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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실제 ‘막장’에서 인생 ‘막장’으로의 확장, 그 회복을 위한 '작은 위안'… ‘광부화가’ 황재형의 ‘회천’(回天)

[문화공작소]

입력 2021-05-10 18:00 | 신문게재 2021-05-11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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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재형 ‘회천’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질 흙은 있어도 누울 땅은 없는 이들을 위한 작은 위안을 주고 싶었어요. 우리가 성실한 이웃들에게 가지는 작은 위안을 배제할 수도, 프랑스식으로 ‘똘레랑스’라고 얘기할 수도 없는 시대예요. 우리가 조금 더 생각해야하고 같이 해야하는 것들을 이번 전시에 ‘회천’(回天)이라는 말로 담았습니다.”

‘광부화가’로 1980년대 민중미술사에 한획을 그은 리얼리스트 황재형은 회고전의 제목 ‘회천’(8월 22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며 “편안한 잠을 자는 이들에게는 경각심을, 불편한 잠자리를 갖는 이에게는 위안과 위로를 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는 ‘회천’에 대해 “목은 이색 선생이 임금에게 올린 상소에서 나온 문구이고 공재 윤두선의 글이나 그림에도 ‘회천’이 드러나 있다”고 부연했다. 회천은 천자(天子)나 제왕의 마음을 돌이킴 혹은 형세나 국면을 크게 바꾸어 쇠퇴한 세력을 회복함을 이르는 말로 이번 전시에서는 “정신적, 물리적 군사혁명이나 쿠테타가 아닌 진정한 가치관의 전복”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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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천’ 전시장의 황재형 작가(사진=허미선 기자)


“가진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사람들에게 배우고, 의지할 여지가 큰 사람들이 의지할 길 없는 이들에게 배우고, 배운 이들이 못배운 사람들에게 배우는 ‘전복’이죠. 이것들이 실현되는 내일이야 말로 대량생산 체제 속에서 생겨나는 부조리들, 곧 닥칠 재앙을 막는 길이 될 거예요.”

황재형은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회화과 재학시설 같은 대학 박흥순, 전준엽, 이종구, 이명복, 조선대 송창, 영남대 천광호 등과 ‘임술년, “구만팔천구백구십이”에서’(이하 임술년)라는 민중미술 소그룹을 결성해 활동을 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임술년 활동 중 그린 ‘황지330’(1981)으로 1982년 개최된 제5회 중앙미술대전 장려상 수상 직후 강원도에 정착해 태백, 삼척, 정선 등에서 광부로 일하며 ‘광부화가’로 불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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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재형 ‘회천’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그의 개인전 ‘회천’은 리얼리스트이자 민중화가로서 삶과 예술을 일치시키고자 했던 황재형이 ‘광부화가’라는 정체성 안에서 차곡차곡 쌓아 올린 예술적 성취를 조망하는 전시다. 제5회 중앙미술대전 장려상 수상작 ‘황지 330’을 비롯해 ‘백두대간’(1993~2004) 등 그의 대표작과 13미터짜리 대형 신작 ‘메탈지그’(2021) 등 유화 중심의 회화, 입체조형물 등 65점이 전시된다. 

 

전시는 ‘광부와 화가’ ‘태백에서 동해로’ ‘실재의 얼굴’ 3개부로 구성된다. 1부 ‘광부와 화가’는 중앙대 재학시절인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를 반추하면서 그린 인물 그림들이 주를 이룬다. 노동자가 언제든 대체될 익명의 존재임을 보여주는 콜라주 ‘황지330’, 랜턴에 의지해 밥을 먹는 광부들의 ‘식사’(1985) 등 광부로 일한 경험을 담은 작품에는 경제적 가치가 인간 존엄성을 압도하는 시대상이 스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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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재형 ‘회천’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안경 쓴 사람은 광부가 될 수 없던 시절 결막염으로 광부를 그만두어야 했던 황재형은 물질적 요소를 탐구해 예술로 승화했다.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에 늘어난 폐광과 폐품, 오물들. 그 시대를 목도하며 실제생활에서 탈각한 사물을 캔버스로 끌어들이는 데 몰두했던 1900년대 이후의 ‘작은 탄천의 노을’(2008), ‘백두대간’ 등은 2부 ‘태백에서 동해로’에 담겼다. 사실성을 대상의 내적 차원으로 확장시킨 시기로 현실을 형상화하기 위해 석탄가루를 섞어 작업했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3부 ‘실재의 얼굴’은 인물과 풍경, 과거와 현재가 통합되는 작품들이 전시됐다. 탄광촌의 광부와 주변 풍경과 더불어 세월호, 국정농단 등 동시대 이슈들을 담은 ‘아버지의 자리’(2011~2013), 흑연으로 역사의 시간성을 표현한 ‘알혼섬’(2016), 유화로 작업했던 광부의 초상을 실제 머리카락으로 재작업한 ‘드러난 얼굴’(2017) 등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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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재형 ‘회천’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막장에서 생긴 흉터가 내려앉은 인중, 눈물과 주름, 희끗해진 머리 등 산업전사였지만 은퇴한 광부를 극사실주의 기법으로 표현한 ‘아버지의 자리’는 모두의 아버지를 떠올리게 한다. 최근작인 ‘메탈지그’는 낚시에 사용되는 가짜 미끼를 비현실적으로 확대시킨 조형작품으로 “가짜 미끼를 삶 속에서 분출되는 인간의 욕망에 빗댄다.”

 

“착해서, 속이지 못해 더욱 힘든 이웃들에게 상장처럼 주고 싶어서, 작은 위안이 되라고 그린 그림들이 이렇게 찬사를 받을지 몰랐어요. 코로나19로 힘든 지금 전국민을 위로하는 ‘작은 위안’이 필요한 시대라는 생각이 듭니다. 스스로는 물론 타인을 위해 자발적으로 마스크를 쓰고 외출을 자제하고 사회적 거리를 두고…그렇게 자발적 공생이 이루어질 때 그 사회의 미래는 찬란해질 수밖에 없거든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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