‘기생충’ 등 스크린을 통해 익숙한 모습들도 있다”고 밝혔다.

“한국 밖에서 온 사람으로 이야기를 하자면 한국 문화는 굉장히 견고합니다. 모든 면에서요. 그래서 한국 문화를 해외에 알리고 있다는 자체가 기적이죠. 한국의 연극, 무대예술 문화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면 사실은 잘 몰랐습니다. 특히 연극은 지극히 로컬적이고 이동성이 적은 콘텐츠거든요. 그럼에도 여전히 연극이 소비돼야하는 이유는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보다 직접적인 상호작용이 가능한 예술의 한 형태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연극, 무대예술은 아이슬란드와 한국은 물론 어디서나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어 “한국 콘텐츠들의 가장 큰 특징은 혁신적이고 용감한 영화적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최근의 가장 큰 발견은 한 영화에 굉장히 다양한 장르를 함축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 영화에 코미디, 호러, 스릴러, 범죄, 비극 등 모든 요소들이 함축돼 녹아들어 완벽하게 완성되는 방식인데요. 그 명백한 예가 ‘기생충’입니다. 연기라든지 영화적 연출 등 굉장히 다양한 요소들을 극단적으로 끌어올려 함축하고 있죠. 저 역시 소설에 쓰고 있는 기법이지만 이걸 스크린에서 본다는 자체가 굉장히 큰 발견이었습니다.”

숀
소설가이자 시인이며 영화 시나리오 작가, 연극과 오페라 극작가, 음악의 작사가 등으로 다양한 장르와 매체를 넘나드는 작가 숀(사진=허미선 기자)

그는 다양한 나라의 영화를 소비하는 데 대해 “같은 문화적 개념을 가지고 다르게 생각하고 표현하는 자체가 재밌는 일”이라며 장례식을 예로 들었다. 그는 “한국이나 나이지리아, 유럽 등 다양한 나라에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장례식이 치러지고 있다”며 “어떻게 다른지, 그 문화를 보는 게 너무 재밌다”고 털어놓았다.

“다양한 나라에서 폭넓게 소비되는 콘텐츠들은 우리의 삶 혹은 누구나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것들을 다루고 있죠. 더불어 각 작업자들이 공들인, 장인정신이 돋보이는 콘텐츠이기도 해요. 춤을 잘 추는 댄서를 사랑하고 잘 쓰여진 글 읽기에 열광하는 것처럼요. 장인정신이 깃든 콘텐츠와 인류 보편적인 감성을 건드리는 작품들이 전세계적으로 사랑받지 않나 싶습니다.”

◇큰 변화 속 경계 “넘어설 수 있다면 경계가 아니다”

숀
소설가이자 시인이며 영화 시나리오 작가, 연극과 오페라 극작가, 음악의 작사가 등으로 다양한 장르와 매체를 넘나드는 작가 숀(사진=허미선 기자)

“지금 겪고 있는 변화는 전체 인류사를 놓고 봐도 굉장합니다. 이 상황에서 우리는 지금 왜 이런 상황을 겪고 있는지를 알아야 해요. 발전을 꾀하면서 인류는 굉장히 많은 종을 멸종시켰어요. 지금까지는 그 멸종하는 것이 인류가 아니니 괜찮을 줄 알았죠. 하지만 지금은 우리가 스스로를 위협하고 있어요.”

숀은 “현재의 가장 큰 미스터리는 왜 우리는 파멸을 만드는 것을 멈출 수 없는가”라며 “많은 과학자들이 지금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고 앞으로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를 설명한다면 왜 이런 일이 벌이는지에 대해 탐구하는 건 작가와 아티스트들의 몫”이라고 털어놓았다.

“급변하는 시대를 맞아 작가들은 좀 더 다양한 분야와의 콜라보레이션에 열려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는 매체의 폼과 상관없이 언어를 다루는 직업이에요. 어디든 언어가 필요한 프로젝트라면 참여할 수 있죠. 매체의 종류에 따라 달라지는 단어나 언어들을 보면서 겪게 되는 어려움이나 즐거움은 분명 다릅니다. 각종 매체들이 빠르게 탄생했다가 사라지곤 합니다. 책이 곧 사라질 거라고 하지만 스토리텔링이나 언어 자체는 사라지지 않아요. 다른 매체로 적용될 뿐이죠. 그래서 지금의 변화들은 작가들이 열려만 있다면 기회입니다.”

그는 “지금의 변화에서 저나 작가들이 무언가를 컨트롤할 수 있는 능력은 없다. 이에 AI나 기술 혁명에서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갈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면서도 “오히려 AI가 어떻게 스토리텔링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AI 자체를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는, 굉장히 큰 가능성을 가진 도구라고 보고 있거든요. AI는 위협이라기보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는 하나의 필드죠. 그래서 두렵다기 보다는 새로운 대화의 툴이자 파트너로서 인류를 어떻게 탐구할 수 있을지 생각 중입니다. 디지털은 여타의 매체들이 그랬던 것처럼 금세 사라질 수도 있어요. AI가 종이에 적용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볼까 합니다.”

이어 “매체에 얽매이기 보다는 스토리텔링과 언어를 중시해야 한다” 강조한 숀은 “다양한 매체와의 작업에서 작가는 매체별 특성을 살리면서도 자신만의 독보적인 색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숀
소설가이자 시인이며 영화 시나리오 작가, 연극과 오페라 극작가, 음악의 작사가 등으로 다양한 장르와 매체를 넘나드는 작가 숀(사진=허미선 기자)

“다양한 미디어 작업을 하고 있는 작가이자 스토리텔러로서 예술을 생산하는 자체에 큰 책임을 느낍니다. 과거의 인류로부터 이야기를 받아서 지금의 인류에게 전하고 예술을 보존하는 자체도 굉장히 큰 책임이죠. 그 예술이 생존해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과정에서 유연함을 빼놓을 수 없어요. 지금 우리가 굉장히 큰 변화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똑바로 인지해야 합니다.”

현재 “내년 출판될 1970년대 아이슬란드를 배경으로 한 자전적 소설을 쓰고 있다”고 귀띔한 숀은 “굉장히 다양한 미디어와 협업했지만 딱 하나 못해본 것이 게임”이라고 밝혔다.

“저는 CD세대로 지금의 모바일 게임이나 플레이스테이션 등을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그래도 도전하고 싶어요. 매우 어려운 매체지만요. 게임이 전혀 다른 규칙과 가능성을 가지고 움직이는 산업이기 때문에 더 관심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만약 누군가 게임 프로젝트에 참여해 보겠냐고 제안을 주신다면 바로 응할 정도죠. 저는 언제나, 어떤 콜라보레이션에나 열려있습니다. 넘어설 수 있다면 그건 경계가 아니죠.”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