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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봉준호도, 베르베르도, DC 짐 리도 매료된 라이브 드로잉 김정기 작가 ① “그림은 나”

[컬처스케이프]

입력 2021-05-07 18:15 | 신문게재 2021-05-07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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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기 작가
김정기 작가(사진=이철준 기자)

 

“그림은 그림 안에서만 놀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짧으면 5분, 길면 20분에 달하는 라디오프랑스필하모니오케스트라 연주에 맞춰 하나씩 하나씩 그려내는 협업(2019년 ‘아시아 몬스터, 김정기’ 드로잉 쇼)을 했는데 재밌었어요. 음악, 건축과도 섞일 수 있고 여러 장르가 만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그런 시대가 됐죠.”

‘라이브 드로잉 마스터’ 김정기는 그런 시대의 정점에 서 있는 작가다. 라디오프랑스필하모니오케스트라 뿐 아니다. 봉준호 감독 ‘기생충’의 예고편,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파라다이스’ ‘제3인류’(이상 2003년), 마블의 ‘시빌워’, DC코믹스의 커버 아트, 넷플릭스 인기 시리즈 ‘기묘한 이야기’, 블리자드사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격전의 아제로스’, SM엔터테인먼트의 프로젝트 그룹 슈퍼M(백현·태민·카이·태용·마크·루카스·텐)의 ‘호랑이’ 뮤직비디오, 드렁큰 타이거의 마지막이자 데뷔 20주년 기념 앨범 ‘Drunken Tiger X: Rebirth of Tiger JK’ 등 그에게 러브콜을 보내는 이들은 국내외를 넘나드는 대가들이다. 

 

‘기생충’ 아카데미 4관왕 수상 후에야 만난 봉준호 감독은 “전체 영상을 느긋하게 보고 싶다”고 했고 집에 초청받을 정도로 오래 인연을 이어온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자신의 작품을 김정기 작가가 꼭 만화화해주기를 고대하고 있다. DC코믹스 발행인이자 DC엔터테인먼트의 CCO 짐 리는 “이름 없는 작가 ‘김정기’에게 손을 먼저 내밀어 준” 사람이다. 

 

김정기 작가
김정기 작가(사진=이철준 기자)

“그분 도움을 정말 많이 받았어요. 그 어렵다는 샌디에이고 코믹콘에 자리를 만드는 데 힘써 주셔서 6개월 만에 참가해 이름을 알릴 수 있었어요. 본인이 알고 계신 마블, DC 사람들을 소개해주시기도 하셨죠.”

 

김정기 작가는 이를 ‘인복’(人福)이라고 표현했지만 전세계를 아우르는 대가들을 사로잡는 건 ‘마스터’라고 평가받는 그의 작품들이다. 아무 것도 없는 백지에 구도를 잡는 행위나 라인스케치도 없이 그 자리에서 바로바로 그려내는 그의 작품은 해외 예술가들의 표현을 빌자면 “경이롭다.”


◇경이로운 라이브 드로잉 마스터 김정기

“저를 보고 외국 작가들이 놀라한 건 머릿속에 있는 걸 그린다는 거였어요. 보통은 모델이 있거나 사진이라도 보고 그리곤 하는데 저는 백지에 막 그려냈으니까요. 보통 ‘오리너구리’를 그리려면 자료를 찾고 영상을 보고 박제를 섭외하고 박물관에 방문해 사진을 찍는 등 여러 과정이 걸리는데 저는 바로 백지 위에 그리기 시작했거든요.”

그리곤 “평소에 관찰을 많이 하는 편”이라며 “오리너구리를 그린다면 동물원에서 본 이미지, ‘동물의 왕국’ ‘내셔널 지오그래픽’ 등에서 본 이미지를 바로바로 띄울 수 있고 그 이미지들을 머릿속에서 빠르게 조합한다”고 설명했다.

“기억, 배경지식 등을 많이 가지고 있다가 ‘그려야지’ 하면 순식간에 꺼내서 3D화 시켜요. 입체화시켜 어느 각도에서 그릴지를 빠른 속도로 결정하고 손으로 옮기죠. 머릿속에 100% 이미지가 잡혀 있으면 어디서부터 그리든 상관없어요.”

이어 “사람 하나에 대한 이미지가 잡히면 새끼발가락부터 그리기 시작해도 머리까지 그릴 수 있다”며 “큰 그림의 경우는 6, 70% 정도의 이미지를 가지고 그리기 시작한다”고 털어놓았다.
 

김정기 디아더 사이드
라이브 드로잉의 대가 김정기 국내 첫 개인전 ‘김정기, 디인사이드’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머릿속 생각을 백지에 띄엄띄엄 배치해두고 애드리브로 사이사이를 연결시켜 완성하죠. 평소 그릴 때는 두 가지 방식을 복합적으로 활용해요. 우선 생각 다하고 그리고 그리면서 생각하고.”


그런 그의 그림들은 지난달 16일 개막한 국내 첫 개인전 ‘김정기, 디아더사이드’(Ki, Junggi, The Other Side, 7월 11일까지 롯데뮤지엄)에서 만날 수 있다. 전시장에서 월요일부터 목요일, 격주 토요일에 라이브 드로잉 퍼포먼스로 한국 팬들을 만나고 있는 그는 “그 동안은 한국 활동이 활발하지 않았다.” 

 

그는 “80%가 해외 활동이다 보니 1년의 반 이상을 외국에서 지내느라 한국 관람객들은 직접 만날 기회가 없었다”며 “이번 개인전을 통해 직접 만나 소통하고 제 그림에 대해 설명도 해드릴 수 있어서 너무 좋다”고 털어놓았다.

 

“첫 단계는 뭘 그려야할지 생각하는 거예요. 사물이 될 수도 있고 사람일 수도 있고 상황이 될 수도 있죠. 그들 중 가장 주인공, 포인트가 될 만한 걸 제일 먼저 그리고 나머지는 퍼뜨려 나가요. 많은 걸 그리다 보니 패턴화돼 있고 구조적 요소들을 캐치할 능력들이 생겼어요.”
 

김정기 작가
국내 첫 개인전 ‘김정기, 디아더사이드’에서 라이브 드로잉 퍼포먼스 중인 김정기 작가(사진=이철준 기자)

 

그리곤 전시회에서 선보이고 있는 라이브 드로잉 퍼포먼스에서 그렸던 방직공장을 예로 들었다. 그는 “방직공장에 견학을 간 적도 없고 뉴스에서 몇 번 본 게 다였다”며 “뉴스에서 봤던 이미지를 떠올려 그곳에 있을 법한 실뭉치 등을 덧그려 방직기계구나 싶게 만드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는 ‘해와 달’에서 제일 먼저 그린 건 호랑이의 사나운 얼굴이었어요. 그 얼굴과 앞발 하나 그리고 오른쪽 맨 구석의 집부터 그리기 시작해 해와 달 그리고 로켓을 제일 마지막에 그렸죠. 그 과정이 머릿속에 다 있어요. 마지막까지 안정해진 게 동아줄이었어요. 그걸 로켓으로 바꿔 호랑이는 추진체에 타서 떨어지고 남매는 해와 달로 가도록 바꿨죠.”

예술가들에게는 흔한 “슬럼프도 겪어 본 적이 없는” 그는 술도, 담배도, 게임도 하지 않는다. 오롯이 그림에만 빠져 그리고 또 그리는 그는 “전시를 준비하면서 모아둔 작품을 뽑아보니 7000점이 넘었다. 정말 많이도 그렸더라”며 그려온 걸 보면서 제 변화과정도 볼 수 있어 뜻깊은 시간이었다”고 전했다.

 

첫 개인전이다 보니 잘 알려지고 큰 그림들을 위주로 선정했어요. 해외에 팔린 그림들 중에도 보여드리고 싶은 작품들이 많았지만 들여오기 어려워 보여드리지 못하는 게 아쉬워요. 하지만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어떤 시기에 어떤 활동을 했고 어떤 느낌의 작품들을 했는지를 되새김질하는 좋은 기회가 됐어요. 이 에너지를 가지고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도록 지지대도 잘 다진 것 같아요.”


◇그림은 나 자체, 라이브 드로잉은 소통창구 


김정기 작가
김정기 작가(사진=이철준 기자)

 

“그림은 저의 재미이자 일이자 취미생활이에요. 어떤 때는 아프게 하기도 하죠. 안될 때는 정말 짜증나고 쳐다보기도 싫거든요. 그렇게 그림은 일상이 됐어요. 태어나면서부터 옆에서 늘 같이 가는, 저의 희로애락과도 같죠. 라이브 드로잉은 다른 사람과의 소통 창구, 바깥세상과 연결시키는 끈이에요.”

김정기 작가는 “평소에는 소통을 잘 안하는 편”이라며 “SNS를 하지만 올리기만 할 뿐 댓글을 읽거나 답을 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라이브 드로잉을 하면서는 소통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을 보탰다.

“저에게 그림은 세상을 보고 기록하는 거예요. 저는 사진도 잘 안찍어요. 눈으로 보느라 사진 찍을 시간이 없거든요. 눈으로 보고 눈으로 찍는다고 생각해요. 시각적 기억 능력은 어려서부터 좋았던 것 같아요. 따로 훈련을 한 것도 아닌데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어요. 어려서 그림일기를 그리면 집요하게 그렸어요.” 

 

김정기 작가
김정기 작가(사진=이철준 기자)
그리곤 “엄마한테 사달라고 했는데 안사준 운동화가 있었다. 사람은 단순하게 그리곤 운동화는 바늘 한땀 한땀까지 다 그렸다” 예를 들며 “그러다 보니 이미지로 저장하는 저만의 노하우도 생기고 오래 기억하는 방법들도 알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그렇게 어려서부터 이어온 그의 작품에는 “지금의 관심사, 가지고 싶은 것들, 그리고 싶은 것들이 전부 투영돼 있다.” 그는 “모든 그림이 일상으로 연결되고 그렇게 오래 그리다 보니 스펙트럼이 넓어졌다”고 부연했다.

“어디를 가든 어떤 사람을 만나든 언제나 그림과의 관계에서 생각해요. ‘악당으로 쓰면 괜찮은 얼굴인데’라든가 ‘누구 제자랑 닮았는데’ 식으로 나름 기억하는 방식들이 있죠. 젊어서는 영화, 뮤직비디오, 사진 등 자극적인 시각요소들에서 영감을 받았다면 최근에는 내 주변의 것들이 더 재밌어지기 시작했어요.”

일상 속 이야기, 스스로의 취향에서 영감을 얻는다는 김정기 작가는 최근 관심거리이자 사회적 문제로 건강을 꼽았다. “한창 몸이 좋을 때는 82kg까지 나갔다”던 그는 해외 활동이 잦아지고 작업량이 많아지며서 절로 살이 내려 체력의 한계를 느끼곤 한단다.

“저는 언제나 제 위주로 생각해요. 요즘 가장 많이 생각하는 건 코로나19와 건강이에요. 젊어서 열심히 했던 운동으로 버티며 미래의 체력을 당겨서 쓰고 있는 것 같아요. 미래 걸 당겨 썼으니 이제 앞으로가 큰일이죠. 예전이라면 쳐다보지도 않던 건강관련 기사들을 찾아보고 있어요. 미나리 반찬도 먹고 삼겹살과도 먹고 그래요.”

이어 “그러면서 인체에 관심도 많아졌고 수술하는 과정 등의 이슈들이 그림에 많이 반영되고 있다. 이번 전시의 ‘네버 기브업’ 등이 그 예”라며 “이번 전시에 선보인 신작 ‘해와 달’처럼 한국 전래동화, 서양의 신화들의 재해석도 최근 들어 집중하고 있는 작업”이라고 털어놓았다.

“저는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본 적이 없어요. 언제나 그날그날, 하루를 잘하고 재밌게 보내고 내일이 오면 또 내일 재밌게 잘하자 생각하죠. 그렇게 그림을 재미있게 그리는 작가이고 싶어요. 제가 그림 그리는 모습을 본 누군가에게 ‘나도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게 만드는, 그런 작가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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