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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칼럼] 문재인 정부의 사회적 가치와 시장경제

입력 2022-06-13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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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문재인 정부는 ‘정부혁신 종합 추진계획’을 발표하였다. ‘비전-목표-3대 전략’의 ‘정부혁신 체계도’에서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첫 번째 전략은 ‘정부운영을 사회적 가치 중심으로 전환한다’는 것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사회적 가치’를 ‘공공의 이익과 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하는 가치’로 규정하며 보다 구체적으로는 인권, 안전, 환경, 복지, 공동체, 사회적 약자배려, 양질의 일자리, 시민참여, 대기업-중소기업간 상생, 지역사회 활성화 등 여러 가지 가치들을 의미한다고 설명하였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그 이전의 모든 정부들과 구분되는 매우 특이한 전략이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 경제개발 이후 역대 모든 정부에서 내용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정부역할의 초점을 시장실패 교정에 맞추었다. 민간의 시장이 자율적으로 수행하기 어려운 역할을 정부가 수행해야 한다고 인식했던 것이다. 시장과 정부가 추구하는 가치에는 차이가 없고, 그 수단으로서 시장은 부족한 부분이 있기에 정부의 역할이 요구된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정부가 민간의 시장이 추구하는 가치와 다른 ‘사회적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고 인식하였다.

이러한 인식은 매우 심각하고도 위험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많은 지식인들이 문재인 정부에 대해 제기했던 의문은 바로 이것이다. 과연 시장은 ‘공공의 이익과 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하는 사회적 가치’와 무관한 것인가? 문재인 정부에 의하면, 정부가 추구해야 하는 ‘사회적 가치’는 시장이 추구하는 가치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는 국가유기체적 가치관으로 절대주의 국가로 빠트릴 위험을 수반하고 있다.

21세기에 들어와 형성된 전세계의 보편적 인식과 정통적 가치관은 시장이 추구하는 가치가 정부가 추구하는 가치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국민의 자유와 행복이라는 근본적 가치를 추구하는 수단이라는 점에서 시장과 정부는 동일하다. 가치추구의 수단으로서 시장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정부가 필요하고, 또 정부의 역할에도 많은 문제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시장친화적인 정부혁신이 필요하다. 이처럼 정부혁신은 시장실패와 정부실패 사이에 균형을 잡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강제성에 기반하기에 정부역할 확대에는 훨씬 더 조심해야 한다.

시장이 ‘공공의 이익과 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하는 사회적 가치’를 갖는 이유는 시장이 개인들의 생존과 존엄에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개인들이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과 거래를 할 수 있다면 시장의 영역은 확대되고 개인들이 획득하는 재화와 서비스의 양도 늘어날 것이다. 이러한 비인격적 교환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적 안전장치는 -법의 규칙과 그 집행체제의 확립- 곧 공공의 이익과 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다. 인격적 교환에 수반되는 신뢰를 비인격적 교환을 가능하게 하는 법치로 대체하는 것이 곧 정부의 기본 역할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의 시장에서는 편익과 대가의 대응관계가 직접적이고도 구체적이기보다 매우 느슨한 형태로 존재하기도 한다. 공공재에서 무임승차(free ride)가 가능한 이유는 개인이 지불하는 대가와 획득하는 편익 사이의 관계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대가를 지급하는 구매자가 그 편익을 적절하게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에도(‘정보의 불완전성’으로 표현된다) 편익-대가의 관계가 느슨하다. 예컨대 환자는 의사가 제공하는 의료서비스를, 학생은 선생님이 제공하는 교육서비스를, 기부자는 자선단체가 제공하는 자선서비스를 속속들이 파악하기가 매우 어렵다.

이처럼 대가관계가 느슨할 때에는 시장의 참여자들이 보다 더 정직하고 성실해야 시장실패를 줄일 수 있다. 무임승차의 유인이 있을 때 구매자들이 조직을 형성하고 그 조직 내에서 보다 정직하게 행동하는 거버넌스를 확립하면 공공재 재원은 충분히 조성될 수 있다. 또한 구매자가 기업조직의 산출물(또는 서비스) 내용을 적절하게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이윤배당 금지’가 요구되는 비영리조직을 통해 종업원들의 정직하고 성실한 행동을 유도할 수 있다. 이처럼 느슨한 대가관계에서는 조직 구성원들의 정직과 성실이 중요한데, 우리는 이들의 사명감을 공직가치(public service value)라 부른다. 그리고 공직가치 제고를 위한 일련의 노력들을 사회적 경제(social economy)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시장경제라 하더라도 자유로운 거래가 아예 허용되지 않아야 하는 영역들도 존재한다. 신체의 자유가 있다고 하여 장기매매, 성매매를 자유로이 허용할 수 없고, 자신이 자유로이 행사할 수 있다고 하여 다른 사람에게 투표권을 매각하도록 허용할 수는 없다. 인류의 정치사회적 발전이 한 편에서는 시장경제의 발전이었다면 다른 한편에서는 인간권리의 보편적 보호가 병행하여 나타났다. 인간권리에 포함되는 내용들은 지역과 시대에 따라 다르지만 모든 인간들에게 무조건적, 보편적, 획일적으로 보장돼야 할 최소한의 요건이라는 성격에는 변함이 없다. 역사적으로 등장한 다양한 권리선언들은 모두 개인들에게 보장해야 할 서비스의 표준약관이라 할 수 있는데, 20세기 중반에는 최저한의 생활보장이라는 생존권이 포함되기도 하였다.

결국 ‘사회적 가치’는 시장경제의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시장과 정부는 동일한 가치를 추구하는 서로 다른 수단일 뿐이다. 시장에서 편익-대가의 관계가 느슨할 때에는 공직가치의 제고를 통해, 자유로운 거래를 허용하지 않아야 할 때에는 권리의 보편적 보호를 통해 시장의 결함을 보완해야 한다. 사회적 가치는 시장경제의 발전, 그리고 모든 개인들에게 보편적으로 허용되는 최소한의 권리 기준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누구에게는 더 많고 또 누구에게는 더 적은 차별적 허용은 개인들의 선택에 맡겨야 한다. 만약 최저한의 기준을 넘어 더 많이 충족하는 것을 정부가 전면적으로 강제한다면 자의적이고도 전체주의적인 정부개입이 만연할 것이다.

더구나 문재인 정부가 제시하는 10여개의 사회적 가치들에 대해서는 각각을 소관하는 정부부처들이 이미 따로 존재하고 있다. 인권에 대해서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안전에 대해서는 행정안전부가, 환경에 대해서는 환경부가, 복지와 사회적 약자배려는 보건복지부 등이 소관하고 있다. 이는 마치 분업과 전문화를 통해 ‘공공의 이익과 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하는’ 시장경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 분업과 전문화를 팽개치고 모든 개인들이 모든 행동에서 모두 똑같이 사회적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은 강압적인 사회주의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옥동석 인천대학교 dsoa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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