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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과거에서 찾아낸 ‘오늘의 뉴스’…무대는 요즘 ‘정치’판!

[키워드+] 뮤지컬 '모래시계' '난세' '웃는 남자' '쇼맨_어느 독재자의 네번째 대역배우', 연극 '더 헬멧' '초선의원' 등

입력 2022-07-08 18:00 | 신문게재 2022-07-08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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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너무 답답하고 불안한 게 아닐까요?”

뮤지컬 ‘모래시계’(8월 14일까지 대성 디큐브아트센터), ‘난세’(8월 21일까지 서경대학교 공연예술센터 스콘 2관), ‘웃는 남자’(8월 22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쇼맨_어느 독재자의 네 번째 대역배우’(이하 쇼맨, 7월 8~10일 대구 아양아트센터), 연극 ‘더 헬멧’(8월 7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 그리고 지난 3일 막을 내린 연극 ‘초선의원’까지 최근 무대 위는 ‘정치’ 열풍이다.

무대예술의 핵심이 사회를 반영하는 ‘동시대성’임을 고려할 때 정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문제다. 이에 정치 현상을 은유하는 극들은 늘 있어 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직접적인 ‘정치상황’을 소재로 하거나 ‘역사’에 지금을 빗대는 작품들이 유독 눈에 띈다. 이에 대해 관련 작품들의 창작진들은 “답답하고 불안한 현실”과 “반복되는 역사”를 언급했다.  

 

뮤지컬 난세
뮤지컬 ‘난세’(사진제공=콘텐츠플래닝)

‘난세’의 작가·연출·작곡가·음악감독은 “세월호 참사 이후 계속 되는, 풀리지 않는 응어리들이 있다. 거기에 코로나19 팬데믹까지 덮치니 답답함을 토해내고 싶은 게 아닐까 생각한다”고 가늠했다.

 

뮤지컬 ‘난세’는 부패한 관료들과 무능한 왕으로 인해 백성들이 신음하던 고려 말부터 새 나라를 창립하던 조선 초를 배경으로 한다.

같은 곳을 바라보던 때도 있었지만 서로 다른 세상을 꿈꾸게 된 정도전(박유덕·정동화·주민진, 이하 시즌합류·가나다 순)과 이방원(양지원·이준우·최석진·류찬열) 그리고 이들을 바라보는 백성 꾼(소정화·이지숙·정연)의 이야기다. 편을 갈라 서로의 옳음을 주장하고 증명하는 데만 몰두하는 위정자들에게 “우리를 봐 달라” 외치는 백성의 모습이 지금 우리를 떠올리게 한다.

지난 5월 15일까지 국립정동극장에서 초연된 후 제16회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aegu International Musical Festival, 이하 딤프, 7월 11일까지)에서 초청 공연될 ‘쇼맨’의 한정석 작가는 “정치 관련 작품은 늘 존재했던 것 같다. 꼭 정치인이 등장하거나 정치를 중심 소재로 삼지 않더라도 동시대성, 시사성을 추구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정치적으로 해석될 여지를 갖게 된다고 생각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쇼맨’은 히틀러를 연상시키는 독재자의 네 번째 대역배우였던 네블라(강기둥·윤나무)의 삶과 현재를 힘겹게 살아가며 방황하는 젊은 한국계 입양아 수아(박란주·정운선)를 관통하는 작품이다.

“최근에는 대선이나 전쟁 같은 이슈들이 있다 보니 정치 관련 작품들이 전보다 더 주목을 받게 된 것 같습니다. 정치 관련 작품들이 주목을 받게 되는 현상은 긍정적이라고 생각해요. 정치가 우리 삶과 무관하지 않으며 국민들의 참여와 관심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사회적 인식이 늘어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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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초선의원’(사진제공=네버엔딩플레이)


연극 ‘초선의원’은 대놓고 ‘정치 코미디’를 표방한다. 故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티프로 1988년 서울올림픽 유치과정과 사회 부조리를 코믹하게 엮는다. ‘초선의원’의 박준하 드라마터그는 직접적인 정치적 상황으로 현재를 이야기하는 극들이 최근 주목받는 데 대해 “우리 사회는 극도로 파편화돼 가고 있다. 이 파편화된 사회에서 우리는 공정을 외친다. 하지만 그 공정은 결국 ‘내 생존에 방해가 된다면’이라는 전제를 깔고 간다”고 짚었다.

 

“내 생존에 방해 혹은 위협이 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눈앞의 불공정에 눈 감죠. 이 파편화된 사회에서 연대를 외치고 내 이득이 아닌 것에 공정을 외치는 일은 바보나 하는 일이 돼 버렸습니다. 우리는 그런 바보를 경험했어요. 그리고 아직도 우린 눈물을 흘립니다.”

그리곤 “연극 ‘초선의원’을 통해 그런 ‘바보 노무현’ 이전, 파편화된 사회에 분노해 ‘공정은 나의 도구가 아닌 공동체의 정의’라고 외친 의원 노무현을 ‘지금’ 기억하고 싶었다”고 털어놓았다.

박태수(민우혁·온주완·조형균), 윤혜린(나하나·박혜나·유리아), 강우석(최재웅·남우현·송원근) 세 친구를 통해 삼청교육대, 동일방직 사건, 부마 민주항쟁, 5.18광주민주화운동 등 아픈 역사가 소용돌이치던 1970~80년대를 아우르는 뮤지컬 ‘모래시계’의 박해림 작가는 “이 작품을 준비하면서 그 시대를 통해 ‘지금 무슨 얘기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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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모래시계’(사진제공=인사이트)

 

“모래시계의 본질을 가진 역사는 돌고 돌며 반복돼요. 그런 역사 속에서 과연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지를 고민했죠. 발버둥을 치더라도 살아내야 한다고, 그러면 세상이 조금씩이라도 바뀔 것이라고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정치적인 상황’을 직접 다루는 작품들의 또 다른 특징은 구체적인 사건, 현상, 역사 보다는 ‘그 속의 사람들’에 방점을 찍는다는 데 있다. ‘난세’의 김은영 작·연출·작곡가·음악감독은 “정치적인 이념을 강조하기보다 그들에게 우리, 평범한 국민들도 생각이라는 걸 하고 있고 모르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모래시계’의 박해림 작가 역시 “정치적 사건보다는 사건 속 인물들이 어떻게 상처받고 다시 일어섰는가에 집중했다. 이 텍스트에는 영웅이 없다. 다들 실수하고 자책하고 부끄러워하면서도 다시 일어서는 인물들”이라고 털어놓았다.

“어떤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고 살아내는 것, 반복되는 역사의 굴레 속에서도 더 나은 방향으로 살아보려고 끝까지 발버둥치면서 살다보면 이 사회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너도, 나도, 윗세대 사람들도 그렇게 살아왔다고. 그때도 그랬고 지금 우리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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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쇼맨_어느 독재자의 네번째 대역배우’(사진제공=국립정동극장)

‘초선의원’의 변영진 연출은 “88년도는 우리에게 축제와도 같은 한해였다. 그것뿐이었다. 제가 기억하는 88년은 서울 올림픽이 개최됐고 아름다운 한강 고수부지가 개설됐으며 지하철이 본격적으로 개통돼 서울 한복판을 멋들어지고 달려가고 있던 그 모습만을 배워왔다”며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이라는 노래가 그야말로 가슴 벅차게 울려댔던 뜨거운 1년이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그 이면에는 지독한 냄새가 풍기고 있었습니다. 마치 아름다운 선물상자 속에 돼지의 썩은 간이 들어있는 형상처럼. 그 상자 속에는 소시민의 눈물과 애환, 부정부패와 왜곡들로 가득 차 있던 거죠. 올림픽에 가려졌던 선물상자를 풀었을 때 ‘아! 내가 잘못생각하고 있었구나! 88년은 그야말로 지옥이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때와 지금은 무엇이 달라졌나라는 격세지감 아닌 격세지감을 느꼈죠.”

이어 변 연출은 “금메달 속에 철거민이 가려져 있었고 은메달 속에 노동자가 울고 있었으며 ‘손에 손잡고’가 흐르는 시대 속에 여러 시민들의 손이 불어 터지고 있었다”며 “88년은 그야말로 반칙 없는 스포츠의 현장이었다”고 덧붙였다.

“많은 관객 분들이 이 공연을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 그거 어렵지 않은 것 같은데…진짜 어렵지 않은 것 같은데 말이죠.”

‘초선의원’ 변영진 연출, ‘모래시계’ 박해림 작가의 말처럼 불공정, 부조리, 아픈 역사에서 좀 더 나은 사회로 가는 길의 첫 걸음은 ‘부끄러움’이다. 가해사실, 미처 알지 못하거나 신경쓰지 못했던 무지 혹은 무관심, 알고도 모르는 척 눈감는 방관 등에 대한 부끄러움은 반성과 개혁의지로 이어지며 사회의 변화, 진화로 향하게 하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이는 뮤지컬 ‘웃는 남자’의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이 “이 작품의 메시지가 함축돼 있다”고 추천한 “2막에서 선보이는 힘든 넘버 세곡” ‘모두의 세상’ ‘그 눈을 떠’ ‘웃는 남자’에 응축돼 있다. 어린이 인신매매단 콤프라치코스에 의해 입이 찢긴 채 버림받은 소년 그윈플렌(박강현·박효신·박은태)이 귀족 신분을 되찾은 후 참석한 의회 회의에서 앤 여왕을 비롯한 권력자들을 설득하려 하지만 절망하고 포기하게 되는 과정을 따르는 넘버들이다.

 

뮤지컬 웃는 남자
뮤지컬 ‘웃는 남자’ 2018년 공연장면(사진=브릿지경제DB)

 

이미 많이 가지고도 더 가지려는 권력자들, 그 행태가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이들은 “모두가 사람답게 살 수 있을 때까지” “저 벽을 무너뜨려, 참된 자유만. 오직 정의만, 살아 숨 쉬게” 거짓을 꿰뚫어보고 더 늦기 전에 “눈을 떠 봐”라고 절규하는 그윈플렌에게 비웃음과 냉소를 보낸다.

 

이 넘버들 중 프랭크 와일드혼은 ‘모두의 세상’을 특히 강조했다. “끝도 없는 욕망에 길들여진 시선 속에 누군가의 지옥으로 세운 천국”에서 “검게 물든 꽃잎에 얼어붙은 그 생명에 영원한 빛을 밝혀줄” 세상을 꿈꾸는 그윈플렌의 염원을 표현한 곡이다. 

 

프랭크 와일드혼은 “이 곡에 담긴 그 메시지를 생각하면 안타깝기도 하다. 특히 우리나라(미국)는 엉망진창이 됐다. 얼굴이 주황색인 그 분 때문에”라며 “그래서 ‘모두의 세상’이 주는 메시지가 아름답다고 생각한다”고 털어놓았다. 제16회 딤프에서의 초청공연을 준비 중인 ‘쇼맨’의 한정석 작가는 “사유의 가치”를 강조했다.


“사회 안에서 개인은 온전히 주체적일 수 없다는 자각이야말로 주체성 회복의 시작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그 메시지를 통해 사회적 욕망과 이데올로기에 맞추느라 버거운 현대인들에게 사유의 가치를 전달하고자 합니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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