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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위대한 남편을 '만든' 여성이 아니라, 그 자체로 빛나는!

[#OTT] 왓챠 '퍼스트 레이디'가 보여주는 인간의 고귀함
세 명의 배우들이 보여주는 놀라운 싱크로율, 역사적 고증 탄탄해 눈길

입력 2022-08-17 18:30 | 신문게재 2022-08-18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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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CBS Paramount)

 

보는 내내 두 눈을 의심했다. 이들이 ‘그 배우’라니. 왓챠 ‘퍼스트 레이디’는 미국 역사에 새겨진 대통령들에 대한 이야기다. 정확히는 그들의 ‘정치적 동반자’에 대한 이야기다. 호칭은 ‘퍼스트 레이디’지만 이 작품은 말한다. 뭔가 ‘첫 번째 부인’이란 지적(?)에 기분 나쁘다고.

곱씹어보면 정말 그렇다. 왜 이들은 대통령의 아내를 굳이 ‘퍼스트 레이디’라고 했을까? 총 10개의 에피소드로 꾸린 ‘퍼스트 레이디’의 세 주인공은 모두 위대한 여성들이다. 역대 퍼스트레이디들 중 ‘가장 호감 가는 여성’으로 손꼽히는 제32대 영부인 엘리너 루즈벨트, 솔직함을 무기로 여성 인권 운동에 나섰던 제38대 영부인 베티 포드 그리고 최초의 아프리카계 영부인이자 의료보험 개혁에 앞장선 미셸 오바마까지. 미국 내에서도 혁명적인 인물들로 평가받는 세명의 영부인들이 백악관 중심에서 펼친 정치적, 사회적 활약상을 담았다. 

한국 정치계에서도 대통령의 부인이란 존재에는 관대하지 않다. 독재정치의 세뇌였음에도 국모라 칭송받았던 인물이 있었던가 하면 ‘여사’라는 호칭으로 정권 초기부터 잡음이 일기도 했다. 이제는 과거에 쓴 논문까지 도마 위에 오르는 상황이다. 국가적인 차이는 있지만 미국 백악관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남편의 그늘에서 조용하고 헌신적이어야 한다는 암묵에 시달렸다.

THE FIRST LADY
실존인물의 돌출된 입매까지 완벽하게 소화하는 질리안 앤더슨.(사진제공=CBS Paramount)

 

그렇기에 ‘퍼스트 레이디’에서 보여주는 엘리너 루즈벨트의 활약은 놀랍다. 미국 드라마의 시초인 ‘X 파일’을 보고 자란 세대들에게는 스컬리 요원으로 더 유명한 질리언 앤더슨이 보여주는 강인함은 상상 이상이다. 

마흔을 코앞에 두고 성인 소아마비가 걸린 남편을 불굴의 의지로 재활시켜 주지사를 넘어 4선 대통령으로 만든 인물이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외롭게 타국에서 학교를 다녔던 유년시절을 보낸 엘리너는 자신의 고통에 침착(沈着)되지 않았다. 되려 타인에 대한 격려를 아끼지 않고 긍정적인 말로 주변사람들에게 힘과 용기를 북돋웠다고 전해진다.

‘퍼스트 레이디’는 영부인이 된 뒤에도 신문기고와 라디오 방송을 쉬지 않고 다리가 불편한 남편을 대신해 해외 일정도 마다하지 않던 정치인 엘리너의 모습을 조명한다. 물론 그 뒤에는 자신의 비서와 바람이 나고 조신한 며느리만을 원했던 시어머니와 여섯 명의 아이들 보다 일이 먼저였던 여성으로서의 삶도 비춘다. 당시 백악관에서는 쉬쉬 했지만 각종 다큐멘터리의 단골 야사였던 엘리너의 동성애 성향도 이 작품에서는 당당히 드러낸다. 

THE FIRST LADY
결혼 당시 하원의원과 무용수 출신 이혼녀의 만남으로 화제를 모았던 베티 포드의 당당함은 유방암으로 절제 수술 뒤 실제로 기자들과 만나 씩씩하게 인터뷰를 했던 에피소드에서도 여실히 증명된다. (사진제공=CBS Paramount )

 

닉슨 대통령의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얼떨결에 대통령이 된 탓에 국내에서 다소 생소한 포드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는 ‘퍼스트 레이디’의 핵심 재미다. ‘배트맨’의 매력을 덮을 정도로 매력적인 캣 우먼으로 할리우드를 접수한 미셸 파이퍼가 보여주는 ‘가정주부 출신의 영부인’은 2022년을 사는 한국의 독박육아 경험자들에게 수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스스로 “직업이 정치가여서 바쁜 남편을 둔 아이 넷 맘”이라고 주변에 자신을 소개하는 베티는 평범하게 살고 있다. 무려 13번의 선거를 치를 동안 변호사 출신의 남편이 부통령이 될지는 꿈에도 몰랐던 그다. 동료 의원들의 아내와 마티니를 즐기고 창문을 닫다가 어깨에 박힌 유리조각 때문에 진통제와 수면제를 달고 사는 전형적인 중산층 백인 주부였던 그는 순식간에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선거로 뽑히지는 않았지만 미국의 안주인이 된 베티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국민들과 소통에 나선다. 

당시에는 ‘여성 사망률 1위’로 꼽혔던 유방암에 걸리자 자신의 경험을 알리며 “자신을 지키는 것은 아이도 남편도 아닌 바로 자신”이라고 격려한다. 실제로 이 시기에는 유방암에 대한 비약적인 발전이 있던 시기이기도 했다. 스스로를 갉아먹었던 정신과 상담과 알코올, 약물 치료를 수면 위로 드러낸 것도 베티 포드의 몫이다. 

그가 설립한 알코올·약물 의존증자 재활센터인 베티 포드 센터는 5만명 이상이 거쳐 갔으며 미국 내 최고 재활센터 중 하나로 꼽힌다. 용기있게 이를 극복하기로 하고 치료를 받겠다고 선언한 그의 행동은 수많은 중독자들을 양지로 이끌어냈으며 이후 여러 사회운동으로 최고의 훈장인 대통령 자유메달까지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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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6년 “그들이 저급하게 가더라도 우리는 품위있게 가자(When they go low, we go high)”는 명언을 남긴 미셸 오바마의 클린턴 지지 발언은 비록 선거에는 졌지만 영원히 남았다. 선거 당사자인 힐러리를 묻히게 만든 역사적인 연설현장이 ‘퍼스트 레이디’에 생생히 담겨있다.(사진제공=CBS Paramount )

 

가장 혁명적인 두명의 퍼스트 레이디에 비해 미셸 오마바의 비중은 약한 편이다. 하지만 지금도 만연한 인종차별을 현실감있게 그려냈다. 케냐의 혼혈 흑인으로 자랐지만 부유했던 버락 오바마와 달리 평범한 집안의 수재로 자란 미셸의 시각은 작금의 미국 현실과 맞닿아있다. 비올라 데이비스가 보여준 놀라운 싱크로율은 둘째 치고라도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에게 쏟아내는 대사들은 ‘퍼스트 레이디’를 보는 수많은 시청자들의 공감을 이끌어 낸다. 

영화 ‘인 어 베러 월드’를 비롯해 SF 스릴러 드라마 ‘버드 박스’를 연출한 실력파 감독 수잔 비에르가 1933년, 1974년, 2008년 등 시대를 넘나들며 보여주는 이야기에 빠지는 건 완벽한 스타일링 고증 덕분이다.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백악관의 다채로운 풍경과 역사적인 사건들은 아이들과 함께 봐도 무방할 정도로 교육적이다. 채널 왓챠. 공개  8월 10일.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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