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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경제 신간(新刊) 베껴읽기] <믹스> 안성은

입력 2022-09-1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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믹스(Mix), 즉 섞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쉬운 차별화 방법이라고 말하는 책이다. 저자는 “섞으면 쉽게 1위가 된다”고 강조한다. 대부분의 후발 주자들이 1등 브랜드를 흉내 내려다 실패한다며, 이제는 ‘거대 브랜드’보다 ‘작아도 생각 있는 브랜드’가 선호되는 세상이라고 말한다. 효율적인 ‘믹스’만이 브랜드 경쟁력을 살리고 고객 흡입을 담보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 손정의의 ‘낱말 카드’ -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이 버클리대학에 유학중일 때 였다. 사업가를 꿈꾸던 그는 성공하는 사업 아이템을 개발하기 위해 ‘하루 한 가지씩 발명하자’는 자신만의 원칙을 세웠다. 그리고는 낱말카드를 만들었다. 카드마다 다른 낱말이 쓰인 300여 개 카드에서 매일 세 개를 무작위로 뽑아 섞었다. 그런 방식으로 1년에 무려 250건의 사업 아이디어를 뽑아냈다. 대표적인 것이 음성 전자 번역기였다. ‘음성 신시사이저’와 ‘사전’, 그리고 ‘액정화면’이라는 세 장의 카드가 믹스된 결과물이었다. 스무 살을 갓 넘긴 손정의는 이 발명품을 일본 샤프에 1억 엔을 받고 팔면서 자금과 인맥, 그리고 자신감을 얻게 된다.

* ‘섞기의 장인’ 버질 아블로 - 2021년에 고인이 된 그는 패션을 한번도 정식으로 배우지 않았다. 하지만 2018년 루이비통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전격 임명되어 큰 화제를 뿌렸다. 164년 역사의 루이비통이 최초의 흑인 디렉터를 낙점한 것이다. 그의 남다른 ‘섞기’ 능력 때문이었다. 나이키와 협업한 ‘더 텐(The Ten)’ 컬렉션은 2018년 최고 히트작이었다. 그는 ‘21세기의 앤디 워홀’로 불린다. 워홀처럼 평범한 물건을 가져다 사치품으로 둔갑시키는 능력이 탁월했다. 그는 럭셔리를 ‘누군가가 가지고 싶다고 갈망하는 것’이라고 재정의 했다. 기술이나 품질이 럭셔리의 본질이 아님을 간파한 것이다. 그는 ‘3% 접근법’으로 마법을 완성했다. 모두에게 친숙한 아이템을 딱 3%만 바꿔 훨씬 비싼 가격에 내놓았다. 그래도 사람들은 그의 작품을 ‘100% 럭셔리’로 대접했다.

* ‘고품질’과 ‘대중성’ 섞기, 모노클 - 2007년 영국에서 탄생한 잡지 <모노클>은 아프리카 종군기자 출신의 타일러 브륄레가 <이코노미스트>의 전문성과 <GQ>의 패셔너블한 감성을 섞어 만들었다. 잡지 암흑기였음에도 브륄레는 세계 각국의 유능한 파트너들을 확보해 양질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들었다. 타깃 독자는 ‘연봉 3억 이상, 연 10회 이상 해외출장자, MBA 졸업자, 도시에 사는 금융·정부기관 혹은 디자인 및 관광산업 CEO’로 잡았다. 세계 1% 부유층인 이들에게 당당하게 비싼 구독료를 요구했다. 정기 구독자에겐 더 받았다. 대신 다른 나라로 직장을 옮겨도 원래 가격으로 보내주었다. 도쿄 런던 뉴욕 등지에 ‘모노클숍’을 차려 독자층을 넓히고 24시간 라디오 방송과 함께 정기구독자에게만 온라인으로 잡지를 보게 했다. 광고주도 선별해 평판 안 좋은 브랜드는 원천 배제했다.

* A급과 B급 섞기 ‘짝퉁 같은 진품’ - 요즘은 명품 브랜드가 앞장 서 짝퉁을 만든다. 이 흐름을 주도한 이가 ‘발렌시아가’의 뎀나 그바살리아다. 그는 99센트짜리 이케아 장바구니를 카피해 발렌시아가 캐리 쇼퍼백을 선보였다. 소재만 폴리프로필렌에서 양 또는 소가죽으로 바꾸고는 2000배 비싼 2150달러에 팔았다. 청바지로 유명한 디젤(DIESEL)은 한술 더 떠 한정판 ‘다이젤(DEISEL)’을 공개했다. 뉴욕 번화가에 짝퉁 스토어까지 열어 절반 가격에 팔았다. 콧대 높은 오리지널 고급 브랜드들이 이처럼 가품 같은 진품을 내놓는 것은 패션 시장의 주 소비층이 MZ 세대로 빠르게 바뀌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명품은 사용하다 질리면 바로 중고시장에 내놓는, 일상이자 재미있는 놀이 임을 간파했다. 고루해진 A급 브랜드에 B급 정서를 주입함으로써 반전 매력을 선보인 것이다.

* ‘명품과 거리 브랜드의 융합’ 루이비통 - 이제 하이패션이 스트리트 컬처를 받아들이는 게 대세다. 루이비통은 2000년 자사 로고를 함부로 마음대로 가져다 쓰던 스트리트웨어 브랜드 ‘슈프림’을 고소해 관련 제품 생산을 중단케 했다. 10년 후 모든 유행이 거리에서 시작됨을 뒤늦게 알게 된 루이비통은 자존심을 버리고 실리를 택한다. 슈프림과 세기의 콜라보를 성사시킨 것이다. 나아가 스트리트계의 신성 버질 아블로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영입해 본격적으로 거리의 문화를 섞었다. 2021년에는 모회사 LVMH가 아예 버질 아블로가 설립한 오프화이트의 지분 60%를 인수했다. 그 며칠 후에는 일본 스트리트 패션계의 대부 니고를 ‘겐조’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영입했다. A급 브랜드의 노화를 B급 브랜드가 새롭게 재탄생 시켜준 것이다.

* 상식과 비상식의 콜라보 ‘더 콘비니 편의점’ - 스트리트 패션의 제왕 후지와라 히로시는 ‘믹스의 제왕’이다. 1990년대 일본에 힙합 문화를 들여와 일본 최초 힙합 DJ로 활약하다 2000년대에는 오직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서만 제품을 만드는 콜라보 전문회사 ‘프라그먼트 디자인’을 설립한 괴짜다. 나이키 같은 유명 브랜드 제품 위에 자사의 ‘번개 로고’를 새겨 엄청난 가격을 받는다. 2010년대 후반부터는 공간을 섞기 시작했다. 저층 아파트 실내 수영장을 개조해 일류 편집숍으로 변모시켰다. 편의점 같은 의류 매장 ‘더 콘비니’도 선보였다. 샌드위치 포장 안에는 반다니가, 시리얼 박스와 물병에는 티셔츠가, 삼각 김밥에는 손수건이 들어 있다. 카페가 카페인을 충전하러 오는 곳이라는 점에 착안해 스타벅스와 주유소를 섞은 매장을 선보이기도 했다.

* ‘기술과 인간의 믹스’ 애플 - 애플은 항상 기술보다 인간을 앞세웠다. 창업자 스티브 잡스부터 준 인문학자였다. 사명 ‘애플’ 자체가 인문학적이다. 잡스는 사용자들이 제품에 맞추는 게 아니라, 제품이 사용자를 위해 쉽게 작동되도록 만들어져야 한다고 늘 강조했다. 그래서 모든 제품에 설명서조차 없다. 기술을 요리하는 법을 안 그의 탁월한 레시피 덕분에 애플은 세계 최고의 혁신 회사가 되었다. 애플 스토어에서는 애플식 아닐로그 경험을 할 수 있다. 인문학적 감성의 애플 광고는 이제 하나의 장르가 되어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등 후배 경영인들이 따라한다. 광고에 제품 스펙 대신 인간을 담기 시작했고, 앞다퉈 ‘사람 냄새 나는 브랜드’를 만들려 한다. 기술과 인간 섞기, 그것이 스티브 잡스가 그토록 원했던 ‘다르게 생각하기(Think Different)의 핵심이었다.

* 스타벅스의 새 라이벌 ‘더치 브로스(Dutch Bros)’ - 미국의 드라이브 스루 커피 체인 ‘더치 브로스’는 환경까지 고려한 양질의 제품을 만드는 ‘NGO 같은 기업’이다. 의식 있는 기업으로 인정받으면서 돈까지 잘 번다. 남편과 사별한 고객의 손을 잡고 함께 기도해 준다. ‘인성’을 채용의 최우선 조건으로 볼 만큼 지구에서 가장 친절한 직원들이다. ‘사랑’하는 문화를 지키는 데 사활을 건다. 최소 3년 이상 일한 사람에게만 가맹점을 열도록 해 준다. 회사 기준에 못 미치는 매장은 본사에서 사들인다. 너무 빠른 성장도 경계한다. 공식 메뉴판에 없는 ‘더치 브로스 시크릿 메뉴’로 단골을 유혹한다. 호랑이 피 레모네이드, 뱀파이어 슬레이어 등이다. 코스모폴리탄 같은 유명 잡지가 새 메뉴 리스트를 정기적으로 소개할 정도다. 땅값이 싼 곳에 위치해 스타벅스보다 10~20% 싸게 커피를 판다. 코로나 펜데믹도 피해 2020년 수익이 전년 대비 40%나 증가했다. 엄청난 팬덤에 ‘스타벅스의 라이벌’로 부상 중이다.

* NBA에 다시 재미를 불어넣다 - 마이클 조던이라는 슈퍼스타 은퇴 후 미국 프로농구 인기는 급추락했다. 조던의 스타성을 넘을 선수가 없었고 경기 템포는 느려지고 수비 위주 경기가 대세를 이뤘다. 젊은이들이 TV를 보지 않으니 TV 중계료 수입도 형편없었다. 침체기를 겪던 NBA가 반등을 시작한 것은 2010년대 들어서다. ‘킹’ 르브론 제임스와 ‘3점 슛의 마술사’ 스테판 커리가 부활을 주도했다. 애덤 실버 NBA 총재는 넷플릭스나 디즈니 같은 콘텐츠 회사, 포트나이트 같은 게임회사를 모두 NBA의 경쟁자로 여겼다. 재미난 경기를 보여주려 작전타임 횟수를 줄였고 선수들의 경기 밖 부케 활동도 적극 독려했다. 듀란트는 힙합 앨범을, 커리는 북클럽을 운영하며 팬들을 불러 모았다. 경기 장면을 편집한 1~2분짜리 영상, 선수들의 실수만 모은 ‘Bloopers’ 영상으로 옛 인기를 되찾았다. 현재 NBA의 SNS 팔로워 수는 1억 명이 넘는다. 2022년 TV 시청률은 전년대비 19% 증가하며 2017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 ‘올드와 뉴의 콜라보’ 구찌 - 미국 전통의 주얼리 브랜드 ‘티파니앤코’가 2021년 옥외광고를 선보였다. 티파니를 상징하는 ‘티파니 블루’를 없애고 ‘이제 엄마의 티파니앤코가 아닙니다’라는 광고 카피가 실렸다. 180년 주얼리 브랜드의 세대교체 선언이었다. ‘흘러간 고객’ 엄마 대신 새 명품 소비층으로 부상한 ‘밀레니엄 세대’를 겨냥한 것이었다. 하지만 ‘엄마’ 캠페인은 어느 세대에도 공감을 얻지 못한 채 조용히 끝났다. 광고 노출 빈도와 속도 조절에 실패한 탓이다. 반면 구찌는 고객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변화를 추진해 성공을 이뤄냈다. 34세의 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톰 포드는 73세 할머니 브랜드 구찌에 관능적인 포로느시크(porno-chic)를 주입했다. 변화된 대중의 취향을 따르되 껍질은 갈아 엎었다. 과거와 현재를 잘 섞어 역사에 남을 만한 부활을 이뤄냈다.

* ‘섹시함의 재해석’ 빅토리아 시크릿 - ‘속옷은 패션이다’라는 구호를 앞세워 빅토리아 시크릿은 속옷을 당당하게 드러내는 옷으로 만들려 했다. 지젤 번천, 하이디 클룸 같은 톱 모델을 대거 등장시킨 1995년의 빅토리아 시크릿 패션쇼는 그 정점이었다. 미국 시장 점유율 1위는 당연한 것이었다. 그런데 2010년대 들자 언더웨어 시장의 기조가 바뀌기 시작한다. 내 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자는 ‘보디 포지티브’ 트랜드가 급부상하면서 에어리, 어도어미처럼 편안함에 중점을 둔 브랜드들이 인기를 얻었다. 빅토리아 시크릿의 강점인 섹시함이 독으로 작용했고, 시장 점유율은 2015년 32%에서 2020년에 20%까지 떨어졌다. 이에 빅토리아 시크릿은 섹시함을 재해석했다. 비현실적 몸매의 여성이 아닌 다양한 몸매의 여성을 위한 섹시함으로 확 바꾸었다. 인종차별과 상품화라는 비난을 받아온 패션쇼도 폐지했다. 한 번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엄마’에게도 스포트라이트를 비췄다. 그렇게 부활에 성공했다.

* ‘미래의 빈티지’ 비즈빔 - 빈티지에 미쳐 지내던 나카무라 히로키가 2000년에 시작한 브랜드다. 그는 세계 곳곳에서 골동품 같은 옷을 발굴해 그 위에 현대성을 얹었다. ‘미래의 빈티지’를 표방한 것이다. 핀란드 원주민 신발을 변형한 슈즈, 기모노에서 영감을 얻은 코트, 멕시코 나바호의 텍스타일을 담은 카디건 등 기존에 없던 오리지널리티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겉모양만 흉내 내지 않고 장인 정신으로 옷에 담긴 의도와 정신까지 구현했다. 화산재가 함유된 진흙에서 몇 달 동안 염색을 해 재킷을 만들고, 거친 질감의 데님을 만들기 위해 천을 직접 방직했다. 그래서 비즈빔 청바지 가운데는 똑같은 컬러가 하나도 없다. 최신 기술에도 열린 자세다. 오래된 것과 새 것의 균형 있게 섞는 특급 노하우가 전 세계 퓨처 빈티지 마니아를 양산하는 비결이다.

* ‘필수품에 사치를 섞어라’ 150만원 아이스박스 - 미국 회사 ‘예티’는 ‘아이스박스계의 다이슨’이다. 예티 아이스박스는 30만~150만원의 고가인데도 불티나게 팔린다. 창업자 시더스 형제는 내용물이 금방 미지근해지는 아이스박스에 대한 불만에서 고 퀄리티의 아이스박스 개발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소수의 아웃도어 마니아부터 공략해 인정을 받았다. 프로페셔널의 필수품이라는 평판을 얻은 후에는 제품 군을 추가해 가방 모자 티셔츠 같은 의류부터 반려견 밥그릇까지 만들었다. 음료 온도를 유지해주는 팀블러가 히트했다. 타깃층도 산악자전거 라이더와 스케이트 보더까지 넓혔다. 특별한 사연을 담은 한정판도 정기적으로 발매했다. 야생에서 아웃도어 라이프를 사는 ‘예티 엠버서더’ 130명을 영상에 담은 ‘예티 프레즌트’를 유튜브에 올려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도시에 살지만 아웃도어 라이프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예티는 ‘제품’이 아닌 ‘로망’을 팔고 있다.

* ‘편의점의 미래’ 폭스트롯 - 폭스트롯은 편의점 물건에 대한 고정관념을 완전히 뒤집었다. 매장마다 직원들이 엄선한 고품격의 800여 개 상품을 진열한다. 대부분 직원들이 발 품 팔아 찾은 로컬 브랜드다. 매장에 진열된 제품의 20% 정도가 지역 특산품으로 채워진다. 이곳에서만 구입할 수 있는 제품들이 꽤 많다. 지역 내 유명 셰프들과 음식 메뉴를 개발한다. 매장 안에는 카페도 있다. 커다란 공용 테이블은 지역 주민들의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한다. 폭스트롯이 꿈꾸는 것은 ‘제3의 공간’이다. 스타벅스가 만든 개념대로 폭스트롯도 누구나 부담없이 들러 생필품을 사고, 쉼을 누리며, 동네 친구들과 교류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었다. 기존의 구닥다리 편의점을 탈바꿈시키는 데는 대단한 혁신이 아닌, 약간의 즐거움이면 충분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 ‘빌보드’에 오른 골드만삭스 CEO - 디제이 ‘디 솔(D Sol)’은 2018년 리믹스 곡 ‘Don’t Stop’으로 빌보드 댄스 챠트 39위에 오른 꽤나 알아주는 음악인이다. 놀랍게도 그의 본업은 굴지의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의 CEO다. 본명은 데이비드 솔로몬. 그는 디 솔이라는 이름으로 한 달에 한 번 클럽이나 음악 페스티벌에서 공연 한다. 수익금은 전액 마약 중독 관련 자선단체에 기부한다. 인스타그램 계정도 당연히 두 개다. 2018년 골드만삭스 수장에 오른 그는 괴짜답게 150년 동안 축적된 관료주의부터 타파했다. 신입 애널리스트 절반을 여성으로 뽑고, 양복이나 넥타이 구두 같은 의무복장 규정도 없앴다. 연봉 200억이 넘지만 지하철로 출퇴근 한다. 그의 파격은 회사 내 MZ세대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실적도 좋아 2년 동안 30% 이상 상승했다. 코로나가 터진 해에는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 저자는 ‘모범생과 날라리의 결합’이라고 평가했다.

* ‘본캐’와 ‘부캐’의 결합 - 예전에는 한 우물만 깊이 파는 사람이 주목받았지만 이제는 다양한 우물을 넓게 파는 ‘멀티 페르소나’가 대세다. 본업이 영화배우인 라이언 레이놀즈는 ‘부캐의 사나이’다. 2018년 주류 브랜드 에비에이션 진을 인수해 2년 만에 디아지오에 6억 1000만 달러에 매각한 성공한 사업가다. 2019년에는 저가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민트 모바일’에서 오너 겸 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를 맡았다. 그가 세운 맥시멈 에포트 프로덕션은 ‘패스트버타이징’을 표방하며 며칠 만에 뚝딱 영상을 만들어 낸다. 초고속 제작이라 퀄리티는 조악하고 편집도 엉성하다. 하지만 이런 단점들을 상쇄할 만큼 빛의 속도로 제작해 엄청난 시의성을 자랑 한다. 솔직하고 웃기면서도 핵심 메시지를 놓지 않는다. 허접한 광고지만, 완벽하지만 재미없는 광고들보다 더 빛난다.

* ‘모방으로 창조한다’ 피카소와 타란티노 - 피카소가 26세 때 그린 ‘아비뇽의 처녀들’은 회화의 전형을 깨부순 작품으로 ‘큐비즘’의 시대를 열었다. 그를 기점으로 ‘보는 대로’ 그리는 게 아니라 본인이 ‘생각하는 대로’ 그리는 시대가 열렸다. 그는 모방의 천재였다. 하지만 그대로 따라 않고 섞었다. 폴 세잔과 앵그르, 마티스 등 거장들의 작품을 훔쳐 티 안나게 섞었다. 헐리우드 역사상 가장 독창적인 스타일의 감독이라는 쿠엔텐 타란티노 역시 훔치기의 달인이다. 비디오 가게에서 일하면서 본 수 천 편의 영화에서 많은 것을 흡수했다. ‘킬빌’에선 일본 영화 ‘수라설희’의 기모노 싸움 장면을 훔쳤고, ‘저수지의 개들’이나 ‘펄프 픽션’은 히치코크 등 거장들의 아이디어를 베껴 노련하게 섞었다. 영화 중간의 효과음까지도 훔쳤다. 평론가들은 이를 ‘오마주’라며 고급스럽게 치장해 주었다.

* 한국과 세계를 섞은 이날치 ‘범내려 온다’ -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란 말이 있다. 하지만 저자는 지금처럼 촘촘히 연결된 시대에는 ‘국적’이 아닌 ‘수준’이 히트 여부를 판가름한다고 단언한다. 한국 콘텐츠라도 전 세계에 팔 때는 섞어야 한다고 말한다. 국악을 섞은 얼터너티브 팝 밴드 ‘이날치’가 대표 케이스다. 현대적 팝 음악에 판소리를 섞은 곡 ‘범 내려온다’가 그렇게 조선 힙합 열풍을 일으키며 빅 히트를 쳤다. 이날치의 리더이자 베이시스트 장영규는 ‘타짜’,‘도둑들’,‘곡성’ 등 90편 이상의 영화음악을 만든 작곡가다. 그는 장르 구분 없이 섞는 데 일가견이 있는 사내였다. 이날치 이전에 이미 민요 록밴드 ‘씽씽’을 결성해 한국산 아방가르드로 해외에서 먼저 주목을 받았다. 이날치가 부르고 춤꾼 모임 엠비규어스 댄스 컴퍼니가 춤을 추는 뮤직 비디오는 ‘김치 웨스턴 그루브’라고 불렸다. 한국적이면서 서구적인 것이 익숙함과 새로움을 주었다.

* ‘패션계의 촌놈’ 자크뮈스 - 가장 도시적인 산업인 ‘패션’에서 도시와 시골을 섞어 ‘도시형 촌놈 전성시대’를 연 패션디자이너가 있다. 프랑스 남부 마르세유 깡촌에서 태어나고 자란 자크뮈스다. 그가 만든 옷은 지방의 정취가 물씬 풍긴다. 그는 기존의 럭셔리 하우스와는 차별화되는 태양의 에너지와 자연의 청량함을 가미해 새로운 패션을 창조해 냈다. 클럽에서 즐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농장과 들판, 잔디밭을 누비는 디자인이다. 대자연을 무대로 한 런웨이로 그의 디자인은 완성된다. 자크뮈스 런칭 10년 기념 패션쇼 장소가 시골의 라벤더 밭이었다. 타이틀도 ‘꾸 드 솔레이(Coup de soleil, 내리쬐는 태양)’이었다, 1년 후에도 파리 근교 밀 밭에서 패션쇼를 열었다. 600m 밀밭 길을 수십명의 모델이 줄이어 걷는 진풍경을 연출해 대박을 터트렸다. 한국에서도 뉴에이지 음악의 거장 유키 구라모토가 전북 김제의 작은 시골마을 거리에서 대표곡 ’로망스‘를 연주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 ‘익숙함과 낯섬의 충돌’ 나영석과 봉준호 - 나영석 PD는 ‘충돌’을 프로그램 아이디어의 모티브로 삼는다. 뻔한 것을 충돌시키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극과 극의 사물을 일부로 부딪히게 한다. 거기서 일어나는 스파크가 성공 비결이다. 2014년에 만든 ‘꽃보다 할배’는 예쁘고 섹시한 여성들의 배당 여행이 아닌, 70세 할아버지의 배낭여행이었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았던 이 컨셉은 케이블 TV 최초로 1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그 해 최고 히트작이 되었다. 이어 내놓은 ‘신서유기’는 야생 버라이어티 ‘1박 2일’과 중국 소설 ‘서유기’의 충돌이었고, ‘삼시세끼’는 차승원 이서진 에릭 같은 도회적 이미지 연예인들과 시골 라이프의 충돌이었다. 영화감독 봉준호도 어울리지 않는 것 끼리 섞는 데 일가견을 보였다. 2009년 ‘마더’에서 그는 사이코적 절대 모성을 발휘하는 엄마 역에 ‘국민엄마’ 김혜자를 캐스팅했다. 김혜자에게서 광기를 발견해 그녀를 선택했다고 한다. 국민엄마 김혜자와 사이코의 충돌이었다.

* ‘진짜 짝퉁’ 만드는 크리에이터 톰 삭스 - 나이키가 톰 삭스와 콜라보한 스니커즈 ‘나이키 마스야드’는 리셀 가격이 1000만원에 달한다. 톰 삭스는 조각가이자 화자, 필름 메이커이자 신발 디자이너, 그리고 팔로워 30만 명의 유명 인스타그래머다. 그가 손댄 작품은 늘 품귀다. 모든 작품을 직접 손으로 만드는 그의 인간적인 터치에 사람들은 매료된다. 티파니 권총, 에르메스 수류탄, 샤넬 전기톱, 이런 식이다. 그의 재창조의 절정은 ‘스페이스 프로그램’이었다. 미 항공우주국(NASA)이 아폴로 우주선을 발사하는 모든 과정을 재현해 보고 싶었던 그는 최초로 여성 우주비행사를 화성에 보낸다는 목표 아래 우주복과 기지, 관제센터, 비행선 등 모든 것을 직접 제작했다. 대형 갤러리에서 펼쳐진 6시간 짜리 퍼포먼스였지만 참가자들은 정말로 우주를 다녀온 것으로 믿었다. 톰 삭스가 주창하는 ‘공감주술’ 때문이었다. 그는 “극단적으로 디테일을 추구하다 보면 그 안에서의 경험이 진짜가 된다”고 말했다.

* ‘어른과 아이 섞기’ 무라카미 다카시 - ‘일본의 앤디 워홀’로 불리는 무라카미 다카시는 아이와 어른의 특성을 섞은 그림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예술가가 되었다. 아이의 그림 같은 그의 작품은 타깃이 어린이가 아니라 어른이다. 철저히 어른을 위해 아이처럼 그린다. 2003년부터 12년 동안 이어진 루이비통과의 콜라보는 그를 전 세계에 알렸다. 100년 넘는 전통에 그는 유치찬란함을 입혔다. 슈프림과 반스, 유니클로, 위블로도 그의 작품을 제품에 새겼다. 그의 공식은 단순했다. 어른들의 세계에 아이 끌어들이기였다. 호주 멜버른철도공사가 지하철 안전의 경각심을 위해 2013년에 만든 3분짜리 광고 ‘바보같이 죽는 방법’도 아이를 채용해 어른들에게 메시지를 전해 큰 효과를 거두었다. ‘~을 해라, 하지 마라’ 대신 어이없이 죽는 방법들을 하나하나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이 작품은 칸 광고제에서 역사상 최초로 5개 부문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무엇보다 멜버른시 철도 사고를 무려 21%나 줄여 주었다.


조진래 기자 jjr8954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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