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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세계적인 초상화작가 엘리자베스 페이튼, ‘해피투게더’ 양조위에 투영되다

[Culture Board] 세계적 초상화가 엘리자베스 페이튼 국내 첫 개인전

입력 2021-06-16 18:30 | 신문게재 2021-06-17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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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고독해지면 똑같다는 걸 깨달았다.”

세계적인 초상화작가 엘리자베스 페이튼(Elizabeth Peyton)의 국내 첫 전시(7월 31일까지 리안갤러리 서울)에서 만난 ‘Tony Leung Chiu-Wai’(Happy Together)에서는 왕가위 감독의 영화 ‘해피투게더’ 중 양조위가 연기한 아휘의 이 처연한 독백이 들리는 듯했다.

초상화 작가지만 피사체에 작가 자신을 투영해 표현하는 엘리자베스 페이튼은 “영화 ‘해피투게더’의 연인인 아휘(양조위)·보영(장국영) 중 진심을 다해(Sincerely) 처절하고도 한결같은 사랑을 하는 양조위에 더 공감했다”고 그림을 그린 이유를 전했다. 국내 최초로 열리는 개인전에서는 살면서 영감을 준 인물, 인상 깊게 본 영화, 연극, 미술작품 등을 직관적이면서도 감성적으로 자기화해 표현한 엘리자베스 페이튼의 작품 세계를 만날 수 있다.  

 

엘리자베스페이튼
세계적인 초상화 작가 엘리자베스 페이튼의 자화상 ‘Elizabeth’(왼쪽)와 ‘E(Reflection)’(사진=허미선 기자)

 

‘Tony Leung Chiu-Wai’(Happy Together)를 비롯해 흑인 노예제 폐지를 이끌었던 정치가 프레더릭 더글러스(Frederick Douglass), 자신의 어시스턴스 ‘라라’(Lara Sturigis) 등 인물화와 이탈리아 화가 티치아노 (Vecellio Tiziano)의 ‘전원 음악회’(Pastoral)를 바탕으로 한 ‘더 프렌드’(The Friend)와 ‘더 프렌즈’(The Friends after Titian’s Pastoral Concert 1509) 두점, 영국 화가 에드워드 버네 존스(Edward Burne-Jones)의 ‘장미정원’(The Rose Bower)을 본 뜬 ‘나이트 드리밍’(Knight Dreaming (K) After EB, 2016) 등 유화, 수채화, 드로잉, 모노타입 11점이 전시된다.

이 중 ‘나이트 드리밍’과 ‘투탕카멘’(Tutankhamun, 2020)을 제외하고는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로 그린 신작들이다. ‘더 프렌즈’는 티치아노의 작품이지만 한때 그의 스승이자 베네치아 화파의 창시자 조르조네(Giorgione)의 것으로 여겨졌던 ‘전원음악회’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엘리자베스 페이튼
세계적인 초상화 작가 엘리자베스 페이튼 개인전 중 티치아노의 ‘전원음악회’를 바탕으로 한 ‘더 프렌즈(The Friends after Titian‘s Pastoral Concert 1509)’(사진=허미선 기자)

티치아노의 ‘전원음악회’ 중 얼굴을 마주보고 있는 두 인물에 티치아노와 조르조네를 투영해 예술적으로 변주한 초상화다.  

 

이번 한국 첫 개인전은 5년여 전 안혜령 리안갤러리 서울 대표의 안목에서 기인한다. 그는 “어느 아트페어에서 넓은 기둥에 걸린 아주 작은 ‘폴 매카트니’ 초상화를 봤는데 임팩트가 엄청 컸다. 그림은 작지만 스토리가 있었고 강렬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너무 사고 싶었지만 수십만불을 훌쩍 넘기는 가격이었다. 게다가 작업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품들로 원화를 구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며 “그때부터 오래도록 ‘우리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하면 좋겠다’고 꿈에 그리던 작가”라고 소개했다.

안 대표에 따르면 “3년 전 (엘리자베스 페이튼이 전속작가로 있는) 영국 런던의 사디콜(Sadie Coles HQ)에서 우리 갤러리를 방문해 함께 일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쳐” 시작된 엘리자베스 페이튼의 개인전은 개최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후 직접 공간을 보고 싶다며 사전 연락 없이 리안갤러리 서울을 방문한 엘리자베스 페이튼이 ‘전시회를 꼭 하고 싶다’고 전하기도.

어렵게 전시 성사 후 코로나19 팬데믹 장기화로 한국을 방문할 수 없게 된 엘리자베스 페이튼과 영상통화로 소통하며 전시 준비를 함께 해온 이홍원 리안갤러리 이사는 “이미 몇점은 판매예약된 상태”라며 “작가가 굉장히 꼼꼼하다. 하나 하나 직접 디자인했고 캡션까지 직접 챙기는 열의를 보였다”고 전했다.

엘리자베스 페이튼은 나폴레옹, 엘리자베스 1세, 마리 앙투아네트 등 역사적 인물과 존 레논, 폴 매카트니, 커트 코베인, 오아시스 등의 록스타, 앤디 워홀, 데이비드 호크니, 마크 제이콥스, 살바도르 달리 등 유명 아티스트들, 주변 지인 그리고 자신에게 영감을 주는 영화, 연극, 미술작품 등 의미있는 대상을 유화, 수채화, 파스텔과 색연필을 활용한 드로잉, 판화 등 다양한 매체로 표현하는 작가다.

그의 작품 특징은 작은 화폭에 빠르고 선명한 붓질로 직관적이면서도 불명확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작은 크기에 대해 그는 “관람자와 작품 속 인물 간 물리적·심리적 거리를 좁히기 위함”이라고 전한 것으로 알려진다. 

 

엘리자베스 페이튼
엘리자베스 페이튼 개인전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파리 퐁피두센터, 스위스 쿤스트뮤지엄 바젤, 뉴욕 현대미술관(MoMA) 등 유수의 글로벌 미술관 컬렉션에 이름을 올린 그는 1993년 미술관이나 갤러리가 아닌 첼시 호텔에서의 첫 전시로 데뷔했다. 그를 발굴한 뉴욕의 갤러리스트 개빈 브라운(Gavin Brown)은 첼시 호텔 828호에서 개인전을 진행했다.

나폴레옹, 마리 앙투아네트, 엘리자베스 1세 등을 목탄과 잉크로 그린 흑백 초상화 21점이 걸린 전시회 방문자들은 호텔 프런트에서 열쇠를 받아 관람하는 특이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데뷔 개인전부터 범상치 않았던 엘리자베스 페이튼은 전문가, 평론가, 미술애호가들로부터 작품세계를 인정받고 급부상해 세계적인 초상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제14회 래리 알드리치 상을 수상했고 베니스·휘트니 비엔날레를 비롯해 뉴욕 뉴뮤지엄 개인전(2008)을 시작으로 한 순회 전시, 런던 국립 초상화 미술관(2019), 중국 UCCA 현대미술센터(2020), 일본 도쿄 하라미술관(2017) 등에서 회고전을 가지기도 했다.

따로 제목이 없는 이번 전시에서는 ‘Tony Leung Chiu-Wai’(Happy Together)를 비롯해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디테일을 살려 살아 있는 것처럼 표현한 ‘프레더릭 더글라스’ 그리고 거울을 보고 그린 자화상 ‘엘리자베스’와 그의 또 다른 투영인 ‘E(Reflection)’가 눈여겨 볼 만하다. 특히 ‘E(Reflection)’에 대해 이홍원 이사는 “유리 위에 그리고 판화처럼 찍은, 판화지만 에디션이 없는 유니크한 작품”이라며 “작가가 회상·성찰과 반사로 인한 반대 이미지 등을 뜻하는 ‘리플렉션’이라는 단어에 흥미를 가지고 진행한 작업”이라고 귀띔했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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