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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반도체 '바이오산업' 육성.. 대한민국이란 이름으로 뭉치자"

(인터뷰)양진영 케이메디허브 이사장

입력 2023-04-13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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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영 케이메디허브 이사장
양진영 케이메디허브 이사장
‘K-바이오 랩허브’구축 등 바이오산업 육성을 위한 정부 정책이 한층 두터워지면서 이를 지원하는 기관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바이오산업 육성정책은 지난 2008년 첨단의료복합단지 지정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고 바이오 클러스터를 조성하면서 탄력을 받았다. 바이오산업 특성상 산·학·연·관이 집적해야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정책적 결정이었다. 법률 제정 이후, 보건복지부는 2011년 오송과 대구경북에 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을 설립하고 바이오를 미래먹거리 산업으로 본격적으로 키우기 시작했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 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의 성과와 향후 계획 등을 양진영 대구경북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이하 케이메디허브)이사장에게 들어보았다. 양 이사장은 행시 36회 출신으로 식품의약품안전처 차장을 거쳐 2021년 8월 4대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 먼저 케이메디허브 소개부터 해달라.

▶케이메디허브는 국내 의료산업 발전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보건복지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케이메디허브는 항암제 등을 국산화하는 연구를 진행하는 ‘신약개발지원센터’, 수술로봇·진단기기 등을 개발하는 ‘첨단의료기기개발지원센터’, 동물실험을 지원하는 ‘전임상센터’, 국내 최대규모 공공기관 GMP(Good Manufacturing Practice /의약품 제조 및 품질관리 기준) 인증시설을 갖추고 의약품 생산이 가능한 ‘의약생산센터’, 마지막으로 이들을 지원하는 ‘전략기획본부’로 이뤄져 있다.

이러한 시설을 바탕으로 케이메디허브는 기술개발부터 사업화까지 전 과정을 지원하고 있다. 특히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제약, 의료기기 산업의 연구개발을 국가가 지원해 대한민국의 의료수준을 높인다는 점에서 차별화되며, 연구개발을 위해 필요한 전임상과 임상용 의약품 생산, 임상시험까지 한 곳에서 가능한 것이 장점이다.

감염병 치료제부터 항암제까지, 또 내시경처치구 같은 일회용 수술도구부터 MRI 같은 영상장비까지 대부분의 약과 의료기기를 수입에 의존하는 것이 국내 의료산업의 현실이다. 언제까지 의료시장을 수입에만 의존할 수 없기에 우리 재단은 글로벌 신약과 의료기기 국산화를 위해 노력중이다.

- 그 동안의 성과는 무엇인가?

▶기술이전에서 꾸준히 실적을 내고 있다. 2016년부터 급성골수성백혈병, 뇌암, 간암, 치매, 알츠하이머, AI 생체신호 실시간 측정·전송장치, 뇌종양·난소암 등의 연구성과를 이전했고, 올해도 ADHD 등 정신질환 치료물질 기술을 이전했다.

이 중 대표적 실적은 2021년 9월 미국기업에 3천8백억원을 받고 수출한 자가면역질환 치료제를 꼽을 수 있다. 2017년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후보물질을 개발해 기술이전하였던 물질을 꾸준히 연구해온 ‘보로노이’가 2021년 미국 ‘브리켈 바이오테크’에 3억 2천만 달러(약 3천800억원) 규모로 수출했다. 우리의 로얄티 수입은 330억원 가량이다.

앞으로도 450여 명의 우수한 연구진이 다양한 기술이전 성과를 거둘 것으로 확신한다.

또한 케이메디허브는 국내 유일의 신약개발을 위한 단백질 구조분석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보건복지부 인공지능 신약개발 플랫폼 사업을 맡아 신약개발에 들어가는 비용과 시간을 최소화하는 데도 기여하고 있다.

- 신약뿐 아니라 의료기기도 지원하는가?

▶물론이다. IT 의료기기개발을 위한 시제품제작부터 성능 평가, 인허가 등 일련의 전과정을 지원하고 있다. MRI, 엑스선조영장치, CT를 한자리에 구비해놓고 영상촬영을 통한 의료기기 연구개발을 지원하고 있는데 이 세가지 영상장비를 한곳에 비치한 곳은 하버드대학과 함께 세계에서 두 번째며, 환자치료용이 아닌 연구개발을 위한 영상기반 지원은 세계에서 유일하다.

- 동물실험도 바이오산업에 중요한데?

▶신약과 의료기기 개발을 위해 필수적인 동물실험도 한자리에서 이뤄진다. 케이메디허브는 췌장암·뇌암·파킨슨 등 200여종의 질환모델동물 제작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다양한 질환의 전임상 실험 지원이 가능하다. 또한 최근에는 실험동물로 인기있던 마우스만큼이나 미니피그가 주목받고 있다. 이를 위해 미니피그 위주 전임상이 가능한 미래의료기술연구동을 짓고 있다.

- 동물실험에 성공한 이후에는 어떤 지원책이 있는가?

▶전임상을 통과하면 사람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임상환자수는 제한돼있어서 처음부터 제약공장의 생산라인 가동을 멈추고 소량의 의약품을 제조하려면 제조단가가 너무 높아진다. 이런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케이메디허브는 최소 1㎏ 단위부터 의약품 생산이 가능하다. 공공기관 최초로 GMP 인증을 받은 시설에서 임상시험용 의약품을 생산하고 있다. 특히 의약생산센터를 찾는 기업수요가 넘쳐서 2024년까지 총 200억원(국비 140억원, 시비 60억원)의 사업비를 투입해 스마트팩토리를 설립중이다. 스마트팩토리가 완공되면 최대 200L까지 의약품 생산이 가능해진다. 중소·벤처기업의 원료 및 완제의약품 생산지원 플랫폼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스마트팩토리는 미국 FDA·유럽 EMA 기준에 부합되는 수준으로 건설중이다. 완공되면 주사제의 경우 기존의 세포독성항암주사제 뿐만 아니라 일반 액상주사제 완제품까지 생산 가능해지고, 융복합의료제품 생산작업실과 의약품 품질관리 시험실도 갖추며, 스마트 생산시설 보급을 위한 교육시설로도 활용할 예정이다.

- 바이오산업이 디지털헬스케어로 진화하고 있는데?

▶케이메디허브가 주력하고 있는 분야가 ‘디지털헬스케어’이다. 4차 산업혁명 핵심기술을 헬스케어와 접목해 디지털헬스케어가 탄생했고, 첨단의료산업을 육성하는 우리에게 이 디지털헬스케어는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의료산업의 고부가가치를 창출하고 변화된 패러다임에 앞장서기 위해 디지털헬스케어의 연구개발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우리는 디지털헬스케어 연구개발을 위해 조직을 개편해 디지털헬스케어사업단을 출범시켰다. 디지털헬스케어사업단은 실증사업화팀, 임상평가지원팀, 의료빅데이터팀으로 구성됐다. 실증사업화팀은 2026년까지 5년간 보건복지부와 대구시로부터 총 150억원의 사업비를 지원받아 디지털헬스케어 의료기기 인프라 지원과 실증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케이메디허브는 ‘디지털헬스케어 의료기기 실증사업’을 수행하며 기업·병원을 연계해 제품의 임상적 유효성을 검증하고 사업결과를 활용해 신의료기술 등제, 혁신형의료기기 획득, 해외인허가 인증까지 지원하며 국내외 시장진출을 돕고 있다.

임상평가지원팀은 임상시험 프로토콜 가이드 및 케이메디허브의 공동IRB 지원을 위해 e-IRB 시스템을 고도화하고 활용성을 높일 예정이며, 디지털 전환형 의료제품 기술개발 사업도 발굴할 예정이다. 의료빅데이터팀은 의료정보 및 임상 데이터 등을 관리하고 분석하는 업무를 수행하면서 의료빅데이터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디지털헬스케어 기업/병원 간 협력체계 구축 업무도 수행할 예정이다. 오는 6월 열리는 ‘KOAMEX’(코아멕스, 대한민국 국제 첨단의료기기 및 의료산업전) 전시회를 통해 디지털헬스케어 산업 특별관을 설치하고 산학연병관 기술교류회도 실시해 국내 디지털헬스케어 사업의 우수성과 발전가능성을 홍보할 계획이다.

- 일각에서는 바이오기업에 대한 불신도 있다. 국내 바이오산업의 현황은 어떤가?

▶의료시장은 불경기 속에서도 시장이 확장되는 매력적 분야지만 대한민국은 걸음마 단계 수준이다. 세계 제약시장 규모는 2019년 1870조원 규모였다. 세계 의료기기 시장은 연평균 4.5%씩 성장해 2020년 600조원 규모를 돌파했다. 하지만 제약시장의 41%, 의료기기의 43%는 미국이 점유하고 있다. 그 뒤를 유럽이 따른다.대한민국은 제약으로는 세계시장의 1.3%, 의료기기로는 세계시장의 1.5%를 차지하고 있다. 한마디로 초보 수준이다.

그렇지만, 대한민국은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의료를 꼽았다.

의료산업은 인재에 기댄다는 점에서 우리가 도전해볼만 하다. 땅을 파서 나오는 광물은 없지만 똑똑한 사람이 많아서 기적을 만들어낸 곳이 대한민국이다. 또 그 똑똑한 사람들 중 상위권들이 전부 의대로 몰리는 국가 아닌가. 그들이 의사과학자로 창업하고,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내주기를 기대한다.

또한 의료산업은 특이한 소재가 생산되거나, 특별한 지리적 조건이 좋다고 해서 유리한 산업이 아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이 유리한 편이다. 대신 신약의 경우 10년의 시간, 1조원의 비용을 투자해 연구개발하면 백만분의 1의 확률로 성공한다. 이러다보니 로또보다 투자가 조심스럽다. 대신 성공하면 일정기간 독점을 공식적으로 인정해주고 천문학적 수익을 거둔다. 하지만 개인이나 기업에게 연구개발 투자를 요구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정부가 케이메디허브를 만든 것이다.

특히, 신약은 성공이 어렵지만 ‘의료기기는 좀 쉽지 않나’라고 흔히들 생각한다. 신약은 인허가를 받기까지가 죽음의 계곡이지만, 의료기기는 인허가 다음도 가시밭길이다. 물론 인허가까지도 고난의 행군이지만 우수성을 인정받더라도 병원에 제품을 납품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이다. 그나마 대구의 병원들은 케이메디허브에서 개발한 제품을 먼저 사용해주기로 약속하고 있어 관련기업들이 우리를 찾고 있다.

- 국내 바이오산업의 경쟁력은 어떻게 보는가?

▶지금 대한민국 바이오산업은 걸음마 단계임이 분명하지만 앞으로의 성장가능성까지 낮게 볼 수는 없다. 아직 다윗처럼 보이지만 골리앗을 이길 수 있는 가능성도 충분하다. 코로나19 사태 때 우리는 이를 직접 확인했다. 한국의 마스크와 진단키트가 세계시장에서 인정받는 걸 이미 경험했다. 품질만 우수하다면 기업규모나 인지도에 상관없이 세계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분야가 바이오이다.

- 걸음마 단계인 바이오산업 육성 전략이 있다면?

▶정부가 연구개발을 지속적으로 지원해주고 우리 같은 지원기관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유럽이 제약시장을 독점하고 있던 상황에서 미국이 반격한 계기가 ‘보스턴 클러스터’였다. 보스턴은 대학(하버드, MIT 등)과 병원(하버드, 매사추세츠 종합병원 등)이 있었고, 여기 의료기업들이 모이면서 인력과 임상이 연계되는 구조를 만들었기 때문에 성공했다. 지금은 화이자, 머크, 노바티스 등 굵직한 대기업이 몰려있다보니 성공한 클러스터의 표본으로 불린다.

이후 많은 국가들은 보스턴의 기적을 만들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의료 클러스터를 만들기 시작했지만, 딱히 성공한 곳은 아직 없다. 대학과 병원, 기업을 한곳에 모으는 일이 쉽지가 않다. 기업은 제품을 검증하고 사용해줄 병원이 필요하고, 이론적 지식과 인력을 제공해줄 대학을 원한다. 대학은 학생들을 취업시킬 기업이 필요하고, 이론을 입증해줄 테스트베드로서의 병원을 원한다. 병원도 이론적 배경과 공동연구가 가능한 대학이 필요하고, 우수제품을 제공해주는 자양분이 될 기업을 원한다. 이런 구조가 사이클을 이루지만 이런 순환구조를 처음 만들기란 매우 어렵다. 완성된 곳에 들어갈 이는 많지만, 미완성인 곳에 유치는 어렵다.

일단 정부가 의료클러스터를 조성하는데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가는 것부터 문제다. 누군가 헌신해서 조성까지 성공했다 치더라도, 이후부터 각계각층에서 특혜논란이 빚어진다. 왜 보스턴만 지원하는가, 워싱턴에 인구가 더 많다, 동서(東西) 균형발전 차원에서 샌프란시스코를 지원해달라, 뉴욕에도 정부가 조금만 투자해주면 보스턴과 손잡고 확장시키겠다… 민원이 끝없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데도 미국은 화이자와 노바티스가 자리잡을 때까지 보스턴을 지원했고, 덕분에 유럽을 제쳤다. 이러한 성공모델이 대한민국에서도 이뤄질 수 있도록 장기적 지원과 집중화 전략이 필요하다고 본다.

- 끝으로 바이오산업 육성에 대한 견해는?

▶바이오산업 육성은 단기간에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정당, 지역, 학벌을 넘어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으로 뭉쳐야만 미국과 유럽을 이길 수 있는 제2의 반도체를 키워낼 수 있을 것이다.
김동홍 기자 khw090928@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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