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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에 ‘주주 포퓰리즘’이 등장해 기업 의결권이 기업자본가에서 연기금과 뮤추얼펀드로 넘어가면서 1960~1970년대는 그들의 전성시대가 되었다. 1980년대 기업사냥꾼이 무섭게 세를 확장했지만 이후 다시 기관투자가들이 헤지펀드 행동주의자들과 결탁해 기업경영에 깊숙이 개입하게 된다. 이 책은 헤지펀드 매니저가 쓴 ‘주주행동주의’의 역사다. 저자는 ‘주주=무능, 이사회=부패’라는 선입견을 깨고 균형적인 시각으로 이 책을 썼다. 주주에게는 장기적인 안목을, 경영진과 이사회에는 경영능력을 주문했다. 기업의 바람직한 지배구조와 현명한 주주행동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하는 책이다.
◇ 현대 주주행동주의의 태동 ‘벤저민 그레이엄’
그레이엄은 처음으로 기업의 잉여현금을 돌려 받은 인물로 더 유명하다. 대상은 록펠러 계열의 ‘노던파이프라인’였다. 그는 이 회사가 막대한 현금과 채권을 주주들에게 숨겨 결국 주식 가치를 떨어트렸다고 판단했다. 그는 주당 90달러까지 특별배당을 지급해도 무리 없을 것이라며 주주총회에서 잉여현금을 주주들에게 분배하라고 촉구해 관철시켰다.
그레이엄은 주주들이 경영진의 전횡을 방치했다고 보았다. 기업의 자본배분에 초점을 둔 그의 주주행동주의는 이후 경영진 임명과 경영권 획득 수준까지 이르게 된다. 그는 그러나 승리를 통한 수익보다 스릴 넘치는 대결 과정 자체를 즐겼다. 예순 한 살에 일찍 은퇴했지만, 그의 제자인 워런 버핏은 가치투자 기법을 잘 다듬어 거대한 부를 창출했다.
◇ 월가를 긴장시킨 위임장 전문가 ‘로버트 영’
듀퐁 화학공장의 말단 화약 운반기사로 출발해 월스트리트에서 성공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1954년 C&O철도 경영권다툼에서 6000명 소액주주들을 등에 업고 JP 모건과의 최대의 위임장 대결에서 승리했고, 이어 미국 2위 철도회사 뉴욕센트럴과의 위임장 대결에서도 이겨 정점을 찍었다. 이런 엄청난 위임장 대결을 계기로 오늘날의 ‘기업사냥꾼’이 탄생했다.
그는 주주들에게 “뉴욕센트럴과의 위임장 대결에서 이겨 이사회 의장이 된다면 연봉 1달러만 받겠다”고 약속했다. 자신이 주주들로 이사회를 구성하면 ‘개미군단’ 소액주주들의 이해관계와 회사의 이해관계가 일치하게 된다고 설득했다. 더 많은 이익배당 약속과 함께 CEO인 화이트가 받는 푸짐한 보상과 퇴직금도 문제 삼았다. 그는 스스로를 ‘주주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용감한 전사’라고 자부했다. 저자는 “어쩌면 위임장 장 대결은 강력한 투자전략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잊혔던 주주의 권리와 주주가치의 개념, 상장 기업의 역할이 위임장 대결로 다시 논의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위임장 대결은 곧 적대적 공개매수에 자리를 내주었고, 위임장 전문가들도 기업사냥꾼에 밀려났다.
◇ 가치투자자의 행동주의 ‘워런 버핏’
당시 사기로 인한 막대한 손실로 주가는 폭락했지만 버핏은 오히려 아멕스 주식을 대규모로 사들였다. 한 때 그의 포트폴리오에서 이 회사 비중이 33%에 육박할 정도였다. 그는 투자자들이 겁먹고 과잉반응한 탓에 주가가 과도하게 하락했다고 판단했다. 실적을 조사해 보고는 아멕스의 브랜드 가치가 손상되지 않았다고 결론지었다.
그는 아멕스의 투자 리스크란 일시적인 배당 중단 정도가 전부라고 보았다. 실제로 샐러드오일 피해자들과 합의한 보상금액은 세후 3200만 달러에 불과했다. 버핏은 이 투자로 충분한 자금을 확보할 수 있었고, 곧 이름 없던 직물회사 버크셔 해서웨이를 인수해 굴지의 지금의 거대기업으로 키웠다.
◇ 현금 쥔 무서운 기업사냥꾼 ‘칼 아이칸’
그에 맞서 회사는 몇 가지 주주환원 정책을 펼쳤지만 부결됐다. 대기업이 위임장 대결에서 패한 첫 사례였다. 결국 그에게 비용 명목으로 2500만 달러를 지급키로 했고, 그는 10주 만에 5000만 달러 수익을 챙겼다. 아이칸은 “나는 이기는 게 목적인 사람이다. 이긴다는 것은 곧 돈을 의미한다”고 자랑했다.
그는 위임장 전문가들과는 달리 ‘현금’이라는 무서운 무기를 갖고 있었다. 정크본드 시장에서 조달한 돈으로 특정 주식을 더 높은 가격에 되사는 ‘그린 메일’ 방식을 애용했다. 그러나 포이즌필이 확산되어 기업사냥꾼 규제가 강화되고 기관투자가들이 힘을 얻으면서 그의 시대도 곧 저물었다.
◇ GM을 구하려다 상처 입은 ‘로스 페로’
그는 스미스가 9년 동안 투입한 800억 달러가 대부분 실패였다고 비판했다. 1985년 휴즈항공사를 50억 달러에 인수하려던 계획까지 반대했다. 이사회는 페로와 다른 EDS 고위 임원의 사임을 조건으로 그들에게 7억 달러가 넘는 돈을 주기로 결정했다. 페로가 이에 합의했고, 이런 사실을 뒤늦게 안 대형 연기금들은 GM에 등을 돌렸다.
GM이 100억 달러 비용절감 및 역대 최대 규모의 자사주 매입계획까지 밝혔지만 허사였다. 기관투자가들은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했고 GM의 몰락은 가속화됐다. 페로 역시 GM을 망친 인물로 비판받았다. 페로와 GM의 싸움은 주주행동주의와 상장기업 지배구조에서 일대 전환기를 맞게 해 주었다. 기관투자가들이 각성하기 시작했고 기업사냥꾼의 시대가 종말을 고했다.
◇ 잘못된 주주행동주의 피해자 ‘BKF캐피탈’
2003년 말 BKF캐피탈은 운용자산 130억 달러에 운용수입이 1억 달러에 육박했다.하지만 좀처럼 주가가 오르지 않았다. 주주들은 직원들에 대한 과도한 보상을 문제 삼았다. 이 때 헤지펀드인 스틸파트너스가 지분을 취득한 후 새로운 이사 3명 선임과 배당금 확대와 자사주 매입, 그리고 BKF가 적대적 인수합병에 대비해 도입한 포이즌필을 포기하라고 압박했다.
주총 직전에 또 다른 헤지펀드가 낮은 마진과 높은 임금을 빌미로 공격해 왔다. 결국 BKF는 포이즌필을 철회하고 이사 시차임기제를 없애기로 했다. 마지막까지 존 레빈 CEO가 “장기적으로 주주가치를 극대화하려면 직원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읍소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사회는 스틸파트너스가 내세운 이사들로 채워졌다. 그리고 15개월 후인 2006년 9월 말 BKF는 운용자산을 모두 잃고 껍데기 회사로 전락했다. 주가는 90%나 급락했다.BKF사례는 주주가치를 엄청나게 파괴한, 재앙 같은 주주행동주의의 사례로 기록되었다.
조진래 기자 jjr89548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