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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아들의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인 어머니

입력 2017-07-0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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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마리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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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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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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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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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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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기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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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

 


“딴 맘먹지 말고 죽으라”

어머니는 아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올바른 일을 하다 맞이하는 죽음에 당당하고 떳떳하게 맞서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효도라고 말이죠.

아들을 잃는 어머니의 심정은 이루 말 할 수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죽음을 맞이하는 아들을 자랑스러워했습니다.

1909년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에서 처단한 독립운동가, 도마 안중근 의사. 그리고 그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의 이야기입니다.

안중근 선생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가 7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되었습니다. 1862년 황해도 해주군에서 태어난 그녀는 안중근 등 3남 1녀를 낳았습니다.

1907년 국채보상운동이 전국적으로 퍼져가던 때 아들 안중근은 국채보상기성회 관서지부를 개설했고 어머니는 평안남도 ‘삼화항 은금폐지부인회’에서 20원 상당의 은제품을 헌납하고 참여를 독려했습니다.

※국채보상운동: 1907년 2월 대구에서 발단된 주권수호운동 차관 1300만원을 갚아 주권을 회복하고자 함

1909년 10월 26일, 국제적 사건이 터졌습니다. 중국 하얼빈 역에서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했고 그 자리에서 생포되었습니다.

어머니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옥중의 아들에게 한 통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네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 생각하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진 것이다. 항소를 한다면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 나라를 위한 일로 이에 이른즉 딴 맘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는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다. 아마도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너의 수의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재회하길 기대하지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거라.

안중근 의사는 1910년 3월 26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아들이 떠난 후로도 그녀는 독립운동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1922년 상하이로 이주해 임시정부를 재정적으로 후원하기 위해 ‘임시정부경제후원회’를 창립했습니다. 1927년 7월 15일 위암으로 서거하기까지 오로지 나라만을 생각했습니다.

정부는 2008년 조마리아 여사의 독립운동 공로를 인정해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습니다. 한편 7월의 독립운동가 조마리아 여사를 기념하기 위해 독립기념관에서 31일까지 사진 11점을 공개합니다.

박민지 기자 pmj@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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