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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기술은 예술이 될 수 있을까

입력 2023-05-30 14:03 | 신문게재 2023-05-31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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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미선 문화부장
상상으로만 그리던 것을 구현해주는 기술은 축복이기만 할까. 달리(Dall-E)나 미드저니(Midjourney), 스태빌리티 AI(Stability AI)의 스테이블 디퓨전(Stable Defusion), 어도비의 파이어플라이, 마이크로소프트의 빙이미지크리에이터 등 원하는 바를 알려주면 미술작품, 웹툰, 일러스트, 디자인 등으로 구현하는, 최근에는 그림 뿐 아니라 작곡, 애니메이션, 글, 영상물 등까지 도출하는 생성형 AI(Generative AI)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챗GPT에 대한 탐구와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 또 다른 AI 기술이 도마에 오른 셈이다.

올 8월 콜로라도 주립 박람회 미술대회에서는 생성형 AI 미드저니를 활용한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Theater D;opera Spatial)이 디지털아트 부분 우승을 차지했는가 하면 지난해 한국문학번역원이 주관하는 한국문학번역상 웹툰 부문 신인상 수상자가 AI번역기를 사용한 사실이 알려지며 충격을 안기기도 했다. 

작가가 구상한 스토리를 바탕으로 AI가 콘티, 밑그림, 채색까지를 담당하는, 사람과 AI 협업물을 게시하는 웹툰 플랫폼도 생겨났다. 지난 5월 미술시장 침체 징후 속에서도 성황리에 개최됐던 아트부산도 생성형 AI 달리를 활용한 ‘나만의 작품 만들기’ 이벤트를 진행해 큰 관심과 호응을 받기도 했다. 

생성형 AI를 둘러싼 논란은 챗GPT에서 채 해결하지 못한 숙제들에 창작자들의 권리, 창작물과 작가의 재정의 등 또 다른 쟁점들을 추가시켰다. 지난 2월 글로벌 이미지 제공업체 게티이미지는 스태빌리티 AI가 생성형 AI 스태이블 디퓨전 학습에 자사 이미지 1200만개를 무단으로 활용했다며 미국 델라웨어지방법원에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했다. 생성형 AI는 데이터베이스, 딥러닝 등의 기술을 활용하기 때문에 AI에 데이터를 학습시키는 과정에서 원저작물에 대한 권리 침해, 무단도용 등의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는 예측이 고스란히 드러난 셈이다.

창작자들 뿐 아니라 독자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최근 네이버웹툰에 게재된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은 생성형 AI 활용 의혹으로 별점테러를 맞았고 중국 텐센트 배급의 퍼즐 게임 ‘백야극광’은 역시 같은 이유로 불매운동까지 벌어졌다. 

누구나 창작자가 될 수 있고 글·그림·영상 등으로의 구현이 어려웠던 아이디어들이 콘텐츠화될 수 있다는 청사진에도 인간인 작가가 온전히 창작물의 주도권을 가져갈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의견도 분분하다. 

예술작품은 작가 개인만의 작품세계, 그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등으로 예술성과 창작자로서의 가치를 인정받는다. 화가의 화풍과 기법, 감독의 스타일과 미장센, 작가의 작법과 말맛, 웹툰작가의 그림체 및 캐릭터 설정, 작풍 등은 오랜 창작활동들이 켜켜이 누적돼 만들어내고 진화시킨 ‘예술성’의 핵심이다. 하지만 그 과정을 생략한 채 생성형 AI로 시작하는 창작자들이 남의 것이 아닌 온전히 자신만의 예술로 승화시킬 수 있을지는 향후 더욱 치열하게 논의해야할 지점이다.

인터뷰, 현장취재 등이 많은 기자들, 홍보 및 마케팅 담당자들, 강의를 듣는 학생 등 사이에서 AI를 활용해 음성을 텍스트로 변환하는 기술은 ‘신세계’로 인식되고 있다. 이 기술사용 전에는 1시간 인터뷰 녹취를 위해 2, 3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기사를 쓰기 전부터 진이 빠져버리던 이전과 달리 그 ‘신세계’를 접하면서 곧바로 기사작성에 돌입할 수 있게 됐다. 녹취를 클릭하는 동시에 녹음본을 들을 수 있어 부정확하거나 오류가 의심되는 부분은 바로 잡을 수도 있다. 데이터가 쌓이고 학습경험이 늘면서 정교화된다면 ‘라이벌’이 될지도 모를 일이지만 아직까지는 충실한 ‘조력자’로 인식되고 있다. 

문제는 기술 발전과 인간의 기술 수렴·논의·대응책 마련 속도에 간극이 생기면서 발생한다. 생성형 AI는 웹툰 ‘신과함께’ 시리즈의 주호민 작가조차도 AI가 그린 그림과 사람이 그린 그림을 구별하는 퀴즈 47개 중 10개를 맞추지 못했을 정도로 정교화됐지만 인간은 AI를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조차 정리하지 못한 채 갈팡질팡할 뿐이다. 

콜로라도 주립 박람회 미술대회에서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으로 디지털 부문에서 우승한 게임기획자는 작업시간 80시간, 900번이 넘는 명령어 수정 등을 거쳐 완성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의 노력을 ‘클릭질 한두번’ ‘딸깍이’ 등으로 폄훼해도 좋은지, 이것이 예술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심사숙고해야 할 때다. 

기술의 발전과 진화를 인간이 멈출 수 있을까. 일부러 그 발전과 진화를 틀어 막는다 해도 한번 잉태된 기술은 최첨단화되고 고도화되기에 이른다. 결국 그 기술들을 어떻게 받아들여 활용할지는 인간의 몫이다. 아이들의 놀이 정도로 여겨지던 게임은 이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회를 열 수 있는, 분명한 예술이 됐다. 기술은 예술이 될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한 답 역시 ‘인간’이 가지고 있다.

허미선 문화부장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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