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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개인의 능력이 결정하는 죽음의 격차… 존엄한 죽음은 존엄한 사회가 만든다

[브릿지 신간 베껴읽기] 송병기 <각자도사 사회> 노후와 죽음을 어떻게 맞을 것인가

입력 2023-04-01 07:00 | 신문게재 2023-03-31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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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 알아서 살고, 알아서 죽어야 하는 사회. ‘각자도생(各自圖生)’이 아니라 ‘각자도사(各自圖死)’의 시대, 초고령 사회를 목전에 둔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의료인류학자를 자처하는 저자는 존엄한 죽음을 가로막는 불평등한 삶의 조건을 성찰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서문에서 밝혔다. 저자는 사람들이 사실 존엄한 죽음보다 깔끔한 죽음을 원하지만, 우리 현실이나 제도와 정책 그리고 인식은 이를 허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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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은 과연 좋은 죽음을 보장할까?


1990년대만 해도 한국인들은 생애 마감을 집에서 하는 것으로 여겼다. 지금은 각종 시설이 이를 대체하고 있다. 정부가 2025년까지 ‘커뮤니티 케어’ 기반을 구축해 탈 시설화와 탈 가족화를 추진하겠다고 공표하면서 ‘병원(혹은 요양시설) 객사’가 더욱 일반화됐다. 환자가 평소 살던 곳에서 돌봄을 받고 임종까지 할 여건을 조성하고 보다 폭 넓은 방문 서비스로 가족의 돌봄 부담을 없애겠다고 했지만, 이 제도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게다가 ‘생활SOC 사업’ 추진계획도 함께 밝힘으로써 ‘탈 시설화’를 내세우며 ‘시설화’를 실천하겠다는 정책적 모호성만 노출했다.

저자는 “커뮤니티 케어 정책은 노인의 돌봄을 부담스러워 하는 가족을 전제로 하는데, 현재 노인 복지는 1인 가구와 저소득자 및 수급자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당국이 제시하는 ‘커뮤니티’에 1인 가구와 동성 혹은 동거 가구, 농어촌 가구가 포함되어 있는지도 의문이라고 꼬집는다. 그는 “정부 정책이 이들의 삶을 개선하기보다는 오히려 이들이 취약한 삶에 ‘적응’ 하도록 돕고 있었다”면서 “집에서 죽으면 좋은 죽음이고, 시설에서 죽으면 나쁜 죽음이라는 이분법부터 넘어서야 한다”고 말한다.

◇ 노인은 이제 국가의 ‘짐’인가

저자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건강보험과 노인장기요양보험의 운영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거두기는커녕 오히려 의료와 돌봄을 분리시키는 데 기여했다”고 혹평한다. 그 탓에 돌봄과 의료는 요양원과 요양병원 사이에서 뒤죽박죽이 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어느 새 노인 의료는 요양병원에서, 노인 수발은 요양원에서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이다. 노인 부양 정책 덕분에 민간 시설의 설립과 운영 규제는 완화하면서 비용 통제는 강화하는 바람에, 노인 환자와 병상 수는 빠르게 늘었지만 의료진과 돌봄 노동자 수는 그만큼 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열악한 노동조건은 근무자뿐만 아니라 노인의 인권 문제로도 이어졌다. CCTV가 과도하게 설치되고, 기저귀가 남용되고 있다. 국가가 떠안아야 할 책임이 가족들에게 떠넘겨져 가족보호자가 간병 및 의료비, 시설비까지 부담한다. 저자는 ‘거대한 돌봄 위탁 피라미드’라고 표현했다. 그는 “노인 돌봄 개선을 위해선 노인을 자유롭고 평등한 동료시민으로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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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종 처리기관’이 된 호스피스


저자는 우리 호스피스 간병제도가 겉돌고 있다고 비판한다. 의료진 배치는 환자 수에 맞추는 반면 환자가 있든 없든 간병 인력은 병상 수에 맞춰야 하기 때문이란다. 국가가 지원하는 최저임금 수준의 노무비로는 턱도 없다. 요양병원은 더 심하다. 호스피스에선 환자 한 명당 환자 다섯 명 정도를 돌보지만 요양병원에서는 간호사 한 명이 환자 40명을 감당하기도 한다. 시설 확대가 필수다. 2022년 말 현재 전국에 약 100곳의 호스피스 기관이 있지만 시설별 병상 수는 평균 20개 정도에 그친다. 2021년 호스피스 대상 질환사망자 대비 호스피스 이용률은 21.5%에 그쳤다고 한다.

저자는 말기 암 환자 중심의 제도적 문제점도 지적한다. 주치의로부터 말기 판정을 받아야 호스피스를 이용할 수 있는데, 문제는 더 이상 치료 계획이 유효하지 않은 시점인 ‘말기’를 환자 보호자와 의료진이 달리 인식한다는 것이다. 결국 ‘호스피스는 죽으러 가는 곳’이란 의식이 싹 틀 수 밖에 없다. 저자는 “호스피스는 임종 처리기관이 아니다”라며 “이곳은 모든 환자를 위한 환대와 돌봄의 시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 말기 의료결정, 누구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나


‘말기 의료결정’이란 치료효과 없이 임종 기간만을 연장하는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등을 시행 않고 생의 마지막을 보낼 수 있도록 돕는 절차를 말한다. 무의미한 연명치료 없이 자연스러운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2016년 제정된 ‘연명의료결정법’을 근거로 2018년에 연명의료결정제도가 시행되어 작년 말 현재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자가 153만 명, 연명의료계획서 등록자는 10만 명에 이른다. 의향서는 19세 이상의 시민이 직접 기록하고, 계획서는 담당 의사가 환자 의사 확인 후 작성한다.

문제는 이른바 ‘가족주의’가 치료를 고집해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방해함으로써 결국 환자가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받게 되어 환자의 존엄한 죽음을 가로막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저자는 “현장에서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강조하지만 그런 서류가 말기 고지와 환자 보호자 의료진의 소통을 형식적으로 대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기 의료결정이 존엄한 죽음을 위한 과정이 아니라 여전히 죽음의 타이밍을 위한 난감한 일이 아닌지”라고 되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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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스스로 안락사를 선택하나


안락사란 의사가 처방한 약을 환자가 복용해 사망에 이르는 ‘의사조력자살’을 말한다. 의사가 환자의 죽음을 앞당기는 행위다. 2022년 6월 국회에서 ‘조력존엄사법’이 발의되었다. 말기 환자들 가운데 본인이 희망 하는 경우 담당 의사의 조력을 받아 스스로 삶을 종결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으로, 사실상 의사조력자살법이다. 이 법안에 대해 국민의 82%가 입법화에 찬성했다. 환자의 권리 보장, 환자와 가족의 고통 경감 등이 이유였다.

하지만 존엄사는 2018년부터 시행된 연명의료결정법에 근거해 이미 허용되고 있다. 대법원도 2009년에 환자에 대한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고 판결한 바 있다. 다만, 환자가 회복 불가능한 사망단계가 아니라면 문제가 달라진다. 환자가 잘 죽기 위해서는 ‘권리’가 아니라 의사-환자 간 신뢰, 전문가 간의 협력, 그리고 제도 마련이 더 중요하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조력존엄사법의 등장은 현행 연명의료결정법이 시민들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 갈 곳 없는 ‘무 연고자’와 고독사


2020년 전국의 무연고 사망자 수는 2880명으로 추산된다. 남성이 2172명으로 75%에 달했다. 60세 이상이 1797명으로 62% 수준이었다. 2021년 고독사한 사람은 3378명으로 5년 만에 40%가 늘었다. 병원에서 사망한 무연고자는 고독사한 것이 아닌 반면 고독사 했더라도 시신을 인수할 연고자가 있다면 무연고 사망자가 아니다. 중요한 점은 무연고 사망자 상당수가 고독사 했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고독사는 개인의 불행이 아니라 사회 안전망의 부재가 초래한 사회적 고립사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장사법’도 문제로 지적된다. 법 제2조 제16호는 ‘연고자’의 범위를 친족과 비 친족으로 정했다. 배우자와 자녀, 부모, 자녀 외 직계비속, 부모 외 직계존속, 형제 자매 순이다. 친족 다음 순위는 사망 전 치료 보호 또는 관리한 행정기관이나 치료 보호기관의 장, 마지막으로 고인의 시신이나 유골을 사실상 관리하는 자이다. 이런 법적 테두리 안에서 친구, 동거인, 동성연인이 고인의 장례를 치르기란 어려운 일이다.

저자는 무연고 사망자 문제를 비혼과 저출산 고령화, 가족해체의 문제로 파악했다. 결혼과 출산, 가족의 유대감을 강조하는 세간의 인식을 갱신할 필요가 있으며 이제라도 국가가 가족에게 떠맡겨왔던 복지 문제를 전면적으로 검토해, 혼자사는 사람을 대신해 연명의료결정을 숙의하는 시민연대나 그들의 장례식을 거행할 수 있는 사회적 친족에 대한 논의도 시작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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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웰 다잉’, 잘 죽기 위해 잘 살아야 하나


많은 이들이 진정한 ‘웰빙’의 완성은 ‘웰 다잉’에 있다고 말한다. 이제 웰 다잉은 ‘품위 있게 죽어갈 권리’와 비슷한 의미로 통용된다. 특히 웰 다잉 담론은 좋은 죽음을 맞기 위해선 능동적인 죽음 준비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쉽게 말해, 조금이라도 젊고 건강할 때 마리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좋은 죽음이란,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개인으로서 신체, 인지, 사회, 경제 활동을 최대한 오래 유지하다 주변 사람에게 폐 끼치지 않고 죽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죽음이 개인의 노력으로만 대비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오늘날 웰 다잉의 유행은 그만큼 사람들이 잘 죽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자, 죽음이 개인의 노력으로 대비해야 하는 일이 됐다는 방증이라고 지적한다. 저자는 그러면서 “우리는 과연 잘 죽는 것만 고민하면 될 정도로 좋은 삶을 살고 있나? 그렇게 사는 것이 불가능하니 잘 죽는 거라도 고민하는 것은 아닐까?”라고 반문한다.

조진래 기자 jjr8954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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