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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경제 신간(新刊) 베껴읽기] <세상을 바꾼 10개의 딜> 자크 페레티

입력 2022-07-3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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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영국 BBC방송의 다큐멘터리 제작자 겸 탐사보도 전문기자다. 20여 년간 기업 CEO부터 정치인 경제학자 과학자 등 우리 삶의 방식을 바꾼 숨은 인물을 취재한 결과물을 책으로 펴냈다. 조세회피제도를 만든 결정, 다이어트산업을 잉태하게 만든 체질량지수 법 채택 등 우리 삶의 곳곳에 영향을 미친 10가지 역사적 비즈니스 결정의 배경과 뒷 얘기를 소상하게 담았다.



* 잦은 제품 업 그레이드 의무화한 전구업체들 - 샌프란시스코 외곽 리버모어 마을의 소방서에는 117년 동안 노란 불빛을 내는 전구가 있다. 1901년 셀비라는 전기회사가 만든 제품이다. 보통의 전구가 6개월만 지나면 수명을 다하는 것에 비하면 엄청난 수명이다. 그만큼 현대 소비자들은 구형이라면 진저리를 내고 새 제품을 원한다. 1932년 스위스 레만호수에서 열린 제네바 회의에서 그 원초적 근거를 찾을 수 있다. 당시 유수의 전구 제조업체들이 모여 ‘피버스’라는 은밀한 카르텔을 만들었다. 설립 목적은 단 하나였다. 이 세상 누구도 6개월 이상 가는 전구를 만들지 못하도록 막자는 것이었다. 오스람과 필립스전자, GE, AE, 콤파니 드 람, 에디슨 제너럴, 도쿄전자 등이 사인을 했다. 이때부터 기업들은 제품을 대량생산할 때, 망가져야 할 시점에서부터 거꾸로 설계하는 역설계를 하게 된다. 출시 단계부터 일정 기간 후에 제품이 노후되도록 설계해 소비자들이 업그레이드를 택할 수 밖에 없게 만든 것이다. 이 카르텔 덕분에 전구 판매량은 획기적으로 늘었고 전구업체는 물론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구했다. 사람들이 계속 새 전구를 구매했기 때문이다. 이 강제 규정 탓에 사람들은 기존 제품에 만족하지 못하게 되었다. GM 경영자 슬론은 이를 ‘설계된 불만족’이라고 했다.

* 다이어트 산업을 만든 ‘매트라이프의 BMI 지수’ - 1945년 매트라이프생명 뉴욕 본사에 근무하던 통계학자 루이스 더블린은 고객들의 체중이 보험료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발견하곤 한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피보험자를 ‘과체중’과 ‘비만’으로 분류하는 기준을 낮추면 엄청난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과학적 데이터가 필요했던 그는 벨기에 과학자 아돌프 케틀레가 19세기에 개발한 ‘체질량지수(MBI)’를 찾아냈다. 신장과 체중의 비율을 활용한 이 단순한 측정법을 활용해 보니 미국인 절반이 과체중이나 비만으로 분류되었다. 25세 청년에게 적당할 몸무게를 임의로 정한 다음 모든 이에게 그 수치를 적용한 것이다. 결국 나이가 들수록 이상적인 체중을 유지할 가능성은 줄고 지불해야 할 보험료는 늘게 되었다. 그러자 대중들은 불안감을 느꼈다. BMI 수치가 높으면 심장마비나 뇌졸중이 올 가능성이 크다는 경고까지 듣게 된다. 얼떨결에 다이어트산업이 처음으로 생겨나게 된다. 의사와 약사들이 BMI 지수를 받아들임으로써 과학적인 비만 측정법이 만들어 졌다. 건강에 대한 공포심을 조장하고 다이어트 산업을 위한 새로운 시장이 만들어진 것이다. 건강에 대한 공포를 이용한 의도적인 비즈니스 결정으로 탄생한 것이 바로 다이어트 산업인 셈이다.

* BMI 기준점을 낮춰 비만 인구를 늘려놓다 - 1997년 6월 3일, 세계보건기구는 제네바에서 전문가 협의회를 가졌다. 이날 협의회는 비만을 전염병으로 정의한 보고서의 토대가 되었다. 전염병이라는 단어로 인해 비만은 치료약이 필요한 의학적 재앙으로 규정되기 시작했다. 식품업계와 제약업계는 나날이 심각해 지는 비만 위기를 잘 만 활용하면 엄청난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저지방식품 뿐만아니라 다이어트 약, 홈 트레이닝, 속성 다이어트, 식단과 레시피를 알려주는 앱 등 다양한 캐시카우가 등장했다. 저명한 비만 전문가였던 필립 제임스 교수는 제약사의 자금 지원을 받아 ‘국제비만테스크포스(IOTF)’를 구성해 비만의 범주를 더욱 늘렸다. BMI 기준치를 낮춤으로써 전 세계 수백만 명의 체중이 정상에서 과체중으로 바꾸게 만들었다. 1940년대에 더블린이 실제로는 존재하지도 않는 비만 전염병을 서류상으로 만들어 냈고,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후 제임스는 비만이 진정한 문제로 대두된 상황에서 비만의 범주를 넓혀 다이어트 산업이 클 수 있도록 도운 셈이다.

* 환자를 ‘약물 노예’로 만든 머크 CEO의 인터뷰 - 2000년에 5개 이상 처방 약을 복용하는 성인 인구는 8%에 불과했다. 불과 20년도 안돼 그 숫자는 두 배 이상 늘어났다. 전염병학자들은 이를 ‘히스패닉 패러독스’라고 불렀다. 1980년 머크 제약 CEO 헨리 게즈든의 포천과 인터뷰가 결정적이었다. 당시엔 수십 년 동안 큰 수익을 안겨주던 블록버스터 약품들의 독점 특허기간이 끝나고 복제약 등장이 임박했던 때였다. 이 때 그는 기발한 논리를 찾아냈다. 모두가 조금이라도 의심되는 병을 고치기 위해 껌을 씹듯 약을 복용케 하면 큰 돈을 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제약업계는 온갖 새로운 질병과 증후군을 찾아내고 진단하기에 나섰다. 속 쓰림을 ‘위식도 역류염’이란 좀 더 심각한 질병으로 바꾸어 고객들을 유인했다. 제약업계에선 ‘Big 3D’라 불리는 우울증(Depression) 당뇨(Diabetes), 그리고 치매(Dementia)가 업계를 떠받치고 있다. 하지만 지구상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 중인 약물은 콜레스테롤 억제를 위한 ‘스타틴’이란 예방약이다. 1980년 바이-돌법 통과로 대학들이 직접 개발한 신약의 특허를 신청하고 시장에 내놓을 수단을 갖게 되면서 제약업계는 날개를 달게 된다. 대학의 특허를 라이선스로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대학과 제약업계 간 관계는 더욱 공고해졌다. 대학은 제약사에서 자금지원을 받고, 제약사는 그 대가로 연구내용을 제공받았다. 덕분에 업계는 FDA 승인을 기다리는 신약의 효능과 안전성을 한층 주장할 수 있게 됐고, 새 의약품을 검토해 주는 대가로 FDA에 큰 액수를 제공하면서 승인 속도도 높이게 되었다.

* ‘실물화폐 죽이기’를 실현한 페이팔 - 1990년대부터 인터넷이 일반에 상용화하면서 보안에 대한 우려도 함께 커졌다. 실리콘밸리는 온라인 쇼핑에 활용할 수 있는 안전한 암호화 지불 시스템을 만드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피터 틸과 레브친이 텅 빈 강의실에서 처음 만났다. 레브친은 암호의 천재였고, 틸은 금융지식에 해박했다. 둘은 디지털 화폐 거래가 전통적인 은행을 대신하게 만들겠다는 담대한 꿈을 공유하게 된다. 그리고 온라인 지불을 가능케 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기회를 포착했다. 틸은 이메일 주소를 활용할 방법을 찾아내면 세상을 손에 쥘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여기에 훗날 테슬라 CEO가 된 일런 머스크까지 합세해 단 한번의 클릭 만으로 순식간에 결제를 가능케 하는 ‘페이팔’이란 회사를 만든다. 페이팔은 엄청난 속도와 탁월한 안전성으로 인정받게 되어 2002년 15억 달러에 매각된다. 온라인 거래 활성화를 위해 세계 최초로 10억 달러 규모의 플랫폼이 만들어 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2007년에 아이폰이 세상에 나왔다. 이제 빅테크 기업들이 은행의 자리를 차지할 채비를 하게 된 것이다.

* ‘위험의 증권화’를 부추긴 ‘블랙-숄즈 방정식’ - 피셔 블랙과 마이런 숄즈라는 두 경제학자가 ‘블랙-숄즈 방정식’이란 것을 만들었다. 이것이 지금의 옵션과 파생상품의 기반이 되었다. 그전까지는 누구도 정확한 가격을 매길 수 없었던 대상, 즉 주식시장에서 거래되는 옵션에 가치를 부여하는 방법이었다. 이 방정식을 월스트리트에서 처음 도입한 곳은 미국 투자은행 뱅커스 트러스트였다. 위험을 이용해 오히려 생산성과 수익을 높일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위험에 대한 수익률을 최적화하는 방안에 구체적인 값을 부여하는 이 방식이 실제 적용된 대표적 사례가 1973년 석유파동이었다. 그 해 10월 이집트 시리아 이라크가 주도하는 아랍연합이 유대교 최대 명절인 ‘욤 키푸르(속죄의 날)’에 이스라엘을 침공하자 미국 닉슨 행정부는 이스라엘의 시리아 공격을 지원한다. 이에 OPEC 회원국들은 유가를 대폭 인상한다. 처음에는 70%, 이어 12월에는 130% 인상을 단행하고 선진공업국들에 대한 수출도 전면 금지한다. 이 조치는 시나이 반도에서 이스라엘이 철수키로 한 이듬해 3월이 되어서야 철회된다. OPEC는 블랙-숄즈에서 교훈을 얻어 이판사판의 도박을 시작해 큰 성공을 거둔 것이다. 이를 계기로 이 방정식은 월스트리트 곳곳으로 퍼져나가게 된다.

* 서브 프라임 사태와 아랍의 봄 - 로버트 달은 1980년대에 “위험을 받아들이라”며 ‘공매도’ 방법을 고안해 냈다. 미래 가치를 기준으로 트레이딩하되 모기지(주택담보대출) 보험같이 현존하는 무언가를 이용해 위험에 대비하는 방안을 만든 것이다. 그는 모기지 같은 안전자산을 확보한 다음 일련의 복잡함 금융상품을 이용해 위험성 있는 유동자산으로 바꿔 해당 주택을 증권화할 수 있게 했다. 급성장하는 모기지 시장은 일종의 보험처럼 여겨져 거대한 자금 파이프라인 역할을 했다. 덕분에 사람들도 손쉽게 대출을 갚을 수 있었다. 증권화는 폭탄처럼 금융시장을 강타했다. 주택을 증권화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증권화가 가능해질 터였다. 급기야 월스트리트는 위험을 더 끌어올렸다. 주택 말기환금 계약을 모아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만들었다. 하지만 2007년 주택시장 거품이 터지고 서브프라임 피라미드가 무너지면서 전 세계는 유례 없는 파행을 겪게 된다. ‘트위터 혁명’이라 불리는 2010년 12월의 ‘아랍의 봄’ 사태도 파생 금융기법의 결과다. 아처 대니얼스 미들랜드와 벙기, 카길, 루이스 드레퓌스 등 전 세계 밀의 90%를 통제하는 4개 곡물기업의 앞 자를 따 ‘ABCD’라고 불리는 미국 기업들이 식량가격을 대상으로 공매도를 펼치면서 식량가격이 폭등했고 이로 인해 빚더미에 오른 스물 여섯의 ‘무함마드 부아지지’란 청년이 정부와 기관에 항의하며 분신한 것이 촉발제였다.

* 조세회피처의 효시 ‘케이맨 제도’ - 1960년대 말 영국은 과거 식민지였던 섬 가운데 하나를 조세 피난처로 만들 계획에 착수한다. 케이맨 제도였다. 이곳은 영국 통치를 받으며 정치적 안전성을 누리는 대신 독립적으로 세법을 제정할 수 있었다. 첫 고객은 기대했던 대기업들이 아니라 마이애미 쿠바 콜롬비아 엘살바도르의 마약상들이었다. 때 마침 역외금융 비즈니스가 발달한 인근 바하마 제도가 독립을 앞두고 정치적 혼란에 빠지는 바람에 회계인력 등이 대거 넘어왔고, 1971년 브레튼우즈 체제 붕괴로 27년 동안 엄격하게 통제되던 환율과 자본의 이동도 자유로와졌다. 케이맨 제도의 크룩 총독은 범죄 재산이 아닌, 평판 좋은 기업들을 위한 곳으로 이미지를 바꾸려 1975년 11월 바하마에서 통화관리국 장관 바벨 존슨 주도 아래 ‘FINCOCO’라는 금융공동체위원회를 설립해 케이맨 제도가 합법적이고 조세 효율적인 비즈니스 장소임을 알렸다. 전 세계로 확산된 저 세율주의는 케이맨이 빠르게 비즈니스 중심지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됐다. 낮은 세율로 인해 굳이 역외로 소득을 옮길 필요가 없어진 다국적기업들을 위해 조세회피와 무관한 여러 혜택을 발굴해 제공한 덕이다. 현재 케이맨 제도는 전 세계 해지펀드 매니저의 60%가 활동할 정도로 해지펀드 업계가 가장 선호하는 곳이다. 전 세계 자산유동화증권(ABS)과 부채담보부증권(CDO)의 최대 유통지이기도 하다. 현재 세계 곳곳에는 70곳이 넘는 조세 피난처가 숨겨져 있다. 이들은 엄청난 부자 고객들만 상대하며, 법의 허점을 찾아내 그들에게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도록 해 준다.

* 빈부격차와 불평등이 만든 비즈니스 - 경제학자들이 불평등에 미치는 요인으로 한결같이 지적하는 게 ‘지대 추구’다. 생산성 증대 노력 없이 오직 부를 늘리기 위해 노력하는 현상을 말한다. 세계 최초로 불평등 연구를 체계적으로 시도한 사람은 이탈리아 사회학자 겸 통계학자 코라도 지니였다. 독재자 무솔리니를 도와 ‘우생학’으로 인류를 개량한다는 확고한 믿음을 가졌던 그는 1912년에 만 든 것이 ‘지니 계수’다. 씨티은행 글로벌 사업부의 토비아스 레브코비치는 역사상 전례 없는 불평등을 이용해 금융사업을 확대할 생각을 한다. 빈곤층이 느끼는 스트레스가 커지면 도박과 술, 전당포와 할인판매점이 다시 돈을 벌게 될 것이란 놀라운 예지력이었다. 그는 2006년 씨티그룹 본사에서 불평등을 이용해 돈을 벌 방법을 계열사들에 프리젠테이션한다. 이에 씨티는 금융위기가 닥친 2008년까지 2년 동안 부유층을 위한 고급 사치품과 빈곤층을 위한 빈곤 완화 제품 등 양 극단으로 비즈니스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했다. 그의 예측은 곧바로 현실화되었고 2008년 다른 은행들이 줄줄이 무너졌다. 미국 등 각국 정부는 엄청난 양적 완화 조치를 취했고 그 최대 수혜자는 은행들과 자산관리사, 해지펀드였다. 양적 완화는 상위 1%가 극 빈곤층을 공략하는 빈곤상품에 투자할 수 있게 도왔고 이로 인해 불평등은 더욱 심각해 졌다. ‘금융’이란 말은 이제 ‘다른 사람의 빚’과 동의어가 되었다. 불평등과 함께 임금이 정체됐고, 젊은이들은 더 이상 ‘부의 사다리’에 접근할 수 없었다. 2017년 옥스퍼드 대학 교수들이 지니 계수를 활용해 21세기 불평등 정도를 측정해 보니, 지구 전역에서 빈곤층이 덜 빈곤해 지고 있기는 하지만 절대적인 불평등은 급격히 악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일대일로’로 시작된 중국의 세계화 - 2017년 5월 13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미국을 포함한 68개국이 일대일로 협정을 체결했다. 도로와 항만, 철도, 발전소 건설 등에 약 1조 달러를 투자하는 대단위 인프라 구축 프로젝트였다. 중국 인근의 나라뿐 아니라 뉴질랜드 영국 심지어 북극까지 투자 대상이었다. 중국 정부는 전 세계 경제성장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목표를 밝혔지만, 강경한 보호무역주의자인 피터 나바로는 “서구가 필연적으로 중국으로 인해 종말을 맞을 것”이라고 예견했다. 당시 언론들도 “일대일로가 세계 지배를 위해 중국이 설치해둔 ‘트로이의 목마’가 될 수도 있다”고 경계했다. 하지만 중국은 2015년에 일대일로 추진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겠다며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을 설립하고 국유은행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기 시작한다. 저자는 “일대일로의 본질은 기업지배구조를 최대한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으로, 유사 이래 최대 규모의 중국 주도 관리계획”이라고 평가했다. 중국 정부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해고당한 200만 명에 달하는 철강 노동자들을 기업가로 재교육시키고 재투자에 힘쓰는 등 정부 주도 성장정책을 펼치면서 곧장 미국을 위협하는 ‘빅 2’로 급성장하게 된다.

조진래 기자 jjr8954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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