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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비누’를 매개로 박물관과 현대미술의 계획된 조우, 신미경이 제안하는 ‘뮤지엄 인터벤션’

[짧지만 깊은: 단톡심화] 시간/물질:생동하는 뮤지엄 신미경 조각가

입력 2023-03-02 18:00 | 신문게재 2023-03-03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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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 씨 개관 20주년 기념 기획초대전, 신미경의 ‘시간/물질: 생동하는 뮤지엄’ 전경(사진=허미선 기43
스페이스 씨 개관 20주년 기념 기획초대전, 신미경의 ‘시간/물질: 생동하는 뮤지엄’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해외에서는 2000년 초부터 유물과 현대 작가들을 엮는 전시관이 성행을 하고 있어요. ‘뮤지엄 인터벤션’(Museum Intervention)이라고 하는데 저 역시 영국 등 유럽에서는 꽤 했던 작업이죠. 제 작업이 워낙 과거를 현대로 끌어오고 과거의 것을 다시 바라보게 하고 현대랑 연결을 짓다 보니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스페이스 씨 개관 20주년을 기념하는 ‘시간/물질: 생동하는 뮤지엄’(3월 2~6월 10일 코리아나 미술관, 화장박물관 5, 6층)에 참여한 신미경 작가는 박물관과 현대 미술가가 만나는 ‘뮤지엄 인터벤션’을 언급했다.

스페이스 씨 개관 20주년 기념 기획초대전, 신미경의 ‘시간/물질: 생동하는 뮤지엄’ 전경(사진=허미선 기2
스페이스 씨 개관 20주년 기념 기획초대전, 신미경의 ‘시간/물질: 생동하는 뮤지엄’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특히나 이번 전시는 개관 20주년이라는 특별함이 제 작업을 보여주는 것 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각기 다른 공간의 성격과 20년 동안의 행보가 잘 드러나게, 서로가 씨실과 날실처럼 조직되는 게 중요했죠. 그래서 박물관과 미술관을 평평하게 잇는 콘셉트를 잡았어요. 분리된 것을 하나로 묶음으로서 동서양의 조화, 신구의 만남 등 입체적으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가 제안한 ‘뮤지엄 인터벤션’은 “해외에서는 많이 했던 작업이다 보니 저에겐 상대적으로 좀 덜 새로운 방식”이지만 “한국에는 거의 없어 한번쯤 해보고 싶었던 작업”이다. 

스페이스 씨 개관 20주년 기념 기획초대전, 신미경의 ‘시간/물질: 생동하는 뮤지엄’ 전경(사진=허미선 기44
스페이스 씨 개관 20주년 기념 기획초대전, 신미경의 ‘시간/물질: 생동하는 뮤지엄’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박물관은 어릴 때부터 자주 왔다갔다 하잖아요. 특히 서양은 더 그렇죠.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박물관을 또 오게 만들기가 어려워 졌어요. 그래서 시도된 것이 ‘뮤지엄 인터벤션’이죠. 제가 그동안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시각적 언어를 사용하는 작가이다 보니 지나간 시간 속에 벌어진 것들을 보여주거나 아카이브하는 박물관과 현재를 다루는 미술관, 다른 성격의 두 공간을 뒤섞고 교차해 보여주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누’를 매개로 ‘계획’하고 ‘조우’하다

 

스페이스 씨 개관 20주년 기념 기획초대전, 신미경의 ‘시간/물질: 생동하는 뮤지엄’ 전경(사진=허미선 기28
스페이스 씨 개관 20주년 기념 기획초대전, 신미경의 ‘시간/물질: 생동하는 뮤지엄’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스페이스 씨는 ㈜코리아나화장품이 설립한 복합예술공간으로 2003년 개관해 올해로 20주년을 맞는다. 20년 동안 코리아나화장박물관에서는 창업자 송파 유상옥(松坡 兪相玉) 회장이 반세기에 걸쳐 수집한 고미술품, 전통 화장유물 등을, 코리아나미술관에서는 현대미술 국제기획전이나 소장품전 등을 선보여왔다. 

20주년 기념전인 ‘시간/물질: 생동하는 뮤지엄’은 살바도르 달리의 ‘스페이스 비너스’를 비롯한 고려·조선 시대의 동경(청동거울) 등 스페이스 씨 소장품과 신미경의 작품을 어울려 배치함으로서 각자 운영되던 박물관과 미술관을 연결하는 새로운 시도다. 옛 것을 보존·전시하는 박물관과 ‘지금’에 발 딛은 현대미술, 계획·개입과 우연히 서로 만나는 ‘조우’(遭遇)가 공존하는 전시다. 

스페이스 씨 개관 20주년 기념 기획초대전, 신미경의 ‘시간/물질: 생동하는 뮤지엄’ 전경(사진=허미선 기25
스페이스 씨 개관 20주년 기념 기획초대전, 신미경의 ‘시간/물질: 생동하는 뮤지엄’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이는 런던과 서울을 오가며 활동 중인 신미경의 작업세계이기도 하다. 그는 1996년부터 ‘비누’를 매개로 “과거와 현재를 물고 당기면서 발생된 문화적 유산에서 제가 읽어낸 맥락을 제시하고 나누는 작업”을 통해 시간과 물질 연구에 집중해 온 작가다. 

세월이 흐르면서 자체의 시간성을 내포하는 물질에 집중한 그는 일상적으로 쓰는 생활용품이자 쉽게 녹아 사라지는 속성의 비누로 고대 유물 등을 번역하는 ‘번역 시리즈’를 비롯해 ‘고스트 시리즈’ ‘화장실 프로젝트’ ‘화석화된 시간 시리즈’ ‘폐허’ 등으로 시간과 재료 탐구에 집중해온 작가이기도 하다. 

신미경
신미경(사진제공=코리아나미순관)

 

그의 시리즈에는 어떤 사물의 시간성과 기능성이 정지된 채 유물이 되는 것처럼 비누가 본 기능에서 벗어나 예술작품으로 자리매김하는 과정이 담겼다. 그렇게 그의 작업은 비누 녹이기, 섞기, 색 입히기, 긁기, 깎기, 굽기, 토치로 녹이기 등 절반의 작가 개입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스스로 변화하고 생동하는 물질의 속성으로 완성된다. 

 

“화병 안의 비누를 파내서 쓸 수는 없을까?”라는 고민이나 야외에서 전시되다 보니 풍화되고 녹아버리고 관람자들에 의해 훼손된 작품들의 재활용 시도 등에서 시작한 그의 시리즈들은 작가의 개입과 우연한 발견이 조화를 이룬 결과물이기도 하다. 더불어 이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다시 번역 대상이 되고 또 다시 ‘계획’ 혹은 ‘개입’과 ‘조우’의 공존으로 재창조된다. 

스페이스 씨 개관 20주년 기념 기획초대전, 신미경의 ‘시간/물질: 생동하는 뮤지엄’ 전경(사진=허미선 기30
스페이스 씨 개관 20주년 기념 기획초대전, 신미경의 ‘시간/물질: 생동하는 뮤지엄’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지하 1층과 지상 5층 남녀 화장실에 배치돼 본기능으로 쓰임으로서 변형을 유도하는 비누조각상 ‘화장실 프로젝트’는 작가의 계획 하에 관람객이 작품과 조우하고 개입해 저마다의 서사와 감각을 만들어내는 작업이다. 

섬세했던 머리칼이 반질반질해지도록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원형을 거의 유지하기도 한다. 심지어 날카로운 것으로 잘라내려 시도한 흔적이 남아 있는가 하면 누군가(?)의 의도로 사라져 버린 조각상들도 있다. 이 역시 시간성을 내포하며 또 다른 작품이 된다. 

이번 ‘시간/물질: 생동하는 뮤지엄’에서는 2014년부터 진행 중인 ‘페인팅 시리즈’에서 규모를 키우고 향기를 입힌, 200kg에 달하는 ‘라지 페인팅 시리즈’와 코리아나미술품 소장품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낭만주의 조각 시리즈’, 레진과 브론즈 등을 활용한 ‘풍화 프로젝트’ 등 신작 70여점도 만날 수 있다.


◇박물관과 현재의 ‘계획’된 ‘조우’… ‘뮤지엄 인터벤션’

신미경
신미경(사진제공=코리아나미순관)

 

한국에서 ‘뮤지엄 인터벤션’은 낯선 형식이기도 하지만 그 실행이 쉽지 않은 작업이기도 하다. 유물 보존의 어려움, 필요에 따른 공간 및 유물의 재배치, 박물관과 작가의 긴밀한 공조, 예상을 뛰어넘는 필수 요소들, 살아 있는 작가와의 교류에 대한 낯섦 등 넘어야 할 산들이 첩첩이다.

“그럼에도 한국에서 ‘뮤지엄 인터벤션’이 좀더 많이 자주 이뤄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과거의 것을 해석하는 행위, 기존에 있는 것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 태도에서 새로움이 나오고 독창성이 있다고 보여지거든요. 처음 보여지는 형태나 재료에서 오는 새로움 자체보다는 태도에서 오는 새로움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지금까지 연구해 온 시간에 관련된 것들을 관통하는 작업이기도 하죠.”

스페이스 씨 개관 20주년 기념 기획초대전, 신미경의 ‘시간/물질: 생동하는 뮤지엄’ 전경(사진=허미선 기16
스페이스 씨 개관 20주년 기념 기획초대전, 신미경의 ‘시간/물질: 생동하는 뮤지엄’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이번 전시에서 200kg의 비누를 잘게 잘라 5개의 미니 스토브(브루스타), 몇개의 인덕션에 끓여 동시에 붓고 젓고 색을 입히고 향을 첨가한 ‘라지 페인팅 시리즈’ 5점을 새로 선보인 신미경은 “모든 과정이 동시에 일어나는 일”이라며 “걸 데만 있으면 좀 더 큰 페인팅에도 도전하고 싶다”고 귀띔했다. 

한국과 해외를 오가는 그와 그의 작품 특성상 영국과 한국에 대형 작업실을 채비해두고 잠깐의 시간도 허투루 보내지 않는, ‘진정한 워커홀릭’의 면모를 가진 신미경은 올 상반기를 필라델피아와 한국, 영국을 오가며 보낼 예정이다.  

신미경
신미경(사진제공=코리아나미순관)

 

“10월 23일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 규모가 큰 한국전이 열려요. 그 전시관 야외에서 선보일 대형 조각을 작업 중이죠. 한 덩어리가 5~6톤 정도 되는 비누를 깎아야 해서 6개월간 필라델피아에 머물 예정입니다. 거의 스핑크스 크기의 비누조각 3점을 깎아야 하죠. 작업하는 동안 비도 오고 풍화가 이뤄지면서 시간성이 담길 거예요. 8월 정도부터는 제가 비누를 깎는 작업 과정들을 관객들이 볼 수 있도록 공개할 예정입니다. 고전 조각가들이 야외에서 깎듯이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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