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위치 : > 비바100 > Leisure(여가) > 영화연극

[비바100] 내 생애 마지막 음식은 바로 이것!

[이희승의 영화보다 요리] 생김을 먹는 색다른 즐거움
감태와 매생이까지 아는 당신은 진정한 미각천재

입력 2022-05-19 18:30 | 신문게재 2022-05-20 11면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인스타그램
  • 밴드
  • 프린트
김먹방1
전설의 짤로 탄생된 영화 ‘황해’속 하정우 김먹방.(사진제공=쇼박스)

 

먹던 돼지 뒷다리로 사람을 패서 죽일 정도로 살벌한 남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면가(김윤석). 한국에 간 아내와 연락이 끊긴 채 마작판을 전전하는 구남(하정우)에게 “사람 하나만 죽여달라”고 살인 청부를 의뢰한다. 절박한 현실에서 구남에게 이 일은 아내를 만남과 동시에 돈을 벌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그렇게 구남이 황해를 건너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나홍진 감독이 ‘추격자’ 이후 출연진과 또다시 뭉친 ‘황해’는 그 화제성만큼이나 전작의 흥행을 고스란히 이어갔다. 지금 봐도 비릿한 피냄새가 연상될 정도로 날 것 그대로의 연출이 빛을 발한다. 아이러니 하지만 이 영화를 보면 볼 수록 하정우가 보여주는 먹방을 입에 침이 고인다. 그가 잠복하던 집 앞 편의점에서 핫바를 구겨 넣는 모습이나 허겁지겁 김을 한 웅큼 입에 넣는 바로 그 장면이다.

만약 누군가 인생의 마지막 한끼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단연코 쌀밥에 굽지 않은 생김 그리고 파를 송송 썰어놓고 참기름을 섞은 양념장을 선택하겠노라고 예전부터 생각했다.

이왕이면 거친 파래김이면 더 좋다. 다들 재래김이나 곱창김이라 불리는 돌김을 떠올리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예전에는 김보다 파래김이 더 저렴했는데 그나마 그 당시의 두꺼운 파래김을 요즘은 구할 길이 없다. 시중에 나오는 파래김을 보면 김이 8할 이상, 거기에 살짝 파래가 섞여있는 정도다. 

서울 자양동의 노룬산 시장에서 10년째 김을 구워 팔고 있는 단골 사장님 말로는 “파래로 김을 만들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라고 들었다. 그나마 국내에는 찾는 사람도 거의 없으니 만들지 않는 것”이라면서 “좋은 김은 미리 일본이나 외국 바이어가 선점해서 만들자마자 수출된다더라”고 국내 김시장 현실을 들려준다.

해수부
김 10억 달러 수출 달성 기원 10m 김밥 만들기 부대행사가 지난 17일 진행됐다.(사진제공=해양수산부)

 

실제로 해수부는 음력 1월 15일을 ‘김의 날’로 정해 2011년부터 ‘김의 날’ 기념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김에 오곡밥을 싸먹으며 복을 기원한 정월대보름 ‘김 복쌈’ 전통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는 지난 19일 전라남도 목포시에서 ‘김의 날’ 기념행사가 개최됐다. 김은 지난해 수산물 수출 금액 28억 달러 중 6억 9000만 달러를 차지하는 등 매년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김은 우리나라 농수산식품 전체를 통틀어서도 수출 1위에 오른 효자 식품이다.

한국김수출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러시아 김 수출 실적은 4699만 달러로 2020년(3114만 달러)에 비해 50.8% 가량 늘었다. 수출액으로 따지면 미국과 중국, 일본에 이은 4위 수출국이다. 전쟁도 러시아의 ‘김 사랑’을 막지 못했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인 3월과 4월 각각 186만 달러, 152만 달러를 러시아에 수출했다. 한국김수출협회 최병락 부장이 “러시아에서 한류 영향 등으로 ‘한국식 김밥’이 최근 들어 인기가 늘고 있다”고 밝혔을 정도.

김먹방
2주 간의 자가격리중 숙소에서 먹은 김을 자신의 SNS에 올린 올가 쿠릴렌코.(본인 SNS캡처)

 

실제로 해외 스타들의 김사랑은 이미 유명하다. 2년 전 영화 ‘배니싱: 미제사건’의 촬영차 입국한 ‘본드걸’ 올가 쿠릴렌코는 자가격리 중 김에  중독된 자신의 근황을 알려 큰 화제를 모았다. 자가격리기간 동안 김으로 만든 스낵은 물론 조미김으로 밥을 싸 먹는 인증샷을 올리기도 했다.

나는 아직도 어린시절 친구가 도시락 반찬으로 싸온 그 두꺼운 파래김의 맛을 잊지 못한다. 엄마에게 파래김을 먹고 싶다고 졸라보기도 했는데 언제나 손 끝에 기름을 묻혀(기름을 바르는 솔도 있었는데 털이 빠질 수도 있다고 결코 쓰지 않으셨다) 서너 군데 찍은 뒤 펴서 소금으로 재운 뒤 먹기 직전 구워주셨다.

아이만 넷. 총 여섯 식구의 저녁 밥상에 올라온 갓 구운 김은 언제나 가장 빨리 없어지는 반찬이었다. 행여나 두장을 싸 먹으면 언니들이 이르는 탓에 싸움이 나기 일쑤였다. 그 당시는 밥상머리에서 싸우는 자식들은 매가 약이었을 때다.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 막 구운 김을 대형마트에서도 쉽게 구하고 조미김이 1+1으로 팔리는 시대가 됐지만 예전의 그 맛은 찾을 수 가 없어서일까. 나는 언제부턴가 기름에 재 구운 김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언젠가 전라남도 어딘가의 한정식 집에서 먹은 생김 덕분이기도 하다. 김 자체가 가진 윤기가 이런 거였나 싶을 정도로 까맣고 쌀의 단맛과 기가 막히게 잘 어울렸다. 그저 ‘JUST 김’이라고 말하는 듯한 그런 김이었다.

생김이 맛있다는 걸 알았지만 시중에 파는 생김은 썩 맛있지는 않다. 종류나 가격이 천차만별이기도 하고 차라리 김밥용 김을 먹는 것을 추천한다. 김밥용으로 나온 김이 파래의 비중도 높고 의외로 바삭하기까지 하니 개인 취향에 따라 골라보길 추천한다. 100장으로 묵어 파는 탓에 보관도 쉽지 않은 게 생김의 단점이기도 한데 김밥용김은 많아야 10장이 들었으니 경제적으로도 좋다.

김은 좋아하지만 김가루를 뿌리는 건 어느 음식에나 반대다. 떡국에는 고명, 주먹밥에는 후리가케가 국물이다. 김가루가 얹어지는 순간 모양은 살릴 순 있어도 기본 음식이 가진 매력은 반감되니 신기한 노릇이다.

매생이
해마다 겨울이면 잔뜩 사서 냉동해 놓는 매생이. 1년이 든든하다.(사진=이희승기자)

 

김의 사촌인 감태와 미운 사위에게 준다는 매생이도 한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으니 조심해야 한다. 너무 얇고 비싸서 입에 넣는 순간 녹는 감태는 입으로 먹는 비단에 비견할 만하다. 국내에서 겨울에만 나는 매생이는 다음날 화장실에서 그 진가를 확인할 수 있는 ‘변비계의 에르메스’다. 

물에 세척할 때마다 반은 버릴 각오로 씻어야 하지만 미역국 끓이듯이 참기름에 볶다 간장을 넣고 끓여내면 보양식이 따로 없다. 조심해서 먹지 않으면 입천장을 데이는 탓에 ‘미운 사위 국’이라는 재미난 별명이 붙었지만 건강측면에서는 사위사랑은 장모일 정도로 숙취와 피로해소에 이만한 존재가 없다. 김을 소개한다는 것이 너무 많이 옆길로 샜다.


[맛있는 김 고르는 방법]

① 개인의 취향에 따라 돌김, 곱창김, 파래김을 고르되 꼭 생김이어야 한다. 
② 김밥용 김을 선택했을 경우 거친 면이 밥을 까는 용도다. 그래야 재료가 잘 붙는다는 데 식용에는 별 차이가 없다. 
③ 좋은 김일수록 물에 잘 풀린다. 물 위에 그냥 떠 있다면 조직이 균일하지 않다는 뜻이다. 
④ 양념장 역시 개인이 선택해야 하지만 간장과 들(참)기름의 비율이 같아야 확실히 찍어먹는 맛이 있다. 
⑤ 그렇게 먹으려면 생김을 왜 먹냐고 되묻는다면 일단 먹어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기름을 바르고 구운 김보다 생김을 기름장에 살짝 찍어먹는 맛은 천지 차이다. 단 탕수육을 찍어 먹느냐 부어먹느냐로 맛이 달라지는 걸 이해하는 사람만 도전할 것.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 인스타그램
  • 프린트

기획시리즈

  • 많이본뉴스
  • 최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